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에 다시 실험을 해 본 나는 단위 면적에 가장 많은 화소를 집적시킴으로써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가장 많이 참여시킴으로써 깊은 실재감을 촉발하는 것이 인공 세계를 구축하는 최고의 방법임을 깨달았다. 그 목적을 위해 하이피델리티는 기막힌 묘책을 연구하고 있다. 저렴한 감자기의 추적 능력을 이용하면, 현실과 가상이라는 양쪽 세계에서 시선 방향을 똑같이 모사할 수 있다. 머리를 어디로 돌리느냐가 아니라, 눈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다. 헤드셋에 설치된 나노 규모의 미세한 카메라는 당신의 실제 눈이 어디를 보는지를 파악해서 타인의 아바타에 그 시선 방향을 그대로 전달한다. 즉 누군가가 당신의 아바타에게 말을 걸면, 그의 시선은 당신의 눈을 응시하고 당신의 눈은 그의 눈을 응시한다는 의미다. 당신이 움직임으로써 그가 머리를 돌려야 할 때에도 그의 눈은 계속 당신의 눈을 향하고 있다. 이 시선 접촉은 대단히 매혹적이다. 친밀함을 자극하고 실재감을 흩뿌린다. ------ 『인에비터블, 미래의 정체』 (케빈 켈리 지음, 청림출판) 중에서 '이 시선 접촉은 대단히 매혹적이다. 친밀함을 자극하고 실재감을 흩뿌린다.' 전 이 마지막 두
▲ 긴장형 조현병(Catatonic schizophrenia). [사진=구글] 조현병(정신분열병, Schizophrenia)의 아형 가운데 긴장형이 있어요. 극단적인 모습은 이렇습니다. 스스로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요. 넋이 나간 양 외부 자극에 반응을 하지도 않고요. 타인이 어떤 자세를 잡아주면 그대로 유지합니다. 말도 없지요. 밀랍인형 같아요. 때로는 갑자기 몹시 흥분한 상태로 전환되기도 합니다. 가만히 두면 위험하죠. 무엇보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니까요. 고열이나 탈진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원로 선생님들에 따르면 과거에는 드물지 않게 보였다고 해요. 지금은 아주 드물거든요. 저도 한두 케이스는 봤지만 아마 전형적이라곤 할 수 없을 겁니다. 당장은 환자 보호 및 내과적 케어가 중요하겠지만, 조현병의 여느 타입과 마찬가지로 항정신병 약물로 치료합니다. 항정신병 약물이 처음 개발된 게 1950년이거든요. 최초의 항정신병 약물은 클로로프로마진(chloropromazine, CPZ)인데 지금도 사용합니다. 빨간 약. 아스피린이나 페니실린이 그러하듯 정말 혁명적인 일이었어요. CPZ가 개발되기 전에는 아무리 당대 최고의
하나마나한 말이겠지만, 서양과 동양 콕 집어 좁혀서 미국과 한국 정신문화는 많이 다르다. 오늘은 미국과 한국의 귀신에 대한 생각 차이를 개발소발 그리며 글쓰기 놀이를 하겠다. 요즘 애들은 중구난방 횡설수설 글쓰기하며 ‘의식의 흐름 기법이에요.’하던데, 그래, 그럼 나도 의식의 흐름 기법이다. ▲ 미국 망령, 구글에서 사람들은 망령이라고 하면 생전에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생각한다. 우리의 연구는 이 생각을 뒷받침해준다. 우리는 참가자들에게 이상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무언가 있다고 느껴지고 대기의 변화가 느껴지는 곳에 당신이 있다고 상상해보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참가자들에게 이런 느낌을 불러일으킬 듯한 사람을 묘사해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참가자들은 ‘혐오스러운’, ‘난폭한’, ‘정신병을 앓는’ 같은 말을 사용하며 생전에 나쁜 짓을 한 사람을 묘사했다. 악의 지속성은 공포와 일치할 뿐만 아니라 사후 세계의 지각과도 일치한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정상적인 사람)은 천국에 가지만 악한 사람(악한 마음)은 이 세상에 붙들려 있다고 생각한다
왕이 “과인과 같은 사람도 백성을 잘 보호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자, 맹자는 “할 수 있습니다”고 대답했다. 왕이 “어떤 근거에서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라고 묻자, 맹자가 대답했다. “제가 호흘이라는 신하에게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왕께서 대청 위에 앉아 계실 적에 소를 끌고 대청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왕께서 그것을 보시고 ‘소가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셨다더군요.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피를 받아서 종에 바르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하자, 왕께서는 ‘그 소를 놓아 주어라. 나는 그 소가 두려워 벌벌 떠는 것이 마치 아무런 죄도 없으면서 사지로 끌려가는 것 같아서 차마 볼 수 없구나’라고 했다면서요. 그래서 그 사람이 ‘그렇다면 종에 피를 바르는 의식을 그만둘까요?’라고 묻자 왕께서는 ‘어떻게 그것을 그만둘 수가 있겠느냐? 양으로 바꿔라’고 하셨다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왕이 “
