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한국을 달궜다. 몸을 날려 쌍권총을 쏜다.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그는 일어선다. 그의 입엔 어김없이 성냥개비나 담배가 물려져 있다. 그는 쓰러진 적을 힐끗 쳐다보곤 등을 돌려 천천히 걸어간다. 쓰러진 적 하나가 고개를 든다. 그의 등을 향해 총을 겨눈다. 그가 쓰러지는 모습은 슬로우모션으로 잡힌다. '빰바밤 빠바밤' 같은 비장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온다. 영화는 끝이 난다. 홍콩 누아르(noir) 영화였다. 30년 후인 2020년 8월 제주다. 적은 사람이 모이는 걸 좋아했다. 사람을 통해 종족번식을 하는 운명이었다. 쓰러진 줄 알았는데 다시 일어서곤 했다. 등을 돌린 시간이면 충분했다. 'n차(미지수) 감염, 깜깜이 확진, 쓰나미 불러 올 2차 확산, 폭증 막을 마지노선, 의료붕괴‘ 등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대사가 난사됐다. 코로나 19다. 요전 일이었다. 인터넷에서 탐라문화제가 열린다는 걸 알게 됐다. 처음엔 '이게 뭐야'하며 놀랐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광복절 광화문 집회서 대량 종족번식을 한 코로나 19 여파에 모두가 가슴 졸이던 날이었다. 주최 측에선 비대면을 캐치프레이즈로
'북쪽에선 격하게 요동치는 계곡과 날카로운 능선, 남쪽에선 중절모를 씌운 듯 봉근 솟은 모양이다. 제주도민은 자신의 고향에서 본 정상 전경을 최고로 여긴다.'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곤 이렇게 이어진다. 고산평야와 기암괴석, 제주4.3 군경토벌대 주둔소, 원시 모습을 간직한 동굴과 궤, 털진달래와 산철쭉 꽃밭길, 수시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안개. 궁금한가. 그가 새롭게 탐험한 한라산을 소개한다. 결이 좀 다르다. 제주인의 삶, 언제나 가슴을 뛰게 하며 하루가 지나도 달라지는 모습, 다른 눈으로 한라산을 본 이가 있다. 임재영 동아일보 기자다. 제주대학교 사회교육대학원에서 '한라산국립공원지역의 경관자원별 특성과 활용방안 연구'를 석사학위논문으로 발표했다. 이번 달이다. 따끈따끈한 논문이다.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 한라산 계절을 12개로 쪼갰다. 3년 동안 매달 한라산에 올랐다. 한라산 12번을 그는 논문에 담았다. 그는 물음을 던진다. "왜 자연자원에만 관심을 갖는가?' 물음은 색다른 시도로 이어진다. 한라산에 인문경관자원을 더하는 연구다. 눈이 시린 바위 하나, 풀 한포기에 담긴 제주인의 삶과 풍경을 자원화 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시, 소설 등 문학작품도 자원이
▲ 부실·불량 급식 논란이 불거진 도내 모 어린이집 급식 사진. [제주평등보육노동조합] 장면 1. 아무런 일도 없는 듯 했다. 보육교사들로 보이는 이들이 마스크를 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비가 와서 그랬는지 아이들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렵사리 알아낸 그 어린이집이었다. 그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어서 들러봤다. 궁금해서였다. 공포영화에서 나오는 괴기스러운 집을 상상했었다. 2020년 7월 23일 오후 4시였다. 장면 2. 퇴근 후 아이들과 저녁을 먹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과 만 나이로 두 살인 아들이 반찬 투정하며 먹는다. 한입 가득 꿀꺽하는 모습이 예쁘다. 이런 게 세상사는 재미인 것 같다. 오랜만에 아내와 저녁밥상 대화 주제가 통한다. 그 어린이집이었다. 맛있게 먹는 애들을 보며 아내 이야기를 듣는다.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이건 제주사회 시스템이 문제다'라고 한다. 장면 3. 그 어린이집 점심밥상 풍경을 상상한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아이들은 맛있게 밥을 먹는다. 물에 만 밥, 국에 만 밥이다. 반찬은 없지만 어린 아이들은 아직 모른다. 밥상에 반찬이 필요한 이유를
