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초 1만2000주, 돌단풍 2000주 등 볼거리도 풍성
용문사 산책로 구간(4.5km, 약 1시간 30분 소요) |
용문사 버스정류장-용문산관광단지-용문사-용문사 산책로-정지국사 비-용문사 산책로-용문산관광단지 |
양평의 용문사 산책로는 용문산관광단지에서 용문사까지 호젓한 길이 이어진다. 졸졸 흐르는 계곡을 끼고 시원하게 뻗은 나무들을 보노라면 걷는 시간이 짧게만 느껴진다. 용문사 내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된 은행나무도 놓치지 말아야 할 구경거리다. <편집자>
용문산은 경기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높은 산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계곡이 깊어 고산다운 풍모를 지닌 양평군의 상징이다. 더욱이 천년고찰 용문사와 더불어 관광지로 지정돼 평일에도 탐방객이 끊이질 않는다.
용문사는 913년(신덕왕 2년) 대경대사가 창건했다. 일설에는 649년(진덕여왕 3년)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892년(진성여왕 6년) 도선대사가 중창했다고 하며, 경순왕이 직접 이곳에 와서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조선 초기에는 절집이 304칸이나 들어서고 300명이 넘는 승려들이 모일 만큼 번성하기도 했다. 오랜 세월만큼 용문사는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모진 풍파를 겪었다. 의병 봉기가 일어났던 1907년에는 일본군에 의해, 6.25동란 때는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는 수모를 겪었다. 다행히 현재는 꾸준한 재건사업으로 일부분이 재건되고 보수도 됐다. 2009년에는 양평군이‘도랑물이 흐르는 숲속 볼랫길’사업의 일환으로 용문산 관광지 내에서 용문사까지 이어지는 길을 꾸몄다. 자연 그대로의 지형지물을 살리면서 구절초 1만 2000주, 맥문동 1만 2000주, 돌단풍 2000주 등을 식재해 더욱 울창하고 볼거리 많은 숲길로 조성했다.
버스를 타고 용문사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주변을 살펴보니 주차장 맞은편으로 식당이 줄지어 있는 게 영락없는 관광단지다. 하지만 용문사매표소까지 가는 길은 현란한 식당 간판보다 길가에 심은 은행나무가 더 눈에 띈다. 도심에 심은 은행나무와 달리 나무 빛깔도 은은하고 잔가지도 촘촘하게 나 있다. 잎눈은 이제 곧 터지기 직전인지 가지마다 굵고 빼곡하게 돋았다.
300m 정도 걸어 매표소를 지나 용문산관광단지에 이르렀다. 이곳은 양평군에서 잘 알려진 휴양타운으로 1971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곳이다. 넓은 잔디광장과 분수대를 중심으로 산 쪽에는 야외공연장과 조각공원이 있고 앞쪽으로 농업박물관이 눈에 띈다. 계곡 너머에는 놀이공원인 ‘용문산그린랜드’가 보인다. 이렇게 다양한 시설이 들어서 있는 만큼 시끄럽고 혼잡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로 조용하고 한적하다. 사람들이 오가는 잔디광장 한 켠에서는 야외시화전이 한창이다. 발걸음을 늦춰 잠시 둘러보다 용문사로 들어가는 일주문으로 향했다. 일주문 옆에는 흙길을 거닐 수 있는 산책로가 나 있는데, 어느 길로 가나 용문사로 향하게 된다.
일주문을 지나면 힘차게 뻗은 울창한 소나무 숲이 걷는 이를 반긴다. 땅에서 솟아나와 구불구불 하늘을 향해 있는 소나무들을 보노라면, 마치 용이 되려다 승천하지 못한 수백 마리의 이무기 떼 같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길가에는 소나무뿐 아니라 참나무·동백나무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눈에 띈다. 길 폭은 차도 지나다닐 만큼 넓은 편이지만 길가의 나무들은 한여름에도 뜨거운 햇살을 가려줄 만큼 울창하다. 깔끔하게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은 곱게 쌓인 낙엽과 조화를 이뤄 낯설지 않다. 눈 덮인 계곡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소리는 깊은 산자락에도 봄이 도달했다는 소식을 들려준다.
