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샀다. 손수 운전한다. 대형버스를 몰고 싶어서가 아니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장애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아름다운 자연과 시원한 세상을 만끽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서다.
서울의 한 특수학교에서 일하는 황주현(30)씨가 주인공.
전국에서 모인 장애인 학생과 비장애인 학생, 그리고 재능기부로 뒤따라온 대학생과 특수학교 교사. 31명이 지난달 30일 버스를 배에 싣고 제주항에 도착했다. 보름여의 일정을 제주에서 보내기 위해서다.
단순한 제주 관광이 목적이 아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모여 서로를 이해하고 도우면서 스스로의 꿈을 찾는 ‘꿈찾기 캠프’다.
황씨의 제주캠프는 이번이 세 번째. 지난해 1월 첫 제주행을 택한 뒤 지난해 여름을 거쳐 세 번째 맞는 방학체험캠프다. 방학이 되면 여지없이 짐을 꾸리고 장애인 아이들과 재능 기부자들을 수소문, 제주에서 ‘꿈같은’ 15일을 보낸다.
황씨의 캠프는 여느 캠프와 다르다. 장애인 아이들과 비장애인 아이들이 뒤섞여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같은 것을 배운다는 것이다.
이번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도 장애인 학생 9명과 비장애인 학생 8명. 초등학생부터 22살 성인까지 나이도 들쭉날쭉이다. 이들은 함께 운동도 하고 캠프를 마치고 난 결과물인 사진전을 위해 카메라렌즈에 눈을 맞춘다. 서로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자기의 느낌이나 생각 등을 표현하는 방법도 배운다.
이미 며칠 전 한라산도 올랐다. 일반인들보다 두배는 더 시간이 걸리지만 서로 도우며 산을 오르는 법을 터득했다. 숙소는 청소년 수련원 등을 빌려 잔다. 물론 교실 시설까지 갖추고 있으니 서로 꿈을 찾아가는 나르므이 비법을 서로 주고받는 공간으로 최적이다. 게다가 일부 장애인 학생들의 어머니 두명이 따라 나서줘 끼니 때마다 음식을 만들어주니 더없이 고맙고 미덥다.
황씨는 "캠프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참여해 몸소 부대끼며 생활하는 것이 비장애인 아이들이 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생각하게끔 하는데 많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보름 간의 캠프라 만만찮은 비용이 들 텐데 돈은 황씨가 스스로의 주머니를 모두 털어 충당하다시피 한다. 제주에서 15일간 30여명이 움직이고 먹고 자는데 들어가는 경비와 아이들이 공부하는 재료까지 2500만원에서 3000만원이 든다. 거의 모든 비용이 황씨 주머니에서 나왔다. 일부 지인들과 특수학교 교사들이 일부 경비를 보태줬지만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
거액의 후원을 받을 뻔도 했다. 황씨의 캠프가 입소문이 퍼지자 모 기업에서 후원을 제의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기업이 캠프에 후원을 하고 기업 이미지를 개선 해보려는 속셈이었다”며 “순수한 기업 후원이 아닌 아이들을 이용하는 후원이어서 단숨에 거절했다”는 게 황씨의 얘기다.
그래도 교사벌이를 해 받은 봉급만으로 매해 이 큰 돈을 충당하기는 어려운 일. 그래서 생각한 게 올 연말부터 캠프에 참가한 이들이 찍은 사진과 그린 그림을 모아 전시회를 열 생각. 작품전시회를 곁들여 푼푼이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아 볼 계획이다.
돈에 쪼달리지만 그래도 그는 행복하다.
“평생 월급을 모아도 10억 모으기 힘든데 저는 이렇게 아이들과 많은 사람들을 얻고 함께 즐길 수 있잖아요. 이 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저는 돈보다는 지금 이 시간이 더 소중합니다.” 황씨의 걸작 답변이다.
황씨는 사실 첫 캠프에 나서면서 일을 저질렀다. “기왕 저지른 거 제대로 해 보자”는 생각에 20살떄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오랜 세월 모은 적금을 깼다. 5000만원이 넘는 45인승 중고 대형 버스를 구입했다. 물론 버스 운전대는 자신이 직접 잡는다.
황씨는 “버스를 빌려서 다니다 보니 경비 문제도 만만치 않고 장애인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해 버스 기사와 트러블이 종종 생겼다. 아예 내가 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에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캠프를 고안한 이유엔 그의 잔잔한 사랑이 담겨 있다. “장애인 아이들은 방학이면 보통 집에 방치 돼 있는 경우들이 많아요. 그런 아이들에게 비장애인 아이들과의 추억도 만들어 주고 함께 다양한 경험을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캠프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황씨는 고교 시절 유도선수로 활약했다. 그런 그가 유도 선수를 그만 두고 왜 특수학교 교사가 됐을까? 그가 다니던 고교의 특수학급에서 장애인에게 열정을 불태우던 여선생님을 좋아한 나머지 아예 진로를 특수학교 교사로 결정한 것이다.
황씨는 “그때 그 선생님 곁에서 같이 일하면 좋을 것 같아서 특수학교 교사가 됐어요. 그런데 그 선생님은 제가 학교에 부임한 다음해 결혼을 해 외국으로 떠났어요.”
허탈할 법도 하지만 그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특수학교 교사라는 직업이 제 성격과도 잘 맞고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도 즐거워 후회 해본적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일이라고 생각보다 아이들과 같이 놀고 즐긴다고 생각하니 지치지 않다”고 말했다.
황씨는 요즘 새로운 꿈을 그려보고 있다. 장애 아이들과 그렇지 않는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생활 할 수 있는 ‘타운’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꾸준한 교육이 필요해요. 일반 아이들처럼 고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죠. 장애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언제까지나 함께 살 수 없으니 아이들을 믿고 맡겨줄 곳이 필요한데···.”
황씨는 “이런 캠프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 없을 것이다. 제가 열심히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줄 것이고 또 저와 뜻이 비슷한 사람들이 생겨나 좀 더 많은 장애인 학생들에게 이런 기회가 돌아가길 원할 뿐이다”며 목소리를 낮췄다.
황씨의 일행은 오는 13일 제주를 떠난다. 그리고 몇 달간의 준비를 거쳐 여름방학이 되면 또 제주를 찾을 예정이다. [제이누리=이석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