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유치하려는 지사님께
동물을 뜻하는 영어 단어 ‘애니멀(animal)’은 정신, 숨, 삶을 의미하는 라틴어 ‘애니마(anima)’에서 유래했습니다.
원시인들은 아니 30년 전까지의 제주 사람들도 생물뿐만 아니라 바다와 산 같은 자연과 바람과 비와 같은 기후에도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통싯돌 하나를 옮기더라도 날을 받아서 했고, '멜도 베설 싯나.'라는 속담처럼 동물도 사람과 동일시했습니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인(仁)을 기반으로 한 위계질서를 정립하여 춘추시대의 혼란을 극복하자는 공자의 유교가 지배사상이 되면서 효(孝)와 제(悌)를 모르는 동식물은 열등한 존재로 전락하였습니다.
서양에서도 르네상스시대 이후 인본주의 사상이 뿌리를 내리면서 '신-천사-사람-동물-식물' 순으로 위계가 있다는 사고가 보편화되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을 위해서라면 다른 생물체와 자연은 어떻게 되어도 괜찮다는 인본주의적 쇼비니즘(chauvinism)이 만연하여 생태계의 사슬은 끊어지고, 생물종다양성은 악화되었습니다.
과하면 탈이 나게 마련입니다. 출현한 지 5만 년도 안 된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학명을 지닌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때문에 곪아 터진 55억 년이 넘은 푸른 별 지구가 인간에게 역공을 가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예가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후의 일상화와 코로나-19 등 바이러스의 팬데믹(pandamic)입니다.
지금 지구에는 78억 명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 전체의 생물체 총량과 비교하면 아주 미미한 양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만물의 제왕으로 압도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며 자연파괴와 지구오염의 주범 역할을 확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부정적인 역할에 주목한 일부 과학자들은 현시대를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새로운 지질시대로 이름 붙이고 있습니다.
길게는 1만 년 전에 인간이 정착생활을 하면서 많은 생물들이 멸종되기 시작하였고, 좁게는 산업혁명 이후 260여 년 동안에 지구에 살았던 생물의 50%에 이르는 종(種)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인간 문명을 태동시킨 농업혁명, 자본주의 사회를 만든 제2차 산업혁명이 생명체의 대규모 멸종을 불러온 촉매제가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생태학 및 생물다양성학을 전공하는 케이트 존스(Kate Jones) 교수는 “우리는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는 열대 우림과 야생 지역을 파괴하고 있다. 그 중에는 우리가 모르는 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동물들도 많다. 우리는 나무를 베고, 동물을 죽이거나 우리에 가두고,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한다. 우리가 생태계를 파괴하면 바이러스들은 원래의 숙주로부터 빠져나오게 되며, 이렇게 나온 바이러스는 새로운 숙주를 필요하게 된다. 그 숙주가 바로 우리 인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재난영화에서 재앙이 터지면 엑스트라부터 목숨을 잃는 것처럼 팬데믹적 대재앙이 발생하면 취약계층이 먼저 타격을 입습니다. 코로나 사태에서도 임시직, 일용직, 하청업체 등 한국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제주도가 2023년 개최될 ‘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 유치계획을 지난 11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유치를 위해 '카본프리 아일랜드 2030' 프로젝트를 비롯해 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 3관왕, 세계 최초 람사르습지도시 인증 등 청정 제주 브랜드 이미지를 적극 홍보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친환경농업에 대한 투자에는 눈을 돌리고, 관광객 수에만 연연하는 자본 중심의 관광정책을 펼치며, 람사르 습지도시 인증을 받은 조천읍에 동물테마파크사업을 추진하고, 4.3 영령들이 떠도는 풍경이 둘째가라면 서러울 송악산 조망권을 중국자본에 내어주며, 특히 1,500만 관광객이 입도해도 쓰레기와 교통문제 등으로 환경수용력이 몸살을 앓고 있음에도 4,500만 명의 승객을 모셔 올 제2공항 건설을 추진하면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유치하려는 지사님의 몰염치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으로 총회를 유치할 수 있는 홍보는 제2공항 건설, 동물테마파크사업, 송악산 개발사업 등 기후 온난화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개발정책들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카본프리 아일랜드’라는 홍보가 먹히려면 탄소 배출량이 최소 3배 이상 증가할 수밖에 없는 ‘제2공항 건설을 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먼저 하셔야만 합니다. 탄소 배출량이 3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견되는 곳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유치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탄소 배출 근본 원인인 관광객 수는 어떻게 해서든지 늘리면서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에너지 자립 섬을 만들겠다는 지사님, 제2공항은 건설하면서 제주환경은 보존하겠다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쫓을 수 있다는 머리가 비상한 지사님에게 숲 속의 두 갈래 길을 다 갈 수는 없다는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가지 않는 길’이란 시를 다시 읽어보시라고 권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