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이 부모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거나 잘못을 하였을 때 야단을 치고 벌을 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주된 훈육방법으로 자주 매를 때리는 것은 감정적인 체벌이 되기 쉽고 그 효과도 일시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아동 자신도 또래와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도 물리적인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공격적인 성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생각하는 의자에 앉히기’ 방법은 거실 모퉁이 등 부모가 지켜볼 수 있는 장소에 의자를 놓고 아동을 몇 분 정도 벽을 보고 앉아 있게 하고나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아동의 나이와 잘못의 정도를 고려하여 만 5세 아동이면 5분 정도의 시간 동안 앉아 있게 합니다. 이 방법은 아이에게 신체적인 고통을 주지 않으면서도 부모가 진지하게 아동 행동의 문제점을 지적해 줌으로써 아동에게 충분한 훈육 효과를 나타내게 할 수 있고, 부모의 입장에서도 아이에 대한 감정 폭발을 자제하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방법입니다. 아동에게 처음 어떤 지시를 할 때는 단호하면서도 좋은 목소리로 지시를 합니다. 부탁하듯 하지는 않고 간단하게 지시합니다. 이 때 아이가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좀 더 크
술 마신 다음 날 오전. 알코올이 다 빠져나가지 않은 상태다.조금 두근거리며 정체와 방향을 모를 약간의 ‘열정’을 느낀다. 오늘 아침 내가 그렇다. 억제제인 알코올이 몸에서 빠지며 일시적 반동(rebound)으로 약간 두근거리는 것인데, 이때 뇌는 ‘내가 뭔가를 열망하고 사랑하고 있나봐.’ 이런 ‘열정’을. 물론 더 심하면 열정이 아니라 왠지 모를 불안으로 느끼겠지만 말이다. 애당초 열정은 불안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보다 생리적 반응이 앞서고, 어떤 감정은 앞서 발생한 생리적 반응에 맞춰서 형성되는 것이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현대 과학에서는 우세한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들어본 적 없다고? “행복하니까 웃는 게 아닙니다. 웃기 때문에 행복한 거죠.” 들어봤을 거다. 이론 과학자들은 극적으로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고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당신은 슬퍼서 우는 게 아닙니다. 울기 때문에 (뇌가) 슬프다고 느끼는 거죠.” <James-Lange 이론>이다. 말이 나온
부모가 자녀에게 지시를 하거나 대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아동이 훨씬 더 말을 잘 듣는 아이가 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그건 안돼’ 라고 잘라 말하기 전에, 엄마가 지금 당장 요구를 들어줄수는 없지만, 아이가 원하거나 속상한 점이 무언지를 엄마는 알고는 있다는 것을 말로 표현해줍니다. 예를 들어 “네가 그렇게 고집을 피우는 것을 보니, 넌 지금 당장 엄마와 놀고 싶은 거구나, 하지만....” 등으로 아이의 마음을 우선 헤아려 주게되면, 아이는 적어도 자신의 마음만은 이해 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보다 긍정적으로 부모의 요구나 지시에 따를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아동에게 어떤 상황에 대해 미리 준비를 시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엄마와 함께 은행에 갈텐데, 거기서 뛰어다니거나 떠들어서는 안돼. 대신 거기 가면 소파가 있으니까 앉아서 책을 읽고 있으면 좋겠다. 어떤 책을 가져가고 싶니?” 등의 방법으로 부모가 원하는 것을 아동이 분명하게 알도록 해줍니다. 어머니들이 흔히 하게 되는 실수는 자녀가 TV를 보고 있거나 게임을 하고 있을 때 다른 일을 하도록 시키는 것입니다. 아
