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외벽도 간판도 모두 까맣다. 카페 이름으로 보이는, 그러나 상호 같지 않은 영문자 The만 흰색이라서 더 눈에 띈다. 큰 길의 모퉁이를 두 번 꺾어야 닿을 수 있는 골목길 안의 카페, <The>는 작다. <The> 안은 좁다고 해야 적절하다. 테이블 하나에 의자가 네 개, 그리고 벽에 기타가 기대어 있다. 기타 앞에는 악보대와 작은 의자가 있다. 주방은 싱크대가 딸린 원룸과 유사하다. 오히려 주방이 홀보다 넓어 보인다. 홀의 벽과 바닥, 천장 모두 다 새까맣다. 테이블 상판만이 하얗다. 기타 역시 검정색이다. 하지만 주방은 온통 흰색으로 밝다. 기타가 기대어 있는 벽에는 벽면을 다 채운 흑백사진이 한 장 걸려있는데, 원라이팅에 의해 여성의 몸이 한 줄의 흰 선으로 감추듯 드러나 보이고 몸이나 배경 역시 까맣다. 흰색으로 처리된 곳이 하나 더 있다. 천장의 전등이다. 긴 원통의 하얀 조명기구는 레이저 광선처럼 수직의 선으로 탁자 위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이 빛이 흰 테이블에 반사돼 어두운 실내를 그나마 밝혀주고 있다. 주방 안의 바닥에 한 여자가 싱크대 맞은 편 쪽 벽을 향하고 모로 누워있다. “싫다니까.” 핸드폰
14 규범의 출근 발길은 언제나 무거웠다. 검찰청 정문을 지나면서 매일 받는 수위의 예우로부터 자신의 왕국에 발을 들여놓는 듯해 보이지만 속 다른 겉의 허위는 허세로서 감춰질 뿐이다. 허세는 부리는 그 자신이 더 잘 안다. 그 앞에서 모두가 굽실거렸다. 범죄자는 물론이거니와 그 가족도, 사무실 직원이나 경찰들도 그의 말 한 마디로 그들의 감정까지 지배했다. 나이도 문규범이 가장 어렸다. 분에 넘치는 대접은 대체로 부담보다는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권한이며 위세가 되었다. “내가 하지도 않았는데 왜 여기에 사인을 해야 합니까?” “당신이 지금 기자로 여기 들어와 있는 줄 알아? 경찰한테 보고 다 들었는데 죄질이 아주 나쁘구만. 장인을 패고 임신한 처형을 유산시키고도 끝까지 부인을 했다며?” “안 했으니까요. 왜 내가 여기 수갑과 포승에 묶여 끌려왔는지 나도 모릅니다.” “허허. 경찰이 말한 그대로구만. 당신이 한 짓은 법 이전에 천륜을 거스른 못된 짓이란 걸 모르나? 이건 <사실과 실화>에 나올 감이야. 그 잡지에 제보해야겠구만. 내가 그 잡지에 아는 기자가 몇 있는데 아주 좋아
15 이길영 목사가 오빠 방에서 나가고 다시 혼자 남았다. 졸립다. 눕고 싶다. 몸을 뉘면서 베개로 삼을 것을 찾았다. 방바닥에 두꺼운 한자사전이 놓여있다. 이것을 베고 눕는다. 책들은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다. 앉은뱅이책상 위에 펜과 잉크병 외에 책은 없다. 아직도 잉크를 찍어 쓰고 있구나 생각하며 문득 오빠의 베개가 이 사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방에 이불이 없다. 이불을 다른 방에 넣어두고 사는 것일까. 작은 방이기에 드는 상상이다. 이불을 놓을 만한 공간이 없다. 오빠의 방은 의사놀이를 하며 오빠 앞에서 누웠던 어릴 적을 떠오르게 한다. 과거는 졸립다. 아득하고 아련한 과거를 되새기는 일은 아늑한 기분에 빠져들게 한다. 환상 같기도 하다. 내 몸은 오빠 앞에서 다 벗겨져 있었다. “넌 부끄럽지도 않니?” 붉게 상기된 오빠가 물었다. 내 몸에 닿은 오빠의 손이 따뜻한 물로 씻은 손을 방금 닦은 것처럼 촉촉했다. “아니. 왜?” 오빠가 진짜 의사 같기도 했지만 오빠가 의사가 아니어도 부끄러울 게 없었다. 부끄러움을 느낀 때는 한참 지나 중학생이 되어서 였다. “넌, 어째 여자애가 그러냐? 정말
