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에 ‘주강호(走江湖)’라는 말이 있다. ‘강호(江湖)를 떠돌다’라는 뜻이다. 사전에는 ‘곡예사·떠돌이 의사·점쟁이 따위가 생계를 위하여 세상을 떠돌아다니다’라고 돼있다.
중국 문화전통의 세속관념으로 보면, 강호를 떠돌아다니는 부류는 하층민, 더 나가서는 천민들의 일이었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회포를 풀다(遣懷)』1) 시에서 읊었다.
“실의에 빠져 강호에서 술 마시고 다닐 때는 미인들 가는 허리 손바닥에 가벼웠네.”
실의에 빠져 곤궁해질 때 다른 길을 찾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강호 사회에 전락하고 사회 하층으로 빠져든다는 말이다.
송(宋)대 원채(袁采)의 『원씨세범(袁氏世範)』 「자제당습유업(子弟當習儒業)」에 있는 기록이다 :
“사대부의 자제가 일시적으로 세록을 받을 수 없고 의지할 재산이 없으면, 어버이를 섬기고 처자를 보살피기 위해서는 유생이 되는 것이 낫다.
자질이 뛰어나면 진사과를 공부할 수 있기에 위로는 과거 급제하여 부귀를 얻을 수 있다. 다음으로는 글방을 열어 가르치면서 속수(束修, 옛날 스승을 처음 찾아뵐 때 드리던 예물, 개인 교수에게 주는 사례금)를 받을 수 있다. 진사과 공부를 할 수 없는 사람은 위로는 서찰을 써주는 일을 하여 서신을 대신 써 주거나, 다음으로 글 읽는 법을 배워 초학자의 스승 노릇을 할 수 있다.
만약 유생이 될 수 없다면 무당, 의사, 승려, 도사, 농민, 상인, 기술자 등 모두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면서도 조상에게 욕을 먹이지 않으니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제가 떠돌아다니다가 거지가 되거나 도적이 되면 이것은 조상을 가장 욕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 사대부의 정통 관념이다.
어찌 모르겠는가. 고아함과 속됨, 즉 아속(雅俗)이란 모두 상대적이다. 홍구(鴻溝)와 같이 큰 틈이 있어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예부터 많은 아사(雅士)들이 강호에 빠져들었을 뿐 아니라 강호 속에 있는 사람도 자연히 전통 인격의 도덕, 미학, 가치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확고한 강호 정신 체계를 이어받아 그 복잡한 세계를 지탱하고 유지하였다.
거지 사회는 강호 사회의 한 계통이다. 여러 부류와 서로 의존하면서, 비교적 큰 측면에서 맑고 혼탁함이 진면목을 숨기고 끼어들어 섞인 ‘강호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거지의 ‘단체 인격’이 드러난 ‘의협(義俠)’과 ‘부랑자, 불량배’라는 이중인격, 그리고 그것과 ‘강호정신’의 본질적 연계성을 얘기하고자 한다.
한비자(韓非子)는 오래전에 말했다.
“협(俠)은 무력으로 금령을 범한다.”
초기 무협(武俠)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서 말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하고 빈곤한 사람을 구제하는 일은 어진 사람의 자세다. 믿음을 잃지 않고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것은 의로운 사람이 취하는 행동이다.”
이것이 협의(俠義)에 대한 중국 최초의 관념이다.
이를 근거로 사마천은 『사기』에 「유협(游俠)열전」을 썼다. 「유협열전서」에서 사마천은 의협의 인물과 그 행동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그 말은 믿을 수 있고 그 행동은 반드시 결과가 있으며, 한 번 승낙하면 반드시 성실하게 이행하고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사람들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뛰어든다. 다른 사람의 곤경에 뛰어들면, 이미 자신의 생사존망을 초월한다. 자신의 생사존망을 초월하나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공덕을 찬양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덕으로 원한을 해결하고 후하게 베풀고서도 그 대가는 적게 바랐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이 주를 달았다.
“의협의 기질과 풍모는 이렇다 : 반드시 우의를 중하게 여기고 신의를 강구하며 즐겁게 사람을 돕고 남을 위해 자신을 버린다. 말을 하면 행하고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하며 굳세고 정직하다.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며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덮어놓고 싸움을 벌이거나 제멋대로 흉포하게 굴며 힘을 믿고 폭력을 휘두르고 함부로 날뛰는 것은 결코 의협이 할 일이 아니다.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고 시비가 불분명한 강호 문파들 간에 서로 원한을 가지고 살해하는 것도 의협의 행동이 아니다.”
거지의 ‘집단 인격’은 마침 ‘협의’와 ‘부랑자, 불량배’라는 이중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사마천 『유협열전』 중의 여러 ‘협(俠)’은 대부분 외딴 시골, 민간의 포의(布衣), 즉 필부다. 출신이 비천하다. 유럽 중세기에 고정적인 경제력을 가진 기사 계층의,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가졌던 구성원들과는 선명하게 대비된다.
어쩌면 당시 거지가 아직 하층 사회의 구체적 단체를 이루지 못한 까닭에 사마천의 『유협열전』 중에는 의로움을 행하는 협객과 같은 거지 열전이 없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행방이 일정하지 않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유협(游俠)’의 ‘유(游)’는 거지가 강호에서 유랑하는 행적과 상통한다.
근대와 현대 사회에서, 거지가 단체를 결성하여 내부의 인적 교류 관계를 유지하는 신조는 ‘강호 의기(義氣)’다. 사회에서 거지가 비천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의협(義俠)의 행동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은 바로 중국 문화전통이 그 특수한 인격에 영향을 끼친 결과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견회(遣懷, 회포 풀다)」〔두목(杜牧)〕 : 落魄江湖載酒行(낙백강호재주행),楚腰纖細掌中輕(초요섬세장중경).十年一覺揚州夢(십년일각양주몽),贏得青樓薄倖名(영득청루박행명) : 실의에 빠져 강호에서 술 마시고 다닐 때는 미인들 가는 허리 손바닥에 가벼웠네. 십 년 만에 문득 양주의 꿈 깨니 청루에서 박정한 사내라는 이름만 얻었구나. ; 제목은 ‘회포를 풀다’ 뜻으로, 두목이 환락에 빠져 지내온 생활을 자책하면서 지은 시이다. ‘초요(楚腰)’는 가는 허리를 뜻한다. 옛날 초(楚)나라 왕이 허리가 가는 여자를 좋아하니 궁중 여인들이 저마다 허리를 가늘게 하려다가 굶어 죽기까지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장중경(掌中輕)’은 한(漢)나라 성제(成帝)의 총애를 받던 조비연(趙飛燕)의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출 정도였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양주(揚州)는 당나라 제일의 환락가였다. ‘양주몽(揚州夢)’은 환락에 빠져 지내온 덧없는 세월을 뜻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