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경아, 삶을 바닷속으로 가져와 그림으로 해녀가 되다

  • 등록 2025.08.07 09: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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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이야기(43) 바다를 우주와 연결한 도발적 상상럭 ①

나경아는 1977년생으로 화가이면서 해녀다.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 현직 해녀로서 물감을 사기 위해 물질하면서 그림을 그린다. 추계예술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디자인과 순수회화를 전공하여, 스쿠버 다이빙을 배운 후 해녀 학교를 나와 테흥리 해녀가 되었다.

 

그녀는 매우 강렬한 바다속 자연의 역동적인 느낌을 온몸으로 표현하듯 작업을 한다. 물질은 하루에 4시간 정도, 돌아와선 밤에 그림을 그린다.

 

이번 '떠다니는 섬'은 지난 4일부터 오는 31일까지 설문대여성문화센터 여성작가 발굴 지원전의 일환으로 기획초대전 ‘바다의 색-우주의 호흡:해녀가 본 바다’을 열고 있다. 게재된 작품들은 이번 전시에 출품하는 작품들이다. 4년차 현직 해녀인 나경아는 세계 최초의 화가 해녀가 되었다.

 

 

화가의 시선, 영혼의 창(窓)

 

우리가 오늘 하루도 깨어있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사는 세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황홀한 일이다. 그 아름다움을 몸이 느끼게 하는 것이 눈이다. 눈이 곧 몸이기 때문이다. 화가라는 이름은 영혼의 눈인 창을 열고 사는 자이며, 몸으로 느끼는 사람, 그가 그리는 그림은 영혼의 울림이 된다.

 

수년 전 삶을 바닷속으로 가져와 화가로 살면서 해녀(잠녀)가 된 여성이 있다. 서귀포 태흥리의 이주 정착민 해녀이기도 한 그녀는 소라를 따서 물감을 사는 화가이다. 그녀는 바다를 심연의 우주에서 떠다니는 작은 행성으로 생각한다.

 

삶은 힘에 부치지만 그래도 생활은 늘 즐겁다. 사실 우리 모두의 삶은 존엄한 것이다. 존엄함은 모든 살아가는 것들에 동등하게 부여돼야 한다. 인간 누구도 삶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생물학적 존재의 최고의 목적이야말로 생존이라는 하나의 절대적인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에는 어떤 식으로든 신분의 귀천(貴賤)이 있어서는 안 된다.

 

본다는 것은 위대한 것이다. 자신이 정경(情景)을 바라봄으로써 상대방 풍경의 사물들도 나를 본다. 화가의 영혼은 눈을 통해 사물에서 뿜어대는 파동을 만나고 그 순간적인 느낌은 자신의 몸에 흡수된다. 그래서 본다는 것은 시각에 맺힌 인상(印象)이 몸으로 각인되는 순간적 기억 활동이며, 그것이 무의식에 남아 비로소 대상에 대한 관념이 된다. 우리의 삶은 경험적 관념이며, 그런 관념은 미학의 토양이 된다.

 

보는 것은 어떤 표상을 만들어내는 일이며, 이 표상은 사상에 선행한다. 표상은 상징이나 기호 이미지가 된다. 그래서 화가가 표현한 형상들은 그의 경험적 아름다움이 된다. 화가는 수많은 삶의 흔적(인상)들이 혼돈처럼 흩어져 있는 것들을 봄(인상을 모음)으로써 하나의 형태 적인 리듬을 갖게 된다. 본다는 것은 조화로운 리듬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세계 최초의 화가 해녀

 

모든 직업은 자신이 선택한다. 그러나 그 직업에서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지기는 어렵다. 나경아는 화가로 살기 위해 해녀를 직업으로 선택한 여성이다. 그래서 해녀가 화가가 된 것이 아니라, 화가가 해녀가 된 것이다. 그래서 단연 세계에서 최초로 화가 해녀가 되었다. 화가가 해녀가 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세상의 관념과 삶의 기술들을 해결해야 하므로.

