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으라 마라” 국가는 정말 국민을 위할까

  • 등록 2026.01.30 11: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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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8)
국가에 결혼 · 출산이란 무엇인가
노동력 · 납세자 재생산 도구일까
생명창조 자격까지 판단하는 권력

‘괴물’이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찾아와 자신의 ‘짝’을 만들어 달라고 대놓고 ‘말’을 하면서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그의 피조물인 괴물과의 관계가 파국을 맞는다. 하나님의 인간창조와는 이 부분에서 결이 다르다. 아담의 외로워하는 모습을 본 하나님은 아담이 요구하지 않아도 ‘이브’를 만들어 ‘짝’을 이뤄주지만,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다르다. 
 

 

영화 속 ‘괴물’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나는 너무 외롭고 비참하다. 그러니 짝을 만들어달라’고 읍소한다. 하지만 박사는 매몰차게 거부한다. 그 괴물이 짝을 이뤄 번식하도록 허용하는 것을 과학자로서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괴물이 납득할 만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세상 밖으로 던져버린다.

여기에서 괴물의 분노가 폭발하고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증오하는 마음이 극한으로 치닫고 북극 끝까지라도 쫓아가 복수하겠다는 증오심을 불태운다. “네가 나를 사회에서 추방했으니, 나를 받아주지 않는 세상을 모두 파괴하겠다”고 선언한다.

괴물의 분노는 결혼도 안/못하고, 출산도 안/못하는 우리의 20ㆍ30대와도 닮았다. 짚신도 짝이 있다고 믿어왔던 우리네는 ‘짚신도 짚신’ 나름이라는 현실에 직면한다. 괴물은 짝을 찾을 권리, 생식을 통한 미래를 설계할 권리, 관계를 생성할 능력 모두 거부당한다.

괴물이 그 권리를 프랑켄슈타인 박사로부터 거부당했다면 20ㆍ30대는 ‘국가’로부터 거부당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괴물에게 ‘넌 짝짓기 자격이 없다’고 선언하고, 국가와 사회는 ‘짝짓기 자격이 부족해서 그런 걸 어쩌라고?’라고 말하는 듯하다.

작가 메리 셸리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집필한 1800년대 초반에 이미 국가가 국민의 생명창조의 자격까지 판단하는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는 불온한 낌새를 채고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의 충돌을 그렸는지도 모르겠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괴물은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었던 것처럼 국가에게 국민은 수단에 불과하지 국민이 국가의 목표였던 적은 아마도 한번도 없었던 듯하다. 천재 소녀 메리 셸리의 촉은 틀리지 않았는지 ‘프랑켄슈타인적 문제’는 그로부터 150년 후 프랑스 지성의 별과 같았던 푸코(Michel Foucaultㆍ1926~1984년)의 방대한 연구물 「성의 역사(The History of Sexualityㆍ1976년)」에서 정리된다.

푸코는 그의 「성의 역사」에서 ‘생식 권력(Biopower)’이라는 개념을 통해 괴물의 분노를 가장 절절히 공감한다. ‘Biopower’라는 개념은 대개 ‘생체 권력’이라는 말로 번역되는 모양인데 정확한 의미는 ‘국민의 생식문제까지 관리할 권력’쯤이 맞을 듯하다.

푸코는 국가의 권력은 우리의 일상을 관리하는 것을 벗어나 우리의 가장 원초적인 ‘짝짓기와 번식의 욕구’까지 관리하는 시스템이 됐다고 고발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논리는 한 과학자의 독선이 아니라 근대국가가 출산, 번식을 다뤄온 방식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괴물의 짝짓기와 번식을 괴물의 권리가 아니라 자신이 ‘관리해야 할 것’으로 본다. 국가권력도 항상 우리의 삶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우리의 삶을 관리하고 우리의 미래까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설계하고 그 설계도에 따라 우리의 삶을 재단한다.

