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누가 어둠이고 누가 빛인가

기사승인 2020.12.04  13:02:44

공유
default_news_ad1

- 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신세계 (3)

요즘은 ‘장르 파괴’가 대세여서인지 영화도 ‘장르’라는 것을 하나로 꼭 집어 말하기 어려운 듯하다. ‘코믹 호러’도 있고 ‘로맨스 스릴러’라는 것도 있다. 사무기기만 복합사무기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영화도 ‘복합영화’를 감상하는 세상이다. 한 그릇 밥 속에 모든 것을 넣어 비비는 비빔밥을 좋아하는 우리네 취향에 맞는 추세일지도 모르겠다.

   
▲ 빛과 진실이 결국은 어둠과 거짓을 몰아낼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장르 파괴’가 트렌드라고 하지만 영화 ‘신세계’의 장르는 비교적 명확한 일명 ‘누아르(noir)’라 불리는 범죄물이다. 암흑가(noir)에서 ‘어둠의 자식들’이 벌이는 어두운 모습들이다. 그럼에도 영화 ‘신세계’는 조금은 독특하다. ‘어둠의 자식들’은 어둠 속에 은밀하게 숨어서 악을 행하고, 결국은 ‘빛의 자식들’에게 일망타진돼야 하는데, 영화는 그렇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어둠’과 ‘빛’의 경계가 모호하고 빛이 비치면 어둠이 걷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빛이 어둠을 만나면 빛이 어둠에 물든다.

미국 신학뿐만 아니라 미국사회의 정신적 지주로 일컬어지는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는 세상을 ‘빛의 자식들(Children of Light)’과 ‘어둠의 자식들(Children of Darkness)’의 대결구도로 설정한다. 당연히 ‘빛의 자식들’이 ‘어둠의 자식들’을 몰아내야만 하고 또 그렇게 될 것으로 믿는다. 과거 ‘어둠의 자식들’은 어두운 지하세계에만 머물렀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어둠의 자식들’은 눈부신 햇빛 속으로 나와 대로를 활보한다.

아침 운동하듯 먼동이 트는 바다에서 사람 죽이기를 밥 먹듯 하는 ‘골드문’이라는 범죄조직은 더 이상 음습한 골목의 사무실에 머물지 않고 시내 중심가에 고층빌딩을 세우고, 전망 좋은 펜트하우스에서 간부회의를 한다. 건설업과 유통업까지 진출하고, 직함도 ‘두목’ ‘부두목’이 아니라 ‘회장님’ ‘상무님’ ‘이사님’들이시다. ‘골드문’의 수뇌부가 이동하는 장면은 한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의 자동차 행렬만큼 뻑적지근하다. ‘골드문’ 회장의 장례식은 ‘국상(國喪)’ 뺨친다.

   
▲ 영화 '신세계'에선 빛이 어둠을 몰아내지 못한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반면에 ‘어둠의 자식들’을 몰아내야 하는 ‘빛의 자식들’이어야 할 경찰 수뇌부는 전전긍긍한다. 어둠의 자식들이 고개를 쳐들고 빛 가운데를 활보하는 동안, 경찰 수뇌부는 오히려 어둠 속으로 밀려난다. 어둠의 자식들이 현대식 고층건물 사옥 펜트하우스에서, 그리고 전망 좋은 호텔식당을 통째로 점령해서 ‘사람 잡을’ 회의를 하는 동안 경찰 수뇌부는 암흑가의 회의처럼 어둑한 사무실에서 숨죽여 작전회의를 한다. 작전이 실패하면 ‘죽기밖에 더 하겠느냐?’고 할 만큼 ‘빛의 자식들’이 수세에 몰렸다.

강과장(최민식)과 경찰 끄나풀 이자성(이정재)은 문닫은 변두리 실내낚시터에서 간첩처럼 접선한다. 석동출 회장의 장례식에 잠입해서 몰래 사진을 찍던 경찰들은 이중구와 그 패거리들에게 ‘니네들 스토커냐? 우리가 소녀시대냐?’는 조롱을 당하고도 눈만 껌뻑거린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요한복음)”는 말이 있다. “너희를 위협하는 사람들을 두려워 말라. 감추어진 일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겨진 일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마태복음)”는 말도 있다. 우리는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러나 영화 ‘신세계’의 결말은 빛이 어둠을 몰아내지 못하고, 되레 빛이 어둠에 물들어간다. 경찰 수뇌부는 ‘어둠의 자식들’이나 벌일 법한 음습한 음모를 꾸미고, 부하들을 암흑가의 보스처럼 사지로 몰아붙인다. 결국 강과장도 죽이고 고국장도 죽이고 경찰공무원에서 ‘골드문’의 회장직에 오르는 이자성의 비밀은 영원히 어둠 속에 묻히고 만다.

   
▲ 고위공직자 의혹을 접하다보면, '빛의 자식들'이 어디에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사진=뉴시스]

혹시 ‘아직’은 밝혀지지 않았을 뿐 ‘언젠가는’ 모든 것이 드러나고 어둠의 자식 이자성이 단죄당하고 햇빛 속에 스러져 버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영화 속에서는 ‘빛’과 ‘어둠’과 뒤죽박죽 뒤섞이고 ‘빛’이 ‘어둠’을 몰아내지는 못하고 끝난다. 매일같이 신문을 뒤덮는 정치인들과 고위공직자들에 씌워지는 ‘어두운 의혹’들을 접하다보면 누가 ‘빛의 자식들’이고 누가 ‘어둠의 자식들’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혹시 세상에 ‘빛의 자식들’이 ‘어둠’에 물들어 멸종되고 모두 ‘어둠의 자식들’만 남은 게 아닌지 가슴이 덜컹할 지경이다.

그러나 밥에 돌이 아무리 많다 한들 쌀알보다 많을 수야 없듯, 여전히 ‘어둠의 자식들’보다는 눈에 안 보이는 ‘빛의 자식들’이 더 많지 않겠는가. 가끔 달이 태양을 가려버리는 일식日蝕 현상이 일어난다 한들 하루 종일 가릴 수야 있겠는가. 지옥 같은 아우슈비츠 유태인 수용소에서 한 유태인이 감방 벽에 남겼다는 말이 눈물겹다. “I believe in the Sun when it does not shine. I believe in God when he is silent(해가 구름에 가려 빛나지 않을 때도 태양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신이 침묵할 때도 신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렇게 빛과 진실이 결국은 어둠과 거짓을 몰아내리라는 것을 믿는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저작권자 © 제이누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