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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진의 味談(2)] 제주사람들의 공동체 의식, 지혜로움, 조냥정신이 담긴 국

 

나는 몸국을 끓여서 판다. 왜 하필 몸국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인기가 없는 음식을 굳이 선택한 이유를 묻는 것이다.

 

내가 몸국을 끓이는 이유는 제주사람들의 정체성을 잘 표현하는 음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꼬맹이시절 내가 다니던 북초등학교 앞 골목에 ‘부자집’이라는 식당이 있었다. 나의 할머니는 그 곳 몸국을 무척 좋아하셨고 가끔, 한 달에 한번 정도 내게 냄비를 들려서 받아오게 하셨다.

 

그런데 그 식당 앞으로 가면 고약한 냄새가 늘 코를 괴롭혔다. 항상 냄새는 났지만 유독 지독할 때가 있었다. 그 냄새는 돼지 내장을 직접 손질하면서 어쩔 수 없이 처리해야하는 돈분 냄새였고 한번 밴 냄새는 쉽게 사라지지 않아서 늘 어느 정도 냄새가 났던 것이고 심한 날은 마침 내장을 손질할 때 갔던 탓이었다.

 

그러나 그 역한 냄새에도 불구하고 단골이 많았다. 할머니는 그 냄새가 믿음을 주는 냄새라고 하셨다. 내장을 비롯한 모든 재료를 직접 손질하고 음식을 만드는 증거라는 것이었다. 간혹 그 식당에서 몸국을 먹을 때가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집 식탁에서 몸국을 받아 앉으면 그 냄새가 나지 않았다. 실상은 냄새가 사라진 것이 아니고 내 후각이 동화되어 버린 것이었지만 맛있는 몸국의 기억만 남은 것이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그 동네 주민분들도 항의를 할만 했을 텐데 꽤 오래 장사를 했던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제주사람들의 정서가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내장을 처리하느라 내장 냄새가 나는 것을 어쩌랴 하는 ......

 

세월이 흘러 20여년 전 쯤 제주시청 뒷골목으로 이전했고 그곳에서도 몸국을 끓여 팔았는데 그곳에서는 오래지 않아 냄새로 인한 민원이 많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2대 업주인 아드님대에서는 메뉴판에서 몸국이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어쩔 수 없기도 했거니와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의 여파로 돼지 부산물을 구하는 것이 한동안 어려워졌던 이유도 한 몫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 동안 그렇게 사라진 듯 했던 몸국은 고기국수가 활성화 되면서 국숫집에서 살아나는 듯 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숫집의 몸국은 오히려 몸국의 부활을 가로막는 원인이 되어 버렸다. 물론 극히 일부의 국숫집들은 부단한 노력으로 맛을 잡아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과거 우리가 먹었던 몸국이 아닌 정체불명의 음식이 몸국의 탈을 쓰고 메뉴판에 올랐다.

 

 

몸국이 제주의 정체성을 표현한다고 필자가 주장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가장 우선적인 이유는 제주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을 담은 국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끓여먹을 일이 없이 행사를 위해 돼지를 잡아야만 끓일 수 있었고 그 행사를 마을 사람들 모두 공동으로 치러내며 최소 사나흘간을 함께 먹었던 국이 몸국이다.

 

거기다가 국물의 단순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메밀을 풀어 넣어 가벼워 질 수 있는 육수에 진득함을 입히고 흔하디 흔한 재료였던 모자반을 넣어 그 양을 늘림과 동시에 돼지육수의 느끼한 맛을 개선한 점도 척박한 농업 환경에서 흔한 재료로 독특한 음식문화를 만들어낸 것처럼 제주사람들의 지혜로움도 담겨있다.

