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예의 공중목욕탕에 갈 때마다 드는 불쾌감은 공공의식 또는 대중의식의 수준으로까지 비약하게 되는데 종종 이웃 일본과 비교되곤 한다.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는 수건들이며 씻지도 않고 탕에 바로 들어오는 이들, 남의 귀에 거슬리는 시끄러운 대화 등이 그렇다. 이는 한국의 공중목욕탕 풍경이며 일본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철저한 관리의 나라인 일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엄한 통제사회에서 비롯된 관습이기에 역사까지 싸잡아 부러워할 것까지는 없지만 어떻든 현재 그들의 관습은 남을 배려하는 문화로 정착되면서 일본인의 정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2011년 3월 지진과 쓰나미로 폐허가 된 일본은 다른 면에서 세계를 한 번 더 놀라게 했다. 그들의 정연한 공중질서 때문이다. 비인간적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그들은 지나치게 침착했는데, 이로써 더 큰 혼란과 소요를 막을 수가 있었고 그 근간에는 자기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어릴 적의 가정교육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렇다. 일본은 취학 전 아동에게 가정에서부터 남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교육을 부모로부터 철저하게 받는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가? 비교해보면, 한국은 부모
4. 자유 ‘자유롭다는 말은 번번이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돌이킬 수 없는 것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는 뜻이다.’(키에르케고르) 이집트 전설에 나온다는 이야기 하나. 만물을 관장하려니 신은 너무 신경 쓸 게 많았나보다. 해서 ‘결정하는 힘’의 비서를 두기로 했다. 비서를 구해야했다. 가까이에 있는 천사에게 맡기려하니 이대로가 좋다며 천사는 거절했다. 다시 듬직한 큰 바위에게 맡기려하니 자연에 순응하고 살겠다며 역시 고개를 저었다. 모두 거절하자 신은 가장 별 볼일 없게 생긴 인간에게 물었다. “결정하는 힘을 네게 주려한다. 하겠느냐? 일단 하게 되면 되 물릴 수는 없다. 너의 첫 결정은 이를 수락하느냐 마느냐, 이다. 강요하지 않겠다.” 호기심 많고 늘 상상과 공상 속에서 살던 인간은 신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한편 인간은 단순해서 ‘결정의 힘’이 단지 권한만 주어지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결정하는 순간 책임도 따른다는 사실을 훗날 알게 되었다. ▲ 부모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은 많지만 그 중 가장 소중한 사랑은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부모를
▲ 도서관에 있다 보면 어린이집 아이들을 보곤 한다. 도서관 견학 또는 체험이라는 데 둘러보고 가는 게 고작이다. 도서관에서 잠시라도 집과는 달리 많은 책들 중에 한 권을 맘대로 골라 읽어보게 하는 것이 진정한 체험이지 않을까. 요즘 별별 체험은 많다. 하지만 체험이 소위 스팩 쌓기의 하나쯤이 되는 듯하다. 어린이집 선생들의 안내에 따라온 그 아이들과 스스로 책을 넘기는 아이의 표정이 비교된다. 견학하는 아이들에게서는 무표정, 또 다른 아이에게서는 진지함이 보인다. 3. 행복 한자가 다른 ‘가정’은, 부부를 중심으로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의 가정(家庭)과 집안 살림을 다스리는 일의 가정(家政)이 구별돼 있지만, 한글로는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 혈연관계의 가장 작은 집단을 꾸려가는 일, 또는 집안 살림을 다스리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이 바로 가정이다. 엄마는 딸이 어렸을 때 자주 데리고 다녔던 도서관을 가족 모두 함께 가자고 했다. 도서관을 가보면 어린 자녀와 동행한 엄마가 대부분이다. 중학생 이상의 자녀를 두고 있는 엄마는 자녀를 학원에 빼앗긴 뒤 도서관에로의 발길도
▲ 김경학 도의원 바야흐로 “예산개혁” 범람의 시대이다. 원희룡 도지사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기치로 내걸며, 도민사회에 거침없는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비합리적인 관행이었던 부분을 개선해야한다는 취지에 필자도 공감한다. 도민의 입장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설사 어렵고 더디더라도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도 행정조직 및 주요 산하기관 등 관련 인사행태를 보면, “도민 모두가 점쟁이”로 만들어 버렸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되고 있다. “그 자리 누게가 될거여!”라는 말이 여지없이 빗나간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발령받은 인사에 대해 폄하하고자 하는 의미가 아니다. 도민사회에는 “비정상의 정상화” 강조, 인사는 여전히 비정상화 도민들에게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면서, 실제로 인사과정에서는 도민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평가절차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 과연 “인사권은 도지사 고유권한”이란 미명하에 “비정상의 정상화”의 사각지대에 놔두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를 반문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인사결과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딜레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를 놓고 진퇴양난에 직면했다. 아시아 인프라투자 은행 참여 결정과정에서 안보적 이해와 경제적 이해를 저울질하며 관련 국가들을 외교적으로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하는 어려움에 맞닥뜨린 것이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시진핑주석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참여를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 은행에 한국이 가입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고 있어 한미동맹을 안보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선뜻 가입할 수도 없는 것이다. 결국 고심 끝에 한국정부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가입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이 주도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는 국제금융기구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한국이 창립회원국 자격으로 가입하게 되면 아시아 지역 개발 사업에서 국익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냉전시대에는 안보를 중심으로 한 상위정치가 국제정치를 좌우하였으나 냉전이후 국제정치에서는 하위정치인 경제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경제가 한국경제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제주도가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도 경제적 영향 때문일 것이다.
