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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77년 흘러도 반복된 갈등과 분열 ... 옷깃 여미는 양심

 

4월 3일 오전 9시.

 

제77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이 열리는 제주4·3평화공원으로 향하는 길. 유족을 태운 차량과 전세버스 행렬 사이로 익숙한 구호와 피켓들이 눈에 들어왔다.

 

"제2공항 결사반대", "환경을 지켜라."

 

4·3과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 이 날만큼은 다른 주장들까지 추모의 공간에 겹쳐 있었다.

 

주차장은 삼엄한 경비로 둘러싸여 있었다. 경찰과 경호 인력이 출입 동선을 통제했고, 공원 안으로 들어서자 검은 옷차림의 인파 사이로 하얀 국화가 하나둘 지나갔다. 추모와 경계가 교차하는 긴장된 공기 속에서 오전 10시 정각을 알리는 묵념 사이렌이 울렸다.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그 엄숙한 분위기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단상에 오르면서 갈라졌다.

 

"윤석열 탄핵!", "한덕수는 물러가라!"

 

민주노총 조끼를 입은 한 남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연신 고성을 질렀고, 행사 진행요원과 보안 인력이 즉각 달려들었다. 팔이 붙잡히고, 입이 막히는 순간. 참석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남성은 6~8명의 경호 인력에 둘러싸인 채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갔다. 추념식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진 이 물리적 제지, 이른바 '입틀막' 장면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이 같은 장면은 반복돼왔다. 대통령실 앞 1인 시위, 세월호 추모 행사, 방사능 오염수 반대 퍼포먼스 현장 등지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억누르기 위해 입을 막는 모습은 시민들의 카메라에 수차례 포착됐다. 그리고 이제, 그 '입틀막'은 제주에서도 목격됐다.

 

소란은 잠시였지만 이후에도 "이재명 구속하라", "정치인들의 쇼를 멈춰라"는 구호가 곳곳에서 이어졌다.

 

어느새 추념식장에선 추모의 울림보다 정치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단상을 향한 박수는 간헐적으로 이어졌고, 유족들 사이에선 고개를 젓는 이들이 늘어갔다.

 

그러나 그런 혼란 속에도 이 자리를 묵묵히 지켜야 할 이들은 조용히 추모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행사장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평화광장과 위령비가 있는 계단 아래로 옮겼다. 계단을 따라 내려간 그곳엔 정치적 구호도, 방송 카메라의 시선도 닿지 않았다.

 

 

그 한가운데 한 남성이 위령비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형님, 이렇게 또 찾아뵙습니다."

 

그는 준비해온 하얀 국화 한 송이를 조심스럽게 놓았다.

 

그리고 위패에 새겨진 형의 이름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듯 쓰다듬었다. 말은 짧았지만 울음은 길었다. 몇 분을 그렇게 흐느낀 뒤,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묻게 된다. 이 공간의 진짜 주인은 누구여야 하는가. 단상 위 연설이든, 유명 정치인이든, 피켓 시위든, 고성이든.

 

그 어떤 것도 그 남성의 눈물 앞에서는 설명되지 않았다. 정치적 갈등이 추념식의 소리를 일시적으로 덮을 수는 있어도 이곳이 품고 있는 고통과 슬픔까지 덮을 순 없었다.

 

유족의 아픔은 그 어느 것에도 비견할 바가 못된다. 4·3의 기억은 목소리가 큰 이들의 것이 아니라 말없이 국화를 바치고 형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의 것이다. 77년 전의 비극 앞에서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도 유족들의 긴 기다림과 반복된 외침 덕분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자리에서 끝내 기억해야 할 목소리는 분명하다. 4·3은 '누구를 향한 분노'가 아니라 '누군가를 향한 위로'로 남아야 한다.

 

계엄과 포고령으로 점철되던 그 시절, 그렇게 말없이 사라져간 이들에게 남은 자들의 책임은 아직도 크다. 그저 편으로 나뉘어 목소리만 낸다고 나라가 바로 서지 않는다. 옳고 그름은 따로 있다. 바로 서야 할 정의가 아직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한 것 같아 그 마저도 아쉬움이다. 시작은 추념식장에서만이라도 옷깃을 여밀 양심에서 비롯된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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