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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호의 '제주를 말한다'(15)... 제주 경제와 사회의 내일을 위한 설계(4)

민선 6기 제주도정 출범에 맞춰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이 “제주 경제와 사회의 내일을 위한 설계”를 화두로 던집니다. 제주 혁신을 위한 전략을 제시합니다. 기고는 “제주 혁신하여 재창조의 길을 가자”를 시작으로 “제주 혁신하려면 지사부터 변해야” “관료 개혁” “제주 경제의 선진화 전략“ 등 40 여개의 주제로 제주가 가야 할 길을 담론의 소재로 삼습니다. / 편집자 주

 

그리스 국가부도 배경에 관폐가 자리잡아

 

그리스 아테네 북서쪽에 그리스 신화에도 나오는 '코파이스'라는 유서 깊은 호수가 있었다. 1957년 그리스 정부는 이 호수의 물을 바다로 모두 빼내고 도로를 내면서 이 호수는 사라졌다. 그런데 당시의 공사 감독 기구가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현재 30여명의 공무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헌법 개정으로 공무원의 평생고용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리스 정부는 공무원 일자리를 늘리는 방법으로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을 펴면서 공무원과 정부기구는 더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들은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 먹어도 민간기업보다 월급과 복지 혜택이 후했다. 법으로 보장된 철밥통이여서 제재도 받지 않는다. 공무원의 천국이며 철밥통의 추악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리스의 국가부도 배경에는 철밥통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재정을 축내는데 있다. 그리스 공무원은 오전 8시 30분 출근해 오후 2시 30분 퇴근한다. 85만 공무원에게 주는 월급만 GDP의 53%를 차지한다. 공무원이 노동인구 넷 중 한 명꼴이고 적어도 25%는 무위도식하는 인력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한번 뽑은 공무원에게서 철밥통을 빼앗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파킨슨은 ‘공무원의 수는 해야 할 업무의 경중이나 그 유무에 관계없이 일정한 비율로 증가한다’고 주창했다. 이른바 파킨슨 법칙이다. 그리스 정부가 공무원 퇴출에 성공해 국가부도에서 벗어난다면 그리스 신화에 버금가는 현대판 전설로 남을 일이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공무원 조직이 비대해지면 관료주의와 부패의 폐단도 따라서 커진다. 수많은 인·허가 장벽을 넘을 때마다 공무원들에게 '뒷돈'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고도 나라가 멀쩡하게 잘 굴러갈 수는 없다. 국가부도 위기 앞에서 난동과 방화로 저항하는 그리스 국민의 모습은 IMF위기 때 장롱 속 금붙이를 꺼내 모았던 우리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관료가 지배하는 사회는 관료의 경쟁력과 관폐에 의해 국가의 존망이 좌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제주 사회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기득권 관료집단의 사익추구 청산돼야 사회 발전해

 

관료주의는 자신이 속한 작은 집단의 최적 합리성만을 철저하게 추구하는 속성을 지닌다. 하지만 부분의 합리성이 전체의 합리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이래서 관료주의는 집단 전체의 포괄적 문제해결에는 매우 취약하게 된다. 관료주의는 원칙과 절차를 강조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이것에 집착하면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는 역기능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위기에는 관료주의의 역기능이 더욱 부각된다. 집단 전체를 생각하는 종합적인 판단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 시스템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2011.3.11 동일본 대지진'의 참사 속에서 일본 국민들이 보여준 침착함과 성숙한 시민의식은 세계를 감탄시켰다. 그러나 평상시 장점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던 단점들이 국가적 위기를 맞아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바로 일본 관료주의의 역기능이 부각되었던 것이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지만 전문성을 가진 프로 관료들은 매뉴얼 뒤로 숨어버리며 자기 일처럼 나서지 않았다.

 

미국의 유명한 정치경제학자 맨서올슨(Mancur Olson)은 국가의 성장과 퇴보의 요인으로 이익집단의 역할을 지적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일본이 급성장했던 것은 패전과 맥아더 사령부의 개혁으로 인해 구질서 기득권체제가 무너지고 이익집단들이 약해지면서 가능했다 는 것이며, 그 후에 퇴보하기 시작한 것은 이익집단이 강해지고 이들이 ‘지대추구(地代追求)’형 조직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지대추구란 ‘개인이나 조직이 유리한 지위를 이용해서 정당한 소득보다 더 많은 이득을 취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사회에 지대추구 현상이 만연하면 형평성이 무너지고 개인의 근로 인센티브가 약화되며,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장기간 사회가 안정되면 지대추구형 이익집단은 매우 견고해지고, 그로 인해 국가의 퇴보가 진행된다.

