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람과 닮은 제주 돌담" ... 흑룡만리 이름 얻은 사연

  • 등록 2026.02.23 10: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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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톺아보기] 돌에서 와서 돌로 돌아가는 사람 (1)

 

제주는 자타가 인정하는 완벽한 석다도(石多島)다. 사방이 온통 돌 천지인 ‘돌의 나라’다. 화산섬 제주는 돌 문화가 섬 문화의 핵심이다. 지천에 널린 제주 돌은 예전부터 제주 사람들의 의식주 전반에 독특한 생활 문화를 만들어냈다.

 

제주 사람들은 돌에서 왔다가 돌로 돌아간다. 돌 구들장 위에서 태어나 산 담에 둘러싸인 묘에 묻혔다. 소금 생산도 갯벌이 아닌 돌바닥 위 돌 염전에서 이루어졌다. 옛 제주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다 ‘돌챙이(석수장이)’ 기질을 타고났다.

 

제주도는 신생대 제3기 말에서 신생대 제4기에 걸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다. 신생대 제3기 말 용암이 바다에서 분출되기 시작해 제4기 동안 화산활동이 계속됐다. 모두 79회 이상에 달하는 용암 분출이 관찰됐다.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제주는 '돌 박물관'이다. 섬은 산과 들은 물론 바다까지도 온통 돌밭이다.

 

1601년 안무어사로 제주에 파견된 김상헌이 쓴 『남사록』(1601년) 풍물 편에는 '제주 땅에는 바위와 돌이 많고 흙이 덮인 것이 몇 치에 불과하다. 흙의 성질은 부박(浮薄)하고, 건조하며 밭을 개간하려면 반드시 소나 말을 달리게 해서 밟아줘야만 한다. 흙 속에 몇 치만 들어가도 모두 바위와 돌이니 그래서 깊이 밭을 갈 수가 없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화산 분출의 산물인 제주에는 돌무더기가 산재하고 바람이 많아 농업 활동을 하기 힘든 척박한 환경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밭에 들어와 애써 키운 농작물을 훼손하는 짐승이나 가축도 골치였다. 너도나도 오래전부터 돌담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

 

제주 돌담은 쌓은 모양에 따라 외담, 접담, 잣벡담(잣길)으로 구분한다. 위치에 따라 초가 외벽 축담, 집 주변 울담, 집으로 들어가는 올렛담, 밭과 밭 사이 경계는 물론 소나 말 등으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는 밭담, 해안가 원담(돌 그물), 목장에 두른 잣 성과 캣담, 무덤을 보호하는 산담 등 다양한 형태로 제주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이뿐 아니라 제주 돌은 해녀들의 오랜 해방구 ‘불턱’이 되기도 하고 옛 군사 방어용이던 진성(鎭城)과 환해(環海)장성이 되기도 했다.

 

“도로변의 돌담, 집과 집을 구획하는 울담, 밭과 밭을 구획하는 밭담 등은 제주만의 명물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루마니아의 작가 게오르규 신부가 1974년 제주 방문했을 때 제주의 돌 경관을 예찬하며 남긴 소감이다. 요즘에도 제주의 산 담이나 원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외국인들이 신기해한다. 문화관광부는 2006년 한국의 거주 생활 부문에서 제주 돌담을 ‘100대 민족문화 상징'으로 선정했다.

 

제주 밭담은 제주인이 척박한 자연환경과 맞서 일궈 온 삶의 여정을 보여주는 농업 유산이다. 바람결을 따른 곡선과 현무암의 검은색은 제주 섬의 선과 색을 대표하는 제주 미학의 정수이다. 제주 돌담은 바람을 막지 않는다. 바람을 솎아주고 가는 길을 내준다. 얼핏 대충 쌓은 듯 보이는 울퉁불퉁 구멍 숭숭한 제주 돌담은 거친 바람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멋이 담겨있다.