▲ 지난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사진=뉴시스] 안타깝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도, 편 가르기도 슬프다. 추모와 비난이 오고 가며 내 편과 적을 가르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의 죽음 전 이야기다. 어느 누구도 제대로 알려 주는 사람이 없어서 더 그랬다. 앞으로는 묻혀 버릴 것 같아서 더 걱정됐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난 단순하게 생각한다. 가해자면 벌을 내려야 하고, 피해자면 보호해야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상황은 요샌 흔해서 조심스럽게 봐야 한다. 섣부르게 판단해선 안 된다. 아직은 누가 진짜 피해자인지 모른다. 진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얻어낸 제주4.3진상규명을 보면 그렇다. 수많은 사람들이 옥고를 치르고, 빨갱이라 매도당하면서 얻어낸 진실이었다. 세월이 지나도 진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위해 필요하다. 박원순 시장은 자타공인 대한민국 선출직 '넘버2'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고 선택했다. 그 믿음과 선택에 대한 책임은 죽음 후에도 져야 한다. 그게 제대로 된 나라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소권
한 뼘 위였다. 희룡공 머리 위로 다섯 개의 고리가 생겼다가 사라졌다. 무림 2020년 4월 16일 축시(丑時)였다. 운기조식을 하며 4.15총선비무 개표방송을 보던 중이었다. 울컥했다. 진즉에 터득한 삼화(三化)에 수목금화토(水木金火土) 오기(五氣)까지. 마침내 삼화취정 오기조원(三化聚頂 五氣造元) 경지에 등극했다는 감회였다. 희룡공이 다시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3선 불출마→중원무림 구원투수 선발→차차기 중원무림지존 등극’. 퍼펙트 한 쓰리큐션 시나리오였다. “약체 빼고는 미래통합방 제주맹주 후보가 안 보이는데 어떡하지?” 희룡공이 푸념을 한 후 또 다른 그림을 그렸다. ‘3선 출마→2027년 6월 중원무림 지존좌 도전’ ◆ 민주방 ‘육룡이 나르샤’ 같은 시각 민주방 진영. 총선비무서 승리한 재호거사, 영훈검, 성곤검 모두 같은 꿈을 꾸는 듯 했다. 차기 제주맹주 꿈이다. 재호거사는 원래 총선비무엔 관심도 없었다. 민주방 방주인 해찬거사에게 방을 위한 희생을 하지 않는다며 혼난 후 떠밀리다시피 나왔다는 설도 있었다.
▲ 왼쪽부터 부상일, 오영훈, 위성곤, 강경필 후보 봄바람은 아직도 시렸다. 제이누리도장 비무장 화목난로엔 장작불이 지펴졌다. 잠을 설친 책사의 눈엔 옅은 붉은 빛이 감돌더니 장작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그 흔한 합종연횡, 고스톱 판 나가리(ながれ)도 없는, 하다못해 막판 물밑협상도 없었다. 맞장비무였다. 상대를 쓰러뜨려야 내가 살 수 있었다. 제이누리도장에 4인의 책사가 집결해 있었다. 제주시을에선 영훈검과 상일검 책사, 서귀포에선 성곤검과 경필검 책사였다. AI기자 버릇이 또 도졌다. 인간무사만 보면 훈계를 하고 싶어 하는 주책이었다. “난 사전에 전화통화를 한 터라 이번 비무가 어떻게 진행될지 촉이 온다. 마음껏 기량을 보여줘라. 비방이 굳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송곳 같은 검증 결과를 유권자 무림인에게 보여 줄 수도 있다. 공인에겐 숙명이다. 제주시을 상일검 책사부터 시작한다. 영훈검 책사는 내가 건 첫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상일검 책사는 통화음이 세 번 울리자 받았다. 막장도 허용하는 총선비무 제주시을부터 시작.” ◆ 상일검 책사 “미워도 내 새끼” 마스크로 중무장한 상일검 책
