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경제학·사회복지학 분야에 능통한 진관훈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의 ‘제주근대경제사 신문읽기’입니다. 비록 지금의 경제시스템과 여건이 구비돼 있다하지만 제주 역시 과거의 실타래가 얽히고 설킨 땅입니다. 기업과 산업이 척박했던 제주에도 그 맹아가 등장하던 시기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제주사회와 경제상황을 살핀 ‘신문’을 통해 그 시절의 기업·경제가 지금 우리 제주의 삶과 어떻게 연관·연동되고 있는지 가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고후(高厚) 고청(高淸) 고계(高季) 삼위형제는 왕명을 받들어 신라국에 입조한 즉 조정에서 이국신자(異國神子)가 왔다 하야 대단히 기뻐하며 대연(大宴)을 배설하고 린국(隣國)의 우의를 돈독케 하며 훈장을 각각 주어 사작(賜爵)하고 국호를 탐라(耽羅)라 하고 보개(寶蓋)와 의대(衣帶)를 주어 보내니 정치는 날로 밝아지며 탐라국은 안락의 복지로 세계에 전파케 되어 입국자는 날로 더하며 백성은 격앙을 놀래하였다(전설의 제주도 성주왕자전 1, 1929. 12. 24. 동아일보). 탐라기년(耽羅紀年)에 의하면, 고을나(高乙那)
또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경제학·사회복지학 분야에 능통한 진관훈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의 ‘제주근대경제사 신문읽기’입니다. 비록 지금의 경제시스템과 여건이 구비돼 있다하지만 제주 역시 과거의 실타래가 얽히고 설킨 땅입니다. 기업과 산업이 척박했던 제주에도 그 맹아가 등장하던 시기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제주사회와 경제상황을 살핀 ‘신문’을 통해 그 시절의 기업·경제가 지금 우리 제주의 삶과 어떻게 연관·연동되고 있는지 가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술은 사람을 중지치 않으면 마지않는 것 멋 뿐 아니라 고금을 통하여 음료고 직접간접 유형무형으로 사회와 후생에 해악을 끼침이 이에서 더한 덕이 없음은 일우 열거할 수 없으리 만치 역력(歷歷)히 허다함은 이소공동(伊所共同)의 사실임에랴. 공야주도(高陽酒徒)야 행화촌객(杏火村客)아 가련한 손 너는 ‘알콜’의 포로이로다. 한 잔 마시어 지름 녹임이 변시 무서운 자살의 길이오. 두 잔 끝에 노기부림이 도로 혀 가증한 죄악의 씨임을 알라. 술 많은 사교는 너를 징계하는 것이며 안주좋은 연회는 너를 매수하는
또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경제학·사회복지학 분야에 능통한 진관훈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의 ‘제주근대경제사 신문읽기’입니다. 비록 지금의 경제시스템과 여건이 구비돼 있다하지만 제주 역시 과거의 실타래가 얽히고 설킨 땅입니다. 기업과 산업이 척박했던 제주에도 그 맹아가 등장하던 시기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제주사회와 경제상황을 살핀 ‘신문’을 통해 그 시절의 기업·경제가 지금 우리 제주의 삶과 어떻게 연관·연동되고 있는지 가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조선에서 가장 큰 섬이오. 가장 남쪽에 있는 제주도에서는 거의 바다의 소산으로 생애를 삼으며 특별히 그곳에서는 사나이보다 여자가 많이 활동하야 물속에도 들어가고 멀리 본토로 장사도 다닌다 함은 우리가 이미 들은 지 오래이며 해녀의 활동으로 생산하는 돈이 일년에 수백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와 가치 매년에 바다에 나가서 해조류(海藻類)와 어류를 잡는 여자의 수효는 만 여 명에 달하고 그 중에 매년 사월부터 구월까지 부산 울산 등지에 나아가서 활동을 하는 여자의 수효가 사천명이상이나 되며 육칠장 이상이나 물속으로 들어가서
또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경제학·사회복지학 분야에 능통한 진관훈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의 ‘제주근대경제사 신문읽기’입니다. 비록 지금의 경제시스템과 여건이 구비돼 있다하지만 제주 역시 과거의 실타래가 얽히고 설킨 땅입니다. 기업과 산업이 척박했던 제주에도 그 맹아가 등장하던 시기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제주사회와 경제상황을 살핀 ‘신문’을 통해 그 시절의 기업·경제가 지금 우리 제주의 삶과 어떻게 연관·연동되고 있는지 가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나는 일전(日前) 동아일보 지면에서 이하와 같은 기사를 보았다. “제주도사(濟州島司) 전전모(前田某)는 수명의 직원까지 데리고 비싼 여비를 써가면서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제주도의 이권을 가져가실 자본가가 안 계십니까” 하고 제주도의 부원(富源)을 독점할 자본가를 구하러 다닌다니 제주도도 하의도(荷衣島)와 동일한 운명에 돌아갈 날이 멀지 아니한 모양(模樣)이다. 제주 고을 너는 과연 부끄럽지를 아니 한가? 너는 이십여만 대중! 적지 않다. 그러나 제물에 다 늙었는가? 열풍이 태동하는 청년도 꽤있고
또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경제학·사회복지학 분야에 능통한 진관훈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의 ‘제주근대경제사 신문읽기’입니다. 비록 지금의 경제시스템과 여건이 구비돼 있다하지만 제주 역시 과거의 실타래가 얽히고 설킨 땅입니다. 기업과 산업이 척박했던 제주에도 그 맹아가 등장하던 시기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제주사회와 경제상황을 살핀 ‘신문’을 통해 그 시절의 기업·경제가 지금 우리 제주의 삶과 어떻게 연관·연동되고 있는지 가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제주도는 토지가 척박하고 수전(水田)이 태무(殆無)한데 대지주가 무(無)하고 거개 자작농임으로 빈부의 차가 현격하지 아니하고 따라서 생활태도가 균일하며 소작쟁의는 볼 수도 없다. 경지면적은 전(田) 십만사천삼십일 정보, 답(沓) 팔백수십오 정보인데 매석당 이정이반보나 되며 작년 수확고는 대맥 삼십만 석, 속(粟) 삼십만 석, 수륙도(水陸稻) 삼만 석, 대소두 등 잡곡 삼만여 석, 감저(甘藷) 일천여만 관에 달함으로 소농민도 그리 곤난치 아니한 생계를 도모할 수 있다. 본도는 교통 불편의 관계상 자연 상업도 미비 부진하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