“통증에 영향을 미치는 마음의 힘은 통증이 감소할 것이라는 기대만으로도 최대 50%까지 통증이 감소할 수 있는 플라시보 효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중에서 소설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가수 마돈나, 야구 선수 호르헤 포사다 등 유명인사들은 요료법을 지지합니다. 즉 통증에 오줌을 마시거나 사용하는 치료법이죠. 저자에 따르면 그 또한 플라시보 효과로 판명됐다고 합니다. 두통에는 타이레놀 같은 해열진통제를 널리 사용합니다. 편의점에서 팔죠. 재미있는 건 ‘요통’에 대해선 타이레놀 같은 진통제는 플라시보와 효능 차이가 거의 없더라는 겁니다. 통증은 노시보(Nocebo) 효과가 상당부분 발휘되어 나타난다고 알려졌습니다. 노시보는 플라시보의 반대 개념으로 암시에 의해 신체 증상을 유발하는 겁니다. 책에선 노시보를 설명하기 위해 이런 사례를 들었죠. 피실험자에게 가짜 전극을 머리에 꽂고 전류를 흘려보내는 시늉을 합니다. 피실험자는 실제로 통증을 느낍니다. 찌릿찌릿. “으아악...” 마음이 신체 감각 뿐 아니라 신체 반응에도 직접적으로 영
어린아이의 죽음이나 생계 수단의 대량 파괴 같은 불의의 장면을 목격했을 때는 사람들로 하여금 비난할 대상을 찾도록 하는 뭔가 특별한 것이 존재하는 듯하다. 우린 이런 충동을 가리켜 ‘쌍의 완성’이라고 부른다. (...) 부도덕의 전형적인 사례는 행위자와 수동자의 ‘완전한 쌍’을 이룬다. 살인, 절도, 학대, 사기 등에는 모두 사고하는 행위자와 그의 행위로 인해 해를 입는 상처 받기 쉬운 감수자가 존재한다. 그러나 때로 불의의 정도가 아주 심한 경우에는 명백한 도덕적 행위자가 없는데도 우리의 부도덕 탐지기에 시동이 걸린다. (...) 너무나 끔찍한 일이기 때문에 그 사건을 불운이라고 치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끔찍한 일을 사악한 존재의 행위로 이해한다. 불의에 대한 이런 지각을 바탕으로 이원적인 도덕적 틀이 작동하게 되는데, 이 틀은 현재 마음을 가진 존재가 둘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즉 고통을 입은 도덕적 수동자만 있고 책임을 물을 도덕적 행위자가 없기 때문에 불완전한 상태다. 이때 이 쌍을 ‘완성’하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은 행위자
▲ Space-Time 이미지 (출처: 구글) 1. “시간이 금방 가네요. 나이 들수록 점점 빨라져요.” 60대 후반인 Y씨는 약 한 달에 한 번 가량 우리 병원에 방문하세요. 엊그제 온 것 같은데 벌써 한 달이 더 지났다며 시간이 왜 이리 빨리 가는지 모르겠대요. 표현을 보세요. 저도 그랬지만, Y씨도 부지불식에 시간을 자신과는 무관하게 일정한 속도로 흘러가는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실체인 것 마냥 여기고 있어요. 변하지 않는 진리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점점 빨리 가니 절대진리가 바뀌었을 리는 없고 내가 이상해졌나? Y씨가 이상해졌을 리 있겠습니까. 다른 분들도 나이 들어갈수록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고들 하잖아요. 그 분들이 다 거짓말하겠어요? 사실이죠. Y씨가 시간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거고요.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은 아닙니다만, 위대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시간은 당신과 무관한 독립된 무엇이 아니며 따라서 객관적 시간의 이행이란 허구라고 말했다더군요. 또 불교에서는 시간 뿐 아니라 애당초 객관적 실체라는 건 없다고 하더라고요. 삼라만상 모든 건 오직 마음의 작용일 뿐이라고. 그
저자는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인 대니얼 웨그너다. 2010년에 루게릭병(ALS,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 진단을 받았고, 2013년 7월에 65세 일기로 사망했다. 대니얼 웨그너가 직접 쓰진 못 했다. 그의 구상과 생각을 글로 옮겨 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대학원 시절 그의 지도를 받던 카트 그레이가 완성했다. 이 책은 인지심리학, 사회심리학 교양서적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독서모임 Hs의 추천으로 읽었다. 지난 16일 완독했다. 읽을 때는 전에 독서한 관련 내용이 떠오르면서 정리하는 느낌도 있어 좋았지만, 다 소용없다. 읽을 때뿐이다. 벌써 다 잊어먹었다. ‘잡으려 애써도 재 되어 바람에...’ 이젠 이런 현상이 새삼스럽지도 서글프지도 않다만. 하여, 뭐라도 남겨두려 한다. 당장 이 포스트에선 뇌사와 식물인간, 무동무언증, 감금 증후군의 구분에 대해 신경학 책을 찾아 정리해 둔다. 이 책에서 깊이 다룬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만, 글쓰기를 위한 브레인스토밍 차원이다. 걱정마라. 이 책에서 다룬 중요한 이야기들은 연속된 포스트를 통해 마구잡이로
