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세력이 끝까지 하지 않는 말 “내 탓이오!”

  • 등록 2026.03.13 11: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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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13)
불가능은 없다던 나폴레옹 ... 전쟁서 패하고도 남탓 일관
내란 주범들 모습도 마찬가지 ...내 탓이오 고백할 지도자 없나

많은 문학 사가(史家)들이 메리 셸리가 그려낸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한계를 부정하고 오만에 빠진 당대의 영웅 나폴레옹의 모습이라고 해석한다. 메리 셸리를 비롯한 당대 유럽인들에게 나폴레옹은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phenomenon)이었고, 특히 메리 셸리와 같은 작가들에게는 영감의 원천이면서 또한 비판의 대상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1797년생인 메리 셸리는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며 제국을 건설하던 시기에 가장 감수성 예민한 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부모인 윌리엄 고드윈은 자유주의 무정부주의자였고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로 나폴레옹의 혁명적 가치와 그에 따른 독재를 비판적 논쟁의 중심에 둘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그의 연인이자 후일 남편이 됐던 바이런과 쌍벽을 이루는 낭만파 시인 퍼시 셸리(Percy Shelley) 역시 나폴레옹의 광기 어린 전쟁과 독재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그의 대표작인 「오지만디아스(Ozymandias)」를 쓴 인물이다. 메리 셸리가 결코 나폴레옹에게 우호적이 될 수 없는 환경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분명 뛰어난 과학자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과학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마치 이카루스처럼 ‘생명 창조’라는 불가능에 도전한다. 모든 객관적인 ‘데이터’는 그것을 불가능이라고 가리키지만 프랑켄슈타인은 그 모든 객관적인 ‘사실(fact)’을 부정한다. 나폴레옹을 빼다 박았다. 

1813년 독일과의 전투에서 마그데부르크(Magdeburg) 요새를 방어하던 르마루아(Lemarois) 장군이 나폴레옹에게 “적군에 포위돼 통신과 보급이 끊겨서 나폴레옹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고한다.

나폴레옹이 격노해 회신한다. “나에게 다시는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쓰지 마라. 그것은 프랑스어에 없는 단어다(Ce n'est pas francais).” 가히 불퇴전의 오기를 보여준다.

피조물이 자신이 목적했던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괴물의 탓으로 돌린다. 이 역시 나폴레옹의 모습이다.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 60만 대군을 잃고 돌아와 공식보고서에 자신의 전략적 실패와 오판은 인정하지 않고 “나의 대육군은 승승장구했으나 예기치 못한 러시아의 추위라는 불가항력적 재난 때문에 무너졌다”는 기록을 남긴다.

 


그의 마지막 전투가 됐던 워털루 전투(1815년)에서 패배하고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돼 남긴 회고록에서도 패전의 책임을 네(Ney) 장군의 무모한 기병돌격과 그루시(Grouchy) 장군의 늑장대응을 패인으로 꼽을 뿐 자신의 책임은 한마디도 없다.

수많은 기록 어디에서도 자신의 무모함과 오판과 전략적, 전술적 패착 때문에 시베리아에서 죽어간 60만 프랑스 젊은이들에 대한 연민과 죄의식을 찾을 수 없었던 인물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 역시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세상에 불러낸 괴물의 고통에 단 한 순간도 연민과 책임감을 보여주지 않는다.

나폴레옹을 영웅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적어도 메리 셸리에게 나폴레옹은 프랑켄슈타인처럼 광기에 사로잡힌 비인간적인 천재에 불과했던 듯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은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섬에 유폐돼 홀로 눈을 감았듯, 자신의 과오를 외면하고 자신의 과오로부터 도피한 프랑켄슈타인도 아무도 없는 땅끝 북극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프랑켄슈타인이나 나폴레옹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면 어땠을까. 가톨릭 미사의 시작 때 ‘고백 기도(Confiteor)’라는 것을 한다고 한다. 김수환 추기경 덕분에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Mea Culpa(내 탓이오)’ 기도문이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자매들에게 고백하오니,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으며, 자주 나의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나의 큰 탓이로소이다(Mea culpa, mea culpa, mea maxima culpa).”

기도문 중에서 ‘의무를 소홀히 했다(omission)’는 말이 중심에 자리 잡는다. 적극적으로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마땅히 해야 할 인간의 도리를 행하지 않은 것 역시 죄에 해당한다는 인식이다. ‘세상의 혼탁함이나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불행까지도 나에게 그 책임의 지분이 있다’는 연대 책임을 인정하는 기도문이다. 

이 ‘고백 기도’의 정신을 따른다면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피조물이 괴물이 돼 동생과 약혼녀까지 죽이는 악행을 저지르지만, 그 책임 역시 프랑켄슈타인이 나눠 져야 할 연대책임이다. 60만 나폴레옹의 병사들을 학살한 러시아군의 악행의 책임 역시 나폴레옹이 연대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암살당하기 며칠 전 김재규 정보부장 및 최측근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측근들이 민심 악화와 시위 상황을 보고하며 우려를 표하자 내뱉었다고 하는 “당장은 내가 욕을 먹더라도 후세 사람들이 내 업적을 평가해 줄 것이다. 내 무덤에 침을 뱉더라도 상관없다”는 말이 그의 고별 연설이 된 셈인데, 해석이 참으로 난해하다.

그의 업적과는 별개로 인권탄압과 독재에 대해 ‘mea culpa(내 탓이오)’ 한마디만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떨치기 어렵다. 그의 후임자들 또한 국민을 배신해 탄핵을 당하고 사형선고를 받기도 하고 교도소에 수감돼서도 누구 하나 ‘mea culpa’가 없다.

그들의 비극이 그들의 탓이 아니라면 그들을 단죄한 국민의 잘못일 수밖에 없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그들 대신 국민들이 그들의 비극에 연대책임을 지고 ‘mea culpa’를 외쳐야 할까.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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