 

사실상 화가로 살려면 생계와 작업에 필요한 재료를 위해 노동을 해야만 한다. 바로 나경아의 경우가 그렇다. 그녀가 화가로 살기 위해서는 해녀가 돼 자신의 생활비와 물감값을 충당해야 했다.

 

화가가 해녀가 될 수밖에 없는 조건에는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재료 공급이 필요한 경제적인 원인이 있고, 두 번째는 그림을 그리려는 주제가 바다에 있다. 남들보다 화가 해녀가 수월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나경아가 이미 화가로 살아왔고, 해저를 즐길 수 있는 직능수행(스쿠버 다이빙)의 기술이 갖춰졌기에 화가 해녀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에 일반인 해녀가 화가가 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해녀라는 직능으로써 생계만을 위해서 바다에 가는 목적이 다르고, 해녀가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따로 예술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해녀가 취미나 여가 활동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해녀가 화가는 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나경아의 경우처럼 이미 현역 화가로 활동하면서, 스쿠버 다이버로써 바다의 기술과 지식을 갖춰진 전문 화가라는 해녀가 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삶은 지고하고 존엄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미물(微物)의 삶도 다르지 않다. 자연은 커도 하나다. 큰 것에서 작은 것이,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들과 서로 얼개로 연결되고, 그 상호교감으로 우주 만물을 이루고 있다. 우주의 실체란 모든 생명체와 사물이 서로 작용하면서 그것들의 순환 변화하면서 나타나는 본질에 대한 현상 운동일 것이다. 자연에서는 하나의 과정 속에 결과가 있고 다시 새로운 것이 생성된다. 그러므로 세계, 곧, 우주의 신은 바로 자연자체인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연 만물이 각자의 이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애써 탄생한 생명체라도 자연선택으로 도태되지만, 안타깝게도 더욱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인간들이 저지르는 사회적 결과에 의해서이다. 자연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게 하는 것은 사람이며, 탐욕스런 사상으로서의 체제이자 특정 종교이다.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는 인류 진화된 사회적인 결과에 다름아니다.

 

그렇다면 삶이란 무엇일까. 삶(life)은 생물의 전략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일이다. 생물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영양을 받고 자라면서 번식하는 동물과 식물들이며, 그 가운데 사람은 한 생명체로서 생존의 지평을 열어가는 영장류 포유동물이다. 또한 삶이란 사람이 일상에서 살아가는 그대로의 모습이나 형편을 말한다.

 

삶의 문제는 인생에서 매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삶의 문제에 대해 일찍이 공자는 인간의 죽음을 알기는 커녕 “삶도 모른다”라 했고, 화가 폴 세잔은 “산다는 건 끔찍하다”라고 했다. 물 위에 사는 제주섬의 여성들은 사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살암시민 살아진다”라고 덤덤히 말했다. 그만큼 삶의 유형은 많으며, 그 형태가 다양한 만큼 구절양장(九折羊腸) 같은 사연도 넘칠 것이다.

 

또 인생길에 생노병사라는 고통이 있어서 욕망이 많은 우리들로서는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해답을 알지 못한다. 누구라도 우리에게 영원한 삶은 주어지지가 않는다. 지구상의 인구수만큼 삶에는 이유가 있으므로, 목적과 열망을 가지고, 지금, 여기 존재하는 의미만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현재에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삶이란 무엇이냐?라고 물을 테고, 그것을 새로이 찾을 것이다. 어쩌면 삶이란 저마다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억하고 기념하는 사회적 동물의 궤적일테니까.

 

그렇다면 화가의 삶은 무엇인가? 사실상 이 질문은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물음과 같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그럼으로써 자신이 잘하는 것, 소망하거나 욕망하면서 좌절을 겪고, 그래서 인생에서 고통과 함께 슬픔과 기쁨을 맛보며 죽음을 맞이하는 날까지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삶에는 형용사와 수식어가 현란하다. 화가의 삶은 미적으로 쾌를 누리는 것이며, 그 즐거움은 성취욕일 수도 있고, 자신감일 수도 있으며 희망이 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즐거운 인생이 목표가 아닌가?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김유정 제주문화연구소장 jci61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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