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우울증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지 ? (1) 경한 우울증 이 경우에는 우울하고 슬픈 느낌이 지속되며 자신감이 없고 생의 의욕이 없고 피곤해 하고 일하기를 싫어하며 혼자만 있으려 하고 평소 해오던 일을 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게 되기 시작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활의 재미나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고 매사가 짐이 되는 듯 여기며 평소 해오던 직업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생각은 몇 가지 주제에만 국한되고 주위에서 어떤 것을 물어보면 대답이 매우 느리거나 간단하게만 대답하기도 합니다. 많은 경우 미래의 실패에 대한 불안, 거절, 보복에 대한 두려움들이 있어 무슨 일이든 결정을 못하고 우유부단해지게 됩니다. 신체증상이 현저하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체중감소, 식욕부진, 소화장애, 변비, 가슴답답함, 두통, 수면장애 등을 호소하며, 건강염려증이 생기고 자신은 몸에 병이 있어 우울하다고 믿기도 합니다. (2) 심한 우울증 이 경우는 우울감과 정서적 고통이 훨씬 심각해 진 상태이며, 고개를 숙이고 몸을 구부리고 얼굴에 표정이 없거나 이마에 주름이 패여 있으며 아래만 내려다보기도 합니다. 체중이 빠지고 입이 심하게 마르고 근육의 힘도 감퇴되고 변비
통상 마비라고 하면 신체마비를 의미한다. “저 분은 뇌경색으로 왼쪽 팔, 다리가 마비되어 잘 움직이지 못해.” “얼굴이 마비가 되었는지 만지는데 느낌이 어둔해요.” 사회 일반에서는 운동과 감각 구분은 물론 정도나 질적 특성을 나누지 않고 <마비>라고 통칭하지만 의학용어로는 마비 정도와 부위, 질적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해서 기술한다. 그 부분은 이 글에서 다룰 게 아니다. 이런 여러 형태의 신체마비처럼 ‘감정이 마비되었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자면 만성 조현병(스키조프레니아, Schizophrenia) 환자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감정 둔화다. 감정 수용과 표현 모두에서 뚜렷하게 둔화된다. 무척 슬플 것 같은 상황에서 슬퍼하지 않는다, 그리 슬프지 않다고 말한다, 혹은 슬프다고 말은 하지만 부적절하다. 이 글은 그런 감정둔화보다는 감정표현 불능증(Alexithymia)에 대한 것이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이 용어는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감정을 제대로 분화시켜 느끼지 못한다거나 어떤 감정과 신체
1.우울증이란 ?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슬퍼하고 기쁜 일을 맞이했을 때 기뻐하는 것이 사람의 감정이며, 사람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슬픔과 기쁨의 감정이 교대로 연속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슬프고 비관되는 기분이 수주일 또는 수개월 동안 계속될 때는 마음의 고통이 심할 뿐 아니라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큰 지장을 초래합니다. 이러한 상태를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2.우울증의 증상은 ? 우울증은 슬픈 느낌과 비관하는 마음이 거의 하루 종일 지속되는 것이 가장 주된 증상입니다. 만사에 흥미와 즐거움을 잃게 되고, 전에는 그렇게 좋아하고 몰두했던 일조차도 관심이 없어지고 재미가 없게 됩니다. 공연히 열등감에 빠지고 자신이 없어지며, 사소한 일에도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쉽게 죄의식이나 자기 비하에 잠기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늘 짜증이 나고 사람 만나기도 싫어지고 자기는 아무 가치 없는 인간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자신이나 세상일 모두가 무가치하고 쓸데없는 것 같고 허무하고 외롭고, 가족들의 따뜻한 말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흔히 밥맛이 현저히 떨어지고 체중도 감소하며 항시 기운이 없고 피곤합니다. 또 잠을 못 이루거나 일찍 깨기도 하
“언니 저 맘에 안 들죠?” 다 아시는 철지난 이야깁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다고 하나요? 그렇지 않아도 분위기 예사롭지 않은 가운데 예원이 이 말을 하는 순간 태임은 폭발합니다. 정말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영화평론가 허지웅은 예외적 맥락에서 이건 남자들 대화의 “X같냐?”라는 어감이라고 평했다더군요. 저는 무엇보다 예원이 ‘정곡’을 찔렀기 때문에 태임이 폭발했다고 봤어요. 핵심을 들켜버렸기 때문에요. 비록 논리적 정리는 안됐지만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는 분명한 자기 생각을 콕 집어 예원이 한 문장으로 말해버린 거라고나 할까요. 태임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은 내용이었지만 분위기나 말하는 타임이 아주 좋지 못했어요. <삼국지연의>에서요. 조조의 ‘계륵(鷄肋)’ 암호를 전해들은 양수가 그 속마음을 한 눈에 알아채고 부하들에게 철군 준비 명령을 내렸다가 처형당하잖아요. 과연 이튿날 조조는 전군 철수명령을 내리죠. 제갈공명은 양수의 처형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남보다 잘 알기는 어렵지. 하지만 남보다 잘 아는 것을 말하지 않기는 더
