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 물질을 통해 우주의 바다를 상상한 화가 나경아

  • 등록 2025.08.22 10: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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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이야기(43) 바다를 우주와 연결한 도발적 상상럭 ②

 

바다를 우주로 생각하는 해녀   

 

지구상의 바다는 지구의 3/4을 차지하며, 바다의 평균 깊이는 3700m이고, 부피가 13억 4000만㎦로 지구상의 대부분의 물을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양이다. 이 가운데 눈과 빙하가 2%가량, 이동이 자유로운 담수는 1%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거대한 바다를 우리는 거의 알지 못한다. 바다에는 경계가 없다. 그래서 바다는 전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지만 다양한 생물층의 지역들로 나눠져 있고, 생물들이 광합성을 하는 빛이 드는 유광층(有光層) 지역과 빛이 없는 무광층 지역으로도 구분된다.

 

또 다른 분류방식은 해수의 밀도나 화합적 성질의 변화로 구분하여, 햇빛과 강수의 영향으로 수온이 높고 염분이 낮으며, 밀도가 작은 표층(혼합층) 해수와 깊을수록 온도가 차겁고 염분이 높은 심해층으로 구분한다. 사실 바다는 다양한 생물들로 가득찼다. 이 경이로운 바다의 생물들은 가까이는 연안의 조간대에서 멀게는 먼바다 깊은 해저까지 수심에 따르는 생명들의 하모니가 해류를 타고 전지구를 오르내리면서 순환한다.

 

바다는 우주에 속한 지구 행성 속 물로 된 우주다. 제주 신화의 세계에서는 섬을 중심에 놓으면, 하늘은 천상계가 되고, 땅은 지상계(지하계)이며, 바다는 해양계(용왕)이고, 물속은 해저세계(용궁), 제주 섬 밖은 해양타계(바다 너머 이상향)가 된다. 제주의 잠녀(해녀)들이 믿는 중요한 세계는 바로 바다로써, 즉 해양세계와 해저세계이다. 바다야말로 곧바로 자신의 삶과 연결되는 생존의 지평이며, 잠녀(해녀)들은 거기에서 모든 생명의 원천을 얻는다.

 

잠녀(해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현실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살려면 바다의 생산력(토대)이 필요하고, 그곳에서 자연히 종교적 믿음이 탄생한다. 위험한 바다에 가려면 심리적인 안전감을 주는 신념체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해녀들은 바다의 신인 용왕을 제일의 신으로 의지한다. 생존을 위해서 믿는 구석, 즉 숭배대상이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화가 해녀 나경아의 작품세계

 

화가는 작품으로 자신을 말한다고 했다. 자신의 몸으로 만든 작품인 것이다. 메를로 퐁티는 “모든 기법은 몸의 기법이며, 그러므로 그 기법은 우리 살(肉)의 형이상학적 구조로 형상화하고 확대시킨다”라고 했다. 나경아는 사물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작용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영혼의 창을 통해 축적된 이미지들을 표현한다. 닮은 것이 아니라 몸이 느낀 행위 자체라고 할까?

 

나경아의 두 개의 직능으로 합쳐진 ‘바다 표현(화가)’+‘해녀(직능)’ 라는 호칭에서 보면, 화가 해녀라는 말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래서 나경아에겐 해녀가 체험이나 놀이가 아닌 실존의 몸부림이고, 화가의 삶은 결코 취미나 여가가 될 수 없다. 나경아는 보다 더욱 자신의 몸으로 바다를 감싸안을수록 몸이 느끼는 바다의 파동은 강렬하다. 그것을 옷감에 비유해서, 그 바다는 자신을 둘러싼 바깥감이고, 몸의 체온은 안감이 돼 자신이 몸의 박동이 바다에 반응하는 방식이 된다.

 

우리 세계의 물질들은 구상과 추상의 형태를 동시에 갖는다. 모든 것에 시선이 멈추는 순간 어떤 특별한 형태로 각인돼 기억된다. 비록 그 물질의 유체(流體)가 불확실한 구조를 갖더라도 시선이 정지되는 순간, 그 물질의 어떤 구조적인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체의 추상 형태는 기하학의 변형된 모습들일 것이다.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척도의 차이에 따라 무분별하게 보이는 프렉탈(fractal) 구조도 축적을 줄여서 보면, 층위적으로 반복되는 같은 패턴을 유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패턴은 모든 자연의 구조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물의 흐름, 파도의 작용, 빛에 의한 물속 물체의 어른거리는 모습도 처음에는 매우 복잡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어떤 반복되는 패턴이 있어서 연속적인 단순성을 확인할 수 있다.

