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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의 세상풍경(15) ... 서귀포가 꿈꾸는 대학의 사회적 책임 이야기(2)

앞선 글에서 현대사회 대학의 역할론을 풀었다.

 

이 쯤에서 우리 제주도의 대학으로 눈을 돌린다. 때마침 최근에 이뤄진 제주도의회의 도정질문에서 ‘제주국제대에 의해 매각추진 중인 탐라대 부지가 중국자본에 넘어갈 위기이므로 제주도가 매입해서 비축토지로 전환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이에 대해 원희룡 지사는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백방으로 노력하겠다’는 답변과 함께 "제주도가 공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면 적극 탐라대 부지 매입을 검토할 용의가 있다"는 언급을 하였다. 사실 탐라대 캠퍼스 10만평에 대해서는 2014년 지방선거에서 신구범 후보가 공적 대안을 이미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제주도가 옛 탐라대학교 부지 및 교사를 매입해서 가칭 도립농업고등전문대학으로 전용, 제주농업을 이끌어 나갈 엘리트 농업인을 양성토록 하겠다"고 공표하였다. 이는 그의 18개 핵심 정책공약 중 하나로써 ‘반드시 이행해 나갈 것’을 약속하고 다짐한 서귀포의 중요 현안이다. 이 점은 대학의 존재 이유와 사회적 책임을 두고 볼 때도 타당하고 바람직한 대안으로 보인다.

 

서귀포는 1차 산업 비율이 22%로 농업이 산업구조의 중요 비중을 차지할 뿐 아니라 감귤을 비롯한 밭작물과 농경지, 전원풍경이 74%의 관광산업을 뒷받침하는 배경이 되는 곳이다. 게다가 노년층의 평생교육과 귀농인구의 재학습, 유기농을 비롯한 농업의 혁신과 농경지의 확보, 자연유산의 보전 차원에서는 제주도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도 더 늦기 전에 준비되어야 할 인프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를 본격화하기 전에 원희룡 도정이 진지하게 짚어보고 시민들과 소통하는 가운데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할 게 있다. 요컨대, 서귀포시 대학의 유래와 역사, 그 안에 내재된 시민들의 헌신과 눈물, 그리고 단절된 꿈과 한 가닥 여망과 같은 것들이다.

 

적어도 서귀포시에 언제 대학이 들어왔고, 그 대학을 위해 시민들은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으며, 대학이 부재한 지금은 어떠한 문제를 끌어안고 신음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서귀포시 대학 정책과 관련해 의사결정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최상의 대안을 수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귀포에 대학이 시작된 것은 1962년 제주대학 이농학부(후에 농수산학부로 개칭됨)를 서귀포에 유치하기로 주민들이 뜻을 모으면서부터다. 당시의 서귀포 사람들은 한라산을 사이에 두고서 산남과 산북을 아우르는 서귀포와 제주시가 쌍벽을 이루는 거점도시로 균형 있게 발전하려면 ‘대학이 있어야 함’을 절감하였다.

 

대학유치위원회를 구성한 주민들은 지금의 서귀포의료원 주변으로 약 6만6000여 ㎡의 부지를 매입해서 제주대에 그대로 기부채납을 감행했다. 그러자 1964년 열망하던 제주대학 이농학부가 서귀포로 이전되어 내려왔다. 그 때의 정황을 제주대학의 역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964년에는 이농학부가 서귀포캠퍼스로 이전했다. 이농학부가 서귀포시로 옮긴 이유는 제주시에 적당한 부지를 구하기 어려웠고, 감귤의 주산지인 서귀포가 농업 실습에 적지라는 점, 그리고 서귀포 시민들이 이농학부 유치에 헌신적인 지원을 하면서 이뤄졌다."

 

또한 그 당시 대학생들의 기억에 의하면 서귀포 농수산학부의 풍경은 마치 목장처럼 아늑하고 정감이 가는 분위기였다. 학과끼리 내기축구를 하고 자장면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고서 도새기 잔치집 끌려가듯 고함을 내질러도 대학생들의 낭만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그렇게도 좋았다.

 

선후배 관계가 돈독하고 학과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도 상당해 만족감이 높았다. 그런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기분은 더 흐뭇하고 뿌듯했던 듯하다. 아직도 삼삼오오 모여서 그때를 회상하면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 때는 대학생들이 풍기는 지성과 야성이 주민들의 가슴 속에다 희망과 행복을 오롯이 피웠단다. 그들을 하숙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이웃집조차도 동네에 대학생이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기뻐했다. 그들이 축구를 하든 테니스를 하든, 노래를 부르든 소리를 지르든, 그저 ‘대학생이니까’ 당연히 좋은 것이었다. 그야말로 대학생은 서귀포거리를 빛내는 보석이요 문화의 상징이었다. 그 당시 나는 여고생이었고, 대학생을 하숙하는 집에 기거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9년 제주대학이 캠퍼스를 확장해서 농수산학부를 제주시로 통합해가는 바람에 서귀포는 사랑하는 연인을 빼앗겨버린 사내처럼 망연자실 한라산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떠나버린 농수산학부의 부지 소유권을 제주대에 넘겨줄 수밖에 없는 허탈감은, 이후에 부지를 빌려 쓰면서 겪는 어려움으로 인해 배반의 쓴 잔이 되었다.

