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목표대로라면 새해 경제지표는 괜찮아 보인다. 우선 성장률이 3%다. 현실화하면 2010년(6.5%), 2011년(3.7%) 이후 7년만의 이태 연속 3%를 넘는 성장이다. 그 다음 1인당 국민소득이 3만2000달러로 3만 달러 벽을 넘어서게 된다. 2006년 2만 달러를 돌파한 지 12년 만이다.
양적 지표로는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하고 있음이다. 그러나 질적 측면에서도 그런가. 대다수 국민이 고개를 젓는다. 그도 그럴 것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삶의 질 순위는 2012년 24위에서 2016년 28위, 지난해 29위로 떨어졌다. 이를 의식했는지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새해 경제정책방향에서 2018년을 ‘3만 달러 시대 원년’으로 규정하고, 소득 수준에 걸맞게 삶의 질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일자리를 늘려 소득주도 성장을 이루고, 혁신을 통해 경제체질을 개선하고, 공정경제를 확립해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삶의 질을 높이려면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야 할 텐데, 이것부터 해결 난망이다. 새해 일자리 예산은 지난해보다 12.7% 많은 19조2000억원, 이 중 3분의 1을 1분기에 집중 투입한다. 공공기관 및 공무원 신규 채용을 늘리고, 중소기업에 지원되는 추가고용 장려금 요건도 완화한다.
이처럼 예산과 정책을 총동원하는데도 정부의 취업자 수 증가폭 전망은 32만명으로 지난해와 같다. 지난해 7월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이 제시했던 36만개보다 적다. 특히 청년 일자리가 문제다. 인구구조상 올해 25~29세 청년층이 지난해보다 11만명 더 늘어날 텐데 뾰족한 청년 일자리 창출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올해 최저시급이 7530원으로 지난해보다 16.4% 인상됐다. 벌써부터 식당 등 일부 업소에서 아르바이트 종업원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는 등 급격한 최저시급 인상 후폭풍이 심상찮다. 정부는 급한 김에 직원 수 30명 미만 영세기업에 근로자 1인당 13만원씩 일자리 안정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하지만 민간기업 임금을 나랏돈으로 마냥 대줄 수는 없다. 최저임금 지급 대상자의 고용 동향을 면밀히 살펴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 및 공무원 신규 채용 확대로 일자리 창출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지만 기업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재정만 축내는 결과를 빚게 된다. 세계경제가 좋을 때 기업들이 움직이게 해야 한다. 성장과 고용은 기업이 이끌고 정부와 공공이 보완해야지 지금처럼 역할이 뒤바뀌어선 오래가지 못한다.
민간경제의 활력을 살리려면 규제완화와 노동개혁이 병행돼야 한다. 과감한 규제혁파로 기업들의 신산업 진출과 청년들의 창업을 북돋아야 한다. 답은 이미 나와 있는데 정부정책 추진은 굼뜨기 짝이 없다. 대표적인 것이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가 등장할 때 기존 규제를 면제ㆍ유예하는 ‘규제 샌드박스’ 도입이다. 지난 정부부터 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단골 메뉴로 거론만 하지 진전이 없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기업에 부담을 지우는 정책 추진에 호응해 노동계도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엄밀히 보면 지난해 3%대 성장은 ‘반도체 주도 성장’이었다. 주력산업인 조선ㆍ철강 산업이 휘청대고 자동차 산업의 전망도 어둡다. 새해도 이렇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면 문재인 정부가 염원하는 ‘소득주도 성장’도 어려워진다. 반도체 편중 현상을 벗어나는 신성장동력 육성과 균형 잡힌 산업발전 전략이 시급하다.
정부는 초연결지능화, 핀테크, 재생에너지, 드론, 자율주행차 등 8개 분야를 핵심 선도사업으로 지목하며 성장모델을 찾겠다지만 정작 민간 활력 제고에 필요한 규제혁신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지금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것은 3% 성장ㆍ국민소득 3만 달러와 같은 장밋빛 목표나 구호가 아닌,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정책 수립과 실천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