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이후 제주지역에서 바나나가 시설재배로 생산되었다. 그러나 1990년도 이후 바나나 수입 자유화가 되면서 일시에 바나나 생산은 어렵게 되었다.
바나나 대체작물로 감귤을 시설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고유의 과수시설 재배가 이루어졌다. 하우스 감귤은 시설(비닐하우스)에서 난방으로 온도를 조절해 재배한 감귤이다. 노지 감귤보다 당도가 높고 산도가 낮으며 속껍질이 부드럽고 과즙이 많아 식미감이 좋다.
2000년대 이후 제주에는 온주 감귤과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황금향, 청견 등 다양한 감귤을 재배하고 있다. 품종별로 수확하는 시기와 맛있는 시기가 다르다.
만감류의 선두주자는 단연 한라봉이다. 청견과 폰칸을 교배해 육성한 품종으로, 제주에서는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재배되었다. 2000년대 초 제주에서 본격 재배된 천혜향은 청견·앙콜에 마코트라는 품종을 교배해 육성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제주에서 재배한 레드향은 서지향과 한라봉을 교배해 육성한 품종이다. 레드향은 당도가 높고 과육이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껍질을 벗기기도 쉽다.
황금향은 남향과 천초, 청견은 궁천 조생과 크로비타 오렌지를 교배한 만감 품종이다. 청견은 과실 표면이 일반 감귤보다 매끈하고 오렌지보다 껍질이 두껍지만, 알맹이는 부드럽고 과즙이 풍부하다.
감귤은 대부분 생과로 먹긴 하지만 감귤가공 식품이 생각보다 많다. 감귤 주스, 한라봉 주스, 한라봉 차, 유자차, 금귤 차, 감귤잎 차, 감귤 떡 차, 감귤 주, 감귤 와인, 감귤 막걸리, 감귤 초콜릿, 감귤 비타민, 감귤 정과, 한라봉 아이스크림, 감귤 과자, 감귤 잼, 감귤 꿀, 감귤 고추장, 감귤 소스, 감귤 분말, 숙취해소음료 등. 예전부터 잘 익은 귤피를 말린 걸 진피(陳皮)라 했고 덜 익은 파란 귤피는 청피(靑皮)라 했다. 귤 백, 진피, 청피 등은 약재로 쓰거나 차를 달여 섭취했다.
감귤에 이어 키위가 제주지역에서 제2 과수로 자리잡고 있다. 2022년 감귤 대체작목인 키위 생산량은 제주가 전국 1위다. 당도가 높고 신맛이 적은 골드키위 소비가 증가하면서 제주의 골드키위 재배면적이 늘어나고 있다.
제주는 2008년부터 열대 및 아열대 작물인 애플 망고를 주축으로 용과·구아바·아떼모야·아보카도·패션 후르츠 등 과수류 재배를 시작했다. 열대과일 생산이 느는 이유는 온난화 영향으로 기온이 올라 열대과일 재배 가능 면적이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제주 농가에서 재배하는 열대작물은 10여 종이다.
제주산 애플 망고와 바나나는 제주산 브랜드를 구축하며 시장에서 반응이 좋다. 바나나는 제주에서 1980년대부터 재배했지만, 수입자유화로 경쟁력이 떨어져 사라졌다가 2016년 이후 다시 재배 농가가 증가했다. 국내산 바나나는 수입 바나나보다 비싸지만, 안전한 국내 먹거리를 선호하는 소비자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제주산 애플 망고는 외국산 망고보다 당도가 높고 품질이 좋아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명품 과일로 자리 잡고 있다.
37년 전 겨울, 말년 휴가 때 군 동기들이 제주도에 놀러 왔었다. 당시 아버지는 과수원에서 귤 여러 컨테이너를 가져다가 동기들에게 “딱히 대접할 것도 없고 귤이나 실컷 먹고 가라”고 하셨다. 한 컨테이너를 가득 채우면 20~22㎏정도다. 동기들은 아버지의 환대에 감격하기보다 물량 공세에 놀라는 듯했다. 덕분에 휴가 기간 내내 샛노란 오줌 누며 평생 먹을 감귤을 다 먹고 갔다.
제주 사람들은 감귤 수확이 끝나면 집에 몇 컨테이너씩 감귤을 가져다 쌓아놓고 먹는다. 가게나 식당 입구에 컨테이너 가득 감귤을 놔두고 오가는 손님들이 마음대로 가져가 먹을 수 있게 한다. 가끔 아주 많이 귤을 먹어 황달처럼 손과 발이 노랗게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금방 자연스럽게 사라지므로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제주 감귤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뭘까? 조사 결과 관광객들은 한라산과 돌하르방을 가장 많이 응답했다. 이런 연유로 한라산과 돌하르방을 감귤 스토리에 접목하여 만든 감귤 모자와 한라봉 벙거지가 탄생했다. 제주 여행의 필수 아이템이 된 지 오래다.
제주도에서 경관이 빼어난 곳 10곳을 지칭하는 영주(瀛州) 십경 중 5경은 귤림추색(橘林秋色), 즉 귤이 익어가는 가을빛이다. 가을, 제주는 온통 귤빛 향연이다. 요즘은 남녀노소 관광객의 애호품인 감귤 모자, 한라봉 벙거지, 감귤베레모, 감귤 볼 캡, 감귤 가방 등까지 더해 감귤나무 숲뿐 아니라 공항부터 시내에 온통 감귤 색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 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