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어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부분 이어도의 존재를 전설 또는 문학작품을 통해 신비의 낙원, 이상향 정도로 기억하거나 제주도 남쪽 먼바다 어딘가에 있는 작은 섬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무심코 이어도에 대해 말은 하지만, 관련 전설이나 문학작품을 찾아 직접 읽어본 사람도, 이어도를 둘러싸고 어떤 논란이 이어지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 민요 속 '이여도'는 우리가 알던 '이어도'일까 '이여도사나 이여도사나!' 제주도민은 물론 관광객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 민요는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호 '해녀노래'(해녀 노 젓는 소리 또는 물질소리 등으로도 불림)다. 노래의 후렴구에 등장하는 이여도는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이어도'가 맞을까? 비단 해녀노래 뿐만 아니라 제주 민요 중에는 '맷돌 가는 소리', '방아 찧는 소리' 등에도 비슷한 후렴구가 등장한다. 조성윤 제주대 교수는 2011년 '이어도에 관한 제주도 주민들의 이미지'라는 논문을 통해 "민요를 부르던 제주도민들이 과연 이어도를 하나의 섬으로 인식했었는지에 대해 학자들 간 논란이 분분하다"며 1920년대 제주 민요를 채집했던 일본 학자 다카하시 도오루와 김진하 서울대 교수의 주장을
"어허! 어려려려려∼" 최근 제주의 한 대학 병원 로비에서 진료차 내원한 할아버지 한 분이 의자에 앉아 트로트도 가곡도 아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기자가 할아버지께 무슨 노래를 부르시냐고 여쭤봤다. "몰라요."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아쉬운 표정이 그대로 드러난 기자의 모습에 미안하셨던지 할아버지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젊었을 때 일하며 불렀는데 제목을 몰라. 그냥 부르는 거지…." 진료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무료함을 달래고자 습관적으로 할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다름 아닌 제주의 '일노래'(노동요)였다. 깊게 팬 주름과 검버섯, 듬성듬성 난 수염, 거친 손마디에서 지난한 세월, 고된 노동의 흔적이 묻어났다. 10일 제주의 풍습과 전통, 제주어를 고스란히 간직한 일노래의 의미와 가치, 전승 방안을 들여다본다. ◇ 고된 노동…제주 사람들의 숙명 "제주는 물로 뱅뱅 돌아진 섬(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 (사람들은) 밭이든 바다에서든 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일노래가 많았어요. 일노래는 일하면서 불렀던 소리라 반주도 없이 한(恨)으로 우려내며 불렀어요."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6호 제주농요 2대 보유자인 김향옥(70) 씨는 제주 일노래에 대해
제주의 전통 음악 문화유산인 일노래. 일노래는 쉽게 말해 밭일, 바닷일, 집안일 등 일하면서 불렀던 노래를 일컫는다. 한자 말로 노동요다. 제주에는 1천400여 수의 다양한 일노래가 전해온다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잊히고 사라지고 있다. 제주의 풍습과 전통, 제주어를 고스란히 간직한 일노래의 의미와 가치, 전승 방안을 2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 3대째 이어가는 제주 일노래 전통 제3회 제주 일노래 상설공연 개막식이 열린 지난 11일 오후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앞마당. 제주도무형문화재 제16호 제주농요 2대 보유자인 김향옥(70) 씨와 그의 외손녀 김나연(20) 씨가 함께 무대에 올랐다. 할머니와 손녀가 각기 무대에서 공연하고, 마지막에 모든 출연자와 함께 제주 민요 '느영나영'을 불렀다. 출연진은 물론 행사장을 찾은 관객들 역시 흐뭇한 모습으로 볼 수밖에 없는 그 날의 명장면이었다. 김향옥 씨와 김나연 씨는 지난 2007년 타계한 제주농요 1대 보유자 고(故) 이명숙 명창의 큰딸이자 증손녀다. 3대에 걸쳐 제주 일노래, 제주농요 전통을 이어가는 셈이다. 제주농요는 일노래 중 하나다. 농사할 때 부르는 노래인 만큼 다른 일노래에 비해 종류도 다양하고 수
제주가 우리나라 최대 메밀 생산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메밀은 제주 농경신 자청비 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과거로부터 제주인의 삶과 밀접한 곡물이다. 제주도는 7년 전 메밀산업을 육성·지원하기 위한 조례를 제정해 제주 메밀의 명성과 문화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메밀과 관련한 제주의 문화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방안이 시급하다.' ◇ 6차산업 주도하는 제주 메밀 지난 5월 봄 메밀 문화제가 열린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 한 달가량 이어진 문화제 기간 팝콘 터지듯 피어오른 하얀 메밀꽃에 온 마을이 들썩였다. 한라산과 오름을 병풍 삼은 드넓은 들녘에 피어난 메밀꽃을 보러 수많은 관광객과 제주도민이 이곳 와흘리를 찾았다. 음악 공연이 펼쳐지고 메밀을 활용한 각종 음식에서 풍기는 구수한 냄새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연인 또는 가족과 함께 찾은 관광객들은 연방 사진을 찍으며 찬란한 제주의 봄을 만끽했다. 게다가 5월 14∼15일 이틀간 제주 자청비 신화를 소재로 한 연극 공연도 펼쳐졌다. 농경의 여신 자청비가 하늘에서 인간세상을 위해 곡식 종자를 품에 안고 내려왔다가 깜빡 잊고 두고 온 메밀 씨앗을 뒤늦게 부랴부랴 가져온 사연 등이 담겼다.