40대 여성 P씨. 어떻게 오시게 됐냐는 질문에 치료자 눈치를 살피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 지 머뭇거려요. “어떡해요. 제가... 자꾸... 남의 물건을 훔치게 돼요.” 그리곤 울음을 터트려요. 순진(?)한 의사 시절이라면 몰라도 내가 때가 많이 묻어서 그런지 법적 문제가 걸려있는지를 우선 고려하게 됩니다. 제 발로 병원에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알려졌거든요.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훔친 물건의 종류는 무엇이었는지, 훔친 물건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부터 묻게 되죠. “병의 증거”를 찾으려고요. 물론 고소를 당했거나 이미 형사처벌 받게 될 상황이었다고 해서 당장 병이 아니라고 배제할 수는 없지만요. 여기서 병은 ‘병적도벽’을 말하는 겁니다. Kleptomania. 19세기 초반 프랑스 의사들이 붙인 용어라고 해요. 한국어로 그냥 직역하면 도벽광(盜癖狂)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정식 병명은 ‘병적도벽’이에요. 프랑스 궁중 야사를 보면 남의 물건을 몰래 훔치는 왕들이 꽤 있었나 봐요. 왕의 한 끼 식사비만으로도 수십 개를 살 수 있을 테고, 아니 명령만 내
▲ 동굴, 우리가 모르는 마음의 세계가 있다. 꿈은 그 세계로 가는 왕도이다. (사진출처:구글) 아침잠에서 깨기 전 자각몽을 꾸는 경우가 종종 있죠. 경험해 보셨어요? 꿈을 꾸는 상태와 깨어있는 상태의 중간단계 말이에요.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알아요. 지금 보고 경험하는 이게 꿈이라는 걸 자각한다고요. 그래서 어느 정도 꿈의 내용을 통제할 수 있죠. 꿈 내용이 뭔가 이상하면 중간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고요. 때론 등장인물 교체나 내용 교정도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조금 길게 꾼다면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부분적으로 감독처럼 영화 한 편 제작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길게 꾸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이제 깨려고 하거나, 계속 꾸려는데 알람이 울리는 순간 자각몽은 깨지는 거죠. 지난 달 독서모임은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한나 모니어, 문예출판사)였는데, 자각몽 이야기가 나왔죠. 친구K는 그런 이상한 현상도 다 있냐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친구L도 저처럼 자각몽 경험이 있다더군요. 그 책에서 한나 모니어는 자각몽을 통해 이기는 법을 훈련하는 운동선수 예도 들었어요. 자각몽을 꾸려고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고 자각몽이 훈련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였죠. 세
▲ somnambulism (사진출처:구글) 나뭇가지 혹은 가시에 긁힌 상처, 어디에 부딪힌 듯 멍든 자국. 이게 뭐야? 너 밤에 어디 갔다 왔어? 글쎄, 전혀 모르겠어. 그런데 자다 말고 내가 어딜 가? 하숙집 룸메이트는 이상했다. 한두 번이어야지. 그래, 오늘은 잠을 자는 척하고 지켜보자. 밤중에 이 녀석이 도대체 어딜 가는지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알아야겠어. 크게 배어먹힌 달이 은은한 밤이었죠. 어디선가 야옹 고양이 소리만 스산하게 들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녀석이 갑자기 부스럭 일어나더니 주섬주섬 옷을 입고 집을 나서는 거예요. 어디로 가는 거지? 가만히 방문을 열고 숨죽여 지켜봤지요. 아, 글쎄 창고에서 웬 삽을 들고 나오는 거예요. 뭐, 뭐야. 조용조용 뒤를 밟아 따라 갔지요. 둔한 녀석이 걸음은 왜 저리 빠른지요. 동네 어귀를 지나 산으로. 겁이 바짝. 으악. 공동묘지 쪽 아냐? 엊그제 묻은 묘지 앞에 우두커니. 