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악천후의 영향으로 예년에 비해 대폭 축소되어 제한된 인원으로 제73주년 4․3희생자추념식을 봉행한 지 보름이 지났다.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기 위하여 유족회에서는 65세 이상의 유족은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가급적 평화공원 참배도 분산하여 방문할 수 있도록 적극 홍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념식 행사로 인한 코로나19 감염 확산의 우려를 지울 길이 없었는데 통상적인 잠복기인 14일을 무사히 넘긴 셈이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마울 따름이다.
이번 추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중 세 번째로 참석하여 추념사를 통해 국가가 국가폭력의 역사를 더욱 깊이 반성하고 성찰하겠다는 마음으로 밝혀진 진실은 통합으로 나아가는 동력이 될 것이며, 되찾은 명예는 우리를 더 큰 화합과 상생, 평화와 인권으로 이끌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고 하였다. 또한 마침내 제주도에 완전한 봄이 올 때까지 우리 모두 서로의 손을 더욱 단단히 잡자고 강조하였다.
대통령 이외에 각 정당 지도부는 물론 행안부장관과 법무부장관 등 정부주요관료들이 대거 참석하여 4․3희생자 영령들의 해원과 영면을 기원하였다. 특히 군경 최고책임자로서 국방부장관과 경찰청장이 사상 처음으로 4․3추념식에 참석하여 더욱 의미를 더하였다. 국가수장과 최고각료들이 동시에 고개숙여 국가폭력에 의한 학살에 대해 사과하고 진실의 역사를 써 나가겠다는 다짐을 한 셈이다.
역사라는 기나긴 시간의 궤적속에서 옳은 일도 생겨나고 그릇된 일도 생겨나게 되어 있다. 세상사 모든 일이 그렇듯이 행여 그릇된 일을 범했을 경우 이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성찰하는 것이 마땅하나 지금까지 우리 국가는 그 부분에 너무도 인색했다. 과거사를 대하는 국가의 불성실하고 가식적인 태도가 국민들의 반발과 원성을 조장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4․3특별법 개정과 함께 다각적으로 진행되어지는 긍정적인 신호들이 국가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여 이 또한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맙게 생각한다.
중국 역사서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은 '述往史 思來者(술왕사 사래자)'라 하여 지난 일을 기술하여 다가올 일을 생각해야 한다고 하였다. 역사라는 것이 과거사를 통해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이처럼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조사하고 서술하는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관통하여 미래를 준비함에 있어 과거 잘못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자가정화과정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4․3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중 하나가 바로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복기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 하겠다.
제주4․3에 대해서도 당사자인 유족은 물론 범국민적 공감대 속에 국가 차원에서 어두웠던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새롭게 역사를 써 나가야 한다. 당연히 평화와 인권의 기본가치가 그 기반에 있어야 하며, 화합과 상생의 틀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진정한 뉘우침과 함께 용서를 구하고 이를 관대하게 포용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때 역사의 축이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前事不忘 後事之師'
몇해 전 난징대학살기념관 방문시 입구 현판에서 마주친 문구가 내 가슴 속을 심하게 후벼 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중국고서인 전국책에 나온 '前事之不忘 後事之師也(전사지불망 후사지사야)'가 원문으로 과거의 일을 잊지 말고 나중 일에 대한 스승으로 삼자는 뜻이다. 이제 역사의 거울 앞으로 우리 모두가 조심스럽게 다가서야 하며, 더불어 제주4․3이 과거사 해결과 함께 새로운 역사 창출의 모태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정한 봄은 다함께 맞이할 때 더욱 따사롭게 다가온다. / 오임종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