500m 정도를 걸어가니 길 오른편으로 계곡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가 보인다. 앞서 지나쳤던 일주문 옆 산책로와 이어져 있는 구간으로 두 길이 만나는 지점이다. 구름다리 위에서는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포장된 길을 300m 정도 더 걸어 어느새 용문사 앞에 이르렀다.
높이 40m에 둘레가 11m
동양서 가장 큰 은행나무
숱한 병화·전란서 살아남아
썩은 부위 찾기힘들 만큼 멀쩡
가장 먼저 하늘을 찌를 듯이 힘차게 뻗어있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눈에 띈다. 안내판을 보니 이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었으며, 높이 40m에 둘레가 11m는 족히 넘는 동양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라고 한다. 거듭되는 병화와 전란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았던 나무라하여 천왕목이라고도 불렸고, 조선 세종 때는 정3품 이상의 벼슬인 당상직첩을 하사받기도 한 명목이라고 한다. 고목을 천천히 둘러보니 썩은 부위를 찾기 힘들 정도로 멀쩡하다. 마치 모진 세월을 버텨낸 것을 넘어, 그 세월을 거름으로 삼고 자라나는 것처럼 보인다. 용문사를 둘러보니 그리 큰 규모의 사찰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고목이 있어 수차례 중건되고 복구한 용문사에는 천년의 세월이 묻어난다.
은행나무를 등지고 다시 왔던 길로 발걸음을 돌렸다. 용문사 방향으로 갈 때 지나쳤던 징검다리를 건너니 호젓한 산책로다. 산책로를 따라 50m 정도 갔을까… 정지국사 부도비로 향하는 샛길이 보인다. 200m만 가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라 망설이지 않고 샛길로 들어섰다. 쉽게 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 달리 경사가 급한 구간을 따라 높이가 높은 계단이 이어져 있어 금세 숨이 차오른다. 보물 제531호이기도 한 정지국사 부도 및 비는 1398년(조선 태조1년)에 건립되었으며, 당시의 창조자 명단과 정지국사에 대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 부도와 비는 승려가 세상을 떠나면 부도와 탑비를 세우던 신라시대 전통을 계승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만든 방법에서도 조선 초기 부도 연구의 기준이 된다고 한다. 정지국사 부도 및 비 앞에 설치해 놓은 의자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산책로로 향했다.
산책로는 두 팔 너비도 채 안 되는 좁은 오솔길이다. 경사진 산기슭에 만들어져 있고 이리저리 구불구불하지만 걷기 편하게 흙으로 잘 다져놓았다. 계곡물 소리를 귀에 담고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소나무 줄기를 어루만지며 걸어가니 어느새 산책로 출구가 보인다. 출구를 빠져나오니 잠시 오랜 세월 속에서 묻혀 걷다 겨우 다시 현실로 돌아온 듯하다.
주의사항
용문산관광단지로 들어가기 위해선 입장권(2000원)을 끊고 들어가야 한다. 가는 길에 매점이 있을 뿐 아니라 용문사 앞에는 찻집도 있어 따로 먹을거리를 준비할 필요는 없다. 용문사는 수행자들의 공간인 만큼 고성방가는 삼가야 한다.
맛보고 즐기고
용문사 버스정류장에서 용문산관광단지까지 가는 길에는 나물을 주 재료로 한 식당들이 즐비하다. 용문산 중앙식당(031-773-3422)은 산내음이 물씬 풍기는 더덕구이와 더불어 곤드레산채비빕밥이 맛깔스럽다.
가는 길
자가용(서울 출발)
강변북로 구리방면으로 타고 가다가 양평·덕소삼패IC 방면에서 우회전-고산로를 따라 직진-삼패삼거리에서 양평·덕소 방면으로 우회전-경강로를 따라 마룡교차로까지 직진-용문사·지평·용문 방면으로 우회전-마룡교차로에서 좌회전-용문산로를 따라 직진-용문사 주차장
대중교통
지하철 용문역(중앙선)에서 1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버스는 약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용문사 정류장까지는 20분 남짓 걸린다.
바끄로=한동우 기자(east@bacc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