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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 공동기획]④유족 김공열 어르신 사례로 본 4·3 과제
더딘 제주4.3희생자 유해 신원확인 ... 이유는?

지난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정부의 희생자 보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 70여년만에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물꼬가 트였다고 하지만 가족관계 불일치, 일반재판 수형 희생자 등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들은 쌓여있다.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미디어제주·제이누리·제주의소리·제주투데이·헤드라인제주)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함께 희생자의 유족 인터뷰를 통해 명예회복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제주시 화북동에 거주하는 김공열 어르신(101)에게 올해 초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바로 74년 전 제주4.3 당시 행방불명된 작은 오빠 故 김규희(1924년생)씨의 유해를 찾았다는 연락이었다.

 

김규희씨는 4.3직전 일본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군인들에게 연행돼 제주항 산지에 있던 주정공장으로 끌려갔고, 1949년 당시 비행장(현 제주공항)으로 끌려가 총살됐다.

 

이후 가족들은 묘지조차 만들지 못하고, 가족 묘지에 김규희씨의 비석만 세운 채 제사를 지내왔다.

 

70여 년 간 오빠를 찾아 헤맸던 김공열 어르신은 지난해 조그마한 기대를 걸고 4.3유해 신원확인을 위한 DNA 채취에 참여했는데, 1년 만에 잃어버린 오빠를 찾을 수 있었다.

 

20대이던 여동생은 오랜 시간이 흘러 100세 할머니가 됐고, 돌아온 작은 오빠의 유해를 맞으러 갈 수조차 없었다.

 

결국 지난 2월 10일 열린 제주4.3 유해 신원확인보고회에는 김 어르신의 아들과 며느리가 참석해 유해를 맞이했다.

 

 

알고 보니 김규희씨의 유해는 2007년부터 2009년 사이 제주공항 남북 활주로에서 이미 수습된 상태였으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해 4.3평화공원에 모셔져 있던 상황이었다.

 

만약 김공열 어르신이 DNA 채취를 하지 않았다면, 생전에 유해를 찾지 못할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특히 기존 STR 검사 방식에 이어 2018년 이후 새롭게 도입한 SNP 검사 및 염기서열분석법(NGS)도 신속한 신원 확인에 한 몫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공열 어르신에게 DNA 채취를 적극 권유한 것은 바로 며느리 양춘자 할머니(75).

 

양 할머니 본인도 아버지가 4.3당시 끌려가 실종된 제주4.3희생자 유족이었다.

 

양 할머니의 아버지인 故 양지홍씨는 4.3 당시 제주시 조천읍 신촌국민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었는데, 토벌대에 의해 연행돼 1949년 10월 희생됐다.

 

그러다 8년 만에 재개된 2019년 제주공항 유해발굴 과정에서 발견됐고, DNA 채취를 통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2006년 시작된 제주4.3 유해발굴 사업을 통해 발굴된 유해는 올해까지 411구로, 이 중 138구의 유해는 신원이 확인돼 가족들의 품에 돌아갔다.

 

그러나 아직도 273구의 유해는 아직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채 4.3평화공원 봉안관 및 발굴기관 등에 안치돼 있다.

 

또 제주도내 어딘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희생자도 2000여명에 달하고, 타지역으로 끌려간 경우도 17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미 70여년의 세월이 흘러 부식과 훼손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앞으로 추가로 유해가 발견되더라도 시간이 더 흐를수록 점점 신원 확인 가능성은 점점 낮아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에 4.3희생자 유족들을 대상으로 조속한 DNA 채취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DNA 채취를 통해 잃어버린 가족을 찾은 양춘자 할머니는 다른 4.3유족들도 DNA 채취에 동참해 잃어버린 가족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양 할머니는 "내 아버지도 4.3당시 끌려가 희생되셨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꼭 유해를 찾아달라고 당부했다"며 "나와 동생이 DNA 채취를 했고, 아버지의 유해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먼저 친정 가족의 유해를 찾은 경험이 있어서 시어머니(김공열 어르신)에게 DNA 채취를 권유했고, 이번에 유해를 찾을 수 있었다"면서 "시어머니는 검사를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남편과 내가 적극 권유했고, 작년에 검사를 받아 올해 작은 시아버지의 유해를 찾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양 할머니는 "그동안 내가 죽는 날까지 아버지, 작은 시아버지의 유해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이제 모두 찾아 여한이 없다"며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분들은 DNA 채취를 해서 유해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헤드라인제주=홍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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