 

일본이 아직까지도 자유무역협정(FTA)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강력한 이익집단의 존재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농업 관련단체의 로비이다. 잃어버린 20년을 맞고 있는 일본 경제 침체의 근본 원인은 폐쇄성과 이익집단에 의한 정치 및 정부의 포획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승전국 영국이 끝없이 쇠락하고 패전국 독일이 날로 번성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독일은 산업시설과 사회간접자본은 물론 정치‧사회‧경제제도까지 모두 무너졌다. 영국의 기득권체제가 온존한 반면 독일은 전쟁과 함께 말끔히 청산된 것이다. 전후 독일은 폐허 위에 민주적이고 생산적인 새로운 국가시스템을 건설해 대재앙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정치․경제선진국으로 완전히 환골탈태한 것이다.

 

1960년대 이후에 한국이 급성장한 것은 혁명으로 구질서와 기득계층이 무너지면서 강력한 이익집단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발전과 사회안정이 50년 넘게 지속되면서 사회 곳곳에 관료집단 등 지대추구형 이익집단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제주판 3김시대’의 폐해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어떻게 해야 제주 관료사회에서 지대추구 현상을 축소할 수 있을까?

 

관료사회 전반에 성과주의를 도입하는 것이다. 제주 관료사회가 성과주의로 전환하고 지대추구형 이익집단의 폐해를 축소하지 않으면 제주 사회 발전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지대추구형 이익집단과 권력구조가 제주 혁신을 저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올슨 교수는 국민들이 위기를 깨닫고 전면적인 개혁을 받아들일 때 기득권 체제의 청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관료사회의 철밥통 행태의 철퇴와 규제 철폐가 왜 중요한지 관련 사례를 소개한다.

 

# 현실과 동떨어진 획일적인 법 적용
노벨 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는 1988년 노숙자용 임시 거처로 쓰려고 미국 뉴욕시내의 빈 건물을 찾아 나섰다. 뉴욕시는 테레사 수녀의 뜻을 알고 내부가 몽땅 불에 탄 채 버려진 건물을 단돈 1달러에 넘겼다. 테레사 수녀는 건물을 수리해 노숙자 60여명을 보호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는 곧 꿈을 접어야 했다. 새로 짓거나 수리한 모든 주거용 다층(多層) 건물에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한다는 건축법 규정 때문이었다. 테레사 수녀는 뉴욕시청 공무원들에게 "우리는 세탁기도 안 들여놓을 건데 무슨 엘리베이터냐"며 몇 번이나 설명하고 호소했지만 소용 없었다. 공무원들은 "규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테레사 수녀는 결국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획일적인 법규정이나, 규정의 취지를 살피려 하지 않고 규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데만 급급한 공무원들의 일처리 방식이 얼마나 황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규제가 너무 많으면 개인들이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하기가 어렵다. 환경 변화에 맞게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도 없다. 공무원들은 규정에만 매달리는 무사안일과 책임 회피, 그리고 규정을 핑계로 뒷돈을 받는 부패에 빠지기 쉽다.

 

# 졸속 행정의 부작용
관료들이 부작용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덥석 정책을 시행하다가 거둬들임으로써 혼란을 가중시킨다. 일부 가공식품에 대해 적용된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대표적 졸속행정의 한 단면이다. 이 제도는 제조업체들이 제품 포장지에 붙이는 권장소비자가격을 없애고, 대신 최종 판매업자가 가격을 결정하도록 한 것이다. 유통업체 간 자율적인 경쟁을 촉진해 가격 인하를 유도하고, 제조업체가 권장소비자가격을 부풀린 후 할인폭을 과장해 파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과자 라면 아이스크림 빙과 등 4개 품목에 대해 이 제도를 적용했지만 결과는 제품값 폭등과 소비자 부담 증가를 낳았을 뿐이다. 소비자 원성이 높아지자 정부는 1년 만에 정책을 백지화했다. ’아니면 말고’식으로 정책을 추진하다가 백지화하는 것은 정책의 신뢰성을 훼손하고 시장에 혼란을 가중시키는 일이다.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현실성 없고, 효과도 입증되지 않은 정책이라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 규제와 간섭의 관료주의가 기업 경쟁력의 악화 초래
인도 북부 하리아나주(州)에 있는 구르가온이 인도 경제를 대표하는 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정보통신 산업의 세계적 아웃소싱 거점으로 포천 500대 글로벌 기업의 절반이 이곳에 몰려 있다. 1980년대 초반 가난에 찌든 농촌 지역에서 30년도 안 돼 인도에서 가장 잘사는 도시로 탈바꿈했다.