16 “보지도 못한 아버지의 유품 중 하나다.” 셀마는 나에게 종이 한 장을 내보였다. 大韓民國이 아니라 大恨民國이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 그리워 울지요. 한라산 시로미는 봄을 맞아 열리건만 우리네 풋사랑은 어느 봄에나 열리나. 뒷면엔 영문자의 메모가 보였다. The Great Regrettable Nation? South Korea=Sorrowful Korean 헬레나의 글씨다. “네 아버지는 부모와 동생을 그리워하다가 돌아가셨다.” 헬레나가 아버지의 사진이 없다며 대신 건네준 아버지의 흔적을 받아든 셀마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엄마로부터 듣는다. “그렇게 사랑했던 조국, 한국이 아버지를 버렸고 그 아버지를 미국이 죽였다. 아버지의 부모, 형제까지도.” 이 말을 듣고 있는 내 눈에 평화의 섬, 제주도라 쓴 현수막이 들어왔다. 광고용 현수막 문구는 이루지 못한 희망이며 절망의 절규다. 제주도에 평화가? 한국에 평화가? 자문하고 있던 나는 내게 평화란 무엇인가 물었고, 평화라는 단어가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제주도에 얼마나 더 있을 것이냐?&rsq
17 “네 아버지는 제주인이다.” 셀마는 엄마 헬레나로부터 아버지가 한국인이라는 말을 듣지 못하고 어른으로 성장했다. 죽기 불과 며칠 전에, “제주도는 한국에 있는 섬이다. 하지만 네 아버지는 한국인으로 살기보다는 제주인으로 살다 죽었다.” 라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 고희수에 대해서도 별 다른 말을 들려주지 않았다. 제 나라를 자기 나라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사람. 그러면서도 미치도록 끔찍하게 제 나라를 사랑했던 사람. 그 사람을 엄마는 6일 간 만났고 그런 그 사람을 이후 평생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됐다고 했다. “그 사랑이 너, 셀마다.” 광주 충장로에서 처음 만난 뒤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줄곧 고희수는 그 거리로 나갔다. 헬레나도 따라나섰다. 6일째, 희수는 여느 때와 달리 물구나무선 뒤집은 몸으로 거리를 두 팔로 걸으며 외쳤다. “한국인이 한국사람들을 죽였다. 살인자는 웃고 살해자는 울어야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이 땅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한국인이 한국백성들을 죽였다. 살인자는 웃고 살해자는 울고. 이 땅에선 이런 일이 계속 되고 있다.” 집으로 돌아와 희수는 술이
18 “이상도 하지.” 이듬해인 1949년 그리고 그 후 매년 봄, 심지도 않은 파와 무가 피어나 집마당을 가득 채웠다고 했다. 주인을 잃은, 불탄 집은 사람의 발길도 끊겨 살았었다는 전설 같은 터로만 남았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그곳에 파가 자라고 무가 자랐다. 파꽃이 피었고 무꽃이 피었다. “파도 무도 다 더 쓰더라.” 어린아이가 파로 환생했고, 어른들은 무로 환생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파꽃과 무꽃을 퍼트리며 떠도는 것이라고도 했다. 파나 무가 대를 길게 치켜세우고 있는 모양에서 한이 느껴진다고 했다. 이불 속에서 죽은 희정이의 주머니에 있던 꼬깃꼬깃한 한 장의 흑백사진 같은 것이었다. 희범이가 태어나 한 달쯤 되었을 때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희정이도 고개를 치켜세우고 엄마를, 아버지를, 그리고 동생과 오빠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들이 살아 돌아와 어제와 같이 곁에 함께 있어주기를 파대처럼 곧추세워 고대했을 것이다. 사진 속에서 웃던 사람들은 모두 지금은 없다. 유일하게 희수만 혼자 남았다. 웃음도 아픈 이유는 부재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웃음이 웃음을 삼켰다. 얼굴에서 웃음은 잃었지만 버티고
