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을 지키려다 제가 무너졌습니다." 제주시 한 고등학교 교사 A씨가 남긴 말이다. 그가 마주한 상황은 한마디로 무방비였다. 신체 접촉 피해를 입고도 아무런 보호 조치 없이 가해 학생과 수학여행을 떠나야 했고, 신고를 했지만 돌아온 건 "화해하라"는 말과 "수행평가 때문에 복귀해달라"는 요구뿐이었다. 결국 A씨는 병가와 특별휴가를 연달아 사용한 끝에 교단을 떠났다. 학교는 침묵했고, 교사는 끝내 혼자였다. 사건은 지난 5월 수업 중 발생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던 학생을 제지하자 학생은 갑자기 A씨를 껴안으려 했고, 뿌리쳐도 다시 강하게 팔을 붙잡았다. 이후에도 새벽 시간에 문자가 왔고, 복도에서 위협적인 접근이 반복됐다. A씨는 학교에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분리 조치는 없었다. "교권보호위원회에 신고되기 전까진 어렵다"는 설명이 전부였고, 보호 매뉴얼도 없었다. 상황이 담긴 CCTV 영상조차 A씨가 직접 확보해야 했다. 가장 충격적인 건 닷새 뒤 그 학생과 함께 수학여행에 인솔 교사로 떠나야 했다는 사실이다. "도저히 함께할 수 없다"는 A씨의 호소에도 학교는 묵묵부답이었다. 그 뒤로 이뤄진 분리 조치는 고작 5일. 병가에 들어간 A씨에게는 "수행평가 문제
지난 20일 오후 2시 제주시 김만덕기념관 만덕홀. '제주 도시철도망 구축계획(안)' 공청회가 열렸다. 제주도가 추진 중인 수소트램 사업에 대해 전문가와 도민이 마주한 자리였다. 단상 위에서는 장밋빛 '미래의 제주'가 펼쳐졌다. 관광객 수요, 탄소중립 교통수단, 지역경제 회복이라는 익숙한 키워드들이 연이어 쏟아졌고 '제주형 모빌리티 혁신'이라는 수식어도 덧붙여졌다. 이날 발표된 핵심 교통수단은 '트램(Tram)'이다. 도로 위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운행되는 노면 전차로 지하철보다 건설비가 저렴하고 정시성이 높아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대중교통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전기를 사용하는 일반 트램과 달리 도가 도입을 검토 중인 수소트램은 수소 연료전지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친환경 교통수단이다. 이용상 한국철도문화재단 이사장은 "수소트램 역세권 주변에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 사업 추진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익 대전광역시 철도정책과장도 "도시철도 건설은 단순한 교통망 확충을 넘어 도로와 교량, 교각 등 기반시설을 함께 개량하고 개선함으로써 도시 전체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그 많던 야자수는 다 어디 갔나요?" "다 뽑았대요. 그런데 또 심는대요." 제주시 탑동로를 걷던 관광객과 상인의 대화다. 제주시는 지난 3월부터 이 곳 가로수도 심어졌던 워싱턴야자수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방향을 틀었다. 지금 탑동로에서는 야자수를 다시 심는 '재식재' 작업이 한창이다. 그 사이 도민 혈세 3억원 가까이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사실 워싱턴 야자수가 제주와 인연을 맺은 건 오래다. 1982년부터 제주도내 주요 도로와 관광지에 심어져 그동안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이색 풍경으로 자리를 잡아왔다. 한때 3500여 그루가 도내 곳곳에서 자라 제주의 또 다른 상징이 되기도 했다. 아열대 식물인 워싱턴 야자는 멕시코, 북아메리카의 애리조나주, 뉴멕시코주, 콜로라도주 등지에 주로 분포한다. 줄기는 하나로 곧고 원기둥 모양이며 회갈색이 난다. 잎은 꼭대기에 빽빽이 나며 부챗살처럼 돼 있다. 수명은 80~250년 이상이고 추위에 비교적 강해 제주지역 등에서 노지월동이 가능하다. 최대 25m 이상까지도 자라 제주 곳곳에 심어진 워싱턴 야자들도 20m를 훌쩍 넘는 크기로 자랐다. 바람에 대한 저항성이 아주 강한 편인 수종으로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지난 3일 오전 5시. 초여름의 선선한 공기 아래 제주시 삼도2동 제2투표소, 제주남초등학교에는 서서히 불이 들어왔다. 투표 사무원과 정당 참관인, 선거 관계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5시 30분이 되자 본격적인 투표 개시 준비가 시작됐다. 