 

원래 하리아나주의 중심 도시는 구르가온과 인접한 파리다바드였다. 구르가온은 도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규제에 시달리지 않았던 반면, 파리다바드에선 정치인과 관료들의 규제와 간섭으로 기업가 정신이 살아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권과 관료의 손길에서 벗어나 있었던 게 구르가온의 성공 비결인 셈이다.

 

요즘 일본 오사카(大阪)에 있는 테마파크 유니버설스튜디오에는 일본인뿐 아니라 한국, 중국에서 온 해외 관광객들로 붐빈다. 4500억원을 투자한 해리포터관이 앞으로 10년간 오사카 등 인근 지역에 경제 효과 3조엔(약 30조원)을 창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유니버설스튜디오 덕분에 오사카는 일본을 대표하는 관광 도시로 급부상했지만, 테마파크 유치와 운영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2001년 테마파크개장 이후 매년 관람객이 줄면서 2004년에는 경영난으로 사실상 부도 상태에 빠졌다. 오사카시는 자본 투자를 했다는 이유로 사장 등 주요 경영진을 오사카 시청 퇴직 관료들로 채웠다.

 

유니버설스튜디오의 부활 비결은 경영진 교체였다. 경영 위기 타개를 위해 미국인 사장을 영입하고 골드만삭스가 사실상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테마파크다운 경영이 시작돼 관람객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관 적폐 청산은 국가 지상과제다

 

우리나라 관료집단인 공무원과 공기업 임직원은 헌법으로 자리 보장, 정년 보장, 연금보장 등으로 촘촘히 신분보장이 된다. 불황에도 월급을 삭감하는 일은 거의 없고, 구조조정이란 인원 감축도 하지 않는다. 관료 집단은 우리나라 압축 고도성장의 견인차였다. 과거 이들은 유능하고, 열심히 일하고, 국가관과 공익관이 투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국민의 공복이어야 할 관료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게 됐고,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하며 적폐를 쌓고 있다. 산업화 초기, 민간부문이 상대적으로 앞선 관료집단에 의존하면서 관료 천하가 됐기 때문이다. 규제에 비례해 관료 집단의 몸집과 권력도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면서 민간 영역은 급성장하고, 글로벌화·정보화의 급진전으로 공공 서비스 수요는 훨씬 다양해졌다. 이에 따라 개발연대식 관치가 설 자리를 잃으면서 관료집단이 불신과 무능의 늪에 빠졌다. 시대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해 선진국 관료나 민간기업 전문가들에 비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는 취약한 방어적 조직으로 전락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2013년 세계경제포럼 조사에서 148개국 중 한국의 경쟁력은 이전보다 6단계 낮은 25위로 평가됐다. 이는 2004년 29위 이후 9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정부정책의 투명성은 137위, 노사협력 분야는 132위, 정치권에 대한 신뢰는 11위였다. 관료와 정치인 집단의 점수는 세계 꼴찌이자 후진국 수준이다.

 

지금의 위기는 관료사회가 자초한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시대관, 전문성과 소통능력이 크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외국기업의 경영진을 만나려고 많은 노력을 투자하면서도 국내 기업인들 앞에서는 슈퍼갑질을 하는 게 우리 관료들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일자리 창출은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일본은 성장을 짓누르는 관료주의를 깨지 못한 채 20년 세월을 불황으로 지새웠다. 국가 개조의 핵심은 관료사회의 혁신이다. 정권 차원을 떠나, 장기적 관점에서,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관료집단에 대한 개조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세월호 침몰 당시 관료 집단은 무기력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노출하며 허둥대기만 했다. 이익집단과의 공생관계가 공익에 우선한다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모든 책임이 관료사회로 향하면서 관료와 업계의 유착 고리인 관피아(관료+마피아)에 대한 질타와 비난과 함께 이들을 척결해야만 국가 개조가 가능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건국 이래 60여년간 켜켜이 쌓인 관료제의 적폐, 그 자체가 바로 관피아이기 때문이다.