갑자기 뒤를 돌아보는 거예요. 앗, 들켰을까. 잽싸게 돌담에 바짝 붙었죠. 두근두근. 아 글쎄 그 녀석이 삽질을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왜 저러는 거야. 무서워. 발소리를 죽이고 가만가만 내려오다 걸음아 나 살려라 달음박질을 쳤습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 등 선출직 공무원이 동문회나 어떤 단체가 주관하는 체육대회 같은 행사에 와서 돌아다니며 인사하고 악수도 청하잖아요? 다음 선거 어장관리, 아니 유권자관리 차원에서 말이에요. 언제나 활짝 웃는 얼굴이죠. 평소 억하심정이 없는 한 그 웃는 얼굴에다 대고 “여보쇼, 당신 언제 날 봤다고 실실 쪼개는 거요?”라고 한다면 너무 거시기 하잖습니까? 미소근육을 움직이는 신경경로에는 불수의적 경로(진정한 미소)와 수의적 경로(“웃는 표정을 지어야지”)가 있습니다. 코미디 TV프로그램을 보면서 웃는 경우나 귀여운 아기 사진을 보며 빙긋 미소 질 때, 문뜩 반가운 친구를 만나 웃게 될 때,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될 때는 불수의적 신경경로입니다. 불수의적 경로의 미소인지, 수의적 경로의 미소인지 어떻게 구별 하냐고요? 안륜근(눈둘레근, Orbicularis oculi m.)의 수축 여부를 보세요. 불수의적 경로의 미소는 대광대근(큰광대뼈살, Zygomatic m, greater)은 물론 안륜근이 분명하게 수축 됩니다. 진정한 미소라는 증거에요. 하지만 수의적 경로는 대광대근만 수축될
모든 행동은 뇌 활동의 생성물이다.우리가 느끼는 감정 또한 그러하다. 뇌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뇌는 왼쪽 오른쪽 짝을 이룬 반구로 구성됐다. 오래 전부터 각 반구의 기능차이를 알아내려는 노력이 있었고 많은 부분이 밝혀졌다. 같은 구성체(예를 들어 편도체)라 하더라도 좌우 위치에 따른 차이도 알아내고 있다. 가령 뇌과학자 한나 모니어(『기억은 미래를 향한다』, 문예출판사)는 왼쪽 편도체가 오른쪽 것보다 더 긍정적이라고 말한다. 우뇌 편도체는 주로 공포나 불안 같은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지만, 좌뇌 편도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도 우리가 기쁜 소식을 처리할 때 우뇌보다 좌뇌를 더 많이 사용하고, 새로운 상황을 평가할 때 비판적 반론의 대다수는 우뇌에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M씨는 뇌졸중이 있었다. 퇴원하여 많이 좋아졌지만 오른쪽 하지 마비는 호전이 조금 더디다. 우울해 보인다. 부인에 따르면 M씨는 대화 도중에 급작스레 울음을 터트리는 일이 자주 있다. 상실감이나 자기 연민으로 운다고 보기엔 좀 이상해 보인다고 말한다. 당시 대화 분위기나 정황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뇌졸중 이후에 많은 환자들은 우울병 증상을 보인다. 뇌졸중후우울병(po
* 아동의 문제 행동을 줄이는 최선책은 바람직한 행동을 많이 하게 하는 것. (문제 행동에 대한 과민반응보다는, 아동의 바람직한 행동에 초점을 맞춤) 자녀가 어떤 문제 행동을 반복하거나, 산만하고 충동적이어 늘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 아동이 문제 행동을 보일 때마다 이를 지적하거나 화를 내고 야단을 치는 것은 문제 행동을 줄이는데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오히려 똑같은 상황만 반복되게 되고, 아동은 점차 ‘자신은 엄마 말을 듣지 않는 나쁜 아이’ 또는 ‘엄마는 항상 잔소리와 꾸중만 하는 사람’ 이라는 생각을 품게 되고 맙니다. 만약 이런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이러한 아동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시도가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즉, ‘자신이 지금까지 문제 행동 때문에 꾸중을 많이 듣는 나쁜 아이였는데, 이제는 엄마에게 칭찬받는 착한 행동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도록, 아동의 바람직한 행동에 대한 관심과 격려의 말을 자주 표현해 주어 아동과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점차 늘이고, 야단칠 일이 있을 때만 아동에게 관심을 보이는 부정적인 상호작용을 줄이는 것이, 아동
