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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의 프리즘] 미래 비전과 거대 담론 없는 선거

 

마스크를 벗지 못한 채 생활하기 어언 2년, 또 이렇게 설을 맞는다. 명절임에도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6명까지만 모일 수 있어 일가친척이 모두 만날 수는 없다. 그래도 20대 대선을 한달여 앞둔 시점이라 차례상을 물린 뒤 선거 이야기가 화제로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판은 온갖 의혹 제기가 난무하는 네거티브 일색이다. 대장동 개발 비리와 고발사주 의혹 등 유력 후보들 본인의 사법 리스크와 함께 가족의 신상 문제가 집중 거론되더니 급기야 후보 부인과 후보 본인의 대화 녹취록 공개 파문이 일었다. 

 

그사이 양대 정당 후보들은 서로 ‘내가 더 많이 퍼주겠다’고 경쟁한다. 내세우는 공약들은 좋게 말해 ‘생활밀착형’이지 후보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거대 담론이나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토론을 기피하니 깊이 있는 정책 논의는 실종된 사태다. 

 

후보 간 공약 차별화도 눈에 띄지 않는다. 표가 될 것 같으면 심지어 경쟁후보가 이미 내놓은 공약을 베끼기까지 한다. ‘표票퓰리즘’ 지적과 함께 ‘후보 이름을 지우면 누구 공약인지 알 수 없다’는 자조적인 평가가 나오는 실정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난해 말 병사 월급을 200만원으로 올리는 국방공약을 발표하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1월 ‘병사월급 200만원’이란 한줄 공약을 내놓았다. 반대로 윤 후보가 지난해 8월 민간 재건축 용적률을 500%로 높이는 ‘역세권 첫집’ 공약을 제안한 지 5개월 만에 이 후보는 용적률 500%의 4종 주거지역 신설 방안을 밝혔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문제를 국가재정으로 해결하려 들면서 과도한 ‘곳간 열기’와 비현실적인 공약 남발로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15조〜25조원 규모의 전 국민 추가 재난지원금 지급을 거론하자 윤석열 후보는 50조원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보상 지원으로 판을 키웠다.

 

당정이 소상공인·자영업자 300만원 추가 지급을 위한 14조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기로 하자 윤 후보는 “훨씬 큰 규모로 (해야 한다)”고 응수했다. 양당과 후보 모두 불어나는 국가채무 등 재정 건전성은 염두에 없어 보인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두드러진 것 중 하나는 특정계층의 요구를 좇는 마이크로 타깃팅이다. 이재명 후보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시리즈와 윤석열 후보의 ‘심쿵약속’이 그것이다. 유권자의 달라진 생활양식에 부응하는 체감도 높은 공약이긴 해도, 재정 부담과 파급 영향 등을 충분히 고려했는지 의문이다. 

 

결과적으로 두 후보 모두 약속한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은 부사관과 장교 월급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재정 부담 우려가 뒤따른다. 이 후보의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은 더 시급한 희귀·난치성 질환자들을 외면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현 정부가 4월로 늦춘 전기요금 인상을 백지화하겠다는 윤 후보 공약은 한국전력의 적자는 어떻게 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이밖에도 확률형 게임 아이템 정보 공개, 대입수능 응시료 세액공제, 타투 시술 합법화, 반려동물 쉼터 확대, 전기차 충전요금 동결 등 2030 세대가 캐스팅보터로 떠오르면서 여야가 마이크로 타깃팅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마이크로 공약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관건은 확실한 데이터와 후보자의 국정운영 철학에 입각한 것인지 여부와 구체적인 실행 전략을 갖췄느냐다. 선거 때 표를 노린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데 그친다면 적지 않은 비용 수반과 함께 공약으로 채택해 달라는 다양한 집단의 요구가 분출하며 갈등이 격화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정치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네거티브 캠페인 메시지에 노출된 유권자의 투표에 참여하려는 의도는 5% 정도 떨어진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탈동원 효과(demobili zation effect)’를 유발한다는 거다. 네거티브 메시지는 특히 어느 후보를 선택할지 결정하지 못했거나 바꿀 생각이 있는 부동층의 투표참여 의사 자체를 떨어뜨린다. 오죽하면 유권자들이 ‘최선’ ‘차선’도 아닌 ‘차악’을 뽑는 ‘극한 선택’을 해야 한다며 한숨을 내쉴까. 

 

2836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이번 선거가 국민의 관심 속 올바른 선택을 이끌려면 남은 기간이라도 네거티브를 접고 미래 비전과 거대 담론, 생활밀착형 공약이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지을 핵심 이슈인 저출산 고령화 및 양극화 해소, 연금개혁과 노동개혁, 4차 산업혁명 대응과 산업 경쟁력 강화 등에 대한 해법을 놓고 정책으로 대결하고 토론하라.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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