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철수 제주시주민생활지원과장 강추위가 평년보다 매섭게 오래 이어지고 있다. 제주시는 추위와 배고픔에 어렵게 살아가는 어려운 이웃들을 찾고 있다. 이들은 장기간 겨울철 나기를 매우 힘들어 하고 있다. 사회적 무관심속에 생활이 어려워 긴급 도움이 필요한 가구이다. 거주지가 정해지지 않거나 임시 거주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회취약계층이다. 창고시설, 철거예정 건축물, 컨테이너, 움막, 아동과 함께 여인숙 등에서 법적 복지지원을 받지 못한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다. 또한 유기나 방임으로 학대받는 아동, 노인, 장애인, 정신질환자도 포함된다. 그리고 공과금을 내지 못하여 전기와 수도가 끊긴 가구도 찾아내어 공적 보호를 할 계획이다. 홀로 살면서 심리적으로 외로움과 절망감 속에 살아가는 노인, 중증장애인 가구도 찾고 있다. 경제양극화, 가족붕괴로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고독사’가 사회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혼자 죽음을 맞이하고 한참 지난 뒤에야 발견되는 ‘고독사’는 무심히 지나칠 일이 아니다. 이들에게 외면하지 말고 관심을 가지고 따뜻한 사랑의 힘을 모아 줘야 한다. 제주시가 연중 소외된 이웃을 찾아 나서고 있지
검찰과 모진 인연을 쌓은 탓인가? 숱한 혐의의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지사 당선자와 함께 경쟁후보였던 나 역시 사전선거운동 혐의와 더불어 성추행 운운 발언에 무고란 혐의가 덧씌워져 재판정에 서게 됐다. 검찰에 의해 기소가 된 것이다. 두 건의 혐의 모두 인정할 수 없는 일이지만 불법과 왜곡, 허위사실이 판친 2002년의 선거문화를 바로 잡고자 나 역시 재판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했다. 내 시시비비를 가리다 보면 상대의 불법과 공작이 자연스레 드러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내 변호인의 조언과 검사의 간곡한 호소에 못이겨 피의자 진술조서에 서명을 해주었지만 그건 내가 비록 오명을 뒤집어쓰는 한이 있더라도 불법선거를 발본색원하려는 의지였다. 대선이 코앞에 닥친 시기였다. 재판에 임하는 것과 별개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약속했던 선거지원 활동에 나서야 했다. 2002년 12월1일 제주를 떠나 경북 고령·성주를 돌기 시작했다. 축산인들을 규합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어 12월6일엔 이 후보의 제주유세 일정에 맞춰 그를 도왔다. 그러다 보니 그날 저녁 자연스레 이 후보와 저녁식사를 겸한 회동을 갖게 됐다. 그 자리에서 난 그에게 3가지를 건의했다.
29회 제주포럼C 제주탐방 ▲ 제주관광대학교 인테리어 건축과 안선진 교수 풍수지리 아시죠? 29회 제주포럼C 제주탐방 덕분에 풍수지리와 이 에너지가 제주도에 미쳤는지 조금 알게 됐다. 12월 8일 제주도민과 육지제주이민자들과 함께 체오름, 신흥리 방사탑, 죽성마을을 방문했다. 제주포럼C의 사람들이 모였고 제주에 대해서 같이 대화하고 공부했다. 내 이야기와 블로그 읽은 이면, 내가 그냥 일상생활 이야기에 관심 많이 있음을 알 것이다. 그래서 풍수지리는 나에게 새로운 영역이었다. 먼저 체오름에 갔다. 오름 주변에 어떤 에너지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올랐다. 제주관광대학 인테리어 건축과 안선진 교수님이 이날 우리의 전문가 안내원이 돼 설명해줬다. “산의 생기가 모여 있는 곳을 혈(穴)이라고 하는데 체오름은 그 혈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의 생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물(水)이 보호해야하는데 물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형상을 하지요.” 제주에서 오름 등산을 많이 했지만 체오름은 처음이다. ‘왜 못 와봤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쨌든 행복했다. 체오름을 오른 뒤에 97번 도로에 있는 한 비빔밥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곳
또 졌다. 2002년 환갑의 나이에 선거패배의 쓰라린 맛을 또 봤다. 세 번의 선거에 도전, 단 한번을 이기고 98년의 낙선에 이은 또 한 번의 패배였다. 하지만 가슴 속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길이 없었다. 상대의 후안무치가 그리도 역겨울 수 없었다. 흑색선전과 허위사실 유포가 선거판을 파고 들었고, 그 선거의 핵심쟁점이 돼버린 ‘성추행’ 논란은 오히려 내가 논란을 획책한 장본인으로 둔갑하는 상황으로 뒤바뀌었다. 그런 와중에 선거의 당락이 결론 난 것이기에 그걸 승복한다는 건 나로선 쉬운 일이 아니었다. ▲ 2002년 6월 선거를 앞두고 거리유세 도중 찍은 사진이다. 하지만 어쨌든 졌다. 6월13일 선거패배를 뒤로 하고 잠시 칩거하다 인사를 다녔다. 그래도 나를 도운 분들의 마음 속에 남은 허탈함과 원망을 씻겨드려야 했다. 감사와 미안함의 뜻을 이루 말로 다할 순 없었지만 여건이 되는 대로 한분씩 손을 잡아드려야 하는 게 내 도리였다. 그해 7월5일 TV를 지켜보다 채널Q의 한 프로그램을 보며 많은 상념에 빠졌다. <선생님의 유혹>이란 논픽션 프로그램이었다. 담임교사가 한 여학생을 성추행한 사건을 다룬 얘기다. 가만히
