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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수의 '진료실 창가에서' ... 대구 의료지원 현장 자원봉사를 마치고

 

첫째날

 

2020년 4월 20일, 제주발 비행기를 타서 대구에 도착했다. 의료지원을 가는 곳은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의 요청을 거듭해서 받고, 총선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짐을 간단히 챙기고 대구로 떠난 것이다.

 

택시를 타고 병원까지 가는 길에 거리 풍경을 보게 된다. 한참 코로나 감염병이 대구와 경북 지역을 휩쓸던 3월과는 다르게 일상생활이 약간씩 돌아온 것 같았다.

 

병원 내 외부인 출입은 금지되었고, 병원 옆 주차장과 근처에 있는 공원에 컨테이너가 수십 개 설치되어서 상황실 및 진료실, 업무보조실로 이용하고 있었다. 오자마자 복잡한 보호복 입는 법과 환자에 대한 인계를 받고 진료실(컨테이너)에서 근무하는 의사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대구에서의 업무가 시작되었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19 감염병은 이듬해 1월 20일 한국 내에서 처음 보고되었으나 2월 17일 대구의 특정 종교집단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환자가 발견되면서 대한민국이 쑥대밭이 되었다.

 

대구의 몇몇 병원에서 감염자가 나타나자 해당 병원이 문을 닫고, 하루에도 수백 명씩 확진자가 생기면서 대구와 경북 일대 보건의료 체계는 삽시간에 무너져버렸다.

 

한참 바쁘게 선거를 준비하던 나는 사태를 면밀히 지켜보다가 내가 속해서 일하는 열린의사회의 연락을 받았다. 그 때가 3월 초였다. 내가 열린의사회 재난의료팀장으로 있어서 중앙재해대책본부(중대본)로부터 긴급 의료 인력 지원을 바란다는 공식 요청을 받았던 것이다. 급히 의사와 간호사 중심으로 지원 인력을 모으기로 하였고 나도 함께 가기로 하였다.

 

상황을 모니터링 해보니 도저히 선거운동은 불가능하였고, 대구 상황이 훤하게 보였기 때문에 좌고우면할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선거운동을 함께 하는 내부에서 반대가 심했다. 결국 나는 대구행 발걸음을 거둬야 했고, 다른 지원자들만 대구로 보냈다. 그로부터 선거가 끝나자마자 다시 중대본으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게 되었다. 선거의 후유증을 느끼기도 전에 서둘러 가야 했다.

 

환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뉴스가 매일 나오고 있지만 대구에 와보니 아직도 대구와 경북 지역에 입원해 있는 코로나 환자들은 500~600명 정도 있었고, 의료진들은 여전히 힘들게 싸우고 있었다. 내가 지원 요청을 받고 온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도 의사들이 두달 가까이 집에도 가지 못하고 근무를 서고 있어서 힘든 상황이었다. 확진자가 줄어들었다지만 이곳 병원에는 아직도 코로나 입원 환자들이 많이 있고, 의사들은 교대와 휴식이 필요했다.

 

이 병원에서는 2월 28일부터 입원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다 옮기고, 의료진 및 병원 직원들도 모두 밖에 설치한 컨테이너에서 순전히 코로나 환자들만 보도록 전담병원이 되었다. 200병상 전부 코로나 환자가 입원했다가 그나마 요즘은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하루 일과는 오전에 병동 회진을 돌면서 환자 상태를 점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특별한 문제는 없는지, 필요하면 환자에게서 PCR이라는 코로나 항체 검사를 하기도 한다.

 

보통 단순한 회진을 할 때는 ‘레벨 D’로 알려진 보호복과 마스크, 고글, 두 겹의 장갑을 끼게 된다. 그래도 혹시 외부 오염물질과 접촉할까봐 테이프로 얼굴 주변을 둘러싸면서 공기가 안 통하게 붙이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보호복을 다 입고 병동에 들어가면서 몇 걸음만 걸어도 땀이 흐르기 시작하는데 당연히 꽁꽁 싸여서 땀을 닦을 수도 없거니와 가려워도 긁을 수가 없다.