"튀어야 산다. 유권자의 눈과 귀를 사로 잡자!" 6·1 지방선거 선거전 초반부터 선거운동이 튀기(?) 시작했다. 아이디어 속출이다. 유권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시선끌기 작전이다. 제주 곳곳에서 각 후보들의 톡톡 튀는 선거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부순정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는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19일 제주지사 후보군 중 유일하게 출정식을 갖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을 미소짓게 하는 소규모 거리유세로 공식 선거운동 첫날을 맞이했다. 부순정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19일 오후 6시부터 제주시 인제사거리 등 고마로 일대에서 소규모 유세를 펼쳤다. 현장에는 녹색당 소속으로 제주도의회 비례대표 선거에 도전한 신현정 후보도 함께했다. 부순정 후보를 비롯한 10명 남짓의 녹색당 선거원들은 횡단보도 신호가 켜질 때마다 분주하게 뛰어다니면서 유권자들과 만났다. 부 후보는 유세차량 대신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활용해 선거 트럭을 꾸몄다. 한번 쓰고 버려지는 현수막은 제작하지도 않았다. 부순정 후보는 "기후위기 앞에 선 제주, 난개발로 중산간 곳곳이 파헤져진 제주, 해안선 상승으로 해안 저지대 마을이 침수되고 있는 제주. 제주도가 지금 생존의 위기 앞에 섰다"면서
보궐선거를 앞둔 제주시 을 선거구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단 하루동안 무더기로 출사표가 쏟아지는 등 '제주지사 선거전' 이상의 열기를 보이고 있다. 오영훈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제주도지사 선거 출마로 '무주공산'이 된 탓도 있지만 선거가 돌연 잡히며 후보들의 움직임이 전례 없을 정도로 빠르다. 제주시을 지역구 자리를 놓고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10여명에 이르는 후보군들이 직접 출마선언을 하거나 자천타천 언급되는 등 경쟁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2일 제주에서는 제주시 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의 출마 기자회견이 잇따랐다. 공석이 된 의석엔 오 의원이 몸담았던 정당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군이 춘추전국시대를 열었다. 먼저 이날 오전 10시 김희현 제주도의원(더불어민주당, 일도2동을)이 포문을 열었다. 김 의원은 제주도의회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의원 제주시을 보궐선거에 도전할 것을 도민 여러분께 선언한다"면서 "이를 위해 제주도의회 의원직을 오늘(2일) 자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도의회 의원으로서 늘 한계를 느껴왔다. 지역의 한계릍 뛰어넘어 법적,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제가 해내겠다. 도민 여러분의 은
제주를 여는 창! <제이누리>가 제주학연구센터와 함께 제주의 말과 글 되살리기에 나섰다. 오는 9월 30일까지 이뤄지는 '아름다운 제주 말·글 찾기' 공모전이다. 올해로 10번째다. 제주어(語)의 진면목을 찾고, 우리의 젊은 세대들조차 쓰지 않아 사라져가는 언어가 돼 가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전국 단위 공모전이다. 제주학연구센터와 <제이누리>가 주최.주관하고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제주도교육청이 후원하는 이번 공모전은 9월 30일까지 공모전 공식사이트(https://docs.google.com/forms/u/1/d/1WZIFzaPhIE8U7TQRv7231BbDPCXWBZVw iFnQWor0lHc/edit)를 통해 접수 받는다. <제이누리> 사이트 메인페이지 오른쪽 배너를 클릭하고 들어와도 된다. 전국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가 응모 가능하다. 공모는 일반과 학생 두 부문으로 나눠 진행된다. 대학생은 일반 부문으로 응모해야 한다. 시·산문·대역 등 제주어 글쓰기와 동영상 분야로 1인 2개 작품까지만 응모 가능하다. 다른 대회 입상작과 본 대회 1~9회까지의 대상.최우수상 수장자는 응모가 제한된다. 아름다운 제주말과 글로 된
본격 신호탄이 올랐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5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제주지역 예비후보자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첫 주말 대회전이다.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후보 공천 일정이 시작되면서 이번 지방선거에 나설 제주지역 예비후보자들의 '선거사무소 개소 정치'가 궤도에 올랐다. 특히 양당 공천 신청마감 후 첫 주말인 오는 9~10일 선거 사무소 개소식이 줄줄이 예정됐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중앙당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공관위)는 오는 30일까지는 지방선거 후보자를 확정하기로 하면서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광역단체장 후보자 신청을 접수했다. 민주당 공관위는 광역단체장의 경우 서류심사를 거친 뒤 8일부터 10일까지 엄격한 후보 적합도 조사를 거쳐 경선 후보를 확정할 방침이다. 광역의원의 경우 지난 1~6일 후보자 공모가 이뤄져 8일부터 서류 심사 및 면접을 벌인 뒤 오는 11일 제3차 회의를 통해 최종 평가 및 심사결과 1차 발표를 할 예정이다. 국민의힘도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광역단체장 후보자 공모를 벌였다. 광역의원 후보는 8일까지 공모한 후 오는 17일 공직후보자 역량강화시험을 치르고 공천심사에 들어간
