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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열전] '올래밥상' 이호성 대표 ... 2024년 코스닥 상장 목표
"제주수산물 소비 활성화 위해 '착한업종' ... 스토리텔링으로 해녀문화 알려

 

"청정 제주바다에서 갓잡은 생선을 집 근처 식당에서 맛볼 수는 없을까?"

 

길거리에서 한번쯤은 발견했을 수도 있다. 전국 곳곳에 21곳의 가맹점이 있는 이 브랜드는 국내 뿐만 아니라 중국 상하이와 미국 등 해외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제주여행 와서 먹는 것 같다’, ‘신선하다’, ’집에서 생선을 구우면 냄새나서 꺼려졌는데 자주 올 것 같다’ 등 …  포털사이트에 이 곳을 검색하면 호평이 쏟아진다.

 

제주생선구이 전문 프랜차이즈 ‘올래밥상’을 운영하는 이호성(52) 대표.

 

생선구이는 친숙한 음식의 대표주자다. 그런데 왜 그가 만든 생선구이 전문점에는 사람들이 몰리는걸까.

 

그의 사무실 책상 한켠엔 유통·경영에 대한 책들이, 벽면엔 상장이 빼곡이 들어서 있다. 밀키트 포장디자인 개발에 몰두하다 취재진을 발견하곤 화통하게 맞이한 이 대표. 

 

◆ 퇴사 후 떠난 해외여행 ... 제주수산물 사업의 가능성을 발견하다

 

한양대 회계학과를 나온 그는 제주 1호 공기업 ㈜제주교역 출신이다. 제주의 생산물 수출길을 열었던 이 곳에서 1996년부터 10년간 자긍심을 갖고 일했다.

 

하지만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일에만 몰두해서였을까. 차장 직급을 달았을 때쯤 우울증이 찾아왔다. 열심히 써내려간 인생의 기록에서 쉼표를 찍어야만 할 때였다. 그는 사표를 냈다. 그리곤 배낭을 메고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대학생 시절부터 직접 보고 싶었던 ‘아더왕의 언덕’을 보기 위해서였다.

 

섬나라 영국.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온 제주와 마찬가지였다. 인종과 문화는 달랐지만 바다풍경은 익숙했다. 지도책자 하나를 손에 쥐고 자연스레 해변 위주로 여행했다.

 

그러다 마주한 외딴 어촌. 생선을 팔고 있는 로컬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그 앞에 꽂여있던 깃발이 특이했다. 선장 얼굴이 인쇄돼 있었던 것이다. 판매원에게 물어보니 이 선장이 잡은 물고기란다. 그 생선들은 유난히 신선해보였다.

 

수개월의 여행을 끝내고 제주로 돌아왔다. 중국산 옥돔이 제주산으로 둔갑돼 시중에 팔려진 사실이 드러나 큰 이슈로 번져 있었다. 가능성이 보였다.

 

‘영국에서 본 것 처럼 옥돔이 잡힌 지점을 소비자에게 알려야겠다.’

 

2007년, IT계열에 종사하고 있는 고향지인에게 부탁해 생선 이력 시스템을 개발했다. 제품에 각각 고유번호를 입력, 소비자가 휴대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어획일시와 위치, 배.선장.가공장소 등을 한번에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이른바 ‘생산이력제’다.

 

자본금은 단돈 500만원. 그 돈으로 중고 탑차를 구입하고, 주변의 도움으로 매장 겸 사무실도 마련했다. 특별한 가공법을 개발하고, 가깝게 지내던 한의사의 조언으로 한약재 ‘진피’를 활용해 생선의 비린향까지 잡아냈다.

 

기발한 아이템과 귀인들, 이전 회사에서 익혔던 유통.무역에 대한 감각을 모아 회사 ‘올래씨푸드’를 차렸다. ‘집으로 가는 골목길’이란 뜻의 제주 사투리 ‘올래’를 내걸고 사업가로서 그의 인생이 시작됐다. 

 

 

◆ 순탄치 않은 사업가의 길이지만 포기는 없다

 

기회는 예상보다 빨리 왔다. 생산이력 시스템으로 중소기업진흥공단의 벤처기업 인증을 받고, 제주지방중소기업청으로부터는 신기술 기업으로 지정됐다. 창업한 해에 서울 수산식품박람회에 참가했다가 수산 대기업인 동원산업의 눈에 띄기도 했다. 결국 ‘올래씨푸드’의 옥돔은 동원의 이름으로 유명 백화점의 진열대에 올랐다. 고등어, 갈치 등 어종도 넓혀갔다.