▲ 박찬식 전 제주도행정부지사 중국 송나라 태종 때 재상 구양수는 “정치는 백성의 병을 고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왕의 능력과 관계없이 백성이 불만을 품지 않으면 그것이 좋은 정치라는 뜻이다. 이 병은 정치인의 무능으로 백성들이 어렵게 사는 민생고라는 병과 정치인의 부정부패로 백성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민생불만이라는 병이 있다. 우리나라는 5.16군사혁명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법질서를 확립하였기 때문에 산업화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거의 없었다. 부동산가격과 물가가 안정된 상태에서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그 당시 일부 국민들은 불만이 있었으나 대통령, 정치인, 공무원들이 기업체보다 적은 봉급을 받으면서도 깨끗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가난하게 살았으나 새마을 운동과 조국근대화운동에 적극 동참하였으며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그나마 행복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된 민주화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으로 국민들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전두환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비서실 직원과 친인척은 물론 봉급을 많이 받는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의 부정부패는 끊이지 않고 있다.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 유재복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장 다사다난했던 임진년(壬辰年) 한해가 가고, 2013년 계사년(癸巳年)의 한 해가 밝았다. 지난해 세계적인 경제침체 등으로 지역경제가 어렵고 힘든 한해였지만, 제주도민 모두가 지역발전을 위한 관심과 열정으로 관광객 유치 노력을 다한 결과, 제주공항의 여객수송은 전년대비 22.6% 증가라는 높은 실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실적에는 제주특별자치도와 도민의 관광객 유치 노력이외에도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에서 3,406억원을 투입하여 2007~2012년까지 약 6년여 간의 긴 공사기간을 걸쳐 최근에 완공한 『제주국제공항확장 및 여객청사 리모델링 개선사업』의 효과도 있었다고 할 것이다. 동 사업의 준공으로 여객처리능력은 연간 1,314만명에서 2,547만명으로 향상되었으며, 항공기 이착륙능력은 연간 143천회에서 172천회로 증가되어 더 많은 항공수요를 유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외에도 국내선 출발보안검색장을 여객청사 중앙지역으로 확장 이전하여 출발수속시간을 4분 30초에서 1분 53초로 대폭 단축시켰고, 공항이용객 패턴을 조사하여 시설을 재배치함으로써 입국대기 시간을 10분30초에서 1분 30초로 대폭 단축시키는 등
▲ 오동명/ 제이누리 논설위원 삶의 전환점으로 삼기 위해 환경을 바꿔봅니다. 책을 사서 보고 또는 여행을 해봅니다. 그러나 늘 이런 시도만 하고 계획만 짜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나를 포함한 이런 사람들이 ‘as well as’라는 영어를 떠오르게 합니다. ‘~와 마찬가지로 잘’ 어떤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한 사람이 변화를 꾀한 다른 여건에서도 충실함을 봅니다. 도피는 또 다른 도피만을 초래할 뿐입니다. 도피가 아니라 선택으로서의 전환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도피는 결정이 아닙니다. 따라서 자유의지가 될 수 없습니다. 선택으로 결정할 수 있으며 결정하는 순간 자유의지가 담겨집니다. 그 뒤에 성공이든 실패든 따릅니다. 도피는 성공도 실패도 애초부터 없습니다. 도피는 그저 도피의 연속으로 피해 도망가는 소인배적인 행동에 불과할 뿐입니다. 작은 것이라 해도 선택함으로써 자기에 대해, 자기 삶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해도 이것마저 내 것이어야 합니다. 실패를 전가시켜서는 안 됩니다. 이래야 먼 훗날 어느 때인가는 이를 비로소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의 전업주부로만 살아온 Y씨
▲ 제주상공회의소 현승탁 회장 제주상공회의소는 계사년 새해 지역 종합경제단체로서 경제주체들이 자신감을 갖고 지역경제 재도약을 통해 안정성장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모든 열정을 쏟겠다. 우선 올해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의 국정운영에 제주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전달하여, 도민의 숙원인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조기 실현’을 추진하고, 이를 발판삼아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다. 또 추진되고 있는 한-중 FTA가 제주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FTA활용지원센터의 다양한 지원 사업을 체계적으로 전개할 것이다. 그리고 굴뚝 없는 산업이라는 제주의 MICE산업의 도내 타 기술 산업을 융․복합하여 신성장동력사업을 개발하여 활용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새 정부 출범으로 경제와 기업 정책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상공인의 의견이 정책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기업 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불합리한 법령과 제도 개선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하겠다. 그리고 기업들의 일자리 창출과 투자확대에 집중한다. 기업 일자리 창출을 위해 청년인턴 규모를 확대하고 좋은 일터를 만들어 가
