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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시평] 삼나무 잘려나간 비자림로 ... 무얼로 채울 것인가?

 

해외여행 얘기를 꺼내면 진부해지지만 이해바란다.

 

오래 전 일이다. 때는 1999년 5월. 제주도가 광풍(狂風)같은 한라산 케이블카 논쟁에 휘말리던 시절이다. 1주일여간 그 케이블카 때문에 호주의 케언즈를 뒤지고 다녔던 적이 있다. 오해마시라! 케이블카 얘기는 여기서 다룰 소재가 아니다.

 

다른 장면이 있다. “Please care for the environment." 그랬다.

 

공항 청사에서도, 화장실에서도, 관광지에서도 틈만 나면 보이는 문구가 그것이었다. 거의 사정조로 “환경에 유의하라”는 그 대목은 한 번, 두 번, 세 번이상 만나게 되면서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반면 그 시절 우리 공공시설물-특히 화장실-의 벽면을 가득메우고 있는 것은 다르다. 지금은 꽤 달라졌지만 한번 기억을 더듬어봤으면 좋겠다. 다름아닌 간첩·좌익사범 신고전화 안내다. 우습겠지만 사실이다.

 

호주의 한 장면을 다시 떠올려 보겠다. 브리즈번 공항에서였다. 정 중앙부 천정이 뻥 뚫린 공항청사 건물은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관계자로부터 전해들은 이유는 한마디로 기가 찼다. “청사 건물을 지을 당시 터의 중심부에서 자라던 희귀수목이 계속 생장할 공간을 확보해 둔 것”이라는 소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2-3그루의 수목은 이미 20여m이상 키를 뻗어가고 있었고 뻥 뚫린 천정에서 내리는 비를 듬뿍 얻어마시며 자라고 있었다. 투명한 유리로 쏟아지는 채광은 그 나무의 광합성에도 별 지장이 없는 듯 했다. 더 들어보니 브리즈번 공항 청사는 각종 수목의 자리배정부터 먼저 하고 나머지 인공구조물 공사를 한 그런 건물이었다. 건축공사를 끝내고 치장하듯 조경공사를 하는 우리완 정반대 공법이었다.

 

이쯤되면 어찌 됐을까? 당연하다. 그 현장을 배경으로 카메라셔터는 펑펑 터진다. 그리고 ‘감동’한다. “아는 사람들에게 가서 자랑해야지! 이 사람들의 자연주의 정신을....” 그쯤 생각하게 될 것 같다. 관광은 당연히 1회로 그치지 않는다. 호주인은 그렇게 환경과 자연을 관광상품으로 포장할 줄 안다. 중화학공업으로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자연과 관광, 1차 산업으로 생존을 유지하는 호주인으로선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천혜 자연이 만들어준 식생과 지구상에서도 독특한 종(種)이 번성하는 그 땅은 그래서 하늘이 내린 선물이기도 하다.

 

우리의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국제자유도시란 간판에 더해 제주 곳곳에 ‘균형발전론’이 판을 친다. 지방분권론까지 가세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논리가 거셀수록 제주에선 ‘시멘트 공화국’을 향한 ‘불도저’ 소리가 요란하다. 듣다보면 이 촌구석 제주도가 조만간 서울처럼 눈이 번쩍 뜨이는 건물들로 채워지고 쭉 뻗은 길들로 잘 닦여 발전을 거듭할 것 같다.

 

하지만 깊게 생각해보면 그건 ‘장밋빛 환상’이다. 아스팔트 길이 새로 깔리거나 더 넓혀지기를 원하는 것 같고 건물도 더 높게 올라가야 하는 것, 그런 것들이 발전이라면 그건 제주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각종 제조업체 공장이 즐비하게 늘어서는 제주를 원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한국의 수준도 달라졌다. 최소한 1970·80년대식 천박한 자본주의가 횡행하는 시기는 아니다. 기업정신도 이제 과거보다는 세련의 단계로 갔다. 그렇게 ‘악덕 자본주의’란 소리를 들으며 기업경영을 하면 생존이 어려워지는 지경까지 갔다.

