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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슬로 vs 제이콥

기사승인 2021.08.06  10: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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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미나리 (5)

‘미나리’의 주인공인 병아리 감별사 제이콥의 꿈은 다소 불안해 보인다. 아칸소의 황무지에 자기의 농장을 일구고 싶어 한다. 10년간 병아리 감별사로 모은 돈을 모두 털어넣고도 모자라 은행대출까지 받는 무리를 감행해서 아칸소에 농지를 매입하고 농장주의 꿈에 부푼다. 요즘 말로 ‘영끌’ 농장이다.

   
▲ 제이콥의 욕구는 1단계에서 갑자기 5단계로 직행해버린 느낌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미나리’의 주인공인 병아리 감별사 제이콥은 ‘농장 주인’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과 꿈 사이의 간극이 당황스러울 만큼 크게 느껴진다. 1950년대 미국 심리학자 매슬로(Maslow)가 발표한 ‘욕구 5단계설’은 오랫동안 설득력을 가져왔던 심리학의 고전이다. 매슬로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욕망은 5단계로 이뤄지는데, 1단계는 ‘생리적 욕구’가 지배한다. 

간단히 말하면 일단 먹고살아야 하고, 비바람을 피할 집이 있어야 한다. 그 욕구가 충족되면 인간은 ‘안전 욕구’를 느낀다. 1단계에서 마련한 생리적 욕구의 최소한의 조건을 지키고 싶어 한다. ‘안전 욕구’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인간은 ‘관계 욕구’에 목말라 한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들로부터 인정도 받고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남들로부터 인정도 받고 사랑도 받으면 인간은 소속감과 명예, 권력을 누리길 원한다. 가령, 조직 내에서의 승진하는 일이다. 그 모든 것을 성취하고 나면 ‘자아실현’이라는 5단계의 궁극적 욕구를 느끼게 된다. 모든 세속적인 관계와 욕망을 떠나 진정한 자신을 찾고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진다. 물론 예외적인 인간들도 있겠지만 매슬로의 오랜 관찰 결과, 대부분의 인간은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제이콥의 욕구는 1단계에서 갑자기 5단계로 직행해버린 느낌이다. ‘병아리 감별사’가 미국에선 비교적 수입이 좋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아내와 두 자녀를 거느린 가장의 수입으로는 아마도 ‘생리적 욕구’를 채우기에 급급할 듯하다. 농장의 꿈을 위해 저축까지 해야 한다면 ‘생리적 욕구’ 만족도 쉽지 않을 게 분명하다. 통상적으로 ‘안전 욕구’를 위해 조금 더 좋은 동네, 조금 더 안전한 집 등을 욕망해야 마땅한데, 2단계·3단계·4단계 모두 건너뛰고 냅다 농장이라는 ‘자아실현’으로 직행한다. 

   
▲ 병아리 감별사 제이콥은 과연 농장주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사진=더스쿠프 포토]

제이콥이 가족을 끌고 간 아칸소 황무지에 ‘안전’이란 없다. 토네이도에 컨테이너 하우스가 날아갈까 전전긍긍해야 한다. ‘관계 욕구’를 채워 줄 이웃도 없다. 사람 구경은 하루 종일 ‘닥치고’ 병아리 똥구멍 들여다보는 동료밖에 없다. 어쩌면 가장 원초적인 ‘생리적 욕구’도 보장할 수 없는 환경이다.

제이콥의 행보는 ‘매슬로’적 삶의 궤적에서 한참 벗어났지만 왠지 그다지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어찌 보면 요즘의 소위 ‘YOLO(You Only Live Once)족’의 삶의 방식이다. 과거에는 열심히 노력하면 1단계부터 5단계까지 올라가는 ‘사다리’가 어디엔가 있었지만 요즘은 아무리 둘러보고 헤매봐도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위층에 먼저 올라간 자들이 나중에 올라올 사람들을 생각해서 남겨두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올라올까 봐 치워버린 듯하다.

어차피 위에 올라갈 수 없다면 인생에서 가장 해보고 싶은 일(자아실현)을 무리를 해서라도 당장 해버리는 것이 현명하다. 집 장만이나 승진을 위해 그 ‘꿈’을 유보하는 대신 반대로 집과 승진을 포기하고 ‘영끌’해서 명품과 수입차를 사거나 배낭 메고 세계여행을 떠난다. ‘자아실현’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극단적으로 절약하고 결혼과 자식까지도 유보하거나 포기하기도 한다. 소위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early)족’이 등장한다. 그렇게 그들은 1950년대 매슬로에게 ‘빅엿’을 날린다.

제이콥에게 농장은 욜로들이 매슬로의 5단계에 도달하기 전에 미리 ‘자아실현’을 위해 사들이는 명품이나 수입차, 세계여행인 셈이다. 제이콥은 욜로이자 파이어족이다. 그의 이런 행동은 욜로나 파이어족이 2000년대의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이미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1980년대에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 MZ세대를 상징하는 신조어가 늘어난다. 이들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당시 30대였던 제이콥은 선각자였던 셈이다. 제이콥은 물값을 아끼기 위해 우물을 파고, 우물 파는 인부의 품삯을 아끼기 위해 스스로 우물을 판다. 30대 제이콥에게 팔을 들어 올릴 수 없는 ‘50견’이 찾아올 만큼 꿈을 위해 극단적인 절약을 한다.

MZ세대로 불리는 청년세대들의 ‘영끌’ 주식투자와 암호화폐 투자가 사회문제로 부각한 지 오래다. 모두 누군가가 ‘사다리’를 걷어차 버려서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계층상승도 자아실현도 불가능해진 사회의 모습이다. ‘미나리’의 제이콥이 10년 후쯤 결국 ‘자아실현’의 궁극적인 꿈을 이룰지 궁금해진다. ‘미나리2’가 나온다면 꼭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영끌’해서 주식시장과 암호화폐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MZ세대의 10년 후 모습이 어떨지도 궁금하다. 제이콥이 지금쯤 젖과 꿀이 흐르는 아칸소의 농장에서 파이프 담배를 물고 멋지게 살고 있기를, 우리의 ‘주린이’ ‘코린이’들도 10년후 쯤에는 소망대로 30~40대에 은퇴하고 여유롭게 전원생활 하면서 세계여행이나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저작권자 © 제이누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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