참관인을 대상으로 한 안내와 주의사항 전달, 투표지·도장·투표함 점검까지 모든 절차가 빈틈없이 이어졌고, 투표함 봉인 작업도 그 일부였다. "이건 봉인함을 잠글 열쇠입니다.", "이건 투표함에 부착할 개폐 방지 스티커입니다." 투표 사무원은 준비물 하나하나를 직접 들어 보이며 설명했다. 현장은 긴장 속에서도 질서와 투명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오전 5시 59분. 투표관리인의 개시 선서가 낭독되면서 제21대 대통령 선거의 본 투표가 시작됐다. 그러나 평온했던 분위기는 채 한 시간도 유지되지 않았다. 오전 6시 48분 한 남성 A씨가 삼도2동 제2투표소에 도착해 신분증을 제시하며 투표를 시도했다.그러나 선거인명부에는 이미 지난달 30일 사전투표를 마친 이력이 명확히 기재돼 있었다. 투표 사무원이 이를 설명하자 A씨는 "내가 한 게 아니다"라며 강하게 부인했고, 아무 말 없이 투표소를 빠져나갔다
화창한 5월 초여름 날씨.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의 환한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 들린다. 교실 창문 너머로 비치는 밝은 햇살, 바람에 실려오는 노랫소리와 체육시간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 스승의 은혜를 다시금 되새기는 5월, 그러나 교실 안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주도내 한 초등학교 교사 고모씨(35)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을 느낄 줄 알았다"면서도 "이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보다 언제 나를 향할지 모를 민원의 공포와 싸워야 하는 게 더 무섭다. 교사라는 이유로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다"고 말하고는 고개를 떨궜다. 제주의 교실 안에서 교사들이 맞서고 있는 것은 단순한 업무가 아니라 '폭력과 민원'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이었다. 결혼을 앞둔 또 다른 초등학교 교사는 "죽이겠다', "결혼식장에 찾아가 깽판을 치겠다"는 협박을 매일같이 들어야 했다. 또 다른 교사는 "창문만 봐도 혹시나 찾아오지 않을까, 집에 가도 그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며 "법적으로 대응하면 더 큰 해코지가 돌아올까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토로했다. 이 학부모는 10명의 교사를 정서학대 혐의로 고소했고, 교육청과 학교에는 100
이달 6일 서귀포 제주월드컵경기장. 어린이날 홈경기를 맞아 많은 가족 단위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그러나 제주SK FC는 강원FC에 0-3으로 완패하며 경기장엔 싸늘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경기 종료와 동시에 일부 서포터즈들이 선수단 통로와 버스 앞을 가로막았다. 단순한 패배에 대한 반응이 아니었다. 무기력한 경기력, 그에 대한 해명도, 표정도 없이 경기장을 떠나는 팀의 태도에 팬들의 쌓인 감정이 터졌다. K리그에서 '버막(버스 막기)'은 낯설지 않다. 성적 부진이나 프런트에 대한 불만이 고조될 때 전국 각지의 경기장 주차장에서 종종 벌어지는 풍경이다. 2023년 수원삼성이 강등이 확정된 뒤 팬들은 2시간 넘게 선수단 버스를 막고 단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번 제주 사태는 방식과 반응, 그리고 이후 전개까지 모두 달랐다. 논란의 중심에는 박동진 선수가 있었다. 팬들과 마주한 그는 언성을 높였고, 일부 팬은 그가 욕설을 내뱉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현장을 촬영한 영상에서는 박 선수가 팬과 언쟁을 벌이는 장면과 이를 말리는 구단 관계자의 모습이 담겼다. 여기까지는 다소 거친 상황일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전개는 K리그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렵다. 박 선수는