국가에 ‘결혼과 출산’도 노동력의 재생산, 소비자의 재생산, 납세자의 재생산, 병역(兵役) 체계의 재생산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짝짓기조차 국가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 국가는 당면한 국가 목적에 따라 국민들에게 ‘생체’를 더 생산하라 하기도 하고 ‘이제 그만 하라’고 지시하기도 한다. 혹은 특정 계층들을 향하여 ‘더 낳아라’고 하고 또 다른 계층에게는 ‘그만 낳아라’는 지침을 내리고 정책으로 유도하기도 한다. 

싱가포르에서는 최고명문인 싱가포르 국립대를 졸업한 남녀가 짝짓기를 하면 아파트분양 우선권을 부여한다고 한다. 반대로 정신박약아들에게는 강제 불임시술을 한다. 결혼과 출산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엘리트 계층만의 전유물이 되는 것은 어쩌면 국가의 입장에서는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 감히 청하진 못하나 몹시 바라던 바)’인 것이 푸코가 고발하는 생식 권력의 불편한 진실이다.

우리 젊은 세대가 결혼도 안 하고 출산도 안 한다고 ‘국가’의 걱정이 태산이다. “인구가 넘쳐나서 부담스러웠던 1960~1970년대 국가는 국민들에게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시작해서 “하나도 많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고 거의 막말을 해더더니 2000년대 들어서는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가가호호 아이 둘셋 하하호호 희망한국”이라는 엉뚱한 소리도 해보고, 이대로 가면 50년쯤 뒤에는 국가와 민족이 소멸한다고 아이 안 낳는 젊은이들의 도덕심과 애국심에 호소해보기도 하더니 급기야 ‘출산장려금’이라는 미끼도 던져본다. 중국의 전통기예인 현란한 변검(變臉)을 방불케 하는 변신이 국가의 화장하지 않은 민낯을 민망하게 드러낸다.

푸코는 국민을 목표로 여기지 않고 단순한 수단으로 여기는 국가권력에 국민이 저항할 수 있는 방법으로 ‘파레시아(Parrhehsia)’를 제시한다. 파레시아는 ‘모든 것을 말한다’는 뜻의 그리스어다.

파레시아란 단순한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권력 앞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진실을 말하며 대드는 행위’라고 규정한다. 우리말로 하면 ‘할 말은 좀 하고 살자’쯤 될 듯하다. 한번 제대로 열 받으면 국왕도 단두대에 세우고, 요즘도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하면 으레 자동차를 뒤집고 불 지르고 개선문까지 불질러버리는 프랑스다운 ‘격한 저항’이 푸코의 파레시스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쥐고 흔드는 생식 권력에 다분히 ‘파레시스적’으로 대응한다. 분노와 저주의 말을 가감 없이 쏟아내고 다 뒤집어버리고 불태워버린다. ‘프랑스 혁명’적이다.

괴물의 격렬하고 폭력적인 해결 방식에 혹시 푸코는 공감하고 박수를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괴물이 분노를 속으로만 삭이지 않고 파레시아적으로 대들었기에 영화의 마지막에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사과나마 받아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결혼ㆍ출산 거부는 ‘아직은’ 파레시아적이지는 않은 듯하다. 국가에 막말을 퍼부으며 비난하지도 않는다.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자는 선언문이나 성명서도 없다. 광장에 모여 외치지도 않고 버스를 뒤집고 불질러버리지도 않는다. 그저 말없이 결혼도 안 하고 출산도 거부할 뿐이다.

‘침묵의 저항’이다. 이 침묵의 저항이 격렬한 파레시아로 폭발하기 전에, 국가가 우리 젊은이들의 “고마해라 많이 무따 아이가”하는 ‘침묵의 외침’을 새겨듣고 조금이라도 국민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여겨주기를 소망한다. 아마도 푸코는 냉소할지도 모르겠다: “그거 내가 해봐서 아는데, 걔네들한텐 그런 거 안 통해.”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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