 

 

이 말할 수 없도록 깊고도 은밀한 상처는 새로운 사랑이 싹 터 오르기 시작한 1996년 탐라대학교(구 동원산업대학교)가 개교하기 전까지 오래토록 욱신거렸다. 탐라대학교는 당시 도백이던 신구범 지사가 서귀포 시민들의 숙원에 따라 하원동 주민들을 몇 차례나 만나면서 이뤄낸 서귀포시 역사의 첫 번째 종합대학(university)이다. 하원동 주민들은 "소와 말을 키워온 목장 땅에서 사람을 길러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보람된 일이 어디 있겠냐"며 시세를 따지지 않고 부지를 내놓았다. 그야말로 반 값이었다. 신부를 맞이하는 신랑처럼 학교를 환영하는 마음으로 내놓은, 기부금 같은 심정의 가격이었다.

 

이처럼 서귀포의 숙명처럼 탄생한 탐라대학교는 입지가 시내에서 떨어진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사랑과 관심을 아낌없이 받았다.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라 불리는 김철수 총장이 부임하면서는, ‘우수한 교수가 우수한 학생을 낳는다’는 기치로 인해 교수진의 경쟁력이 급속도로 높아졌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의 역량을 신뢰하기 시작한 서귀포 시내 고교들은 한 학교가 50명 이상의 신입생을 보내기도 하였다. 이들에게 지성과 안목의 지평을 넓혀주기 위해 기획된 ‘수요특강’에서는 대한민국의 ‘내로라’ 하는 명사들이 내려와서 대학의 정체성을 한없이 드높였다.

 

어느 일간지가 묘사한 당시의 기사를 보면 탐라대학의 지역사회를 향한 책임과 역량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대학들이 정규교과 이외의 특별강좌 개설을 통해 재학생뿐만 아니라 도민들에게 폭넓은 지식함양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가장 먼저 특강개설 ‘붐’을 일으킨 곳은 탐라대학교.

 

지난해 김철수 총장 취임이후 ‘수요특강’을 개설, 국내·외 저명인사를 초빙해 재학생의 교양교육 강화는 물론 도민들에게 다방면의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탐라대는 이러한 수요특강의 취지를 살려 올해는 ‘목요특강’을 개설하고 모든 재학생과 교직원, 도민들이 특강에 참여하게 하는 등 특강 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외에도 정책개발대학원이 교육하는 서귀포시민대학을 통해 황수관, 정덕희 씨 등 국내 저명인사들을 초청, 건강에서부터 예술분야 등에 걸쳐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와 같이 탐라대는 제주지역 평생교육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대학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제주지역평생교육센터가 되었다.

 

나는 아직도 그 당시 수요특강에 내려온 서울대 김광웅 교수가 학교의 방명록에 새겨 적은 한 문장을 기억하고 있다, "세계인이 탐내는 탐라가 되고저!"라는 염원을. 그 의미가 얼마나 벅차오르고 감사하던지, 그 순간 나의 가슴 속 깊은 곳에다 탐라대학의 비전으로 심었다.

 

이 비전은 평생교육원장으로서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의 지역사회 지도자들을 섬길 때, 시민대학‧여성대학‧최고정책과정‧21세기지도자과정‧지식경영대학 등의 모토가 되었다. 대학원장직을 수행하면서 교육대학원과 정책개발대학원의 교과과정을 기획할 때도 이것은 내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었다. 지역사회를 섬기며 교육과 연구의 기능을 정직하게 수행하노라면, ‘사회공헌도가 높은 대학이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일어서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하지만 당시 탐라대의 모체인 산업정보대학(산정대)과 설립자 간에 갈등이 불거지면서 탐라대는 표류하기 시작했다. 뜻을 같이 했던 총장이 떠난 후 교수들도 하나 둘 자리를 옮기고, 학생들마저 발길을 돌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후로 이사장을 거쳐 총장으로 들어온 고장권 전 제주대 총장은 대학경영의 경험과 투지,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대학은 총장의 역량만큼 발전한다’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탐라대와 산정대를 통합해서 서귀포 캠퍼스는 지역특성에 맞게 관광과 레저 스포츠 등으로 특성화하고, 제주시 캠퍼스는 교통편의를 살려서 경쟁력 있는 학과들로 거점화하는 전략을 수립하였다. 여기까지가 내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탐라대학의 실정이다.

 

이후로 벌어진 탐라대의 통폐합과 제주시로의 이전은 30여 년 전에 떠나간 제주대 농수산학부의 행보를 그대로 반복하는 패턴이었다. 무엇보다도 ‘탐라대학교 발전후원회’를 결성해서 대학의 계속적인 존립을 도모했던 서귀포시민들에게는 쓰라린 실연이 되었다.