19 토벌대가 마을로 들어온다는 소문을 듣고 아버지는 된장 항아리 하나 들어갈 만한 마당 웅덩이 속에 희수와 희정이를 들여보냈다. “어떤 경우라도 절대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동생의 입을 꼭 막아야 한다.” 희정이는 네 살이었다. 엄마가 아버지부터 피신하라고 했다. “산으로 올라간 사람도, 바다로 피한 사람도 다 죽었다.” 아기를 업은 엄마를 숨길 마뜩한 곳을 찾지 못한 아버지는, “설마 애 업은 아녀자를 죽이겠는가.” 이 때 토벌대가 마당으로 들이닥쳤다. 토벌대뿐만이 아니었다. 작은 아버지와 이모, 그리고 동네사람들이 토벌대의 총부리가 찔러대는 방향으로 끌려와 마당에 부려졌다. 마당은 채소 따위 푸성귀를 심어 먹을 수 있는 흙땅이었다. 아버지와 엄마도 끌려온 사람들에 섞여 그 마당에 무릎을 꿇었고 토벌대는 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창고로 쓰이던 밖거리에서 희수 키만한 대나무들을 들고 나와 마당에 던졌다. 대나무의 뾰족한 쪽에는 마른 진흙이 묻어 달라붙어 있었고 그것들은 봄이 되면 마당의 채소를 지지해주는 데 쓰인다는 것을 어린 희수도 알고 있었다. 작년 봄, 엄마가 하는 대로 따라 대나무를 땅
20 셀마는 삼양 해변에 있다고 했다. 그녀가 일러준 대로 제주공항에서 100번 버스를 탔다. 종점에서 내렸다. 버스정거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녀가 반갑게 나를 안는다. 여전히 아름답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나를 이끈다. 제주도에 처음 왔다는 사실은 그녀나 나나 같지만 불과 몇 시간 전의 사전답사로 염색하지 않은 자연산 금발의 셀마가 마치 관광안내인인 양 내게 설명을 늘어놓는다. “해변에 목욕탕이 있다.” 남녀로 분리된 목욕탕은 땅 속에서 솟아오르는 용출수로 채워져 흐르고 있었다. 그새 알아뒀다며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도 했다. 어때? 눈치로 나눈 공감은 여탕으로 바로 달려가게 했고 이내 다 벗어버린 알몸으로 그녀와 나는 바닷가 욕조 안으로 뛰어들었다. 처음엔 물이 차가워 놀랬지만 물맛에 더 놀랬다. “바닷물인데 짜지 않잖아?” “바다에서 계곡물을 만나다니. 맞아, 땅 속에서 솟아나오는 이 물은 민물일 거야.” 에도록 차가워서 더 오래 물속에 있을 수가 없었다.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오자, 셀마가 손으로 가리킨다. “너무 예쁘지 않니?” 저 바다색을 말로 어찌 표현할 수
21 버스 차창 밖의 한국은 13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복잡하고 어수선하고 떠들썩하다. 이것이 한국의 발전상인가, 한국 밖에서 한국이 보인다. 한국 안에 한국이 숨어있다. 강화도 마니산으로 가던 길목의 김포는 아파트만 더 늘었을 뿐 도로확장공사는 십삼 년 전과 다름없이 여전하고 눈이 따가울 만큼 도로 주변이 혼란스럽다. 부산하기 그지없는 차창 밖의 발전 한국에서 안정감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불안감이 짙게 느껴진다. 버스 앞으로 한 사람이 분주하게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고 버스는 행인의 등을 할퀴고 지나듯 쏜살같이 질주한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이런 위태로운 상황은 연속되지만 행인이나 운전자도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해서 자유로워 보일 정도다. 혼란이 규칙으로 착각이 든다. 위태롭게 생각하는 내가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 같아 주변을 둘러보니 승객들은 모두들 잠에 빠져있어 편해 보인다. 평온처럼 보이는 혼돈이 더 두렵고 무섭다. 차창 밖만이 아니라 내 자신도 덩달아 어수선하다. 차내 안내방송을 틀어놨긴 하지만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 무슨 소리인지 모를 지경이다. 친절하게 영어도 간간히 나오는데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버스 앞으로 나가 기사에게 부탁한다.