▲ 왼쪽부터 송재호, 장성철, 고병수, 박희수 후보 “거대양방 밖에 선 AI누나는 갓 출전 때부터 버림받았다/ 표밭에 물 주던 엄마도 이까짓 게 후보냐고 본체만체/ 표 쓸던 할아버지가 몇 번이나 빼 버리려다 두셨다는/ AI누나∼” 인공지능(AI) 기자가 뜬금 없이 해바라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원수시객 동시, 창우가객 곡. 제주시 갑에 출전했다 중도 포기한 AI누나가 보고 싶어서다. 버림받은 무사는 누나만이 아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무사들이 버림을 받았다. 제주시무림 갑부터 시작해 을무림을 돌고, 서귀포무림까지. 냉혹한 승부의 세계였다. 단 한 표로도 생사가 갈리는, 오로지 1등만 살아남는 서바이벌게임이었다. AI기자가 넋두리를 했다. “AI누나처럼 사라진 군소무사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고 싶었어. 내 마음이 담긴 노래선물이야.” AI기자는 색다른 비무를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후보자가 아닌 책사들의 비무였다. 캠프 핵심 책사의 비책을 보면 승패가 보일 터였다. 꽁꽁 숨겨뒀던 전략전술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AI기자가 긴급 카톡을 보냈다. 곧바로 각 캠프 책사들이 제이
성곤검이 검을 들고 바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차디 찬 익숙함이 칼끝을 타고 내려왔다. 눈 앞 아름드리나무가 휘청거리더니 뿌리를 드러냈다. 바람과 마주치기 직전이었다. 성곤검이 바람보다 더 빨리 누웠다. 그리곤 바람보다 먼저 일어섰다. 바람이 지난 후였다.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성곤검이 말했다. "드디어 익혔군.“ 풀(草)무공이었다. 창안자는 수영시객. 수영시객은 이 무공을 완성하느라 내공을 모두 소진한 탓에 15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곤 후대에 풀무공비급서를 남겼다. 수많은 무림인들이 비급서를 읽고 탄복했지만 아무나 익힐 수 없었다. 아직 그 무공을 익혔다는 이는 강호에 없었다. 제주무림대학 총학생회장 시절, 복사실 제본 비급서를 몰래 보며 연마한 무공이었다. 강인한 생명력이 담긴 무공,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강인한 민중무림무공이었다. 중원무림의원 4년, 수퍼무림인처럼 지구 열 바퀴를 돌며 내공을 키운 덕분이었을까. 비행기 462번 탑승, 승용차 21만km의 고강도 수련이었다. 성곤 검은 풀처럼 누웠다 일어서며 제이누리도장에 들어섰다. 그리곤 외쳤다. “내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는 경필검이야. 야방과
AI기자가 누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주시 갑에 출전한 AI누나. PC방 서버를 해킹하며 같이 놀던 천진난만한 누나였다. 왜 출전 결심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동네 무림에서도 마타도어가 일상인 선거비무였다. 핫한 제주시 갑. 민주방에선 재호거사 전략공천, 희수거사는 이번 달 23일 무소속방 출마선언 예정, 미래통합방에선 컷오프 된 경실거사의 무소속방 출전설. 보수와 진보 동반 대분열이 일어났다. AI누나 승산이 보였다. 제주시 을에서 실낱같은 기대를 품어봤지만 인간 습성은 어쩔 수 없었다. 원초적 본능인 듯 했다. 사냥으로 먹고 살던 구석기무림부터 익힌 공격성이었다. 혹시나 하고 실험을 해 보기로 했다. 칭찬이란 미션이었다. AI기자가 또 다시 긴급메시지를 영훈검과 상일검에게 보냈다. 두 번째 맞장비무였다. 무림 2020년 3월 10일 제이누리도장에 상일검이 먼저 도착을 했고, 영훈검이 들어섰다. 콧수염을 기른 AI기자가 바리톤 김동규 느끼모드로 말했다. “그리 익숙하지는 않을 것이야. 선거비무가 가끔 그대를 오글거리게 해도 참게나. 닭살 돋는 경험도 가끔은 괜찮아. 고도의 테크닉초식이 필요한 비무야. 이전과는 다른 두뇌