 

밭담은 제주 전역에 다 있다. 시커먼 제주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제주 돌담의 총길이는 3만6000여㎞이다. 이 중 밭담은 2만2000여㎞로 추정된다. 이처럼 끝없이 이어진 제주 돌담을 현무암같이 검은 흑룡의 꿈틀거리는 모습 같다고 해서 ‘흑룡만리(黑龍萬里)'라고 부른다. 2013년 제주 밭담이 국내 최초로 국가중요농업유산 제2호로 등재되었으며, 2014년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의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제주에서는 매년 9월 제주 밭담을 대내·외에 알리고 농업 유산의 가치를 공유하며, 후세에 계승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제주 밭담 축제’가 개최된다. 밭담 길 걷기, 밭담 쌓기 체험, 밭담 그리기, 밭담 사진 전시 등 체험과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어린이 밭담 체험은 밭담 교육과 빙떡 만들기 체험, 밭담 쌓기, 불 턱 체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밭담 쌓기 체험 시에는 평생 돌을 쌓으며 살아온 제주의 숨은 ‘돌챙이(석공)’들이 나와 직접 사라져가는 밭담 쌓기 기술을 전수한다. 지금도 제주 곳곳에는 돌담 장인, 원담 장인,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 비석돌 장인, 비석 각자 장인, 초가장 축담 장인, 거욱대 장인, 돌 ‘벌르는’ 장인, 돌하르방 조각장인, 옹기 돌가마 장인, 돌담 장인 등 제주의 전통 석공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숨은 고수가 많다.

 

 

2023년 조환진 돌담 장인(1974년생)이 펴낸 『제주 돌챙이』에서는 제주도 돌 문화의 최전선을 지켜온 이들 12명의 삶과 일을 문답식으로 쉽게 정리해 놓고 있다. 지난해 조환진 장인을 만나자마자 나는 거친 ‘돌챙이’ 일을 하면서도 제주 석공 장인들의 삶과 일을 기록하고 책자로 만든 그에게 존경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수줍어하며, 서양사를 전공한 그가 아버지를 이어 2대째 석공을 하는 사연을 자세히 말했다. 그는 고 송성대 교수의 권유로 제주대학교 지리학과 대학원에 진학, 현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사실 제주 돌담을 ‘흑룡만리’라고 처음 이름한 사람이 바로 고 송성대 제주대학교 명예교수다.

 

“제주 돌담은 제주 사람과 많이 닮았다. 투박하고 언뜻 거칠어 보이기도 하지만 자연스럽다. 막히지 않고 여유롭다. 원래 제주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 집 울타리는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돌 다루는 솜씨가 있었다. 그러다 1970년대 이후 아파트 문화가 보급되면서 이제는 사라졌다. 지금은 이를 가르쳐 주는 데도 없다.”

 

제주에서 현재 유일하게 돌담 교육을 제공하는 제주시 한림읍 ‘돌빛나 예술학교’ 교장 조환진 돌담 장인의 주장이다. 조 장인은 학교를 시작하면서 '돌담 쌓는 기술의 대중화'를 목표로 내세웠다. 전문 직업인 양성 보다 자기 집 울담이나 밭담이 무너지면 스스로 쌓을 수 있게 가르치자는 취지였다. 50년 전 부모님을 도와 감귤 과수원을 조성하기 위해 밭담을 쌓던 때가 떠올라 나 역시 깊게 공감이 갔다.

 

2023년 조환진 장인과 제주 석공들이 이탈리아 ‘사시 에 논 솔로(Sassi e Non Solo)’ 축제에 참가하여 해외 석공들과 실력을 겨뤘다고 한다. 제주 석공들은 규정된 돌담 상부에 높이 40㎝ 돌하르방을 넣었다. 돌담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제주 돌담의 특성을 알리는 기회였다.

 

이어 제주 석공들은 아일랜드 도네갈 지역에서 열리는 ‘돌 축제’에 참가했다. 도네갈 시내 성당 앞에 1.4m 높이 돌하르방을 세우고 주변에 돌담을 쌓았다. 도네갈은 제주시 한림읍 ‘성 이시돌 목장’을 설립하는 등 제주 지역에 큰 공헌을 하고, 2018년 선종한 패트릭 J. 맥그린치 신부의 고향이어서 의미가 더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진관훈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 j369820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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