* 행동이란 곧 아동의 언어다. 태어나면서부터 아이들은 자신의 의사나 욕구를 엄마에게 전달하기 위해 울거나 칭얼대고 몸을 흔드는 행동을 보입니다. 돌 무렵부터는 몇 단어씩 말을 배워가면서 떼를 쓰거나 거부하기도 하고 고집을 피우는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아동이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행동을 통해 주위 어른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부모나 다른 성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즉, 아동의 특정 행동에 대해 부모가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부모 자녀의 상호작용의 패턴에 따라 어떠한 행동이 반복적으로 계속되기도 하고 나타났다가 곧바로 없어지기도 합니다. * 행동문제는 장시간에 걸쳐 형성되는 아동의 환경에 대한 적응양식이다. 아동의 특정 행동은 그에 대한 부모의 반응 형태에 따라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는데 효과적이거나 또는 최소한 관심을 끌 수 있는 방식을 아동이 선택한 것일 수 있고, 아동의 특성이나 아동이 처한 환경에서는 그 방식이 유일한 방법인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행동을 단시간에 변화시키기는 어려우며, 그러한 행동이 지속된 기간과 그 행동에 대한 아동의 집착 정도에 따라 서서히 행동수정을 해가야만 합니
실험 대상자에게 최면을 걸어서 비의식(非意識) 상태를 만든다. 그리고 암시를 준다. “당신이 최면에서 깬 뒤에 시계가 2시를 치면 당신은 의자에서 일어나서 창문을 엽니다.” 최면을 풀었다, 얼마 후 시계가 2시를 쳤다. 피험자가 자동으로 일어나 창문을 열였다. “왜 창문을 여십니까?” “잘 모르겠는데요. 그냥...” 그의 행동의 동기가 비의식에 있으므로 이유는 모르지만 암시받은대로 창문을 열게 된 것이다. 이것은 정신분석가 이무석 선생이 쓴 <정신분석의 이해>(1995, 전남대학교 출판사)에 나온 내용이다. 무의식(비의식)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여러 증례 중 하나로 최면을 예시했는데 암시(suggestion)는 직접 무의식에게 언어적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피험자의 이성은 무의식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받았는지 모르고 있다. 이 증례에서 피험자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냥...”이라고 했지만, 다른 경우에는 그럴 듯한 이유를 대기도 한다. “음, 더워서...” 혹은 “방안 공기가 탁하게 느껴져서요.” 등. 사람의 이성은 생
기술(description)정신의학 역사에 에밀 클레펠린(Emil Kraepelin, 독일, 1856~1926)은 첫머리를 장식하는 이름이다. 그는 현재 사용하는 있는 정신의학 진단과 개념 기초를 확립한 인물로 각 정신질환을 계통적으로 분류하여 ‘근대 정신의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는다. ▲ 에밀 클레펠린(1856~1926) 그는 1899년 당시, 조현병(調絃病,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2011년 개명)의 증상과 경과를 밝히고 조발성 치매(Dementia Precox)라고 불렀다. 이 진단명은 이 병이 청소년처럼 비교적 이른(Precox) 생애에 발병한다는 의미다. 형태는 다양하지만 공통 증상은 환청과 망상이라고 했다. 클레펠린은 대게 장기간에 걸쳐 진행하는 병의 경과(longitudinal course)를 강조했다. ‘Dementia Precox’는 사실 프랑스 정신과 의사 모렐( Benedict A. Morel, 1801~1873)이 말한 <démence précoce>를 번역한 것이다. 쓸데없는 이야기겠지만 모렐은 「광기의 역사」(미셀 푸코, 나남출판)에 등장하는, 프랑스 혁
어릴 때부터 산만한 모습을 보이던 아동이 유치원이나 학교에 입학하면서, 다른 아동에 비해 유난히 산만하여 수업 등 단체 활동 참여가 어렵거나, 충동적인 행동으로 또래관계 형성이나 단체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아동들은 부모나 교사의 말을 듣지 않는 말썽장이로 오인 받아 늘 꾸중을 듣게 되지만, 아동은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이러한 문제행동을 되풀이하게 됩니다. 대략 일반아동의 3-5%에서 이러한 주의력결핍이나 과잉행동의 문제가 나타납니다. 이런 아동들은 뇌의 기능 중 주의집중을 유지하고 불필요한 자극을 걸러 내거나 행동을 조절하는 부위의 기능발달의 지연으로 인해 자신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자극들을 무시하는 것이 어렵고 차분하게 행동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런 아동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에서는 집중을 잘하면서도, 학습과 같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경우에는 주의집중시간이 짧고 쉽게 산만해지며 부주의한 실수를 많이 합니다.