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X놈이 번다’. 제주가 그렇다. 도민에게 돌아오는 건 그저 의무와 책임이다. 외국 관광객의 급증으로 정작 호황을 누리는 건 면세점들이다. 카지노의 경우 매출액에 관광진흥기금이 얹어지지만 이 마저도 없다.
관광 호황으로 제주에서 일부 업계는 막대한 수입만 거둬들일 뿐 그에 상응하는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제주도내의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쓰레기 문제 해결도, 감귤 문제 수매도 모든 게 도민 몫이다. 제주행 인구는 느는데 무거운 짐을 진 건 모두 제주에 살고있는 도민이란 푸념이 들리고 있다.
◆ “내 배만 부르면 그만” 호의호식 면세점
지난해 10월 31일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가 제주도개발공사를 상대로 벌인 행정사무감사 현장. 한 지적이 나왔다. “제주에서 수천억을 벌어들이는 롯데가 감귤수매엔 난색이다”는 것이다. 그동안 가공용 감귤 수매에 나섰던 ㈜일해와 롯데칠성음료가 지난해 감귤수매에 난색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고정식 도의원은 “그동안 감귤수매를 해오던 기업들이 구매를 꺼리고 있다”며 “경영난을 겪고 있는 일부 기업의 사정은 이해가 가지만 제주도에서 많은 수익을 얻고 있는 롯데가 수매에 난색을 보이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제주에서 관광호텔과 면세점, 골프장 등을 운영하며 연간 수천억원대 수익을 챙기면서 감귤 수매에 쓰이는 20~30억원 조차 투자하지 못하냐”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만나서라도 담판 지어야 하는 것 아니냐. 비상품 감귤수매를 롯데그룹 차원에서 논의돼야 할 사항”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에 롯데칠성음료는 “제주도와 협의를 거쳐 감귤 수매를 할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면세점 업계들은 제주에서 수천억대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 롯데·신라면세점 등이 지난해 1~8월까지 벌어들인 금액만 6575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정작 베푸는데는 인색하기 짝이 없을 정도다. 카지노 업계의 경우는 ‘관광진흥기금’ 명목으로 매출의 일부를 제주도에 낸다. 그러나 면세점은 아무런 기여금 없이 '나홀로' 수입을 챙기고 있다.
김형미 제주도의회 정책자문위원은 “도내 면세점 업계가 호황이지만 정작 제주에는 아무런 낙수효과가 없다. 오히려 면세점 주변에 교통난만을 야기하는 등 끊임없는 민원문제만 유발하고 있다"며 조례 제정 등의 대책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면세점은 제주도의 마케팅으로 유치한 관광객을 통해 수익을 얻는 만큼 제주를 위해 이익금의 일부를 환원해야 한다”며 “카지노와 같이 관광진흥기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도내 면세점 매출액의 1%를 관광진흥기금으로 부과하는 방안을 제주특별법 6단계 제도 개선안 과제로 선정, 지난해 9월 정부에 제출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은 “개선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면세점에 관광진흥기금을 부과, 해당 기금으로 마케팅과 상품개발, 제주관광 활성화 등 보조사업 및 융자 지원에 사용할 것”이라며 “더불어 마을관광 활성화, 전기렌트카 지원 등에도 사용하는 등 제주도에 낙수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쓰레기봉투값이 오른다구요? 그것도 40%씩이나? 관광객이 버리는 건 생각 안하고 왜 애꿎은 도민에게만 부담을 주는지... 누구를 위한 제주도인지 모르겠네요.”
제주시 연동 한 클린하우스에서 만난 주부 고모(58·여)씨. 고씨는 올들어 40% 인상된 쓰레기 종량제 봉투값이 불만이다. 봉투값이 아까워 평소에도 재활용을 생활화했다는 그는 애꿎은 도민에게만 부담을 주는 제주도가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관광객에도 쓰레기 배출비용을 따로 받아야 한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제주시는 올해 1월 1일부터 쓰레기 종량제 봉투 값을 40% 올렸다. 지난달 개정된 폐기물 관련 조례 경과 규정에 의한 인상이다.
쓰레기봉투 값은 5ℓ 90원에서 120원, 10ℓ 180원에서 240원, 20ℓ 500원에서 700원, 30ℓ 750원에서 1050원, 50ℓ 1250원에서 1750원으로 각각 올랐다.