4월 3일 오전 9시. 제77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이 열리는 제주4·3평화공원으로 향하는 길. 유족을 태운 차량과 전세버스 행렬 사이로 익숙한 구호와 피켓들이 눈에 들어왔다. "제2공항 결사반대", "환경을 지켜라." 4·3과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 이 날만큼은 다른 주장들까지 추모의 공간에 겹쳐 있었다. 주차장은 삼엄한 경비로 둘러싸여 있었다. 경찰과 경호 인력이 출입 동선을 통제했고, 공원 안으로 들어서자 검은 옷차림의 인파 사이로 하얀 국화가 하나둘 지나갔다. 추모와 경계가 교차하는 긴장된 공기 속에서 오전 10시 정각을 알리는 묵념 사이렌이 울렸다.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그 엄숙한 분위기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단상에 오르면서 갈라졌다. "윤석열 탄핵!", "한덕수는 물러가라!" 민주노총 조끼를 입은 한 남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연신 고성을 질렀고, 행사 진행요원과 보안 인력이 즉각 달려들었다. 팔이 붙잡히고, 입이 막히는 순간. 참석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남성은 6~8명의 경호 인력에 둘러싸인 채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갔다. 추념식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진 이 물리적 제지, 이른바 '입틀막' 장면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윤석열
제주시 삼도1동 전농로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하늘을 가득 메운 왕벚나무 아래, 사람들은 셀카를 찍고, 아이들은 솜사탕을 들고 뛰어다니며 봄기운을 만끽했다. 지난 28일부터 사흘간 열린 '제18회 전농로 왕벚꽃축제'는 도심 속 대표 봄 축제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축제가 끝나기도 전,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건 벚꽃보다 비싼 축제장 음식값이었다. 지난 29일 한 이용객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사진 한 장이 논란의 시작이었다. '순대 6조각에 2만5000원, 오케이'라는 문구와 함께 올라온 사진에는 적은 양의 순대볶음이 일회용 접시에 담겨 있었다. 해당 노점은 전농로 축제장 먹거리 부스 중 한 곳이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꼼장어는 3만원, 아이들 헬륨풍선은 하나에 2만원이었다", "가격표도 안 보이고 결제 후 알게 되는 구조", "여기 노점 바베큐도 바가지다. 제주도민 아니고 육지 떠돌이 장사꾼들"이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현장에서 만난 도민 정모씨(33·여)는 "제주를 찾은 지인들에게 '축제니까 즐기라'고 했는데 바가지 가격 때문에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바가지 논란은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봄 '비계 삼겹살'
제주의 대표 봄 축제인 '제주들불축제'가 올해 기상 악화로 중도 취소되자 지역 사회 내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축제 명칭과 정체성 문제부터 천문학적 예산 집행까지, 여러 갈래의 비판이 동시에 제기되는 상황이다. 지난 14일부터 사흘간 열릴 예정이던 ‘제27회 제주들불축제’는 태풍급 강풍으로 사실상 무산됐다. 다만 일부 행사는 분산 개최 형식으로 열어 축제를 마무리했다. 2년 만에 열린 이번 축제는 '불 없는 들불축제'로 기획돼 주목받았지만 디지털 전환 시도마저 완전히 구현되지 못한 채 아쉽게 막을 내렸다. 제주들불축제는 1997년 '정월대보름 들불축제'로 시작됐다. 제주 전통 목축문화인 '방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마을 단위로 불을 놓던 풍습을 축제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러나 환경오염과 산불 위험성,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축제의 핵심 콘텐츠인 ‘오름 불놓기’는 해마다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2022년에는 전국적인 산불 재난으로 축제가 전면 취소됐고, 2023년에는 산불경보로 불놓기 행사가 급히 철회됐다. 환경단체와 도민 청원 등 반대 여론이 거세지면서 제주시는 올해부터 '불놓기'를 과감히 제외하고 디지털 미디어아트를 결합한 '빛 중
