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원에서 근무하다가 장애태아를 임신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근로복지공단과 3년 간 투쟁 끝에 승소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단독 이상덕 판사는 19일 제주의료원 간호사 허모(33)씨 등 4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신청 반려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장애로 태어난 태아에게 적용된 국내 첫 산재혜택 판결이어서 여성근로자들의 산재 소송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소송의 발단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부터 2010년 사이에 제주의료원 소속 간호사 수십명이 임신했으나 이 가운데 9명이 유산, 4명이 선천적인 장애를 지닌 아기를 낳았다.
이에 2012년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역학조사에 돌입해 간호사들의 유산, 장애아 잉태 현상은 업무와 연관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간호사 허씨 등은 2012년 12월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 재해를 신청했다. 그러나 퇴짜를 맞았다. 산재법상 태아를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후에도 간호사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하는 등 산재혜택을 받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수차례 거절당했다.
설상가상으로 이 과정에서 업무상 재해신청에 동참한 수십여명의 간호사들이 중도이탈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굴하지 않은 허씨 등 4명의 간호사들은 지난 2월 초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재판과정에서 줄기차게 "몸 속 태아에게 산재법이 적용된 사례는 없고, 현행법에도 명시돼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허씨 등은 "과다한 업무와 병원 근무환경의 영향으로 장애태아를 잉태했다"며 요양급여신청 반려처분을 취소해줄 것을 거듭 요청했다.
이상덕 판사는 ▲경영악화로 인한 임금체불이 2009년부터 2010년 사이에 이뤄지는 등 근무환경이 열악해진 점 ▲거의 휴식시간이 없었다는 점 ▲임신을 한 간호사들이 야간근무에 투입됐다는 점 ▲임산부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알약을 분쇄하는 일을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전담한 점 등을 근거로 내세워 간호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사는 또 “태아의 건강손상은 모체의 건강손상에 해당되며 모체와 태아의 인격이 분리된다는 것만으로 업무상 재해가 아닌 것으로 해석되면 안된다"며 "임신 중 태아 건강손상은 업무상 재해로 봐야 마땅하다”고 판결사유를 밝혔다. [제이누리=강남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