쓰레기봉투 값이 최대 500원까지 오르면서 '사재기’ 현상도 벌어졌다. 급기야 몇몇 대형마트에선 구입할 수 있는 쓰레기봉투 객수를 제한했다.
지난달부터 시행된 요일별 쓰레기배출제도 도민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요일별 배출제는 지난해 12월 제주시에 시범도입됐다. 배출시간(오후 3시~새벽 4시)과 요일별 배출 품목을 따로 정하는 방식으로, 음식물 쓰레기와 종량제 봉투 등만 요일과 관계 없이 배출토록 했다.
하지만 정작 이 제도가 시행에 들어가자 곳곳에서 시민들의 불만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분노에 찬 시민들은 ‘쓰레기정책에 분노한 사람들’이란 모임을 결성했다. 회원수만 해도 현재 3397명이다. 이들은 지난달 13일 제주시청 앞 클린하우스에서 ‘분노의 쓰레기산’을 만드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제주사람이면 누구나 제주의 쓰레기 문제가 심각한지 충분히 알고 있다”며 “섬이란 제한된 공간에서 급증하는 인구·관광객, 건설 붐으로부터 자연환경을 지키기 힘든 것 또한 잘 알고 있다”면서도 “고경실 제주시장은 요일배출제라는 급조된 정책을 시행하며 시민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며 “지금이 어느시대인데 뒤쳐진 행정의 계도를 받들고 있느냐”고 비판했다.
이들은 요일별 배출제 철회와 시민 모독발언, 무리한 정책추진에 대한 고 시장의 공개 사죄, 근본적 원인 분석을 통한 합리적 쓰레기 대책 수립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광수 제주도 생활환경과 자원순환계장은 “도내 쓰레기 처리시설이 한계에 다달아 근본적으로 쓰레기를 줄이기위해 요일별 배출제를 실시하게 됐다”며 "한꺼번에 배출하다 요일별 배출로 바꾸다보니 도민들이 불편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쓰레기 재활용률이 높아지고 있어 자원 순환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제도를 두둔했다.
그러면서 “일단 민원이 많은 종이류와 플라스틱류 배출은 횟수 조정 등을 검토중"이라면서 "관광객 쓰레기 문제 등도 감안, 렌트카 업계나 호텔·관광지·전세버스 업계에 쓰레기봉투 배치 등 별도로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 워킹그룹은 지난해 12월 15일 “도내 관광지 입장료를 현실화 해야한다”며 입장료 방안을 발표했다.
이들이 매긴 입장료는 한라산 국립공원 2만원± α', 성산일출봉은 기준 '1만원± α'.
현재 한라산 국립공원은 무료, 성산일출봉은 성인 2000원, 청소년 1000원인 것에 비하면 10배 가량 오른 값이다.
그렇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으로 무분별한 자연 훼손을 막기 위해선 "불가피하다"는 워킹그룹의 입장이다.
워킹그룹은 “해마다 늘어나는 방문객으로 훼손되고 있는 한라산과 성산일출봉의 입장료를 현실화해 방문객을 줄여야 한다”며 “자연유산 보호와 관광문화의 품격향상을 위한 것”이라고 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워킹그룹은 입장료의 일부를 환경보전기금으로 적립, 국립공원 내 사유지 매입 및 관리 등에 쓰겠다는 계획이다.
실제 한라산과 같은 세계자연유산 40곳의 평균 입장료는 한화가치로 계산할 경우 평균 2만4000원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미국 그랜드캐년은 1만7000원, 옐로우스톤 3만3000원, 중국 만리장성 7500원, 중국 황산 3만8000원, 베트남 하롱베이 7800원 등이다.
제주도는 워킹그룹 권고에 따라 탐방 총량 수용력에 관한 용역을 실시하고 탐방예약제와 입장료 현실화 도입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진희 제주대 관광개발학과 교수는 "제주도 워킹그룹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라산 2만원~ 성산일출봉 1만원 입장료 인상 방안은 좋은 방안이라 생각한다”며 "이제 제주는 양적 성장을 위해 무작위로 관광객을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질적 관광 성장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정한 입장료를 부과함으로써 관광지에 쓰레기만 버리고 돌아가는 관광객을 규제해 제주 현안인 쓰레기 문제, 자연·관광지 훼손 문제를 줄여나가야 한다"며 "더불어 '입장료'라는 장치로 우리 제주의 관광지도 한층 고급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이누리=박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