"딱딱하고 잔디가 들린다." 20일 2026 FIFA 북중미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오만전이 끝난 직후, 경기를 마친 선수들이 믹스드존(Mixed Zone)을 빠져나오며 가장 먼저 꺼낸 말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온 선수들은 하나같이 경기장 상태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패스나 드리블이 매끄럽지 않았던 이유도, 경기 내내 유독 미끄러지는 장면이 많았던 배경도 결국 '잔디'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이 '논두렁 잔디' 논란으로 A매치 개최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으면서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7일 대체 경기장으로 고양종합운동장을 낙점했다. 당시 협회는 "고양의 잔디 상태가 가장 좋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경기 도중 이강인은 잔디에 발이 걸려 넘어졌고, 그 과정에서 발목을 다쳤다. 부상 직후 부축을 받으며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이강인의 뒤편에는 잔디가 움푹 파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백승호는 "무게 중심을 실으면 잔디가 뜨고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고, 주민규도 "잔디 상태가 좋다고는 말 못하겠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정승현은 경기 전 훈련 도중 종아리 부상을 입어 경기에 나서지도 못했다. 상대팀인 오만 감독
제주시 도심 곳곳에서 공유 전기자전거 '지쿠'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 제주도가 탄소중립 실현과 대중교통 혁신을 목표로 올해를 '자전거 타기 좋은 제주 조성 원년'으로 선포한 이후 공직자들도 솔선수범하며 자전거 이용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기대와 달리 문제점도 적지 않았다. 지난 25일 아침 출근 시간, 제주시 삼도동 이마트 인근을 찾았다. 버스정류장 옆에는 녹색 계열의 공유 전기자전거 '지쿠'가 세워져 있었다. 도로 한편과 인도 가장자리, 심지어 횡단보도 입구까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취지는 좋죠. 자전거 타면 차가 줄어들고 탄소중립에도 도움 되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아무 데나 세워두면 보행자 입장에선 난감해질 때가 많아요." 출근 길 만난 도민 박모씨의 말이다. 박씨는 "횡단보도 바로 앞에 자전거가 떡하니 놓여 있어 지나다닐 때 혼란스러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현재 제주도의 공유 전기자전거는 별도의 거치대가 없다. 이용자들은 인도 한쪽이나 버스정류장 근처 등 빈 공간에 자전거를 세우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보행자의 통행이 방해되거나 휠체어나 유모차의 이동이 막히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공유자전거 운
2005년 1월27일 제주는 '세계평화의 섬'이란 간판을 달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일이다. 참혹했던 1948년 4·3의 비극의 뒤안길에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노무현 정부는 줄기차게 논란이었던 제주해군기지 문제도 매듭지었다. 2007년 제주 강정항에 '민·군 복합항'이란 이름의 해군기지 조성을 결정했다. '한반도 병참기지화'란 반발과 '한반도 남방 대양해군의 거점'이란 청사진이 맞붙는 시련의 세월이 또 찾아왔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올해 2월 3일 강풍이 몰아치던 서귀포 강정동 제주해군기지 정문 앞. 이른 시간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에는 '기동함대사령부 창설 반대', '제주를 화약고로 만드는 행동을 멈춰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이 들려 있었다. 해군기지 앞에서 울려 퍼지는 구호는 '평화의 섬' 제주가 다시 한번 군사적 긴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날 제주해군기지에서는 해군의 오랜 숙원이었던 기동함대사령부 창설식이 열렸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고, 해상 교통로를 보호하며, 대한민국의 해양 권익을 수호하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는 명분이 따랐다. 제주는 2005년 1월 27일 노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