 

흐름을 타 2011년엔 반찬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제주 토속반찬이 주메뉴였다. AK를. 시작으로 롯데와 신세계 등 10개의 백화점 매장에 연이어 입점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처음에는 매출이 오르는 듯 하다가 점점 하락세를 보였다. 예상치 못한 실패는 쓰라렸다.

 

“제주 토속음식은 대체로 거칠어요. 예전에는 끼니를 대충 때우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워낙 가난하니까 된장으로만 단촐하게 간을 해서 빨리 먹고 일하러 가야하니까요. 딱히 조미나 염장이 돼있지 않으니 빨리 상할 수밖에 없어요. 장아찌 등 절임류가 발달된 남도반찬과 대비되죠. 제주다움을 지키면서 변주를 줬어야 했는데 그걸 놓친거에요.”

 

회사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나 싶었지만 이로 인해 크게 흔들렸다. 수억원씩 손실을 감당할 수 없기에 가족같던 직원들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수중에 남은 돈은 2000여만원.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2015년 서울 목동에 작은 매장을 임차, 생선구이 포장전문점을 시작했다. 반찬가게에서 사이드 메뉴로 팔던 생선구이가 꾸준히 잘 나가는 점을 살린 것이다.

 

기세가 좋았다. 가게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매장 앞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생선구이를 피자박스에 담는 포장 방식도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데 일조했다. 마침 KBS ‘생활의 발견’ 제작진 눈에 띄어 ‘포장음식의 진화’ 편 방송 프로그램에 나가기도 했다.

 

이후엔 전국 곳곳에서 가맹문의가 들어왔다. 다시 사업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급한 마음에 공정거래위원회에 가맹사업 등록도 하지 않고 대전과 평택, 서울 등에 무작정 점포를 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경영주인 그는 돈을 벌었지만 가맹점주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경영 시스템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뿐더러 ‘생선구이’라는 메뉴 하나만으로는 인건비와 임차비용까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매출이 크지 않았다. 점주들과 상생을 할 수 없는 것은 큰 문제였다. 이는 또 한번의 사업철수로 이어졌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그는 대학시절 친구와 살던 동네를 거닐면서 생각했다. 

 

그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다짐으로 식당을 차리기로 했다. 2016년 ‘올래밥상’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강남 한복판에 10평 규모의 매장을 빌렸다. 생선구이가 주메뉴였지만 성게미역국과 갈치조림 등 제주수산물로 만들 수 있는 레시피도 개발, 메뉴판에 이름을 올렸다. 

 

매장에서 레시피 개발에 한창일 즈음, 손님이 한 두명씩 찾아왔다. 정식영업 전부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밥을 새로 지어도 손님이 끊이질 않아 금방 동이 났다. 가맹문의도 빗발쳤다. 그의 사업비결은 도대체 무엇일까?

 

 

◆ 제주음식에는 이야기와 정서가 담겨있다

 

“음식에서 맛이 차지하는 비율은 10%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음식이 담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완도’하면 김과 전복이 떠오른다. ‘영광’하면 굴비다. 하지만 ‘제주’를 떠올리면 한가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감귤과 한라산, 수산물, 올레길 등 … 수많은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이는 얼핏 보면 장점이지만 마케팅 요소로는 단점일 수 있다.

 

이 대표는 그래서 스토리텔링을 강조한다. 음식에는 정서가 담겨 있다는 것.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이야기를 알고 먹는 것과 그렇지 않고 먹는 것은 인상이 다르다. 여행지에서 먹는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어마장장(굉장한) 고등어조림, 궨당·어멍·삼춘세트, 맨도롱어묵탕 등 올래밥상의 메뉴판에는 제주어가 가득하다.

 

그는 손님들이나 바이어를 맞이할 때 일부러 제주어를 쓴다. 가맹점주에게도 제주사투리 교육을 한다. 올래밥상 매장 벽면에는 제주바다에 수산물이 잡힌 원산지를 각각 표시한 시그니처 지도가 있다. 모두 음식에 대한 신뢰를 넘어 소비자가 음식을 맛봤을 때 더 큰 감동을 받게 하기 위한 장치다.

 

“같은 제주고등어를 팔아도 서울사람이 파는 것과 제주사람이 파는 것은 느낌이 다르잖아요. 그 사실을 넘어서 어떻게 해야 생산자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까 매일 고민하고 있어요.”

 

 

“가맹사업의 본 취지는 제주 수산물 소비 활성화에요. 목적 외의 이윤은 추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특별한 기술 없이 합리적인 가격에 창업한다.’ 올래밥상의 캐치프레이즈다.

