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제54회 무역의 날 기념식이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 축사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한결 발걸음이 가볍고 가슴 뿌듯하다”며 말머리를 열었다. 이어 “무역 1조 달러 시대가 다시 열리고 경제성장률도 3%대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12월 1일 한국은행이 3분기 경제가 전기 대비 1.5%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분기 기준 7년 3개월만의 최고치요, 연간으론 3년 만에 3%대 성장률이 확실하다. 같은날 산업통상자원부도 11월 수출입동향을 발표하면서 “12월 중순께 무역 1조 달러 달성이 확실시된다”고 밝혔다. 이대로라면 무역규모 또한 3년 만에 1조 달러를 회복하게 된다.
대표적인 양적 경제지표인 성장률과 무역규모가 3년 만에 올라섰으니 뿌듯했으리라. 전임 박근혜 정부가 이태 연속 후퇴시킨 경제를 집권 7개월 만에 원상회복시킨 셈이므로. 여기에 내년 중 1인당 국민소득(GNI) 3만 달러 달성도 무난하리란 전망도 가세했다.
북핵 위기와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보복, 보호무역주의 장벽 등 대내외 악조건을 뚫고 예상보다 높은 성장률과 무역규모를 기록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선진국 진입 기준으로 인식되는 1인당 GNI 3만 달러 달성도 2006년 2만 달러를 처음 넘어선 뒤 10년이 지나도록 이루지 못한 ‘넘사벽’이었다.
하지만 즐길 수만은 없다. 성장과 수출의 질質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3분기 깜짝 성장에는 수출 호조와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크게 작용했다. 특히 수출은 슈퍼 호황을 누리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증가하면서 그 ‘원톱 효과’가 너무 크다. 2012년 9%였던 반도체 수출 비중이 올해 17%로 치솟았다. 반도체 가격이 오름세를 탄 덕분인데,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끝나면 전체 수출에 치명타를 입힐 게다.
게다가 기대했던 민간소비는 3분기에 0.7% 증가에 그치면서 다시 0%대로 떨어졌다. 자동화 설비로 고용유발 효과가 적은 반도체 등 일부 산업을 중심으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월간 취업자수가 약 30만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곧바로 높은 청년실업률로 연결됐다.
특정 업종, 수출 대기업 위주 성장이 낳은 기형적 결과다. 수출 대기업이 잘나가면 중소 하청업체도 좋아지고, 일자리가 늘고 임금도 높아져 가계 살림도 펴진다는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반도체ㆍ석유화학 등이 위치한 데만 뜨겁지 나머지는 여전히 냉골이다. 3년 만에 성장률이 높아지고 무역규모가 늘었다지만 소득격차 및 양극화, 청년실업 등은 나아진 게 없다. 대통령 1호 업무지시로 청와대에 설치한 일자리 상황판을 기억하는 이가 없는 이유다.
양적 성장마저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미국발 보호무역주의는 나날이 노골화하고, 금리ㆍ 유가ㆍ원화가치가 오르는 ‘신3고(新3高)’ 파고가 몰려온다. 반도체 경기가 끝물이라는 분석도 있다. 내수가 부진한 판에 수출마저 꺾이면 성장엔진은 금세 식을 게다.
과거 정권의 장밋빛 공약은 허망했다. 이명박 정부의 ‘747(7% 성장ㆍ국민소득 4만 달러ㆍ세계 7대 강국)’, 박근혜 정부의 ‘474(잠재성장률 4%ㆍ고용률 70%ㆍ국민소득 4만 달러)’ 슬로건이 그랬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구호를 외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운 대목이 적지 않다.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우며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제로(0)화를 밀어붙이면서 곳곳에서 후유증을 앓고 있다. 무리한 공약은 궤도를 수정하거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아울러 성장률이 조금 높게 나오는 지금이야말로 정규직 위주로 채용하되 저성과자는 해고할 수 있게끔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노동개혁을 할 적기다.
한계기업과 산업을 구조조정해 경제체질을 개선하는 것도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동시에 4차 산업혁명의 세계적 흐름에 뒤처지지 않도록 규제를 혁파해 미래 먹거리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성장률 3%와 무역규모 1조 달러는 자랑거리가 못 되고, 지금 자랑할 때도 아니다. 출범 7개월째인 문재인 정부의 온전한 치적으로 보기도 어렵다. 문재인 정부의 진짜 실력은 새해, 2018년에 보여줘야 할 것이다. 세계 경제가 동반 상승할 때 한국 경제도 제대로 올라탐으로써.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