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거나 해야 할 일을 자주 잊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아동들은 ‘모터를 단 것’처럼 산만하여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며, 질문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불쑥 대답을 하거나, 무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심리적 환경적 스트레스가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데 큰 영향을 주지 않아 희망적인 미래를 계획하고 추진할 수 있으며, 타인과의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stress)란 어떤 자극에 대한 각성반응으로 인해 심신의 불균형 상태가 초래된 것으로, 이러한 스트레스 반응은, 개인이 오랫동안 지속해온 생활양상을 변화시켜 심리적, 생리적 적응을 필요로 하는 사건이나 자극 즉, 스트레스 요인에 의해 유발됩니다. 사람에게 심리적이든 신체적이든 어떤 변화가 주어진다면 이를 수용하여 다시 평형을 되찾는데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요인의 세가지 범주 첫째는 심리사회적 원인으로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 자극 1)심리적 적응을 강요하는 사건(예를 들자면 가까운 사람의 질병이나 사망, 직장내의 갈등이나 변화, 경제적 변화, 가족관계의 변화 등) 2)좌절의 경험(목표달성의 실패, 편견과 차별, 경제적 빈곤, 비인간적인 관료주의) 3)가정 직장 학교에서의 과잉부담(시간 압박감, 지나친 책임감
강준만 교수는 <오버하는 사회>(인물과사상사, 2003년)를 쓴 바 있다. 지금도 시의적절한 지는 좀 더 따져봐야하겠지만 여전히 좋은 책이다. 인터넷에 소개된 내용은 이렇다. “지금 대한민국이 정치, 사회, 언론, 문화 영역 가릴 것 없이 오버(Over)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의 열정을 그럴 듯한 명분으로 미화하지만, 그 열정의 이면과 표면에 어른거리는 오버의 실체에 대해서는 둔감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사회와 개인에 필요한 열정이 생산적이고 바람직한 열정을 넘어 과도한 오버로까지 치닫는 자기독단과 아집에 대해 비판한다. 크게 바뀐 환경에서도 '오버'를 요구하는 반(反)독재 투쟁의 심성이 남은 것을 지적하는 정치의 '오버'를 비롯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오버'를 강요하고 있다는 주장 등을 담고 있다.” ‘질풍노도의 시대’는 사춘기로서 족하다. 물론 엄마들은 “내가 미쳐...”하겠지만 사춘기의 오버는 한편 귀하고 예쁘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 성인이 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하나의 관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 선배
요전에 간호사들과 같이 점심을 먹으며 TV를 보는데 다중인격 장애를 다룬 드라마를 하더라고요. 재방송이겠죠. 제목이 <킬미,힐미>던가요? 과거에는 다중인격 장애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해리성 정체성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라고 합니다. ‘정체성 해리장애’가 더 좋은 번역 같은데요. 아무튼 dissociation을 해리라고 번역한 것도 아마 일본 학자일 거예요. 경의를 표합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보니 ‘해리(解離): 풀려서 떨어짐 또는 풀어서 떨어지게 함’이라고 나와 있네요. 해리성 정체성 장애는 딱 한번 경험한 바 있습니다만 이 병에 대해서는 인터넷 여러 군데에서 충분히 소개되었기 때문에 제가 보탤 것까지는 없는 것 같고요. 어쭙잖지만 한자에 대한 감상평이나 그려볼까 합니다. 제목만 보고 들어와 실망하셨다면 제가 이른바 낚시질에 성공한 겁니다. 한자 풀 해(解)를 보면 전 <장자>에 나오는 그 예술가 레벨의 백정을 떠올립니다. 소를 잡는데 절도 있는 춤 동작과 설겅설겅 음률에 맞는 칼질 소리에 살과 뼈가 척척 떨어져 나오며 물 흐르
세상을 살다보면 어느 선택만이 반드시 옳다고 볼 수 없는 많은 도덕적 딜레마를 만나게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김영사. 2009)에도 도덕적 판단과 관련된 유명한 딜레마들이 나온다. ‘전차 딜레마’도 그 중에 한 가지다. “탈선한 전차가 다섯 사람을 향해 달리고 있다. 현재대로 계속 간다면 모두 죽게 된다. 이들을 구할 방법은 스위치를 눌러서 전차의 방향을 다른 선로로 바꾸는 것뿐이다. 이 경우 다섯 사람 대신 한 사람이 희생된다. 한 사람을 희생시키더라도 다섯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전차의 방향을 돌려야 하나?” 이 상황에서는 전차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 20만 명 이상의 사람 중 89%가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철학적으로는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가 떠오른다. 이번에는 상황이 다른 딜레마다. “전차가 다섯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당신은 선로 위를 지나는 육교 위에 덩치 큰 낯선 사람과 함께 서 있다. 앞에서는 전차가 다가오고 있고, 아래 선로에서는 다섯 명의 인부가 있다. 몸집이 큰 낯선 사람을 육교에서 밀어 선로로 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