22 현관문의 초인종 같은 벨소리가 머리 위에서 내려왔다. 안전벨트 착용등이 켜지고 곧 방송이 나왔다. 삼십 분 후에 도착지인 인천공항에 착륙한다고 했다. 나는 밖을 내다보던 창가에 모로 기대어있었다. 아마도 일본 위를 지날 즈음 잠깐 잠이 들었나보다. 꿈같았지만 잠결에 나타난 어릴 적 기억의 생생한 실제였다. 몽롱한 기억이 꿈처럼 찾아들었다. 아랫입술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손에 잡히는 흉터는 그날 이후 내 얼굴의 눈이나 코와 같이 기관처럼 박혀있다. 나는 엄마등에 업혀있었다. “자라면서 흉터는 사라질까요?” 엄마가 의사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다행입니다. 아랫입술에 숨겨져 있어 눈에 띄지는 않을 테니까요. 넘어지면서 윗 앞니가 아랫입술을 찍어 길게 찢겼으니 이것도 천만다행입니다. 이를 보호해줬으니까요. 이는 이상 없는 것 같습니다.” 마취가 풀리면 따가워서 보챌 테지만 참게 해보라고 했다. 너무 어려서 진통제는 가능한 먹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의외로 잘 참습니다. 엄살은 어른용이거든요. 알아야 엄살도 떠는데 아이들은 단순하니 보채다가 잠들 겁니다. 약도
23 시내버스를 세 번, 시외버스를 한 번 바꿔 타고 도착하니 그곳이 정선이었다. 눈 가는 대로, 몸 가는 대로 버스를 집어타니 정선에 닿았다. 아우라지, 두 물줄기를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마음도 두 줄기로 흐른다. 그것은 유지와 포기다. 현재와 같은 미래와 현재와 다른 미래라는 두 줄기의 흐름이다. 물은 흘러가라고 하지만 바위에 휘도는 물은 멈춰 돌아보라고 말을 걸어온다. 자연은 소리로 말을 하고 울림으로 듣게 한다. 이 년 또는 삼 년, 늘 그렇듯 책에 묻혀 지나고 나면 어제 법정에서 보았던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돼 있겠지. 너는 그들과 다를 것 같니? 유지의 물줄기가 바라본다. 너도 그들과 같아선 안 돼, 포기의 물줄기가 바라본다. 강물이 출렁이듯 착각이 인다. 법정에서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방청인도 모두 내게 주목하지 않았는가. 법정의 주인공은 피고인인 나였지 않았는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던 오빠는 다시 강을 내려다보았다. 휘돌던 물줄기도 다시 제 자리를 찾아 흐르던 방향으로 합류한다. 흔들림이 휘도는 물과 같아 보인다. 흔들림은 그러다가 찾아가는 제자리걸음이다. 나는 그저 피고인이었을 뿐, 법정에선 그들이 주인공이었다. 나는 그들에 의해 풀려났
24 법대 동기들에게 자존심을 구기기 싫어 동문회에도 나가지 않던 엄마는 자식 앞에선 여느 엄마와 다를 바 없었다. 법대 동창회는 타 대학과 다른 데가 있다. 판검사·변호사 그리고 법대 교수가 된 동문들만 나오기에 너도나도 다 학생이었던 옛 학창시절을 기대하며 참석한 비법조인 동창생은 하나둘씩 자동적으로 떨어져나갔다. 소외는 집단의식의 산물이지 결코 개인의 감정이 될 수 없다. 법대 학번은 무시됐다. 사시·사법연수원 기수를 더 따져대는 이상한 대학 동창회의 성격은 우정의 친목도모라기보다는 권력지향·실세과시의 이익집단처럼 보였다. 동문주소록에는 기업체 대표나 언론사 간부·기자들이 간간이 눈에 띌 뿐 온통 법조인으로 채워져 있다. 법조인 주소록 같았다. 이십여 년 만에 만나는 대학동창은 공직으로는 부장검사를 끝으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지 몇 달 되지 않았다. 아직 전관예우 기간임을 알고 있는 엄마는 많은 법조인 동창들 중 이 친구를 골랐다. 교수를 간첩으로 몰아 사형도 불사한 독재정권을 경험했고 사람만 바뀌었을 뿐 후진적이고 탈민주적 정치형태는 바뀌지 않았다고 보는 엄마이기에 몰염치에 의한 비합법이 정의로 버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