<기억은 미래를 말한다>(한나 모이어, 마르틴 게스만 지음, 문예출판사)를 읽었는데요. ‘뇌과학과 철학으로 보는 기억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가 부제인데 인간에게 기억이 갖는 의미에 대해 방점을 둔 책이라는 느낌이었어요. 뇌과학보다는 철학에 더 무게를 실은 거죠. 뇌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최근에는 모든 정신현상을 뇌의 물리적 작용과 연관시켜 설명하는 게 대세지요. 가령 해리장애는 해마(hippocampus)와 언어표현 영역(Broca's area)에 활성저하가 돼 있다, 뇌피질의 단절과 관련이 있으며 언어생산 등 고위 인지기능이 방해받고 있다, 이런 형태로 말이죠. 인간 이해에 생물학적 접근도 중요합니다만 그 부분만 강조하다보면 어떤 결핍감을 느끼게 되요. 전체로서 사람이 어딘가 소외되는 느낌이랄까. 그 사람만이 갖는 경험, 비슷한 경험에 대한 그 만의 생각과 감정, 등 개인의 독자성과 독자적 가치는 구석 자리로 내몰려 소외된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고요. “네 뇌의 물리적 현상에 관심이 있지, 네겐 관심 없어.” “얘가 정신적 충격으로 넋이 나갔어.” 종종 그런 말을 하잖아요. 오늘은
▲ 고병수 원장 우리 병원에 가끔 오시는 장애인 김씨가 있다. 그는 45세 정도의 남자 분으로 전동 휠체어를 타고 진료실로 들어오시는데 전자차트에 이름이 뜨면 나는 자연스럽게 진료실 문을 열고 김씨를 안으로 들어오게 도우면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셨어요? 전에 장염 기운은 좀 좋아지셨나요?” “아, 예...어...으... 좋...으아... 즈...었..어...요...오...” 뇌성마비를 가진 김씨는 내게 대답을 하면서도 숙달된 기계 작동으로 앞, 뒤, 좌, 우 휠체어를 돌리며 좁은 진료실에서 공간을 확보한다. “오늘은 어디가 불편하세요?” “감...기... 여...얼... 마...니...나...아...아...었...” 김씨는 자기 증상 표현을 다하지 않는다. 다 말하려고 하면 힘도 들지만 의사가 알아듣지도 못하기 때문에 중요 포인트만 말해도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나는 대강 그 정도만 듣고 일단 청진기를 들고 진찰을 시작한다. 목이 부었나, 내부 장기는 괜찮은가 살핀 다음 설명을 해준다. “냉방병으로 생긴 몸살 감기 같아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추
사람은 누구나 죽고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생각한 것보다는 언제나 빨리 찾아오지요. 그 날이 내일이 될 지도 모르잖습니까? 그래서 ‘지금 여기’ 삶이 황금보다도 소중하고 아까운 것이라고 말하지요. “살고 싶지 않아요.” 사는 게 괴롭고 힘들다는 정도가 아니라, 자살을 생각한다고 짐작되더라도 당사자가 아닌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라면 “야, 죽을 바엔 차라리...”로 시작되는 조언을 하게 됩니다. 실제 자살을 한 경우도 사후에 안타까움을 그렇게 표현합니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다른 모습의 삶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데 왜 죽을 생각을 하냐고요. ‘터널 시야’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울병 환자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터널에서는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볼 수 있는 풍경이 한정되지요. 터널 밖으로 나와야 전체풍경이 다 보이잖아요? 우울병 환자는 터널 안에 있기 때문에 보이는 방향과 풍경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가 보고 생각하는 것도 진실의 한 부분일 겁니다. 문제는 오로지 그 부분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저 사진에서 보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