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서 지방 소도시 이즈모 시가 대기업과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이즈모시 이와쿠니 데쓴도(岩國哲人)시장의 스토리가 있다.
당시 이즈모 시는 시마네현(島根県)에 있는 인구 8만의 중소도시에 불과했다. 1988년 9월 20일 당시 니오라(直良) 시장은 이듬해 봄 실시되는 시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시의회에서 공식 발표했다.
그러지 않아도 쇠락해가는 이즈모시의 앞날에 어둠이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느 날 지역의 원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훌륭한 시장을 모셔와 시를 부흥시키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즈모시 출신 인재들을 점검하다가 이와쿠니 데쓴도라는 인물을 찾아냈다. 이와쿠니는 미국에서 모건스탠리를 거쳐 세계최대의 금융은행 메릴린치의 부사장으로 일하던 잘나가는 금융인이었다.
이즈모 지역의 원로들은 이와쿠니를 설득했다. “당신은 이미 경제적으로 성공했다. 더 바랄게 뭐가 있나. 고향을 최고의 도시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보람이 있는 일이냐”며 집요하게 이와쿠니의 애향심을 자극했다. 결국 이와쿠니는 항복했고, 고향에 돌아와 1989년 선거에 출마, 당선됐다.
이와쿠니는 당시 자민당 시의원 22명 전원의 추천으로 시장후보가 됐다. 그러나 이와쿠니는 지지자들의 양해를 얻어 사회당, 공명당, 민사당의 후보로도 추천을 받았다. 이즈모시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자민당 지지자들만을 향한 폐쇄된 행정이 아닌, 시민 모두가 참여하고, 열린 행정을 추진해나가겠다는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시장이 된 이와쿠니는 ‘행정은 최대의 서비스 산업이다’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시민들의 진정에 대해서는 3가지 회답만 준비하도록 했다.
‘다음주말까지 회답한다’, ‘1개월 내에 회답한다’, ‘3개월 내에 회답한다’가 공무원이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의 전부였다. 여기에 ‘안된다’고 하는 거부의사가 추가로 포함된다. ‘검토’, ‘전향적으로 생각해 보겠다’는 어정쩡한 답변은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는 취임 초 공무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4가지 제안을 했다. ‘최우수 기업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신나게 쉬고 신나게 일하자’, ‘토・일요일에도 행정서비스를 한다’, ‘관혼상제는 참석하지 않는다’이다. 이로써 시청의 직원들을 일본 최강의 공무원 집단으로 만들었다.
이와쿠니 시장의 개혁 정책은 이즈모시를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공무원과 시민들은 자부심을 가지게 됐으며, 전세계의 많은 지방자치단체와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1994년에는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이 비서실 팀장들과 사장들을 대동하고 이즈모시를 방문하기도 했다.
한 사람의 힘이 도시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시의 앞날을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의 땀과 열정이 있었다.
최근 원희룡 전 의원의 제주도지사 출마를 놓고 일부에서 말들이 많다. 지금까지 제주를 위해 한 일이 뭐 있느니, 왜 관덕정 앞에서 출마회견을 하는지, 4.3위원회 폐지법안에 서명을 한 적이 있다느니 하는 비판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모든 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과거에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이와쿠니가 시장 후보로 나섰을 때 이런 얘기가 나왔을까. 물론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관덕정의 상징도 그렇다. 일부에서는 중앙정부의 폭압성, 가혹성, 도민의 수난을 상징하는 곳이라고 하면서 ‘사또놀이’로 폄훼한다. 그러나 제주의 돌멩이 하나, 풀한 포기마다 눈물과 한이 서려 있는 곳이 이 땅 제주도다. 관덕정은 우리 역사의 상징이요, 소통이 공간이었다.
4.3위원회 폐지법안 발의도 할 말은 많다. 한나라당에서 각종 유사한 위원회를 통폐합하는 법률안을 당론으로 제출한 것에 불과하다. 국회에서 통과된 것도 아니고, 논의도 해보지 못한 채 폐기된 법안이다.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원의룡 전 의원은 우리 제주도의 자부심이다. 학력고사 전국수석, 사법고시 수석, 3선 국회의원.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서울시장·대통령에 도전했던 인물이다. 당시 대통령 후보 경선TV토론을 보면서 제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를 대견하게 여겼다. 앞으로 서울시장에 대통령에 도전할 제주출신 인물이 언제 나올 수 있을지.
그는 말했다. 제주를 바꾸고, 그 힘으로 대한민국을 바꾸겠다. 다음 선거를 위해 도지사의 권력을 쓰지 않고, 다음 세대를 위해 도지사의 권력을 나누겠다. 자기의 전부를 바치겠다고.
그의 말이 모두 이뤄지지 않더라도 다음 하나는 확실한 것 같다. 큰 꿈이 있는 사람이니 만큼, 작은 이익을 위해 대의를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도지사의 권력을 자신의 영달을 위해 쓰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그렇게만 돼도 제주는 달라질 것이다. 공직사회가 달라지고, 사회가 투명해질 것이다. 물론 원 전 의원이 중앙에서 정치를 하면서 이룩한 힘과 네트워크가 제주도의 현안해결에 큰 힘이 될 것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제주는 그의 힘과 열정, 제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필요하다. 적어도 지금의 제주도는 그를 필요로 하고 있다.
1989년 이와쿠니 시장이 고향 이즈모 시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2014년 제주는 원희룡을 간절하게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비판과 폄하의 세력이 있는 것은 원희룡이 몰고 오는 새바람과 변화에 저항하는 기득권세력의 두려움의 다른 표현은 아닐까 생각한다./ 김은희 제주국제대 일어일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