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임대와 관련한 갑(甲)의 횡포가 제주지역에서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기존 점포를 밀어내고 건물주가 중국인들을 상대로 한 영업을 위한 것이어서 비난이 일고 있다.
제주시 연동 바오젠거리에 15평 남짓의 8개 점포로 이뤄진 상가에서 꼬치집을 운영하는 박모씨.
박씨는 1년 전인 지난해 5월에 그 동안 고생하면서 벌어놓은 돈과 은행 융자를 포함해 약 1억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해서 가게를 열었다.
그런데 올해 2월 박씨는 새로운 건물주가 선임한 변호사를 통해 일방적으로 점포를 반납하라는 내용증명을 받았다.
이 상가에는 음식점, 주점, 화장품가게, 옷가게 등 영세한 8개 점포가 입주해있는데 이들 8개 점포가 모두 똑같은 내용의 내용증명을 받았다. 이들 점포는 최근 불황에도 생계를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는 노년의 부부,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다녀야할 시기의 젊은 청년 들이 운영하는 영세상가다.
이들 점포 중 3년 미만의 상가는 4개가 있다. 특히 박씨는 임대한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았다. 이들 점포들은 박씨처럼 은행 융자와 결혼자금 등을 투자해 문을 연 점포들이다.
그는 즉시 상가임대차보호법에 의거 5년간은 나갈 수 없다고 회신을 하고 버텼다. 하지만 계약기간 1년이 만료되는 4월 30일까지 점포를 반납하라는 내용증명을 4월 26일 다시 받았다.
5년이 넘은 3개 점포는 다음 달 5일 법원으로부터 건물주가 신청한 제소 전 화해를 위한 출두 명령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임대계약 당시 전 건물주가 “계약서는 1년으로 쓰지만 절대 5년이 되기 전에 나가라고 하지 않겠다. 뿐만아니라 본인이 나가고 싶을 때까지 할 수 있다. 현재 8개 상가가 모두 동일한 방법으로 계약하고 운영하고 있고 10년 이상 있어도 나가라고 한 적이 없다”는 말과 부동산중개업자로부터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최소 5년은 보장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언에 보증금 1000만원, 년세(사글세) 1000만원에 계약했다. 권리금, 인테리어 및 시설비용 등 포함하면 1억 원 이상 투자했다.
그는 지난 28일 오후 서울 참여연대 느티나무 홀에서 열린 ‘상가건물임대차 보호법 피해사례 보고대회’에서 “새로운 건물주가 5년 이상된 점포는 바로 내쫓고 5년이 안된 점포는 재건축을 빌미로 내쫓을 구상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현재 경기가 좋지 않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부채만 증가한 상태에서 쫓겨나는 순간 보증금 1000만 원밖에 못 건지고 빚더미에 내몰려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위기에 있다”며 “다른 곳으로 이전 할 자금이 전혀 없기 때문에 어떤 역경과 고난을 감수하더라도 전 재산을 투자한 이 점포를 지키며 버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가진 자가 임대인이라는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저 같은 소상공인이 권리금, 인테리어 비용 등에 전 재산을 투자한 생계형 점포를 1년도 운영하지 못하게 하고, 결국은 막대한 금전 손실을 입혀서 망하게 함으로써 젊은이의 소박한 꿈을 짓밟고 삶 자체를 위기에 처하게 하는 반인륜적인 상식 이하의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며 새로운 건물주를 비난했다.
그는 “8개 상가에 대체적으로 약 4000만~6000만 원정도의 권리금이 형성돼 있다”며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생계가 절박한 이들은 임대인의 횡포에 이를 전부 포기할 수 없다고 한 목소리로 절규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어 “법적으로 대응한다고 해도 악법인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 하에서는 패소가 확실하다”면서 상가임대차 보호법 중 임대인들이 악용하는 조항의 삭제를 촉구했다.
아울러 “건물주가 재건축 혹은 리모델링을 하거나 매각할 계획이 있다면 신규 임대를 주어서는 안 된다”며 “그럼에도 임대를 주고자 한다면 신규 계약 전에 임차인에게 충분히 고지하고 재산상 손실이 없도록 적정한 보상을 해줘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소식에 제주참여환경연대가 29일 논평을 냈다. 참여환경연대는 “제주도는 바오젠거리 임차인들의 절규를 외면해선 안 된다”며 “도는 영세상인들과 중국인 관광객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해결에 나서야한다”고 촉구했다.
참여환경연대는 “바오젠거리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인해 활기가 넘치는 모습에 긍정적으로 보는 측면도 있지만, 그 내면에는 중국인 관광 활성화를 둘러싸고 소리 없는 전쟁이 진행 중”이라며 “박씨의 사례에 나오는 새로운 건물주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화장품 매장을 열 목적으로 입주상인들을 계약만료로 권리금을 인정하지 않고 내쫓고 있다”고 주장했다.
참여환경연대는 이어 “비단 사례로 제시된 문제에 한정되지 않고 바오젠거리와 주변 상가건물의 임대료가 폭증하고 있다.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비싼 1층의 경우는 1년 새 임대료가 100%를 올리고 2층 상가의 경우도 50%를 인상하는 가히 살인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도정이 투자한 바오젠거리에 중국인들이 점점 더 많이 찾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의 영세상인들을 내쫓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곳의 영세상인들이 영업을 해 얻은 수익의 일부를 세금으로 납부한 결과가 도리어 자신들을 내쫓는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불어 “제주도정이 이곳 상인들에 대한 어떠한 보호조치 없이 오로지 중국인 관광객 유치만을 골몰했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며 “제주도정이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는 것은 민생을 무시하는 것이다. 도정은 이 문제를 직시하고 대부분 제주도민인 영세상인들과 중국인 관광객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서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