 

올래밥상은 소비자들에게도 이미 유명하지만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제주 본사에서 원재료를 가공.손질하고, 공급까지 해 유통비가 비교적 싸고, 레시피도 간단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적은 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한 ‘착한업종’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는 인테리어 공사부터 수수료까지 많은 돈을 본사에 내게 된다. 회사는 이로써 규모가 커지고, 더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가맹점주인 많은 자영업자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이 대표는 그 현실을 보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루에도 몇건씩 창업상담을 해보면 자금이 넉넉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다.

 

그는 상생을 파고들기로 한다. ‘나만 잘 살자’가 아닌 ‘다 같이 잘살자’는 모토로 진정성 있게 대하니 해법은 쏟아진다. 직접 모니터링을 하고, 문제점에 대해 점주와 함께 고민한다.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면서 홀 매장 뿐만 아니라 샵인샵과 배달.포장 등 창업형태도 다양해졌다. 그에게 점주는 동료와 마찬가지다.

 

“저는 비록 사업을 하고 있지만 사람간의 관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사람에게 무언가를 얻고자 계산을 해버리면 상대도 진정성이 없다는 걸 금방 알아채거든요 그렇다고 창업을 하고 싶다고 해서 무작정 가맹점을 내주는 건 아니에요. 점주는 사업에 대한 마인드셋이 되어야 하고, 입점 장소 등도 중요하죠. 하지만 그렇게 판단되지 않았는데 가맹을 내준 곳이 한 곳 있어요. 정말 간절해보여서요. 지금은 제 예상과 다르게 정말 잘되고 있어요. 점주가 ‘가맹계약 해줘서 고맙다’고 하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내가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줬구나’ 하고요.”

 

 

 

◆ 가정을 지키기 위한 어머니의 처절한 노력 ... 그리고 제주해녀

 

하지만 이같이 사업을 한다면 남는 게 있을까. 

 

“이유는 단순해요. 지금처럼 돈이 있어본 때보다 없었던 때가 훨씬 많았으니까요.”

 

돈이 없을 때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아는 그다. 차비가 없어서 한겨울에 성수대교를 걸어다닌 대학생 시절이 생생하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던 열아홉살. 집까지 경매로 넘어간 탓에 독서실에서 근근히 생활한 시기를 절대 잊을 수 없다. 그 기억 중심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화장품.보험 판매원과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현재 팔순을 넘겼지만 아직도 운전대를 놓지 않고 있다.

 

그의 가정에서 만큼은 영웅과 다를 바 없는 어머니. 이 대표는 인생의 모토가 '어머니 그 자체'라고 말한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다짐한 것도, 해녀의 이야기를 브랜드에 녹이려는 것에 열과 성을 다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절절한 역사가 담긴 제주해녀는 그의 어머니와 다를 바 없다.

 

“제주해녀가 시간이 지날 수록 평균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어요. 이렇게 가다간 현직 해녀는 없어지고, 해녀에 대한 이야기는 옛날 옛적 이야기가 돼버려요. 이렇게 이야기가 없어지면 제주가 내세울 수 있는 문화 하나가 사라지는 거죠.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해녀를 보전해야 하고, 그러려면 해녀라는 직업으로 생계를 이을 수 있는 수입이 있어야 하거든요.”

 

제주해녀의 대표 작물인 뿔소라. 제주산 소라의 소비는 현재 일본 수출에 의존도가 높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수출이 막히고, 총허용어획량까지 줄어들면서 해녀들의 수입은 급감, 생계의 위협을 겪고 있다.

 

“제주산 소라가  ‘질 좋은 수산물’이라는 인식이 생겨야 하는데 일본 수출에 대부분을 의존해서 안타까워요. 그래서 제가 먼저 시도해보고자 모든 가맹점에 무조건 소라를 팔게 하고 있어요. 자체 해녀 캐릭터도 만들고요. 해녀문화 보존을 위한 제 방식입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줘야겠다고 다짐했던 이 대표.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느끼는 요즘이다.

 

“제가 회사 대표 물자인 생선을 어려운 이들에게 기부하는 것처럼 본인이 많은 것을 나눠주는 것. 제가 해녀문화를 보존하고, 수산물을 알리는 것 처럼 본인에게 중요한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앞으로도 가맹점을 꾸준히 늘려나가는 것은 물론 제주형 소셜커머스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2024년께엔 코스닥에 기업공개를 하는 게 눈앞의 목표다. 그에게는 단지 꿈이 아닌, 어쩌면 실현 가능한 목표들이다. [제이누리=박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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