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영화에는 주연 못지않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조연들이 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도 인상적인 조연들이 등장한다. 그중 영화 흐름의 물줄기를 쥔 조연은 아니지만 머리를 무겁게 하는 대사의 주인공이 있다. 어깨에 별 하나를 달고 있는 표 장군(기주봉 분)의 이야기다. “이수혁이 좀 봐. 쟤는 혼자서 두 마리나 죽이고 왔잖아!” ▲ 영화 속에서 한국군 수뇌부가 북한군을 세는 단위는 '명'이 아니라 '마리'다. [사진=공동경비구역 JSA 스틸 이미지] 남한의 이수혁 병장과 남성식 일병, 북한의 오경필 중사와 정우진 전사, 그리고 북한군 장교 한 사람이 공동경비구역 북측 초소에서 ‘의문의 합류’ 중 북한군 장교와 정우진 전사가 총격에 사망한다. 북한 오경필 중사는 북측으로 튀고, 남성식 일병은 남측 초소로 도망치고, 다리에 총상을 입은 이수혁 병장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돌아와 구조된다. 북측 초소로 싱겁게 ‘마실’을 다니다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을 크게 만든 이수
공동경비구역 내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한가운데엔 남북분단 경계선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제안으로 한발자국만 넘어서도 ‘월북’이라는 시비에 휘말리는 엄중한 경계선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선 사병들이 이 군사경계선을 옆집 가듯 수시로 건너 다닌다. 그리고 결국 비극적 사건이 벌어진다. ▲ 군사경계선을 드나들며 정을 나누던 남북 병사들은 파국을 맞는다. [사진=더스쿠프] 북한군 초소에서 서로 형ㆍ동생 하며 초코파이를 나눠 먹던 남북 병사들의 ‘잘못된 만남’은 파국을 맞는다. 전역을 앞둔 이수혁(이병헌 분) 병장은 남성식(김태우 분) 일병을 데리고 마지막으로 북한 초소를 방문한다. 정들었던 북한군 초소병 오경필(송강호 분) 중사, 정우진(신하균 분)과의 이별을 아쉬워한다. 모두들 이별을 앞두고 착잡하다. 남북 병사들이 어울려 ‘마지막 만남’을 아쉬워하고 있는 초소에 북한군 장교가 무심코 들러 문을 열다 두 남한 병사들과 마주친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하고 손 턴다’고
영화 ‘사막의 라이언(Lion on Desert)’은 이슬람 세계와 서구의 ‘문명적 충돌’을 아랍인의 시각에서 제작해 서구 극장에 올린 거의 유일한 영화다. 서구인들이 반길 리 없다. 항일투쟁기 영화를 만들어 일본에서 흥행몰이를 기대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3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해 고작 13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 이탈리아 최정예 사단과 기갑부대도 무크타르의 게릴라들을 쉽게 제압하지 못했다. [일러스트=케티이미지뱅크] 1981년작 ‘사막의 라이언’은 분명 흥행면에서는 ‘폭망’작으로 기록될 것이다. 어찌 보면 흥행 참패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던 것도 같고, 크게 흥행을 고려하지 않고 제작된 듯도 싶다. ‘사막의 라이언’은 이슬람 세계의 서구와의 ‘문명적 충돌’을 아랍인의 시각에서 그려낸 영화다. 서구사회에서 크게 환영을 수 없는 주제였던 것이다. ‘사막의 라이언’이 그린 리비아의 독립투사 오마르 무크타르(Omar Mukhtar)는 당시 리비아의 절대권
스코세이지 감독은 ‘사일런스’ 전편에 걸쳐 고통스러운 ‘후미에踏み絵’ 장면을 배치한다. ‘예수상 밟기’다. 일본 선교에 나섰다 당국의 검색에 걸린 제수이트 교단 신부들은 물론 일본의 크리스천(기리시탄ㆍキリシタン) 모두 후미에 검증을 통과해야만 혹형과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어찌보면 대단히 단순하고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는 ‘요식 행위’를 둘러싸고 고통스러운 장면들이 연출된다. 예수상을 밟는 대신 죽음을 택하는 사람도 있고, 대수롭지 않게 지르밟고 목숨을 부지하기도 한다. 나가사키 지역 기리시탄의 리더격인 모키치는 단호하게 ‘후미에’를 거부하고 예수처럼 조수 간만차가 심한 바닷가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빠져죽는 ‘익사십자가형’을 받는다. 페레이라 신부와 로드리게스 신부도 결국 밟게 되는 예수상을 오히려 거의 독학으로 성경 말씀을 접한 일본의 일개 촌로村老 모키치가 목숨으로 지킨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믿음은 배움과는 거의 무관하다. 악명 높던 ‘후미에’는 사
리들리 스캇 감독의 영화 ‘바디 오브 라이즈(Body of Lies)’는 2003년 3월부터 4월까지 약 한달에 걸친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벌어진 거짓의 대향연을 다룬다.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은 전쟁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20여일 만에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다. 그러나 개운치 않은 승리였고 전쟁의 정당성과 도덕성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리들리 스캇 감독은 ‘국가의 이익(National interest)’이라는 목적이 어떤 수단도 정당화시킬 수 있는지 묻는다. CIA 정예요원 로저 페리스(Roger Ferriesㆍ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에드 호프만(Ed Hoffmanㆍ러셀 크로우)은 신출귀몰하는 이라크 거물 테러리스트 알 살림(Al-Saleem) 검거에 번번이 실패하고 농락 당한다. 알 살림은 결국 이들의 추적과 감시를 비웃기라도 하듯 암스테르담에서 대형사고를 친다. 페리스와 호프만은 당연히 열이 받는다. 첩보원으로서의 자괴감과 모욕감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밥줄’에 위기의식을 느낀다. 밥줄 걱정하게 된 페리스는 기상천외한 새로운 작전을 기획한다. 유령
2차 세계대전 중 크고 작은 수많은 처절한 ‘전투’가 역사에 기록됐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스탈린그란드 전투, 유황도 전투 등은 ‘극단의 세기’ 혹은 ‘광기의 세기’로 불리는 20세기 전쟁의 난폭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에 비하면 ‘덩케르크 전투’는 2차 세계대전사에 변변히 명함도 내밀기 어렵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를 창고에서 꺼내어 먼지를 털어 펼쳐 보인다.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Lyan)’가 보여준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너죽고 나죽자’식의 살육전을 벌인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죽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2차 세계대전 중 벌어진 ‘덩케르크 전투’에선 노르망디식 살육전이 벌어지지 않는다. 덩케르크 해변에 갇힌 40만여명의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너죽고 나죽자’하기보다는 오직 살고자 한다. 전투 자체가 김이 빠진다. 독일군도 고립된 연합군 병사들을 섬멸하고자 하는 전의戰意를 불사르지는 않는다. ‘아아 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