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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쌍용(雙龍)아. 꽃도 못 피우고..”

기사승인 2019.10.22  10: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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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태의 [퓨전제주무림(武林)(14)] 3전 3패 오답노트 ... 기억영상복원신공 꺼내

이번엔 총선무림입니다. 희룡공 진영, 제주 갑, 을, 서귀포 순서로 10여회 연재할 예정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상황, 대사 등은 상상력으로 꾸며낸 허구입니다. 오버액션도 빈번하게 사용했습니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실존인물도 등장시켰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십시오. 제주가 바뀌고, 한국이 바뀝니다. 4.15총선은 이미 시작됐습니다.[편집자 주] 
   

중국집에서 집으로 돌아온 희룡공이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야간산책수련을 할 겸 타운하우스 정원을 하염없이 거닐며 중얼거렸다.

“여긴 참 좋은 풍수지. 애타게 비를 기다리는 저 웅장하고 목이 마른 건천, 나를 쏙 빼 닮았어. 폭우가 내리면 순식간에 제 모습을 드러내지. 한라산을 타고 내려온 빗물을 머금고 북(北)으로, 중원을 향해 힘차게 흘러. 한라산과 바다가 보이는 풍광은 또 어떻고. 지금까지 이런 뷰는 없었어. 이것은 개천에서 용(龍)이 난다는 뷰야.”

희룡공이 사는 제주시 아라동 00타운하우스 풍경이었다. 아찔한 건천 절벽이 타운하우스 한쪽 면을 둘러싸고, 입구엔 삼엄한 경비초소가 24시간 철통보안. 13가구만 사는 도심 인근 요새였다. 풍수 덕인지 핫한 부동산이다. 희룡공 아내는 무림 2014년 7월에 7억5000금에 샀다. 지난해 5월 부동산무림에 매물로 나온 희룡공 이웃집 가격은 22억금.

희룡공이 스마트폰 어플을 쳐다봤다. 만보계 어플이었다. 숫자는 1001. 이동 속도, 칼로리 소비량, 걸음 수까지 알려주는 어플. 1년 계획, 한달 일정, 하루 목표를 정하고 달성해야 직성이 풀리는 수석무공 창안자의 숙명이었다. 국회무림 의원시절엔 일정을 초단위로 쪼개며 살아 필요가 없었지만 요샌 만보 채우기에도 벅찼다.

잔디밭에 주저앉은 희룡공이 가부좌를 틀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몸 안의 기를 돌리고 호흡을 조절해 내공을 끌어 올리는 운기조식(運氣調息)이었다. 공력이 약한 하수들은 아무런 효과도 없지만, 고수는 다르다. 위험도 있었다. 운기조식 상황에선 외부공격에 무방비 상태다. 모기 한 마리에 물려도 치명적인 내상을 입을 수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있다. 그래서 타운하우스가 안전했다.

자시(子時)가 지난 후였다. 희룡공 머리위로 세 송이 꽃이 피어나더니 사라졌다. 삼화취정(三花聚頂)이었다. 머리 위로 다섯 개의 고리 환영이 생겼다 사라지는 오기조원(五氣朝元)과 함께 무공의 최상위 단계로 꼽힌다. 희룡공은 큰 그림을 그리기 전엔 언제나 운기조식을 했다.

기 충전을 끝낸 희룡공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음해하는 세력들은 나를 보고 총기가 떨어졌다고 하는데 내 머리는 아직 녹슬지 않았어. 아이큐 내공만큼은 아직도 중원무림 ’넘버 1‘이야. 그 흔한 과외수련 한번 안 받고 교과서 수련만 열심히 해서 학생무림 지존을 거머쥔 나야.’

희룡공이 복기(復棋)를 시작했다. 실제와 같은 당시 상황은 물론 감정, 온도, 냄새까지 그의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현되기 시작했다. 그는 고등무림시절부터 기억영상복원신공을 익힌 터였다. 공부 왕도의 정석은 복습. 치밀한 큰 그림을 그리려면 오답노트부터 정리해야 했다.

무림 2016년 2월. 희룡공 얼굴이 담긴 초대형 현수막이 장안 곳곳에 내걸렸다. 치석검, 덕규검, 영진검자가 희룡공과 어깨동무를 하고, 주먹을 불끈 쥐며 환하게 웃는 사진이었다. 현수막을 바라보던 한 도민무림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을 했다.

“희룡공도 총선비무에 출전했나?”

장면이 금세 바뀐다. 한나라방에서 덕규검(제주을)과 영진검자(서귀포) 컷 오프 발표가 나온다. 그들은 희룡공이 키운 쌍용(雙龍)이었다. 희룡공과 같은 1964년생 용띠. ‘쓰리 용’의 꿈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새누리방은 혼돈에 휩싸여 있었다. 근혜지존이 중원무림을 장악했던 당시였다. 방주인데도 공천권을 빼앗긴 무성대장이 발끈하며 옥새들고나르샤초식을 감행했다. 그리곤 부산무림 영도다리에 서서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친박을 감별한다는 진박감별사까지 등장하며 새누리방을 둘로 쪼개던 때였다.

울적했던 감정이 되살아난 희룡공이 말했다.

“미안하다. 쌍용아. 꽃도 피워보기 전에 꺾였어. 이 몸은 이역만리 떨어진 제주무림에 있어 지키질 못했구나.”

살벌했던 컷 오프에서 살아남은 치석검(제주시 갑)을 희룡공은 흐믓하게 바라봤다. 믿음직스러웠다. 80일간의 농심(農心)일주수련, 무제한토련수련. 그가 공무원무림 모범으로 꼽은 인물이었다.

그때였다. 일격을 당한 치석검이 휘청거렸다. 한눈에 보기에도 내상이 깊은 듯 했다. 봉현검자가 휘두른 필봉에 당한 직후였다. 금지된 부동산투기무공을 익혔다는 의혹제기였다. 봉현검자는 훗날 소리도장 편집국 지존으로 등극한다.

   
▲ 강정태

‘3전 3패였지. 다신 지난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으리라.’

희룡공이 다짐하며 자신을 다독였다.

‘역대 그 어떤 제주맹주도 감히 못했던 일이야. 이번만큼은 기필코 내가 제주총선비무 새 역사를 쓰리라’

그 순간, 그의 스마트폰이 부르르 떨었다. 넘버 5가 보낸 카톡이었다. 카톡을 본 희룡공이 말했다.

“뭐야 이건. 이 말이 사실이라면 선거비무가 요동치겠군.”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강정태는? = 제주 출생. 제주대학교 사회학과를 나왔다. 저서로는 제주대 산업경제학과 대학원 재학시절, 김태보 지도교수와 함께 쓴 '제주경제의 도전과 과제(김태보 외 4인 공저)'가 있다. 제주투데이, 아주경제 등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귀농, 조아농장(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닭을 키우며 유정란을 생산하고 있다

 

 

 

강정태 kjt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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