 

특히나 제주국제대를 존속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수익용 자산으로 분류된 탐라대 부지는 하원마을 주민들에게 형언키 어려운 허탈감과 상실감을 주었다. “학교가 이곳에서 사람을 키우지 않겠다면 우리는 다시 소와 말을 풀어놓겠습니다. 땅장사 하라고 학교에 삶의 터전을 양보한 게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라는 하원동 마을회장의 비장한 목소리에는 분노마저 마디마다 서렸다.

 

실제로 2011년 7월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서귀포시 미래 10년,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라는 토론회에서는, 하원동에서 파견된 소 6마리가 탐라대 매각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바로 그 자리에다 서귀포시 여성들이 게시한 플래카드에는, ‘1개의 대학도 없는 서귀포시, 후손에게 물려줄 것인가?’라는 절규가 흐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외침은 우이독경(牛耳讀經)의 메아리에 불과했던 듯하다.

 

탐라대가 떠나버린 후에 서귀포시민들은 공식, 비공식적으로 ‘서귀포에 대학이 필요함’을 호소해 왔다. 결의대회, 토론회, 기자회견, 도청 방문, 항의 시위, 신문기고 등 가능한 방법을 모두 다 동원했다. 가장 아쉬운 것이 대학 없는 도시가 갖는 문화의 빈곤이었다. 대학생이 사라진 축제장에는 젊음이 발산하는 특유의 생기와 낭만이 없었다. 어른들도 배움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평생교육의 장을 잃었고, 지역사회의 교육 열을 자극해 줄 시민대학마저 추억거리가 되고 말았다.

 

관․산․학이 모양을 갖춰야 당당하게 응모할 수 있는 도시 경쟁력이나 지속가능한 도시 등의 전국 공모에도, 서귀포시 단독으로는 지원하기가 겸연쩍었다. 심지어는 대학생 아르바이트 구하기가 어려워서 문을 닫을 판이라는 식당들도 생겨났다. 대학이 없는 도시는 향기가 없는 꽃과 같아서 미래의 결실을 기약할 수 없었다. 아니, 생채기 난 도시의 품격과 상처받은 시민들의 자존심, 생기가 빠져나가버린 것 같은 무력감, 정체된 도시처럼 느껴지는 소외감, 메말라가는 자신감과 후퇴하는 도전의식 등은 당장의 문제가 되었다.

 

나는 가끔 제주시에서 열리는 각종 회의와 포럼을 오가는 서귀포 사람들의 처진 어깨와 지친 얼굴, 종종대는 걸음 속에서 건너야 할 산을 본다. 이제, 서귀포가 꿈꾸어 온 대학도시의 희망은 여기에서 사라지고 마는가?

 

다행히 최근 들어 제주국제대를 총괄하는 동원교육학원 관계자가 ‘산남‧북 균형발전과 지역현안 해결을 위해 제주도가 탐라대 부지를 매입해주도록’ 요청하였다. 이에 대해 제주도정은 ‘탐라대 부지가 교육용 재산으로 유지될 것’을 전제로 해서, ‘제주국제대를 살리려는 이해 관계자들의 대승적인 양보와 협조를 조건으로 실무적인 검토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바야흐로 탐라대 부지가 존재목적대로 살아남고, 제주국제대도 현안 해결의 길로 들어설 모양이다.

 

세상사,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하였다. 제주도가 탐라대 부지를 매입하든, 제주국제대가 탐라대로 돌아오든, 아니면 제 3의 대학이 설립되든지 간에, 산남과 산북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서귀포의 대학 유치는 제주사회의 정의(正義)다. 서귀포시 대학유치와 관련해서 반복되어 온 대학의 무책임과 몰염치, 이기적인 행위와 비윤리적 태도 등은 대학의 사회적 책임(USR) 차원에서 제주도정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조리다.

 

제주지역의 대학행정이 제주도정의 관할 하에 놓여 있는 이 때에, 대학정책의 근시안적 발상과 수동적인 자세, 무사 안일한 제도와 구태의연한 방식을 혁신해야 할 것이다. 이는 제주도의 사람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서귀포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제주도정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업이요 사명이다. 바로 이 일을 수행해 나갈 유누스, 서귀포의 눈물을 닦아줄 제주도정의 리더십을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독일 시인 횔덜린의 하이델베르크 송가를 통해 서귀포를 향한 시민들의 사랑을 전하고자 본다. ‘오래 전부터 난 그대를 사랑했다네. 내 그대를 어머니라 부르며 끊임 없이 노래를 바치리. 그대, 내가 아는 한 조국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여!’ 바로 이 사랑이야 말로 서귀포시민들이 대학의 존재를 갈망하는 불변의 이유가 아닐까?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했으며, 언젠가 해녀가 되어 서귀포바다를 얼싸안고 살아가고 싶은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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