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의 100세는 만 나이가 아니라서 대통령의 지팡이를 기대할 순 없는 노릇. 어떻게 하면 청려장처럼 깜짝 선물을 어머니에게 전해드릴 수 있을까? 3월이 되면서부터 시작된 이 고민은, 막내딸이 자기 손으로 생신상을 차리고 싶다는 말로써 일거에 해결됐다. ‘어머니의 생신축하 현수막을 아파트 입구에 내걸면 어떨는지... 백세라면 오가는 사람들도 축하의 미소를 보내주지 않을까요?’라는 아이디어와 함께. 그래, 어머니의 이름이 김성춘(金成春)이니, 봄을 이루는 새싹과 햇살, 때늦은 유채꽃과 벚꽃들도 축복의 퍼레이드를 펼쳐줄거야! 우리는 모두 막내의 제안에 기립박수로 환호했다. 동생이 디자인한 사진 속에서 어머니는 엘리자베스 여왕보다 더 행복한 웃음으로 천진난만하게 세상을 바라보신다. 오, 딸들이 무색하도록 저리도 고우신 어머니의 백세 미소라니! 어머니가 100년을 살아내셔서 가장 기쁜 자식은 누구일까? 아마도 막내이리라. 오래전, 오십을 훌쩍 넘긴 큰언니가 어머니에게 떼를 쓰는 것을 보면서 내심 부러워한 적이 있다. 아, 내가 언니 나이쯤 되었을 때도 어머니가 저렇게 언덕이 되어줄 수 있을까? 첫째인 큰언니와 일곱째인 나 사이에는 14년의 터울이 있다. 막내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허정옥 전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 이사장의 ‘어머니의 100세 일기’입니다. 고령화=장수의 시대입니다. 하지만 의술의 발전으로 우리 삶이 연장되긴 했지만 그만큼 삶이 더 풍요로워졌는지는 의문입니다. 장수인생이 꿈이라지만 우리 사회는 우리 노년의 삶을 보장할만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허 이사장의 어머님, 그 분의 삶을 빌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다시 성찰하고 미래 한국사회 노년의 삶을 다시 점검해봅니다./ 편집자 주 오늘은 어머니의 생신이다. 1923년생이시니, ‘세는나이’로 백 살이 되셨다. 만나이로는 99세시니, 백수(白壽)가 되신 거다. 백(百)에서 일(一)을 빼면 백(白)이 됨을 뜻한다. 아기가 엄마배 속에서 보낸 10개월을 한 살로 치는 우리들의 나이 셈법은, 한국이 세계를 대표한다. 나이를 헤아리는 단위인 ‘살’은 ‘살다(生)’에서 왔을 것이다. 엄마는 아기가 잉태되었을 때부터 대화를 시작한다. 태아를 생명체로 여기고 세상으로 나오기 전의 사전학습, 소위 ‘태교’가
최근 제주도 감사위원회가 발표한 ‘제주도내 주요 관광지 운영실태 점검 결과’를 보면 ‘관광객의 하소연을 외면한 수박 겉핥기식 점검’이라는 언론평가에 시선이 멎는다. 한창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여름 성수기에 실시한 점검 치고는 그 불편 및 불만 사항들이 지극히 일상적 수준들이다. 적발된 사례들이 쓰레기 방치, 화장실 불량, 야영장 시설 미비 등 주민생활 불편 차원의 개선 사항 일색이다. 정작 여름철 관광객들을 불만케 하는 해수욕장의 불친절이나 무질서한 상거래 등은 지적된 바가 없다. 정녕, 올 여름의 관광지는 이처럼 관광불만이 전무한 고객만족의 현장이었단 말인가? 실제로 같은 기간 동안 제주도청의 홈페이지 게시판이나 시청의 인터넷 신문고 등에는 마을 주민들에 의해 야기된 불친절 사례들이 관광객 민원으로 올라와 있다. 예컨대 무료 야영장이라 해놓고 돈을 받는 '바가지' 요금이나 해수욕장에서 파라솔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횡포 등 전형적인 여름철 관광지의 불상사들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들이 문제로 지적되지 않은 것은 ‘현장을 점검한 감사관들이 지역주민으로 구성된 때문이 아닐까?’ 하는
