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정부 예산안이 820조9000억원 규모로 편성됐다. 올해 본예산보다 93조원 많은 초슈퍼 예산이다. 올해 700조원을 넘었는데 1년 만에 또 앞자리가 바뀐다. 증가폭과 증가율(12.8%) 모두 사상 최대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제 파이를 키우고, 산업 역량을 고도화해 재정 여력을 확대하는 생산적 선순환 재정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도체 초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경제체질 개선에 과감히 투입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선심성 현금 지원 예산도 눈에 띈다. 30개 지방 국립대 신입생 6만여명에게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농어촌 기본소득 예산이 올해 3407억원에서 내년 1조1658억원으로 확대된다. 내년 국가공무원 정원을 올해(2550명)보다 1300여명 많은 3851명으로 늘린다.
내년도 초대형 예산안 편성이 가능한 것은 반도체 초호황과 대규모 성과급 지급으로 법인세·소득세 등 국세 수입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돼서다. 내년도 국세 수입은 194조2000억원 증가할 전망이다. 총수입이 880조원을 넘어선다.
나라든 가계 살림이든 수입이 늘어나면 빚은 줄거나 적어도 동결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정부 예산안을 보면 나랏빚은 되레 증가한다. 내년 국가채무는 올해보다 106조원 불어나 1519조8000억원에 이른다. 정부는 수입이 200조원 가까이 늘어나는데 왜 나랏빚이 100조원 넘게 늘어나는지 납득시켜야 할 것이다.
게다가 내년 예산안에는 162조3000억원 규모 ‘미래대응기금’이 있다. 이중 45조4000억원은 예산에 포함해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의 4대 분야에 투입한다. 국채 신규 발행 축소에 12조5000억원을 쓰고, 나머지 104조4000억원은 여유자금으로 남겨둔다.
내년 국가채무가 100조원 넘게 늘어나는데 왜 여유자금으로 100조원 넘는 딴 주머니를 가지려 하나. 그것도 일반회계가 아닌, 국회 통제를 덜 받는 기금으로 두려는 것은 정부가 마음대로 꺼내 쓰는 ‘쌈짓돈’화할까 우려된다. 기금운용계획도 국회 심사를 받지만, 실제 집행할 때 주요 지출의 20~30% 범위에서 정부 자체적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재정 급팽창은 한국은행이 7·8월 두달 연속 기준금리를 올리며 시중 유동성을 줄이는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펴는 것과 배치된다. 한은이 물가와 집값이 뛰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조절하는 통화든, 정부가 확대하는 재정 지출이든 매한가지 돈이다. 한은이 돈줄을 죄는데 정부가 지출을 늘리면 물가안정 노력은 겉돌 가능성이 높아진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1%로 두달 만에 다시 3%대로 올라섰다. 특히 한은이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중시하는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상승률은 3.4%로 더 높다. 자주 구매하는 품목들로 짜여 체감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도 3.2% 상승했다. 추석을 앞둔 가계의 시름을 더할 판이다.
정부는 203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49% 수준으로 관리하겠다지만 장담할 수 없다. 반도체 초호황으로 올해와 내년 명목 GDP가 크게 증가한다. 국가채무(분자)도 늘어나지만 GDP(분모) 증가폭이 더 커 국가채무 비율이 개선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래도 빚의 절대 규모가 불어나는 현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반도체는 경기 변동의 영향을 받는 산업이다. 슈퍼 사이클이 언제까지 갈지 불확실하다. 반도체 업황이 나빠지면 세입 기반이 흔들리고, 다시 세수 부족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 영국, 독일 등의 장기 국채금리가 동반 상승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에 ‘금리 발작’ 경고등이 켜졌다. 중동전쟁 격화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 인플레이션 우려, 막대한 국가부채로 인한 주요국 재정 부담이 겹치면서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국채금리가 상승하면 시장금리도 같이 올라 기업 투자를 위축시키고 가계 이자 부담을 늘려 내수 회복의 발목을 잡는다. 나랏빚 이자를 갚는 데도 세금이 더 들어간다. 반도체 초호황 혜택을 보는 한국 입장에선 금리 상승으로 AI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도 불안요인이다.
장기 국채금리 상승은 세계경제에 고유가·고물가·고금리의 삼중고 파고가 닥칠 수 있다는 경고등이다. 정부는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경제로 전이되지 않도록 선제적인 위기관리에 나설 때다. 무리한 돈 풀기를 자제하고 재정건전성도 점검해야 할 것이다.
정부 지출은 한번 늘리면 줄이기 어렵고, 확대한 만큼 다음 세대에 부담이 되므로 신중해야 한다. 정부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사가 더욱 중요해졌다. 여야 정당은 심사 과정에서 선심성 지출을 과감히 도려내야 할 것이다. 미래대응기금의 여유자금을 국가부채 상환에 대폭 투입하는 것이 타당하다. 성장동력 확보와 재정건전성 관리라는 대원칙에 입각해 꼼꼼히 심사해야 마땅하다. [본사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