 

또한 몸국에는 제주 사람들의 조냥정신이 담겨 있기도 하다. 자칫 버려질 수 있는 사소한 부위 조차도 알뜰하게 집어넣고 지속적으로 끓이면서 독특한 국물 맛을 이끌어 낸다. 수웨(순대)를 만들지 못한 내장 부위나 모두에게 나눠주지 못하는 소량의 부산물들도 모두 다지듯이 썰어서 집어넣고 끓인다. 그래서 제주 몸국은 돼지의 내장 맛이 진하게 우러나야 한다. 특히 장간막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들어가야 제 맛이 난다. 요즘사람들이 말하는 ‘곱’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문학의 거두로서 4.3문학을 장르로 만든 현기영 선생께서는 당신네 어린 시절을 회상하시며 “몸국이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았고 ‘돝 배설국’이라고 불렀었다”고 증언을 해 주셨다. 그 이외에도 같은 증언을 여러 어르신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결국 몸국은 돼지 수육과 수웨(순대)를 삶고 난 육수에 돼지내장을 풀어 끓이면서 모자반을 넣고 끓여야 완성되는 국이다.

 

그리고 넉넉한 양의 파와 배추도 손으로 뜯어 넣었고 심지어 돼지를 잡고서 따로 베어낸 돼지비계를 잘게 썰어 번철에 지지면 기름이 녹아나오는데 이 기름을 ‘돗지름(라드)이라 부르며 따로 받아 굳혀서 전을 부칠 때 사용하고 지지고 남은 비계는 노릇하게 볶아지는데 이 볶은 비계도 몸국에 들어 가야한다. 한마디로 돼지의 모든 부위가 들어간 국이 몸국인 것이다.

 

완성된 몸국에 간을 하는 방법도 시어 꼬부라지다 못해 군내 날 정도로 삭은 김치를 물에 씻거나 털어낸 후 잘게 다져서 양념처럼 간을 했다. 음식은 모두 소중한 것이라서 버리면 안 된다는, 먹을거리에 대한 철학과 귀한 음식일수록 모두 같이 나눠 먹어야 한다는 제주사람들의 공동체 정신이 바로 제주사람들의 정체성인 것이고 그러한 정체성을 한 그릇에 잘 담아낸 것이 몸국인 것이다.

 

그런데 돼지사골로 육수를 우려내고 MSG로 감칠맛을 더해서 국수를 말아내는 국물에 모자반 서너가닥 풀어 놓고 몸국이라고 팔고 있는 국수전문점들의 몸국이 어떻게 제주음식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더구나 모자반을 제주산이 비싸다는 이유로 씹히는 느낌도 다른 완도산 모자반을 넣고 있고 그나마 많이 넣고 끓인다면 모를까 넣는 시늉만 하는 집이 대부분이고 메밀가루도 적당히 넣어주면 좋으련만 걸쭉함은 찾아볼 수 없고 그 또한 값싼 수입 메밀가루를 사용하는 집이 대부분이다.

 

차라리 팔지 않느니만 못하다. 어설프게 흉내 낼 바에는 차라리 안하는 것이 더 낫다. 그러면 최소한 몸국에 대해 궁금증은 가질지언정 실망은 하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 사이비스러운 몸국이 나타나게 된 것은 진짜 몸국이 수십년간 사라져 버렸던 탓 때문이기도 하다.

 

박정희 독재정권이 1969년 가정의례준칙을 만들고 허례허식을 없앤다며 개인적인 가축 도축을 금지 시켜버렸고, 가정의례 간소화정책을 펼쳐 전통적인 방식의 통과의례를 모두 금지시켜 버렸기 때문에 70년대 이후 몸국을 맛보기가 힘들어졌고, 그래서 진짜 몸국을 먹어본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에 들은 풍월로만 재현하려다보니 자기 마음대로의 몸국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향수 상품인 고기국수가 잘 팔리자 똑같은 돼지국물인데 뭐 어쩌랴 싶은 심리가 작용한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 중에는 암암리에 진짜 몸국을 맛본 이들도 있다. 다만 그들은 자세하게 만드는 방법을 모르니 맛으로만 기억할 뿐이고 그들 대부분이 식당과 상관없는 직업군에 속하다 보니 재현할 이유도 없다.