“1894년 봄, 내가 초청받아 가기로 되어 있는 어느 무도회에 그녀가 참석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 파티에서 내 환자였던 그녀가 빠른 템포로 춤을 추며 내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이후 그녀는 어느 외국인과 연애 끝에 결혼하였다 한다.” 마무리 단락이 감동적이라 언젠가 읽은 분들은 ‘아...’ 할 거에요. 1892년 가을 어느 날, 프로이트는 친한 동료 의사로부터 진료 의뢰를 받습니다. 환자는 양쪽 다리에 심한 통증으로 걷기도 힘든 여성이었어요. 더 심할 때는 통증과 함께 이완성 마비로 서 있을 수도 없었죠. 증상이 시작된 지는 2년도 넘었다고 해요. 「엘리자베트 폰 R.」양. 이 사례의 치료 과정은 『히스테리 연구』(브로이어, 프로이트 공저, 1895)에 자세히 실렸습니다. 완치. 노골적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얼마나 뿌듯했겠어요? 프로이트는 이 사례가 히스테리 사례에 대한 최초의 완전한 분석이었다고 회상하죠. 사용한 치료법이란 ‘병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 소재를 표면층부터 순차적으로 한 꺼풀 한 꺼풀 제거해 내는 방법인데, 우리는 이것을 매몰된 고대 도시를
“이러나저러나 한 평생, 잘 놀다 가면 그만이지.” 「왕의 남자」같은 사극 영화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대사죠. 작가 고종석에 따르면 ‘노름’이나 ‘노래’가 그런 것처럼 ‘노릇’도 ‘놀다’에서 나온 말이라더군요. ▲ 사진출처: 구글 ‘노릇’은 한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역할, 구실입니다. 분석심리학(융 심리학)에선 페르소나Persona라고 하지요? 페르소나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는 가면이라는군요. 어원이 가면이라고 해서 위선을 떠올리는 분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에서 당연하고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도리나 본분 같은 것을 말합니다. “어른이면 어른 노릇을 해야지” 세속을 떠나 산 속에 들어가 혼자 살지 않는 이상 노릇은, 페르소나는 피할 수도 없고 필요하기도 합니다. 노릇은 외부세계와 조응하는 인격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며 어른으로, 남편으로, 아내로, 선생으로, 선배로, 후배로 여러 ‘노릇’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물론 그것이 &lsquo
술 마신 다음 날 오전. 알코올이 다 빠져나가지 않은 상태다.조금 두근거리며 정체와 방향을 모를 약간의 ‘열정’을 느낀다. 오늘 아침 내가 그렇다. 억제제인 알코올이 몸에서 빠지며 일시적 반동(rebound)으로 약간 두근거리는 것인데, 이때 뇌는 ‘내가 뭔가를 열망하고 사랑하고 있나봐.’ 이런 ‘열정’을. 물론 더 심하면 열정이 아니라 왠지 모를 불안으로 느끼겠지만 말이다. 애당초 열정은 불안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보다 생리적 반응이 앞서고, 어떤 감정은 앞서 발생한 생리적 반응에 맞춰서 형성되는 것이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현대 과학에서는 우세한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들어본 적 없다고? “행복하니까 웃는 게 아닙니다. 웃기 때문에 행복한 거죠.” 들어봤을 거다. 이론 과학자들은 극적으로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고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당신은 슬퍼서 우는 게 아닙니다. 울기 때문에 (뇌가) 슬프다고 느끼는 거죠.” <James-Lange 이론>이다. 말이 나온
40대 여성 P씨. 어떻게 오시게 됐냐는 질문에 치료자 눈치를 살피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 지 머뭇거려요. “어떡해요. 제가... 자꾸... 남의 물건을 훔치게 돼요.” 그리곤 울음을 터트려요. 순진(?)한 의사 시절이라면 몰라도 내가 때가 많이 묻어서 그런지 법적 문제가 걸려있는지를 우선 고려하게 됩니다. 제 발로 병원에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알려졌거든요.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훔친 물건의 종류는 무엇이었는지, 훔친 물건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부터 묻게 되죠. “병의 증거”를 찾으려고요. 물론 고소를 당했거나 이미 형사처벌 받게 될 상황이었다고 해서 당장 병이 아니라고 배제할 수는 없지만요. 여기서 병은 ‘병적도벽’을 말하는 겁니다. Kleptomania. 19세기 초반 프랑스 의사들이 붙인 용어라고 해요. 한국어로 그냥 직역하면 도벽광(盜癖狂)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정식 병명은 ‘병적도벽’이에요. 프랑스 궁중 야사를 보면 남의 물건을 몰래 훔치는 왕들이 꽤 있었나 봐요. 왕의 한 끼 식사비만으로도 수십 개를 살 수 있을 테고, 아니 명령만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