 

사실 퇴직관료들의 전관예우는 거의 모든 부처와 지자체의 공통된 현상이다. 직무 연관성을 따지지도 않고 취업시키는 공무원에 의한, 공무원을 위한 제도인 셈이다. 이러한 관피아 현상과 전관예우는 공공재인 공적 이력을 사적 이익을 위해 쓰는 행위로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정경유착 및 각종 부정부패의 원인이다. 서해페리호,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원전비리, 세월호까지 크고작은 재난·사고·비리의 기저에 관료조직의 부패가 똬리를 틀고 있다. 이들이 지나온 길을 보면 마치 비리와 폐단의 종합전시장이나 다름없다.

 

관피아 현상은 전관예우 내지 낙하산 인사 관행을 없애지 않는 한 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학연·혈연·지연에 직연(職緣)까지 갖가지 연고주의가 판을 치는 한국 사회에서 유착의 폐해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소위 엘리트 계층인 관피아가 이렇게 공공선을 무시한 채 '그들만의 리그'에서 특권을 굳힐 때 법치주의와 애국심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

 

관피아를 척결하려면 이들의 힘의 원천인 규제를 없애야한다. 관피아가 번성하는 토양이 바로 관치와 규제의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관피아 척결대책을 관료들에게 맡겨봐야 소용 없다. 규제 혁파, 공공기관 개혁에 더욱 속도를 내는 것만이 관피아를 깨는 길이다. 물론 이들은 더욱 낮게 엎드려 시간만 흘러가길 기다릴 것이다.

 

어느 나라, 사회에나 해묵은 폐단은 있게 마련이고 시간이 흐르면 모르는 사이에 적폐가 사회의 발전과 공공성을 위협하게 된다. 이러한 적폐는 시간이 지나면서 잊혔고 폐단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그만큼 폐단이 수십년에 걸쳐 구조적으로 뿌리내리고 있어 하루아침에 바로잡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역대 정권은 금방 승부를 내겠다는 식의 단기전으로 접근해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이번에는 국민들의 생각뿐 아니라 행동을 바꾸는 문제까지 염두에 두고 긴 호흡으로 접근해 가야 한다. 우리 국민들을 관료적폐 청산과 규제 개혁의 첨병으로 활용하지 못하면 한국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국가 운영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경장(更張)을 추진하는 박근혜 정부는 우선 관료사회부터 환골탈태시켜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로부터 쌓여온 잘못된 적폐를 바로잡지 못하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너무 한스럽다"며 "이번에는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국가 지상과제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언어에서 공감의 울림을 느낄 수 없는 이유는 왜일까. 바로 이율배반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낙하산 인사가 새 정부에서는 없어져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그런데 집권 후 올해 5월까지 선임된 공공기관장 153명 중 낙하산 인사가 무려 75명이다. 문화융성과 관광대국을 내세운 박근혜 정부가 관광공사 감사에 전문성 없는 대선 캠프인사를 채우면서 논란이 더 확산되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의 ‘보은 인사 끝판왕’ 임명에 국민은 배신감마저 느낀다. 이런 염치없는 일을 하면서도 입만 열면 국가 혁신을 외치고 있는 이 정부가 세월호 참사에서 무슨 교훈을 얻은 것인지 의문스럽다. 국민통합을 위한 통치동맹을 기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원희룡 지사는 도민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도민의 성원에 보답하는 길은 시대를 바꾸는 혁신과 소인정치의 틀을 깨는 경장을 제대로 추진하는 것이다. 원 도정만이라도 박근혜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민의 느끼는 배신감, 실망감, 좌절감을 해소해 줬으면 한다.

 

 

제주 사회의 다양성 결여가 관 적폐를 심화시켜

 

# 제주 소재 대표 공기업의 무원칙한 인사
제주를 대표하는 이 공기업의 문제도 능력·전문성 따지지 않고 날아드는 염치없는 낙하산들이다. 상층부 대부분이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선거공신과 정권과의 특정한 연고를 통해 알뜰하게 챙겨졌다. 지금 이 공기업이 어떤 상황인가.

 

이 기업은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낙제 등급을 받았다. 전문경영을 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비전문가 낙하산에게 경영을 맡기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전문성이 떨어지니 경영실적이 좋아질 리 없다. 그들만의 게걸스러운 감투 잔치는 도민의 불신을 사는 지름길이다. 제주 대표 공기업의 한심스런 공직 풍속도다.

