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에 병부상서와 지추밀원 요직을 두루 거친 안돈(安惇)〔자는 처후(處厚)〕은 사건에 연루돼 폄적되어 담주(潭州)로 가는 도중에 의진(儀眞)의 정자에서 손님을 만나는데 거지가 나타나 마술을 할 줄 안다면서 한바탕 즐겨보자고 하였다. 안돈은 괴이하다 여기면서도 흔쾌히 예로써 대접하였다.
거지는 벼루, 붓, 종이, 향로를 가져와 달라하고는 흙과 침으로 먹을 만들었다. 흙에 입김을 불어넣어 유향을 만들고서는 불을 붙이니 특이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그런 후에 먹을 갈면서 안돈에게 자신은 글자를 쓰지 못하니 하급 관리에게 자신이 읊는 제시(題詩)를 써달라고 하였다.
“옥 같은 가인과 기름진 술이 있고, 술 취해 누운 원앙 장막 안에 있네. 아주 가까운 거리의 동정호에 그대는 가지 못하니, 장생불사가 최고의 풍류로다.”
안돈은 가만히 읽으면서 생각하였다 : 내가 향락을 탐하지 않은 게 벌써 오래 전인데 어찌 ‘옥 같은 가인’이 있겠으며 ‘술 취한 원앙’이 있겠는가. 더욱이 ‘동정호에 갈 수 없다’면 내가 신선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닌가.
안돈은 거지에게 감사하는 말을 하고 술 한 주전자를 건네니 거지는 단숨에 들이키고는 장읍하고 떠났다. 나중에 안돈이 동정호를 지날 때 조정에서 관직을 취소한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때야 안돈은 기이한 거지의 제시를 떠올리고는 더욱 괴이하다 여겼다.
이 전기적인 이야기 속의 영험한 점을 칠 줄 아는 거지는 점을 치면서 구걸하는 유형에 속한다.
옛날에 강호에서 점성, 관상을 보는 부류를 ‘건항(巾行)’이라 하였다. 직업 은어도 많았다. 해당되는 사람들 내부에서 비밀스런 정보를 덮어 숨기기 위해서였다. 『강호통용절구적요』에 수록된 내용은 이렇다.
“문왕과(文王課)1)를 원두(圓頭), 육임과(六壬課)2)를 육흑(六黑), 팔자 점을 치는 것을 팔흑(八黑), 문자점(文字占)을 치는 것을 소흑(小黑), 이튿날 운을 점치는 것을 대자건(代子巾) ; 새점(새를 이용하여 치는 점)을 치는 것을 추자건(追子巾), 작건(雀巾) ; 손을 재서 운을 점치는 것, 풀 수량으로 점을 치는 것을 초건(草巾), 줄을 세서 점을 치는 것을 양건(量巾), 철판을 쳐서 점을 치는 것을 만건(灣巾), 현악기를 타면서 점을 치는 것을 유조건(柳條巾), 금을 타면서 점을 치는 것을 협사건(夾絲巾) 등등으로 불렀다.
관심을 통괄적으로 참반(斬盤)이라 하였다. 사묘나 셋집에서 사는 자를 모두 괘장(掛張)이라 했는데 사묘는 음지, 셋집은 양지라 불렀다. 입을 열지 않고 관상을 보는 것을 아건(啞巾), 벽 옆 문전에 서서 관상을 보는 것을 창건(搶巾)이라 하였다.
관상책을 이용해 점을 치는 것을 심풍(尋風) ; 애매한 문장, 차용자, 18가락 곤선승(捆仙繩)으로 점을 치는 것을 박판(撲板)이라 한다. 땅 위에서 문자점을 치는 것을 연지(硯地), 대 위에서 문자점을 치는 것을 교량(橋梁), 찻집에서 문자점을 치는 것을 답청(踏靑), 조개를 가지고 문자점을 치는 것을 리흑(蜊黑), 판 위 묵화로 문자점을 지는 것을 혼판(混板), 판 위 남색 그림으로 문자점을 치는 것을 남판(藍板)이라 한다.”
여러 가지 별점, 관상술은 방법이 다르고 분파가 많아서 은어도 서로 다르다.
원숭이에게 재주를 부리게 하면서 구걸하는 방식도 있다.
‘원숭이 놀이’는 중국 민간 잡기 중 하나다. 속칭 ‘원숭이 부리기(耍猴儿)’이다.
청대 『북경민간생활채도』 제50 「사후도(耍猴圖)」의 제사는 이렇다. “이것은 중국에서 원숭이를 부리는 그림이다. 그 동물은 사람 모양으로 온몸에 털이 나있다. 영리해 스스로 귀면을 쓸 수 있고 옷 입기, 장대 오르기, 물구나무서기, 양 위에 올라타기 등을 할 수 있다. 사람이 원숭이를 길거리에 끌
고 가서 징을 쳐 신호하면 그런 행동을 한다.”
이런 기예로 구걸하는 것은 모두 기예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매예형(賣藝型)’에 속한다.
예부터 한 업종을 이루어 해당 은어를 가지고 「사후도」 그림을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
원숭이를 노자(老子)라 하여 원숭이 부리기를 노자 부리기, 원숭이를 묶은 쇠줄을 장명(長命), 개를 팔자(叭子), 양을 쌍각(雙角), 귀면을 검황(臉幌), 장소를 반자(盤子), 채찍을 제인(提引), 원숭이가 공연하는 나무 시렁은 천평가(天平架), 원숭이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게 만드는 것을 헌도자(獻桃子), 점포를 파식(擺式), 집을 와자(窩子), 향촌을 포회퇴(跑灰堆), 구걸한 재물을 향두(響頭)가 있다, 구걸하지 못하면 향두가 없다 등등으로 말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