▲ 아버지가 제주4.3 일반재판 수형인이고 어머니가 군사재판 수형인인 강철훈씨(63). 제주 중산간에 있었지만 멀리 내다보면 바다가 보이는 마을이었다. 주민들은 70여명 안팎에 가구수도 20가구가 채 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이었다.하지만 그 마을에도 어김없이 4.3의 광풍이 몰아쳤다. “양력으로 1948년 10월11일 쯤이었다고 들었어. 토벌대가 와서 마을을 다 불질러버리고 마을에 살던 사람들도 각지로 다 흩어져버렸지. 한 20일 정도 있다가는 그 옆 마을도 다 불살라져버리고, 마을사람들이 다 (애월읍)수산리쪽으로 가서 살다가 한 3년 후에 와서 마을을 다시 재건했지”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 거주하는 강철훈씨(63)는 자신의 할머니와 외삼촌들로부터 전해들었던, 마을을 휩쓸고 간 4.3의 이야기를 그렇게 전했다. 그 광풍 속에서 강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군경에게 끌려가 다시는 고향땅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4.3 당시 일반재판을 받고 경상북도 김천 형무소로 끌려가 그곳에서 행방불명됐다. 어머니 역시 군사재판을 받고 전주형무소로 끌려갔다가 다시 서울 마포형무소로 이송됐고
지난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정부의 희생자 보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 70여년만에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물꼬가 트였다고 하지만 가족관계 불일치, 일반재판 수형 희생자 등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들은 쌓여있다.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미디어제주·제이누리·제주의소리·제주투데이·헤드라인제주)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함께 희생자의 유족 인터뷰를 통해 명예회복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 2007년 진행된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 일대 유해발굴 작업. 제주시 화북동에 거주하는 김공열 어르신(101)에게 올해 초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바로 74년 전 제주4.3 당시 행방불명된 작은 오빠 故 김규희(1924년생)씨의 유해를 찾았다는 연락이었다. 김규희씨는 4.3직전 일본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군인들에게 연행돼 제주항 산지에 있던 주정공장으로 끌려갔고, 1949년 당시 비행장(현 제주공항)으로 끌려가 총살됐다. 이후 가족들은 묘지조차 만들지 못하고, 가족 묘지에 김규희씨의 비석만 세운 채 제사를
지난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정부의 희생자 보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 70여년만에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물꼬가 트였다고 하지만 가족관계 불일치, 일반재판 수형 희생자 등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들은 쌓여있다.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미디어제주·제이누리·제주의소리·제주투데이·헤드라인제주)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함께 희생자의 유족 인터뷰를 통해 명예회복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 제74주년 제주4.3 추념식에 참석한 한 유족이 추념식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74년 전 국가폭력에 의해 발발한 4.3은 제주 곳곳에서 마을 단위 학살과 일가족 몰살 등 대를 잇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희생자들은 ‘빨갱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로 생사를 달리해야 했고, 생존자나 유족들도 '빨갱이 집안'이라는 주홍글씨 속에 수십년의 모진 세월을 감내해야 했다.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버지가 4.3광풍에 희생돼 어쩔 수 없이 조부모나 친인척 등의 호적에 이름
지난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정부의 희생자 보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 70여년만에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물꼬가 트였다고 하지만 가족관계 불일치, 일반재판 수형 희생자 등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들은 쌓여있다.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미디어제주·제이누리·제주의소리·제주투데이·헤드라인제주)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함께 희생자의 유족 인터뷰를 통해 명예회복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나는 맨날 괴로워. 맨날 불쌍해. 2살 난 아이, 4살 난 아이, 80이 넘은 할아방 ... 그 생각만 하면 보상이고 뭐고 문제가 아니야. 생명이 제일 중요한데 그걸 그냥 그 죽여버린다는 거 금수만도 못하지. 70몇년이 넘어도 매일매일 가슴 아파서, 그 생각 뿐이야.” 노인의 가슴은 이미 다 타버린지 오래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세월이다.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이란 말인가? 현상지(92) 옹. 어르신은 4·3의 광풍이 몰아친 70여년 전 자신과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가족을 잃었다. 82살 할아버지, 55살 아버지, 27살 큰형, 22살 샛형, 어머니와 형수, 12살 동생과 2살, 4살 조카. 당시 18살이었던 자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