 

지금 제주사회는 세계화의 개방시대의 도래로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개방의 물결과 더불어 가혹한 경쟁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을 맞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사회는 아직까지도 과거 도서지역의 폐쇄적 특성에서 형성된 제주 특유의 연고(緣故)향수에 빠져, 모든 현안이 배타적이고 근시안적 자기안위라는 가치관 속에 갇혀 있다.

 

여기에다 동종교배 인사의 심화와 시껫집 담합정치, 괜당문화의 생활화, 진영논리에 함몰된 도민의식이 관료주의 문화와 집단사고의 오류를 더욱 확산시킨다. 이러한 현상은 동질성의 집단에 이질성을 야기시켜 지역갈등과 사회 양극화로 이어지면서 제주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집단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폐쇄적 집단사회는 양적 성장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혁신과 창의를 필요로 하는 질적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집단사회의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제주의 괜당사회처럼 리더를 중심으로 정해진 노선에 따라 집단으로 움직이는 소위 '철도형 사회'다. 관광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철도형 사회를 상징한다.

 

철도형 시스템으로 일본은 국민적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결집시키면서 지난 20세기를 풍미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본은 각종 담합으로 보호와 진입장벽을 높여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막고, 패거리주의·폐쇄주의를 고수하면서 편안한 현실에 안주하는 선택을 했다. 이러한 현실 안주 사회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인들은 각종 경조사 모임에 얼굴을 수시로 내밀며 담합에 기대었다. 제주 시껫집 담합정치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현실 안주 성향의 일본의 집단사회는 당연히 사고의 경직성을 낳고 창의적 대응에 한계를 보이면서 머지않아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경제 강국 일본을 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맞게 한 바로 그것이다. 가이드의 깃발 따라 여행하던 시대가 저물었듯이 말이다.

 

유대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데에는 나라를 잃고 2천년 동안 세계를 떠돌면서 다양한 민족, 다양한 문명과 부대끼면서 일어선 전형적인 이종교배 민족이라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2009년 명문 옥스퍼드대는 대학의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학문적 이종교배를 통한 융합이 필수적이라 보고 라이벌 케임브리지대 출신인 ‘앤드루 해밀턴’을 총장에 임명하여 900년 넘게 이어 온 전통을 깼다.

 

제주 관료집단의 장기간에 걸친 독점적 지위 유지는 지역사회의 집단성을 더욱 심화시켜 변화와 개혁을 가로막고 있다. 관료사회가 복잡다난한 현안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도민과 지역 네트워크의 협조와 이를 적극 활용하는 대화와 타협의 열린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도 관료사회는 군림하려는 자세와 현실에 안주하는 구태의연한 보신주의 사고에 빠져 있다. 타 지자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국제자유도시의 완성을 위해서도 관료사회의 개혁을 통해 효율성과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제주 관료사회를 둘러싼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대내외 변화의 인식과 변화와 혁신을 통해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여 도민의 신뢰를 확보하여야 할 것이다. 도민들이 바라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눈높이가 과거와 다르게 상당히 높아졌음을 항상 인식하고, 군림하는 관료가 아닌 공복으로 봉사하는 새 역할로 바꿔야 한다.

 

혁신은 개인이나 기업뿐만아니라 관료사회에도 필수적이다. 관료사회의 혁신은 정책결정과 집행과정에 있는 비효율성과 조직 중심주의를 제거하고 국민이 만족하고 일 잘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세가지 혁신 중 가장 어려운 것은 관료사회의 혁신이다. 우선 동기부여 측면에서 민간 부문보다 훨씬 약하며, 성격상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기에 시장의 냉정한 생존경쟁에서 한 발짝 비켜나 있다.

 

그러나 세계화의 개방시대에서 관료사회도 더 이상 변화를 미뤄서는 안되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 도래했다. 관료사회의 혁신이 국가발전의 성장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관료사회에도 블루오션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지금까지 해온 규격화와 관행적 형태의 행정이 아니라 국민들의 지지가 가능한 새로운 행정영역을 개척해야만 한다.

 

더구나 지금은 관료사회가 재화나 서비스 제공에 독점적 지위 유지가 불가능하여 민간부문과 경쟁(택배회사, 교육 등)해야 하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관료사회가 조직구조, 문화, 업무프로세스 등 모든 측면에서 혁신을 지속하지 않으면 언제 쇠락의 길로 빠져들지 모른다.