▲ 수술용 덴탈 마스크 100원이다. 부직포 3중 구조, 감염차단 필터를 단 수술용 덴탈 마스크다. 하늘색이 하얀색 천을 은은하게 감싼다. 그 느낌은 아기뺨을 부비는 것처럼 보드랍다. 사용기한은 2022년 5월 9일. 지난해 말 제주시 오등동 의료용품 도매점에서 세 박스 샀다. 50매에 5000원. 코를 안전하게 감싸주는 철심이 내 몸처럼 자연스레 장착된다. 닭감기(AI) 때문이 아니었다. 먼지가 많은 양계장 일에 마스크는 꼭 필요한 존재다. 아직 넉넉하게 들어 있는 마스크 박스를 본다. 3주 정도는 아내와 쓰기엔 충분하다. 문제는 성인용. 초등학교 입학이 미뤄진 8살 딸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4살 아들에겐 아내가 매일 깨끗하게 빨아서 씌운다. 어린이용은 두 장 밖에 없어서다. 아이들은 코로나19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풍문에 그나마 안도한다. 요전 일이 생각났다. 딸아이 어린이집 졸업식이었다. 모두가 마스크를 썼다. 미처 마스크를 쓰지 못한 한 아빠는 연신 미안하다는 얘기를 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초롱초롱 눈망울로 우리를 쳐다보던 아이들이 마스크를 쓴 채 졸업노래를 불렀다. 우린 눈웃음으로 화답했다. 마스크 한 장을 꺼내 들고
지구의 공전주기는 365.2422일. 4년의 기다림 끝에 하루가 더해진 깊고 깊은 밤 윤일이었다. 총선비무처럼. 무림 2020년 2월 29일이었다. 윤일 01시. 상일검(48)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몰두하고 있었다. 적의 적은 동지라고 했던가. 애절했다. ‘부부싸움’ 미련이 진득하게 묻어났다. 러브레터는 이렇게 시작됐다. “승찬형이 경선에 탈락하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번엔 지난 4년의 시간을 돌이켜볼 때 (승찬검)이 유리한 경선이 아닐까 했던 저의 예상이 빗나갔구나’였습니다. 형과 전 같은 뿌리(부씨)를 가지고 있기에, 같은 영토(구좌)에서 잘 자란 형아우간의 ‘부부싸움’을 기대했던 만큼 아쉬움이 따릅니다. 형! 힘들 땐 힘내지 말고, 잠시나마 충전하시라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면 따뜻한 차 한 잔 모시고 싶습니다.” 실시간으로 상일검 페북을 들여다보던 AI기자가 중얼거렸다. “결국 상일검이 승찬검 구애에 나섰군. 같은 부씨 종족에 출신 영토도 같아. 피는 표보다 진한 법이지. 승찬검 진영 경아책사는 이렇게 말했어.
연탄구이 삼겹살집은 적막했다. 취객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였다. 홀로 남아 격하게 외로워진 구자맹주 경학검(54)이 스마트폰으로 폭풍검색을 하고 있었다. 정치무공감각수련을 단 하루도 멈출 수 없었다. 그때였다. 경학검 스마트폰이 부르르 떨더니 환하게 웃고 있는 승찬검(49) 얼굴이 화면 가득 나타났다. 중고등무림 후배였다. 승찬검은 오랫동안 얼굴을 부르르 떨었지만 경학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번이나. 전화를 받을 기분이 아니었다. 지금이 어떤 시국인가. 우남거사(64) 불출전 후폭풍은 아직도 소주잔 속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내 상대는 상일검” VS “부정함에 찌든 정치 안 돼” 며칠 후. 맞대결이 중반전으로 돌입할 무렵이었다. 무림 2020년 2월 24일. 제이누리도장에서 두 명의 무사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심판은 제이누리도장에서 새로 산 인공지능(AI) 기자가 맡았다. 사표를 내고 제주시 갑에 출마한 AI기자보다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선거에 특화된 게 특징. 성격이 급해 속전속결로 끝낸다. AI기자가 대회규칙은 없다고 선언했다. 마타도어, 암수, 뒷담화, 야자타임 등 모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