 

그러나 지방의 기업경쟁력이, 제주의 기업문화가, 제주의 행정마인드가 그 정도 수준까지 갔을까란 생각을 하면 솔직히 좀 자신이 없다.

 

 

최근 불거지는 비자림로 확장공사 논란을 보며 자괴감이 든다. 그 길을 확장하는데 200억원을 훌쩍 넘는 돈을 쏟아붓는다는데 지금까지 우린 몰랐다. ‘주민숙원사업’이라고 하지만 성산·구좌주민의 불편을 해결하고자 제주도민이 그동안 자랑스러이 여겼던 그 길의 삼나무가 그렇게 싹둑 잘려나가리란 걸 아는 여타의 제주민은 없었다. 알레르기·아토피 운운하며 삼나무 꽃가루의 유해성을 들먹이는 경우를 들어본 적이 없는게 아니지만 그게 도로확장의 명분이 될 줄은 진정 몰랐다.

 

제주를 찾는 ‘육지’관광객의 눈에 띄는 구석이 있다. 우리야 그저 ‘뒷산’이지만 그들의 눈에 ‘오름’은 모양, 형태, 탄생설화 모두가 ‘희한한’ 자원이다. 우리가 보기엔 땀에 절은 노친네의 옷으로 보이지만 ‘갈옷’은 외국인들이 보기에 “개척시대 아메리카에 진이 아닌 ‘갈옷’이 있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란 연상의 대상이다. 우리에겐 그저 얄궂은 바람과 비로 보이는 척박한 기후특성이지만 이방인의 눈에는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운치와 새로운 경험이다.

 

그렇게 애를 써 ‘세계자연유산’이니 ‘세계지질공원’ 같은 타이틀을 얻어냈다. 비록 십수년 전 지금 국토교통부의 전신인 건교부가 내민 상이지만 그 비자림로는 그래도 ‘전국 1위 가장 아름다운 도로’였다.

 

웬만한 제주도민이라면 승용차로 그 길을 내달려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한 마디로 그리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도 그 길을 뻥뻥 뚫을 생각이 어찌 이리 쉽게, 그것도 무참하게 진행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그 길의 주인은 과연 성산·구좌주민뿐인지도 의심스럽다. 그 사업에 쓰이는 돈은 엄연히 우리 세금에서 나온 돈이다. 공론화의 시간이라도 한번 있었는가? 한발 더 나아가면 제주의 자연에 대한 소유권 주장은 제주도민만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자연과 문화는 불필요하다고 갈아 엎고 배척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만이 갖고 있는 경쟁력의 단초다. 거기에서 ‘아이디어’가 나와야 한다. 그럴 듯한 시설물이 필요하다는 ‘하드웨어’적 발상이 아니라 ‘어떻게 그 자원을 디자인할 것인가’란 ‘소프트웨어’적 발상이 필요하다.

 

삼나무가 잘려나간 자리에 아스팔트가 깔리는 걸 원치 않는다. 삼나무가 내준 자리를 자동차가 차지하는 걸 원치 않는다.

 

제주는 그나마 남은 한국의 ‘쉼터’다. 관광객만 쉬는 ‘힐링’공간이 아니다. 제주도민, 우리도 좀 쉬자. 우리도 좀 치유받고 싶다. 그 땅을 그렇듯 틈만 나면 ‘교통정체·혼잡’의 명목으로 다 없애버리면 나중 남을 건 무언가?

 

그 정도 불편을 감수할 준비는 관광객만이 아니라 다수의 제주도민도 돼 있다. 시원스레 눈 앞에 펼쳐지는 삼나무 가로수길이 주는 풍광은 충분히 그 불편을 감수할 만큼의 보상을 준다. 그게 따지고 보면 경제적 가치도 더 크다. [제이누리=양성철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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