이름 때문일까? 해군기지로 인해 여전히 아픔을 겪고 있는 강정을 바라보면 가슴이 시리다. 강정(江汀)은 그 이름처럼, 마을을 감싸 도는 강정천의 물이 사시사철 용출되어 바다로 흐른다. 대부분 제주의 내(川)들이 비가 오면 흐르다가 얼마 없어 말라버리는 건천이기에, 강정천의 흐름은 신비한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정천을 ‘큰 내’라 불렀다. 강정은 물(江: 물 강)과 물(汀: 물 정)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오늘도 서귀포시민들은 식수의 70%를 강정 취수원과 정수장을 통해 공급받고 있다. ▲ 제주도 강정천 특히 강정천의 물은 제주도의 척박한 타 지역 토양과 달리 강정으로 하여금 그 귀한 '곤쌀'(백미)을 생산할 수 있게 하였다. 얼마나 논물이 깨끗하기로 소문났으면, 강정미의 품질이 궁궐에까지 알려져서 수라상에 올랐을까? 그 자랑스러움을 담아서 제주사람들은 강정 앞에다 일등을 붙여 ‘일강정((一江汀)'이라 불렀다. 게다가 향긋한 수박향기를 풍기면서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은어들이 바다에서 강정천으로 거슬러 올라오니, 마을의 기운은 상서롭게까지 비쳤으리라. 어쩌면 이 은빛 나는 ‘올림은어’들과 마을
▲ 정경호 전 제주도의회 의원 글의 서두로서 조금은 뜬금 없지만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 얘기를 꺼내고자 한다. 신 전지사가 마지막 관선 도지사로 부임하여 1년 조금 못 미쳤을 때이니까 1994년 12월 초순쯤이었을 것이다. 제주의 기독교 교회와 교인들은 도지사의 처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널리 알려진 신구범 도지사가 그해 12월 10일 삼성혈(三姓穴)에서 봉행되는 탐라시조(耽羅始祖) 건시대제(乾始大祭)에 초헌관(初獻官)으로 나설 것인지 말 것인지가 큰 관심사였기 때문이었다. 기독교의 신도가 아닌 일반 도민들이야 ‘종교적 신념’과 ‘공인의 처신’ 중 도지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하는, 어떻게 보면 호기심(?)으로 도지사의 처신에 관심을 보였지만, 교회와 신도들은 달랐다. 십계명 첫 계명인 ‘나 이외에 다른 신(神)을 섬기지 말라’는 ‘기독교 유일신 사상’에 젖어있는 기독교신도들은 가슴조이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그해 12월 10일 ―. 흑관(黑冠)의 제모(制帽)를 쓰고 폐슬(蔽膝)과 중단(中單) 각대(角臺)로 장식된 제례복(祭禮服)을 입은
▲ 아이들의 시소놀이. 아이는 서기와 걷기를 통해 처음으로 균형을 몸으로 깨우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마도 시소를 통해 남과의 균형맞추기를 해보지 않을까. 시소 위에서는 경쟁이 아닌 어우러짐으로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고 믿고 싶다. 물론 아이들의 잠재의식 안에서. 2. 사랑 재수를 시작하는 딸보다도 엄마의 히스테리가 더 심하다. 이 히스테리는 절망에서 비롯된다. 1년 전과 다른 엄마의 얼굴에서 딸은 웃음을 볼 수가 없다. 당연히 최고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웃음으로 얼굴에 피어났던 1년 전과는 달리, 좌절을 겪은 뒤의 불신감은 얼굴뿐 아니라 마음에서 웃음을 앗아갔다. 어느 날, 딸이 체해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말았다. 1년 전이었다면 등을 두드려주고 배를 쓰다듬어주며 유난했을 엄마는 약 한 알과 작은 약병을 딸의 손에 건네지도 않고 식탁에 내려놓는다. 엄마의 손에는 신경질이 잔뜩 붙어있다. 탁. 사물(식탁)도 그 감정을 표현한다. 아빠가 약을 받아 딸의 등을 도닥여주며, “오늘 하루 학원은 쉬어라.” 엄마가 폭발하고 만다. “당신이 당신 딸 평생 책임지고 데리고 살 거야?” 참견이 될 것 같아 묵묵히 보
스무 살 쯤에 이청준의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감동한 나머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그날부터 1년여 남짓 왕복 1시간 넘게 어두운 들길을 오가며 새벽예배를 보러 다녔다. 교회를 다니는 내내 단테의 ‘신곡’ 속에서 베르길리우스의 인도에 따라 신의 모습을 보려는 나름의 간절함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칼날 같은 이성의 눈을 부릅뜬 채 ‘한 번 따져보자’고 덤비는 피 끓는 청년에게 성령은 강림하질 않았다. 그런 나의 간증(?)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하나님께 너를 맡겨라”라는 목회자의 말은 가슴에 와 닿을 리가 없었다. 부질없거나 주제 넘는 일이라고 체념한 이후에도 아예 등지면 억울할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한 주술에 걸려든 것 같기도 하여 아주 떠나지 못한 채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부러 외면하려고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나 가장 문학적인 (우주)과학책이라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등을 어설프게 읽고는 무신론으로 나의 신념을 무장하려고도 해봤다. 아무리 그래봤자 지천명을 넘긴 후에도 이어령님의 ‘지성에서 영성으로’에 미혹되고, “하느님을 믿느냐?”는 김수환 추기경의 물음에 “애매하게 믿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답
