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어지는 것인가? 우선, 이 물음에 대한 필자의 답부터 해보고자 한다.
민주당은 2008년 18대 총선부터 내리 24년 동안 제주의 3석 모두를 휩쓸었다. 만약 이번 총선에서도 민주당이 3석 모두를 차지한다면 제주는 약30년 동안 민주당의 안방이 되는 셈이다. 그러니 좋든 싫든 제주는 정치적 호남변방이 아니 되래야 아니 될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제주가 호남의 ‘정치적 변방’으로 그치는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적 변방’이 ‘사회적 변방’ ‘문화적 변방’ ‘정서적 변방’에 이어 완전무결한 변방이 되어버린다는 데 있다. 그리고 제주의 정신이 호남화(湖南化) 되어버린다는데 있다.
혹자는 “그러면 어떠냐? 당신의 그 우려는 폐쇄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야.”라고 필자를 나무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필자는 ‘제주정신’에 관한한 폐쇄적이다. 그리고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폐쇄적 사고(思考)는 당위성을 갖고 있다. 조선조 말기 200년 동안(1629~1825) 제주사람에게는 ‘출륙금지령(出陸禁止令)’이라는 멍에가 씌워졌었다. 200년 동안 제주사람이 육지에 나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해버린 것이다.
그 ‘출륙금지령’이 내려진 이유를 상고(上考)해 보면, 폐쇄적 사고에 대한 당위성을 더욱 견고하게 한다.
당시 제주사람들은 상감마마에 올리는 진상품을 위해 피와 땀을 흘렸고, 거기에 목사를 비롯한 현감들(이 사람들은 모두 육지의 버슬아치였다.)이 한양(漢陽)에 보낼 로비(Lobby)용 ‘봉물바리’를 만든다고 제주사람의 생산물을 수탈하고 착취하였다. 이에 견디지 못한 제주사람들이 민란을 일으켰는데, 이 민란이 ‘출국금지령’을 내린 빌미가 되었던 것이다.
한양의 관리들은 그에 그치지 않았다. 제주사람을 ‘변소에서 돼지에게 X을 먹이고 그 돼지를 잡아먹는 미개한 사람들’이라는 등등 육지백성에게 제주사람을 ‘미개종족’ 쯤으로 여기게 하는 말을 퍼트리게 하였다.
여기서, 좀 오래된 얘기를 해보자. 필자가 부산에서 대학 다닐 때의 얘기다. 필자는 ‘부산 탐라학우회’를 결성하고자 제주출신 학생들을 모으고 있었다.
교무처에 가서 학적부를 뒤지지 않더라도 누가 제주출신인지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제주사람끼리는 억양만 들어도 단박에 제주출신 여부를 가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학우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만한 훌륭한 학생을 섭외하게 되었는데, 그 때의 대화는 다음과 같다.
“야, 너 왜 탐라학우회에 가입안하냐?”
“탐라학우회? … 나가 제주출신? … 아이다. 제주는 무신…”
그는 경상도 사투리로 그렇게 말했으나, 그 사투리에 제주말의 억양이 짙게 묻어나 있었다. 나는 우선 그에게 주먹부터 날렸다.
“이 나쁜 자식! … 부모님과 선조의 고향을 숨기는 형편없는 자식!”
그는 내 주먹에 맞은 얼굴부위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한림이 내 고향이라, 육지 것들이 말하는 ‘변소에서 도새기 키우고 X먹은 도새기를 잡아먹는 미개한 종족이 사는 제주’가 내 고향이란 말씨 … 그러니 어찌 내 고향을 내세울 수 있어?”
필자가 굳이 몇 십 년 전의 얘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육지 사람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야 제주사람들은 오히려 고향이 제주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니 그럴 필요도 없거니와 당위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몇 십 년 전의 얘기를 새삼스럽게 꺼내는 이유는, ‘제주의 호남 변방化 우려’가 결코 제주인의 폐쇄적 정서에 기인하지 않고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이유가 어떠하든 ‘제주의 호남변방化’는 막아야 한다. 제주인의 정신과 자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2대 총선을 한 달여 남긴 제주의 현재추세대로라면, 민주당의 제주지역 석권은 어렵지 않게 예상되는 형편이다. 기어이 호남에 기반을 둔 민주당에 제주의 정치적 안방을 내어주는 셈이 되는 꼴이 예상되는 것이다.
제주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와 정황이 있겠지만, ‘국민의 힘’ 제주도당의 소극적 당무수행이 가장 큰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일례로, 수년전 전국의 시ㆍ도당이 주최하는 중요한 집회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개최된 적이 있었다. 이 집회에 서울은 수만 명의 군중이 모였고, 호남에서조차 수백 명의 군중이 모였다. 그런데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서 개최된 제주도당 집회에서는 당직자를 포함하여 2~3십 명 정도의 군중이 고작이었다. 제주도당의 무의식 행위에 가까운 소극적 당무행태 때문이었다.
또 하나의 일례로, 필자가 제주도당 대변인 노릇을 한 10년 동안은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은 우리 도당이 TV화면에 비치거나, 신문지면에 기사로 보도되었다.(그 덕에, 이른바 ‘탄돌이’들이 기승을 부린 절대 불리한 총선에서 제주지역 3석 중 그나마 한 석은 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몇 주(週)는 고사하고 몇 달이 되어도 제주의 ‘국민의 힘’은 TV화면이나 신문지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 역시 제주도당의 소극적 당무행태 때문일 것이다.
‘국민의 힘’ 제주도당의 분발을 촉구한다. 제주가 호남의 정치적 변방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 아닌가? 그럼으로써 제주의 정신이 소멸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 아닌가? /정경호 전 제주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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