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흘렀다. 70년 통한의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슬픔이었다. 한국현대사 최대의 ‘홀로코스트’였다. 이념의 굴레에 갇혀 숨죽이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하지만 2018년 4월3일-. 그래도 제주도민은 그나마 위로를 얻었다. 이를 악물고 참았던 감정을 그나마 추스를 수 있었다. 현직 대통령의 발언 한마디 한마디는 그 점에서 유족들의 마음을 관통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습니다. 비극은 길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 만큼 아픔은 깊었지만 유채꽃처럼 만발하게 제주의 봄은 피어날 것입니다.” “이 땅에 봄은 있느냐?”는 제주도민들의 물음에 내민 문재인 대통령의 대답이다. 2018년 4월3일 국가추념일 지정 후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추념식에 참석한 그의 말이었다.
그는 이어 말했다. “70년 전 이곳 제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했습니다. 이념이란 것을 알지 못해도 도둑 없고, 거지 없고, 대문도 없이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죄 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습니다.”
그는 메시지를 추가한다. “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은 화해와 용서로 이념이 만든 비극을 이겨냈습니다”면서도 “아직도 4·3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낡은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엔 낡은 이념이 만들어낸 증오와 적대의 언어가 넘쳐납니다”라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아픈 역사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행한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만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도 4·3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낡은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백번 천번 옳은 말이다. 그 수많은 세월을 ‘폭동’이냐, ‘항쟁’이냐를 놓고 다퉜던 세월이 무상해지는 순간이다. 사실 그랬기에 이념은 더욱 4·3의 완전한 해결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존재했고, 그랬기에 덧씌워진 올가미는 더 조여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반격해본들 ‘이념논쟁’이란 운동장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4·3은 그렇지 않다. 따지고 보면 4·3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등장한 냉전체제의 어이없는 희생양이다. 느닷없이 한반도가 미·소간 냉전체제의 각축장이 됐고, 남과 북이 분단이 되는 과정에서 ‘제주’란 국지적 공간에서 벌어진 참혹한 비극이다. 어이없게 한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와중에 영문도 모르고 수도 없이 많은 양민들이 숨져간 비극의 역사가 바로 4·3이다.
2000년 4·3특별법을 제정한 김대중 전 대통령, 2003년 현직 대통령으로서 과거의 국가권력에 의한 잘못을 공식사과한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그에 뒤이은 문재인 대통령의 2018년은 그래서 진일보했다.
그의 추도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지금도 관통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정의'로 경쟁해야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공정한 보수와 공정한 진보가 '공정'으로 평가받는 시대여야 합니다. 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면, 보수든 진보든, 어떤 깃발이든 국민을 위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4·3 70주년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이데올로기로 가리워졌던 진실을 이제 걷어내야 할 때다. 좌와 우의 시각으로 재단됐던 역사의 현장을 오롯이 진실과 사실의 영역으로 들추어내야 할 때다.
군·경토벌대의 잔인한 학살이 있었다고 해서 맹동적 무장대의 과잉대응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념은 모든 걸 무시하고, 하나만을 제시하지만 무릇 세상사는 얽히고 설킨 것이다.
4·3은 하나의 성격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1947년 3·1절 경찰의 발포가, 48년 4월3일 분개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봉기가, 그해 11월부터 벌어진 군·경토벌대의 무자비한 초토화작전이, 54년 9월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될 때까지 무자비한 토벌이 있었다. 그 와중에 제주도민들은 어느 편에 섰다가 숨졌고, 어느 편에 끼지 않았어도 ‘적’으로 몰려 죽어갔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드리웠던 이념으론 적대만을 양산했을 뿐이었다. 인간의 존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과거의 과오다.
과거의 과오를 인정하자. 과거로부터 배우고 익힌 우리의 현재에게 미래를 선물하자. 그 자각이 있다면 이제 4·3평화공원의 한 켠을 지키고 있는 공허한 ‘백비’에 제대로 된 이름을 새길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오로지 보아야 할 게 있다면 ‘광기’의 현장에서 철저히 무시된 ‘인간의 존엄’이다.
제주에 봄이 오고 있다. 시린 겨울 분노와 증오의 한기가 아닌 용서와 화해,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용기가 생동하는 온기의 그 봄이 오고 있다.
산이 높을 수록 골은 더 깊다지만 거꾸로 골이 깊을수록 더 높은 것 역시 산이다. [제이누리=양성철 발행·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