 

나경아의 인식은 우주 창조에서부터 시작되는 빅히스토리적 역사관의 바탕이 되며, 인상으로 받은 느낌에 충실한 추상적 관점은 야수파적인 영향을 보인다. 야수파는 19세기말 후기 인상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아, 강렬한 색채, 꿈틀대는 강한 선, 과감한 보색대비, 그림자 없는 평면적인 색깔 처리, 자극적인 단순한 형태, 마치 즉흥적으로 보이는 감정표현 터치 등은 이후 표현주의와 입체파의 토양이 되었다. 나경아는 신중하게 계산된 심미적인 배색 처리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직관 행위를 높이 사고 있다.

 

 

나경아의 '떠다니는 섬' 시리즈는 우주에 떠다니는 자유로운 행성들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바다에서 주황색 테왁을 보호장구로 삼아 물질하는 잠녀(해녀)들의 무리진 모습이다. 그러나 나경아에게는 그 모습이 우주의 행성들로 보여서 천체 한 공간에 떠다니는 별들로 인식된다.

 

이 상상은 나경아 자신이 물속에소 몸에 체화된 현실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자신도 해녀의 일상에서 해녀공동체와 인식을 같이 하지만 화가의 인상과 획득된 시선은 일반적인 사실성으로 회귀하지 않는다.

 

물에 뜨고 지고 하는 것은 먼 거리의 별들이 깜빡거리는 것과 같을 것이고, 해녀들이 이동하는 움직임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어떤 테왁은 유성으로, 어떤 테왁은 공전하는 별로 보는 것이다. 시각을 미학으로 말하는 것을 관점이라고 한다면, “자연은 내면에 있다”는 세잔의 말은 되새겨 볼만하다.

 

 

바다는 생산지이자 작업장이다. 산업적인 개념으로 보면, 해녀들이 물질하러 가고 오는 모습은 말 그대로 '출근길'과 '퇴근길'에 다름 아니다. 이 작품들은 해녀들의 모습을 온전하게 드려내는 것이 아니라, 바다, 해안의 현무암 환경에 오롯이 녹아든 인상적인 부분들만 강조를 하고 있어, 마치 해녀들이 우주의 한 부분 아니면, 공간에 흡수돼버려 경계없이 블랙홀로 합쳐지는 형상이 돼버렸다.

 

이번 개인전 작품들은 물질이라는 작업에서 숱하게 뜨고 잠기는 일과 같다. 마치 화가 자신도 실감하는 행위로써 뜨고, 잠기고(지고), 이동하면서, 때로는 깊은 곳(심연)으로 들어가고, 어떤 경우에는 유영하면서 바다속(우주)을 절대자의 시점으로 보는 것을 경험한 까닦에 탄생한 작품들이다.

 

'나해녀'는 화가 자신의 자화상이다. 그 자화상은 화가의 미학적 사유를 말해준다. 마치 해녀인 자신이 우주인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우주와 물속의 작업이 유사하게 보이는 이 작품은 어쩌면 나경아의 현재 인생에 대한 표상일 것이다. 생존을 위해 응시하는 시선, 깊은 심연이 물속과 우주의 심연이 다르지 않다는 확신에 찬 자화상 말이다. 그러나 이 자화상은 비단 자신이 아니어도 무방한데, 동네, 이웃집의 삼춘들이라고 해도 지구인의 초상화라는 점에서는 결코 틀리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나경아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그의 작품들은 꽃?, 평야?, 태양?, 산?, 풍경?, 철조망? 호수?라는 등 수많은 상상력으로 돌아올 것이다. 사실 그 무엇이라도 상관이 없다. 나경아가 본 시선은 정돈된 아름다움보다는 직관으로 현실의 물속에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상상적 확장을 시도한 것이다.

 

작은 해안 마을의 해녀들의 작업을 통해서 스펙타클한 우주의 바다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경아의 시선만이 가능한 일이다. 한 점에서 폭발하여 펼쳐진 빅뱅의 우주를, 테왁 하나로부터, 여러 명의 해녀들이, 우주의 행성이 되는 시선은 미는 매우 도발적인 의미를 갖는다.

 

고답적인 교육의 보수성을 일시에 걷어차 버린 나경아의 이번 '떠다니는 섬'은 삶과 예술의 합일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영혼의 창을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위해 활짝 열어젖힌 삶의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김유정 제주문화연구소장 jci61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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