 

보통의 병동 회진이 아니라 환자 몸을 만지게 될 때는 특별한 보호복을 입는다. ‘Level C 보호구’인데 과정은 비슷하나 레벨 D보다 더 철저히 외부와 차단된다. 그래서 더 숨이 막히지만 외부 공기를 걸러주는 장치로 보호복 안에 공기를 유입시키는 특별한 장치가 달려있어 다소 숨쉬기가 편하다. 오랫동안 환자를 봐야 할 때, 감염된 중환자를 치료할 때나 환자의 몸을 만져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 보호구를 갖춰야 한다. 어쨌든 둘 다 입고 활동을 하고 병동을 나올 때면 대부분 땀에 흠뻑 젖을 수밖에 없다. 숨 답답해서 힘들고, 땀으로 더워서 힘든 게 보호복 입고 하는 진료활동이다.

 

일곱째날

 

당직을 서는데 저녁에 병동에서 전화가 왔다. 보통은 밖에 임시로 만든 컨테이너 진료실에 있게 되고 병동에서 2시간마다 교대로 근무하는 간호사에게서 보고를 받으며 오더를 보내거나 상담을 하게 된다.

 

“OOO 환자가 안절부절 못하고 뛰어내리고 싶다고 해요.”

 

40대 여성 환자의 상태에 대해서 간호사로부터 전화를 받고는 그 환자와 전화로 통화를 한다. 확진자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벌써 40여일이 지났는데 너무 힘들다는 환자.

 

아직 통계를 잡지는 못했지만 장기 입원이 되고, 밀폐되거나 아무도 없는 병실에 있어야 하는 환자들은 코로나로 인한 공포에 이어 정신적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이 환자는 전에도 다소 불안한 마음을 호소한 적 있어서 전화로 편안하게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안심을 시켰다. 급할 때라면 진정제를 투약해야 하겠지만 다행히 잘 안정이 되고 잠이 들었다. 이럴 경우에는 다음 날 정신과 전문의를 연결해서 상담을 하도록 해야 한다. 걱정이 되어 밤새 병동 간호사에게 간간이 잘 있는지 보도록 부탁을 하였고, 그 상황을 확인해야 했다.

 

 

아홉째날

 

어제 마지막 남은 3명의 환자 검사 결과가 반복해서 음성으로 나와 중대본(중앙방역대책본부)과 대구시청에 보고를 하였다. 그리고 오늘 오전에는 코로나19 환자 전담병원이 해지되었다는 공지를 받았다. 점심이 지나면서 마지막 3명의 환자가 오늘 퇴원하였기 때문이다.

 

모두들 만세를 불렀고, 오랜만에 왁자지껄 그 동안의 얘기들을 나누면서 즐거워하며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공중보건의사들은 일부 근무지로 복귀하고, 일부는 대구의료원으로 지원 나간다고 했다. 의료지원 나온 나 역시 대구지역 내 다른 병원으로 갈 채비를 해야 한다.

 

재난의료 활동으로 태풍이나 지진 지역 등 어려운 곳을 많이 가봤지만 대구의 의료지원은 솔직히 겁이 났다. 우리가 갔던 여러 재난들은 사후에 갔던 것이거나 눈에 보이는 위험들이기 때문에 피할 수 있는 여지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처럼 어떻게 감염될지도 모르는 상황에다가 보호복을 잘 입었다 하더라도 걸리고 마는 상황을 안다면 겁이 안 난다고 하는 게 이상할 것이리라. 내가 만난 환자에게서 혹시 옮기지는 않았을까, 내가 접촉한 직원이나 다른 의료진에게서 옮기지는 않았을까, 병원 구내에서 마주친 어떤 사람에게서는..... 두려움 속에서 일을 하는 것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후기)

 

아직도 수백 명의 코로나 확진 환자들이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 치료받고 있다. 여러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들, 여러 보건의료기관이나 시설에서 땀 흘리는 의료진들은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사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선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진 환자가 10명 아래로 내려갔다고 해서 국민들은 안심하고 있는 듯 하지만 환자들이 있는 현장에서의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고병수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지난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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