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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연의 '욕망의 섬, 에리시크톤의 반격'(1) 부활을 꿈꾸는 제국주의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조중연 작가의 소설 '욕망의 섬, 에리시크톤의 반격' 입니다. 일찌감치 제주의 역사성과 자연의 가치, 문화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던 조 작가의 소설은 제주가 가진 정체성에 대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소설은 역사적 자료와 학술논문.서적을 두루 살펴 논픽션이 가미된 제주사를 다시 픽션의 영역으로 풀어냅니다. 반듯한 사실이 주류지만 때론 작가의 상상과 추리.추정이 가미돼 등장인물과 사실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의 취지는 개발과 파괴로 도륙의 길을 걷고 있는 제주를 재발견하자는 취지입니다. 아울러 소설은 계간 『제주작가』 2020년 봄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저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옥처럼 산산이 부서지다

 

1945년 봄, 일제는 짙은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에게 남은 지상의 과제는 오직 하나,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것이었다.

 

1942년 미드웨이 해전 대패로 패색이 짙어지자 일제는 1943년 9월부터 ‘절대국방권’을 설정한다. 1944년 7월, 거점 중 하나였던 사이판이 점령당하고, 석 달 뒤에는 필리핀의 레이테, 그리고 이듬해에는 이오지마 저지선까지 무너진다. 동남아시아에서 모든 거점을 잃은 일제에 남은 것은 오키나와뿐이었다.

 

바로 이 오키나와에서 태평양전쟁 최대의 비극이 발생한다. 1945년 3월 26일, 1300척이 넘는 미군함대가 오키나와를 공격했다. 무려 54만 명에 달하는 대군이었다. 이에 맞선 일본군 병력은 고작 12만 명뿐. 그중 2만 명은 오키나와 현지에서 급조한 병력이었다. 일제는 남녀중학생들까지 강제 징집해서 옥쇄작전으로 맞섰다.

 

그것은 사상 초유의 참사로 이어졌다. 3개월간의 전투로 미군 1만2000 명과 일본군 9만 명이 사망했다. 민간인의 피해는 더 컸다. 12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연일 계속되는 미군의 폭격에 오키나와 주민들은 비행기 소리만 나도 산속에 파놓은 지하동굴로 피난을 갔다. 동굴을 지하참호로 만들고 그 속에서 끝까지 저항했다.

 

이들 중에는 미군에 투항하여 목숨을 구한 사람도 있었지만, 주민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미군을 믿지 않은 주민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동굴 단위의 집단 자결이었다. 미군이 상륙하여 접근해오자 주민들은 서로를 찌르거나 때려죽이는 만행을 벌인다.

 

살아남아 괜한 부끄러움을 당하지 마라.

 

그들은 보다 명예로운 죽음의 방식을 찾고 있었다.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져라.

 

그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 옥쇄(玉碎)라는 말이 신탁(神託)처럼 내려왔다. 이들은 이미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적에게 내줄 수 없다는 자가발전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였다. 자식들이 미군에게 짓밟히고 치욕을 당하느니 자신의 손에 의해 죽는 것이 사랑의 발현이라 생각했다. 그 결과 어머니가 자식을 낫과 칼로 찔러 죽이고, 이웃이 이웃을 돌로 내려치고, 마침내 자결로 끝을 맺는다. 최후의 한사람까지 군과 운명을 함께하라고 강요했던 군국주의 세뇌 교육의 결과물이었다.

 

오키나와 저지선이 무너지자 일제는 ‘절대국방권’ 최후의 보루인 제주도로 눈을 돌린다.

 

정말 개돼지인가

 

김수남(45세. 프리랜서 작가. 입도 20년 차)은 최근에도 일본이 자국의 침략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데서 반성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전세계에서 과거 역사 청산이 되지 않은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한국의 사정 또한 비슷하다. 해방 이후 친미파로 재빨리 둔갑한 친일파들이 한국의 주류 사회를 형성해서 지금까지 역사 청산은 요원한 상태다.

 

최근 일본은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려고 한국과 무역 전쟁을 시도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를 처리 비용을 빌미로 들어 바다에 그대로 방류하려 하고 있다. 타인에게 피해 주는 행동을 편집적으로 저어하는 일본 문화와는 전혀 결이 다른 정책이다. 이로 인해 일본은 주변 국가로부터 손가락질당하는 민폐 국가가 되었다. 가히 1급 전범의 후예들이 정권의 요직을 차지하고 제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다운 발상이다.

 

더 문제는 일본인들이다.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전범의 후예들은 지금도 정치를 자신과 관련 없는 별개의 분야라 생각하고 있다. 한국은 광장에 뛰어나가고 촛불을 들어 정권에 항의하고 퇴진을 요구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좀체 찾아볼 수 없다.

 

오키나와에서 옥쇄작전으로 희생된 12만 명의 민간인들은 아직도 미국을 원망하고 있을까. 이 모든 게 단순히 역사교육의 부재 때문일까. 아니면 몹쓸 DNA가 전염병처럼 전해진 것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일본인은 정말 개돼지인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보란 듯이 거스르고, 망언을 일삼는 일본 우익 정치인들에게 어떻게 국가와 자신의 미래를 맡길 수 있단 말인가.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이 글은 제2공항 문제와 관련하여 여러 자료와 연구를 참고하여 픽션형식으로 쓴 글이다. 특히 강순원의 논문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에리시크톤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주변 참모의 경고를 무시하고 데메테르 여신이 아끼는 신성한 참나무를 베어버린 테살리아의 왕. 데메테르 여신은 즉각 ‘기아(飢餓)의 여신’을 소환하고 응징에 나선다. 형 집행자 ‘기아의 여신’은 에리시크톤의 창자에 저주의 씨앗을 뿌리고, 에리시크톤은 이후 까닭 모를 허기에 시달린다. 하여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식탁 위에 가져다 놓고 게걸스럽게 먹어치웠으나 배고픔은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다. 급기야 음식을 마련하느라 전 재산을 날리고, 딸까지 팔았음에도 포만감에 이를 수 없었던 에리시크톤은, 자신의 사지를 뜯어먹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데메테르 여신이 그에게 내린 형벌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허기’였다.

 

☞ 조중연= 충청남도 부여 태생으로 20여년 전 제주로 건너왔다. 2008년 계간 『제주작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 『탐라의 사생활』, 『사월꽃비』가 있다. 제주도의 옛날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이를 소재로 소설을 쓰며 살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제주도지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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