도지사후보마저 공항에서 발이 묶이던 2일 김포발 제주행 비행기는 한 대도 예외 없이 결항이었다. 암수술을 받은 아내를 동반하고서 발을 동동 구르는 남편은 "5개월 전에 예약을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소리 나게 울먹였다. "서울에는 병원밖에 아는 곳이 없어 공항근처 찜질방에서 대기하겠으니, 제발 내일 아침에 비행기 좀 타게 해달라"는 남편은 새벽 3시부터 공항에서 대기하겠다고 사정한다. 그러고는 돌아서다가 갑자기 카운터로 다가가더니 "투표도 꼭 해삽니다. 제주도는 투표가 정말 중요해서 일부러 오늘 퇴원해수다"라며 제주도 사투리로 통사정을 한다. 다행히 새벽 6시 20분에 출발하는 첫비행기의 예약확인증을 받은 그는 상기된 얼굴에 안도의 웃음기를 머금었다. 어쩌면 투표보다 병색이 남아 있는 그의 아내를 위해 발휘된 순발력인지도 모르겠다. 온종일 제주도는 출발 133편, 도착 137편, 국제선 왕복 2편이 모두 결항돼 국내외 관광객과 도민 등 2만명에 가까운 이들의 발이 묶였다. 비좁은 제주공항은 오늘도 아수라장을 이루었을 것이다. 어쩌면 위급한 병이나 당면한 경조사, 사업이나 회의 등으
제주의 정치는 어떠한 감정을 담고 있었을까? 중앙정부가 제주도에 목사를 파견한 것은 고려 1295년(충렬왕 21)부터인 것으로 가늠된다. 이때를 기해 정부가 간헐적으로 제주를 집권해 왔으며, 이전에는 제주가 탐라국으로서 독립된 주권을 행사하였다. 참고로 탐라국(耽羅國)은 기원전 57년(탐라국왕세기에 의하면 기원전 2337년) 경에 시조 고을라왕(髙乙那王)이 세운 고대왕국으로 1402년까지 유지되었다. 이후 백제, 신라, 고려에 복속되었다가, 15세기 초반 조선에 완전히 병합됐다. 삼국지 동이전에서는 제주를 주호(州胡)라 칭한다. 기록된 바, ‘주호는 마한 서쪽 바다 가운데의 큰 섬으로, 배를 타고 왕래하며 한중(韓中)과 교역한’ 국가다. 조선이 건국된 후, 1397년(태조 6)에 제주목이 설치되었고, 이때부터 제주는 조선에 속한 영토로 중앙의 지속적인 관리를 받기 시작했다. 이로써 우리를 가슴 설레게 하는 ‘탐라국 천년’의 역사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말았다(문화재박물관). 홍순만의 ‘제주목사에 관한 서설’에 의하면, 조선시대(1392-1910)를 통틀어서 제주목사를 역임한 사람은 총 286명에 달하며, 평균 재임기간은 1년 10개월 정도다. 이는 미부임자를
“엄마, 내가 말 못할까 봐 보내 놓는다. 사랑해.” 가라앉는 배 안에서 보내 온 이 마지막 인사를 보고 통곡하지 않을 어미가 어디 있으랴. 이 땅의 모든 어미들은 내 아이가 보내 온 문자 같아서 가슴을 치며 눈물을 삼킨다. 온 몸이 저려들게 하는 이 말이 하늘도, 땅도, 바다도 울게 한다. 지상의 이 마지막 인사가 날이 갈수록 어미들의 가슴을 더욱 더 사무치게 한다. 온 세상이 비통에 잠겨 있어, 제주행 비행기 안으로 비쳐드는 하늘도 바다처럼 슬프다. 먹먹한 가슴으로 눈길을 돌리는데, “남겨진 이들에게 손 내미세요… 그들이 자책하기 전에”라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14년 전, 부일외고 수학여행 버스 참사 생존자가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보내 온 신문기사 속의 편지다. “살아 있는 사람도 돌봐 주세요. 생존자가 살아남았기 때문에 견뎌야 하는 처벌이 죄책감입니다. 내가 보내지 않았다면, 내가 가지 말라고 붙잡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평생을 따라다니면서 가슴팍을 짓누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마음들도 죄책감에 잠겨 있다. 세월호의 단면을 통해 보여주는 이 사회의 총체적 부실 앞에 그저 아연실색,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주소요, 우리 사회의 민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