▲ 강경식 제주도의원 제주투자진흥지구제도는 제주국제자유도시의 핵심 산업육성과 투자유치를 위하여 내•외국인에게 법인세, 취득세, 재산세 및 각종 부담금에 대한 획기적인 세금감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로 관광호텔업을 비롯한 24개 업종에 미합중국화폐 5백만불 이상 투자시 지정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지난번 투자진흥지구 지정에서 해제된 제1호 제주동물테마파크를 비롯하여 현재까지 49개소 1951만여 평방미터에 사업비 11조5,223억의 사업이 유치되어 현재 28곳이 사업이 완료되고 나머지는 일부운영 중이거나 공사 중에 있다. 투자진흥지구제도는 국•내외 자본의 제주유치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투자진흥지구를 지정하고 투자유치에 중심을 두다보니, 약속이행이나 관리적 측면의 제도정비가 미흡하여 제도 시행 10여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허점과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호유원지와 동물테마파크와 같이 부지매입과 정리만 해놓고 자본금의 부족으로 장기간 공사가 중지된 경우, ㈜보광제주처럼 수익성과 현금화가 좋은 사업만을 일부 운영하면서 영업이익을 내고 사업기간을 연장하며 그 자금으로 재투자하고 사들였던 국공유지 땅까지 재매
▲ 아이들은 스스로 더 잘 논다. 어른들이 장난감, 놀잇감을 주면 오히려 아이들의 무한상상을 죽일 수가 있다. 모래로 밥을 짓고 반찬도 만들어 밥상까지 차려놓으며 자기들만의 놀이에 집중한다. 손님을 초대하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대다수 어른-부모나 선생-들은 손 더러워지고 옷 지저분해진다고 못하게 한다. 1. 희망 어른이 다 됐네. 부쩍 큰 키로 어른처럼 자란 딸의 뒷모습을 오랜만에 보고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딸에게서 갓 태어난 아기를 본다. 딸이 뒤돌아본다. 손을 흔들어 보인다. ‘시험 잘 보고 올 테니 엄마 걱정 마!’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시험장 교실로 사라진 딸이지만 엄마 마음 안엔 갓난아기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아장아장 걷고 있다. ‘희망’이란 꽃말을 지닌 앙증맞은 프리뮬러 화분들을 색깔별로, 모양별로 병원 회복실 창가에 나란히 진열해놓고 엄마와 딸을 기다리던 아빠도 운동장에 서 있다. 희망 딸 마중의 시작이었다. 자식맞이는 부모에게 지상 최고의 선물이었다. “아들이 아니라서 실망했어?” 위풍당당행진곡을 불룩한 배 가까이 들이대고 틀어줬던 아빠에게 엄마가 묻는다.
▲ 강경식 제주도의회 의원 요즘 도심지를 벗어나 머리를 식히려고 외출하다 보면 곳곳에서 기계톱의 굉음과 자른 소나무를 부지런히 실어 나르는 작업차량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작년이나 올해나 별반 다름없는 모습들을 보며 제주도의 소나무와 산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애국가에도 나오고, 궁궐을 지을 때 소나무를 주로 사용한다고도 하고, 얼마 전에는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친숙한 나무로 선택되기도 하였다. 똑같은 종류는 아니지만, 제주의 곰솔도 자연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역할이나 정서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비중과 역할을 차지하며 제주인과 관광객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늘 우리가 들여 마시는 공기처럼 가까이 있어도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듯이 소나무도 늘 우리 가까이에 있어왔기에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여 왔다. 1905년 일본에서 최초 피해가 발견된 이후 소나무 재선충병은 1988년 올림픽에 맞추어 한국에 상륙했고 제주도에는 약 10년 전에 최초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인은 목재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감염된 사실을 모른 채 검역을 통과하여 유입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소나무류의 AIDS라 불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