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낀 최장 열흘 연휴, 귀성ㆍ성묘 길이 아니라도 차를 몰고 달리고픈 계절이다. 교통체증으로 차안에 갇혀 있으면서, 창문을 열고 시원스레 달리면서 내 차와 앞뒤 차를 비교하고, 나아가 미래형 자동차의 모습도 상상해 봤으리라.
자동차는 이미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최신 첨단 전자기기가 장착되고 이동통신기술(ICT)이 결합하면서 움직이는 삶의 공간이 됐다. 얼마 안 가 자동차는 우리 앞에 전혀 새로운 삶의 세계를 안내할 것이다. 휘발유나 디젤, 즉 화석연료를 쓰느냐 전기나 배터리를 이용하느냐의 차원을 넘어서 하나의 중요한 생활수단으로 등장할 것이다. 이른바 커넥티드(connectedㆍ연결된) 자율주행차 시대다.
ICT와 결합해 양방향 인터넷ㆍ모바일 서비스가 가능한 것은 기본이다. 자동차가 놀이기구이자 회의장이고, 극장이었다가 근사한 레스토랑이나 숙소가 될 게다. 자동차 주인의 취향과 경험을 잘 아는 똑똑한 스마트카가 함께 다니면서 물품 구매와 결제 서비스 등 다양한 소비 및 경제활동을 해줄 것이다.
눈치 빠른 통신사업자와 금융회사들이 이 시장을 ‘커넥티드카 커머스’라고 이름 짓고 공략 중이다. 운전자가 말만 하면 자동차가 알아서 음악을 틀고, 목적지를 입력하면 연료가 충분한지 알려준다. 차에서 내려 시동을 끄면 앱이 주차 위치와 시간을 알려준다. 브레이크와 타이어 등 차량 상태도 제공한다. 통신회사 KT가 내년부터 상용화하겠다는 커넥티드카 서비스 구상의 일단이다.
자동차 연료로 뭘 쓰느냐의 경쟁은 이미 격화돼 있다. 전기차 시장을 놓고 자동차 메이커는 물론 여타 굴지의 기업들이 뛰어든다. 인도ㆍ영국ㆍ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은 화석연료 차량의 퇴출 시기를 2025~2040년으로 선언하는 등 전기차 개발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특히 9월말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거나 전기차 개발 구상을 구체화했다. 날개 없는 선풍기와 진공청소기로 유명한 영국 기업 다이슨은 20억 파운드(약 3조원)를 투입해 2020년부터 전기차를 생산하겠다고 선언했다. 전기차 선두주자인 테슬라가 5년 동안 투입한 연구개발 비용보다 많은 규모다.
‘일본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도요타는 중견 자동차 메이커 마쓰다, 자동차 부품회사 덴소와 손잡고 1조원을 들여 전기차 개발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지난 7월 볼보는 2019년 이후 출시하는 신차에는 모두 전기모터를 장착하겠다고 밝혔다. 9월 중순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의 주인공도 비싼 럭셔리카나 힘 좋은 슈퍼카가 아닌 전기차였다.
2016년 기준 세계 전기차 시장은 아직 전체 자동차 시장의 1%에 못 미친다. 하지만 2030년대 후반이면 전기차 판매량이 내연기관 차량을 추월할 것으로 예측된다. 배터리 가격이 하락해 정부 보조금 없이도 전기차 가격이 휘발유차보다 싸지기 때문이다. 충전비가 화석연료비보다 저렴하고 차량 고장이 적다는 점도 소비자를 유혹하기 충분한 요소다.
세계 자동차 시장이 빠른 속도로 화석연료 차량에서 전기차 경쟁 체제로 전환하는데 자동차 생산량 6위인 한국은 여전히 내년기관차 중심 사고에 젖어 있다. 정부는 화석연료 사용 제한 시점을 설정하기는커녕 여태 전기차 안전 기준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현대차ㆍ기아차도 전기차보다 수소연료 자동차에 치중하는 한편 서울 강남에 초대형 사옥을 짓느라 10조원 넘는 돈을 쏟아붓고 있다.
한국의 전기차 대비는 중국에도 한참 뒤져 있다. 중국은 2015년 전기차(신에너지 차) 육성을 포함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중국 제조 2025’를 발표했다. 2025년까지 전기차 700만대를 생산해 판다는 계획이다. 올 상반기 세계 전기차 판매 순위 10위 업체 중 6곳이 중국 브랜드다. 이 중 일부 브랜드는 국내에서도 팔린다.
급변하는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 기술혁신 및 소비행태 변화에 잠깐 머뭇거리다 도태되는 것은 순간이다. 외국 거대기업들이 전기차와 그 너머 커넥티드카 커머스 시장을 보고 뛰는데 우리는 지금 뭘 하고 있는가. 4차 산업혁명, 혁신 성장을 구호로만 외쳐선 안 된다. 글로벌 무한경쟁에서 생존하려면 스스로 강해지고 앞서가야 한다. [본사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