▲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김영훈 2013년 계사년 새해를 맞이하여 제주도민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여야 후보들은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다짐하는 공약들을 내놓았습니다. 이에 따라 4·3재단은 정부와 정치권에 국가추념일 지정과 유족복지사업 확대 등의 공약이 차질 없이 지켜질 수 있도록 실천 로드맵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여 추모사업과 유족복지의 내실화를 꾀할 것입니다. 또 4·3사건추가진상조사에도 박차를 가해 마을별 피해실태와 공동체파괴 등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심각한 피해에 관한 조사·연구를 더욱 체계적으로 정리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제주섬을 뛰어 넘어 평화와 인권의 넓은 마당으로 나아가는 4·3의 세계화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 과거사의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국내외 기관단체와의 평화네트워크 구축과 교류를 확대해 평화의 발원지 역할에 충실할 것입니다. 아울러 정부가 확정한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를 외국어로 번역하여 4·3의 진실을 세계에 널리
▲ 임성준 뉴스콘텐츠국장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제주 출신은 없다. 이는 제주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새 정부와의 소통 창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100% 대한민국을 추구하는 당선인에게 제주는 또 그 중 1%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차기 정부의 국정기조와 세부 공약실천 계획을 마련한다. 하지만 인수위원회 9개 분과의 간사와 위원에 제주출신 인사는 단 1명도 없었다. 정부부처에서 인수위에 파견된 전문위원과 실무위원 명단에도 제주 인맥은 찾아 볼 수 없다. 총 53명으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 인수위 파견규모(78명)보다 대폭 줄었다. 그래서 이번에 인수위에 들어간 공무원들은 ‘바늘구멍을 뚫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수위 한 관계자는 “이번에 낙점된 공무원들은 각 부처가 1순위로 추천한 인사들이 대부분이다. 정치권과의 친소 관계는 거의 따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과거 인수위에선 전문위원·실무위원 선발을 앞두고 공무원 사회에서 인맥·학맥 등을 앞세워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곤 했는데, 이번엔 그런 일이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인수위가
▲ 양시경 제주경실련 공동대표 최근 제주시 탑동매립문제에 대한 도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5년 전 탑동매립사업 추진 때와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1988년 제주시 탑동매립이 대규모로 이루질 때에는 정치권도, 언론도, 공무원도, 학자도 관심이 거의 없었다. 탑동매립으로 나타나는 문제에 대해 해녀 등 지역 주민과 대학생, 시민단체들이 아무리 외쳐도 철저히 외면당했다. 당시 무관심으로 일관하면서 제주사회 여론을 주도했던 상당수 사람들은 현재에도 현역 정치인으로, 관료로, 언론인으로, 학자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탑동매립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시기에 탑동매립을 주도했던 이들은 오늘날 망신창이가 된 탑동현실을 보면서 참회하거나 반성하는 모습마저 없다. 오히려 일부는 탑동매립불법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앞장섰던 필자와 같은 사람들에 대한 흠집을 내는데 열중하기도 했다. 필자는 탑동매립으로 인해 제주도민을 세 번 울렸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도심 속에 간직한 수려한 먹돌 등 해변의 자연자원이 콘크리트에 파묻혔기 때문이며, 둘째는 매립에 따른 개발이익을 매립사업자가 독점했기 때문이며, 셋째는 매립사업에 따른 부작용을 지속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민선 3기 2002년 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한나라당 입당을 노크하고 있을 무렵. 풀리지 않는 응어리는 여전히 나를 괴롭혔다. 당시 현역이던 현경대 의원은 2001년 6월로 접어드는 시점에 양정규 한나라당 부총재와 김기배 사무총장에게 항의를 했다. “왜 신구범을 입당시키느냐”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동창이고, 내가 이탈리아 한국대사관에서 농무관으로 근무할 때 맺었던 인연도 있던 터라 서운함이 밀려왔다. 전화를 걸었다. “현 의원! 제발 이해를 부탁한다. 중견 축산인과 동반 입당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당과 얘기하는 중이다. 신구범 개인의 입당으로만 해석하지 말아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자 그는 대뜸 “너 이런 식으로 입당하고 도지사 출마하려는 거지. 이런 식으로 입당하면 나중에 어려운 일 생긴다”고 경고를 했다. 나 역시 발끈했다. “도지사 출마하고 안하고는 내가 결심할 일이지 당신이 결심할 일이 아니다”고 되받았다. 그해 6월27일. 우연히도 내가 민선 1기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던 그날 난 축산인 135명과 한나라당 중앙당에 동반 입당했다. 내 일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