 

하지만 관료집단의 저항으로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민간 기업은 구조조정을 할 때 인원정리를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관료집단은 철밥통이 보장되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해도 불안에 떨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필요치 않기 때문에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관료 개혁이 성공하려면 관료들의 꽁무니에 불을 댕기며 긴장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직장, 연봉, 연금을 몽땅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제주 관료주의의 폐해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첫째, ‘슈퍼 갑(甲)’ 관료집단의 부도덕한 갑질이다.
제주 관료집단의 권력 만능주의 병폐가 드러나면서 제주 사회에도 갑을 관계가 성찰적 담론으로 등장했다. ‘슈퍼 갑(甲)’ 제주 관료집단의 대표적 갑질은 을(乙)의 지위에 있는 도민을 대상으로 구사된다.

 

도민을 상대로 제왕적 권한의 무기를 휘두르는 제주 관료집단이야말로 제주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슈퍼 갑’이다. 이들의 갑질 수법은 무소불위의 권력에 기대어 갈수록 다양하고 교묘해지고 있다. 각종 전시성 ․ 치적쌓기 사업을 도민의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저질러놓거나, 그 책임과 폐해를 도민에 떠넘기는 행동이 전형적이다.

 

하지만 제주 도민들은 ‘슈퍼 갑’ 관료집단과의 관계를 유지해 나가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우월적 갑의 일방적 계약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도민들은 이들의 ‘예속적 하도급 동물원'에 갇히고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거기서 빠져나갈 수 없게 된다.

 

이런 악순환의 관계가 지속되다 보니 관료의 도덕성과 신뢰의 추락과 함께 제주 사회의 창의성과 역동성이 떨어지면서 지역경제는 점점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유능한 제주의 인재들과 생태계가 잠재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예속적 하도급 동물원에 갇혀 서서히 질식해 죽어가며 지금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집단사고에 의한 오류 발생이다.
제주의 괜당·관료사회처럼 응집력이 높은 동질적 집단에서는 ‘우린 잘못된 결정을 할 리 없다’는 맹신을 바탕으로 문제를 특정한 사고의 틀 안에서만 바라보고, 이의(異議)를 제기하는 것을 억제하는 경향인 '집단사고(group think)'가 쉽게 작동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 하에서는 제주 사회의 모든 현안을 배타적이고 근시안적 자기안위라는 가치관 속에 가두게 되며 타자(他者)와의 공존을 거부하고 ‘닫힌 사회’로 치닫게 한다.

 

이러한 집단사고는 제주 공직사회의 기회주의와 기득권 유지로 점철된 관료적 보수문화를 더욱 심화시켜 지역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가로막게 된다. 또한 제주의 기득 정치권으로 하여금 수십 년간 자신만의 아성을 괜당의 이름으로 구축하면서 새로운 세대의 진입을 막는 폐쇄적이고 패권적인 행태의 고수로 나타나게 하고 있다. 아울러 동질성의 집단에 이질성을 야기시켜 지역갈등이 내재화되고 있다.

 

로마 제국의 멸망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집단 내부의 분파와 불평등이 커지면서 사회적 합의가 흔들리고 결속력에 금이 갔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IMF의 경제학자들은 선진국에선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으며, 금융기관의 문제는 시장 자율기능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는 집단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해 금융위기를 예측하는데 철저히 무력했던 것이다. <5편으로 이어집니다>

 

 

 

☞고운호는?

 

=1979년 한국은행에 발을 들여 놓은 뒤 제주출신으론 처음으로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이 됐다. 2005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3년간 재임하는 등 한국은행에서만 31년간 재직, 외길 금융인의 길을 걸어왔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으로 재직중엔 지역경제의 콘트롤타워를 목표로 제주경제포럼을 출범, 제주도지사와 함께 공동대표 역을 맡아 제주의 경제와 미래방향 논의의 불을 지핀 인물이다. 제주본부장 재직시절엔 제주본부가 한국은행 지역본부중 최우수본부로 지정됐다. [제주경제의 선진화를 위한 외침] 등 다수의 저서와 연구논문,자료를 냈다. 한국은행에서 퇴직한 최근에도 활발한 저술과 기고활동을 펼치며 제주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영훈 전 도의원이 원장을 맡고 있는 제주미래비전연구원의 이사장도 맡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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