 

또한 제주의 많은 식당들을 실제 조사해 보면 그 업주들이 토박이들이 많지 않고 주로 호남 출신의 오래 전에 이주한 사람들이 많음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이 몸국을 알기란 사실상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사를 위하여 전문가처럼 행세하려니 아는 척은 해야 하겠고, 되는대로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내는 집들도 여러 곳 보인다.

 

그런 집들은 대부분 고기육수이니 진하게 우려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곳이 많다. 육수만으로 걸쭉함을 보여주는 식당들은 대부분 매운 맛을 강하게 낸다. 심지어는 잘 뽑은 육수를 과한 매운맛이 망쳐 놓고 있는데도 그 방식을 고집하기도 한다. 소위 임팩트 있는 맛이라고 표현하며 자극적인 맛으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식당들이다.

 

 

제주 음식은 그렇게 강렬한 맛을 내지 않는다. 재료 본연의 맛을 내기위해 솔직하게 끓이는 것이 제주식이다. 슴슴한 국물에 역시 심심한 메밀가루를 풀어 넣은 국물은 분명 진한 느낌인데 오히려 담백하다고 표현이 된다. 돼지육수가 담백하다는 느낌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베지근함’이다. 진한느낌은 있으되 느끼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으며 구미를 당기는 맛.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몸국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또 다른 답이 있다. 지역마다 그 지역만의 탕국이 있다. 서울의 설렁탕, 나주의 곰탕, 대구의 따로국밥과 육개장, 남원의 추어탕, 경기도 소머리국밥 등등.... 제주에도 제주를 대표하는 탕국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탕(湯)’의 사전적 풀이는 ‘국’의 높임말, 또는 제사에 쓰는 건더기가 많고 국물이 적은 국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처음 탕이라는 표현이 존재하는 기록은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의 ‘제의초(祭儀鈔)’이고 이후 도암(陶菴) 이재(李縡)선생의 ‘사례편람(四禮便覽)’에는 갱과 탕의 차이를 기술하고 있다.

 

즉, 우리가 말하는 국이 갱이고 더 오래 우려낸 국은 탕인 것이다. 탕은 오래 가열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인지 탕이라는 접미사가 붙는 국들은 대부분 동물성식재인 육고기가 원료인 경우가 많다. 한식을 일컬어 ‘탕반(湯飯)문화’라고 부를 정도로 한반도 전체적으로는 고깃국이 많은 편인데 제주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오래 끓이는 국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상식에서는 고기를 접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의 ‘탕’은 몸국일 수 밖에 없다. 물론 베이스를 같이하는 제주식 육개장이 있으나 이 또한 몸국을 대신하여 나타난 국으로 역사가 짧고 접짝빼국이나 아강발국 등도 있지만 일반적인 탕으로 분류하긴 곤란한 특수한 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주를 대표하는 탕은 바로 몸국이다.

 

그런데 그렇게 제주의 대표성을 가진 음식을 경제 논리에 쫓겨 임의대로 대충 만들어서 판매한다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싶었다. 최소한 누군가는 그 원형을 지켜야 할 것 아닌가 말이다. 최소한 한집이라도 그 전통성과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은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원형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변형된 향토음식이 판매되는 것과 원형이 사라진 채 나타난 정체불명의 향토음식이 판매되는 상황은 분명 다른 것이다.

 

맛집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진짜 맛집이란 의미가 무엇인지 의문이 생기는 요즘이다. 손님들에게 맛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안다. 30여년을 음식을 연구한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다만 양심을 속이고 싶지 않다. 제주에서 제주 음식을 만들어 파는 것이 바보소리를 듣는 이상한 세상이지만 무언가 소중한 것을 지켜나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진짜 몸국을 먹어 봤던 한 지인이 내 몸국을 먹고 한 말이 있다.

 

“딱 몸국 맛이네!!!”

 

내가 들은 최고의 찬사이다.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몸국을 끓이고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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