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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평화공원서 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 ... 정뜨르비행장서 발굴 5구 유족 품으로

 

"아버지는 1948년 딸 출산소식을 듣고 (일본에서) 귀국한 후 고작 3일이라는 짧은 시간을 함께한 뒤 가족과 헤어져 74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긴 세월 그립던 아버지 고(故) 김석삼(1914년생·서귀포시 호근동)씨는 70여년 만에 쓸쓸한 유해로 돌아왔다.

 

당시 갓난아기였던 희생자 김석삼씨의 딸 김영숙씨는 현재 75세다. 그는 10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 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아버지의 유해를 향해 손수 친필편지를 읽어내려갔다.

 

영숙씨는 "가족과 헤어진 아버지는 74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오늘, 딸과 그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됐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신 아버지가 너무나도 반갑고 평화공원 봉안실에 편히 모시게 돼 작게나마 자녀의 도리를 한 것 같다"고 말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4.3 광풍 속 희생된 지 74년, 유해로 발굴된 지 10여년만에 4.3 희생영령 5명이 이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이날 영면에 든 희생자는 김씨를 포함해 故고군현(1926년생·안성리), 故김영송(1918년생·함덕리), 故김규희(1924년생·화북리), 故양희수(1923년생·동명리)씨 등 모두 5명이다.

 

희생자 김석삼씨는 일본에서 일하던 중 25살의 나이에 딸 출산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고향 제주로 왔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귀국 후 사흘만에 군·경에 끌려가 1948년 불법 군법회의를 통해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가 1949년 출소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어떻게 해서 옛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에서 학살됐는지는 의문이다.

 

이 중 김규희 씨와 양희수 씨는 1949년 불법적인 군법회의를 통해 사형 선고를 받고 희생됐다. 김영송 씨는 1949년 9월 경찰서로 끌려간 후 행방불명됐다.

 

제주4·3평화재단 측은 “김씨는 군법회의나 예비검속을 통한 희생자도 아닌데 왜 정뜨르비행장에서 학살됐는지 여전히 파악되고 있지 않다”면서 “9연대 군인이었던 고군현씨가 학살당한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은 현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 부근에서 학살돼 땅속에 묻혔다. 2007∼2009년 진행된 유해 발굴 사업을 통해 유해나마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하지만 유해 발굴 이후에도 10년 넘게 유족들을 찾지 못해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신원확인작업을 벌인 서울대학교 법의학연구실은 지금까지 유전자검사방식인 STR 및 SNP 검사에서 염기서열 분석법(NGS)을 적용, 유해의 신원을 밝혀냈다.

 

STR 검사 방식은 보통염색체 또는 성염색체 검사로 친부모 및 자식관계만 판별이 가능하다. SNP 방식은 STR보다 식별률이 2.5배 높은 검사다.

 

NGS는 유전자 DNA의 일정 구간을 증폭해서 분석해 유해 시료가 손실돼도 판별이 가능한 검사 방법이다.

 

특히 김규희 씨는 지난해 101세의 누나 김공열 씨가 채혈한 덕분에 극적으로 신원확인이 이뤄졌다.

 

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현재까지 4·3 희생자 411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하지만 이들중 신원이 확인된 이는 고작 138명에 불과하다. [제이누리=박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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