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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이야기(60) 이왈종의 작품세계

자연 앞의 평등한 우리, 그럴 수 있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인생살이 만만찮은 것, 결국에 우리는 홀로 살아가는 존재다.

우리는 자신의 삶의 무게만큼 사연이 길고 너비 만큼 고뇌가 크다. 이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내일보다는 언제나 지금 선 자리가 소중한 시작이며, 인생에선 무슨 일이든 일어난다.”

 

존재에게 주어진 시간의 무게

 

인생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러나 삶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필자가 처음 이왈종 화백을 알게 된 것은 아마도 1995년 11월 오랫만에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 보목리였다. 당시에 필자는 변시지 선생을 동행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창작 현장을 찾아가서 변시지 화백의 작품 세계에 대한 현장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동행 인원은 일반 시민 십 수명, 차량 몇 대로 간단히 이동하여 보목리 내창(건천 하천) 하류 편평한 돌담 아래 자리를 잡고 변시지 화백이 이왈종 화백을 소개하는 절차였다. 변시지 화백은 이미 출발 전에 이왈종 화백에게 연락해 놔서 보목리 거주지 근처에 가면 나오라고 한 상태였고, 11쯤 약속 시간이 되자 이 화백이 왔다.

 

화실 겸 거주지까지는 소리치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고, 이 화백은 막 작업을 하다 온 것 같았다. 일행이 자리 잡은 곳은 바로 섶섬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변시지 화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전 이 화백을 잠깐 소개하는 절차가 있었다. 변시지 화백은 이왈종 화백을 일행에게 특유의 가는 목소리로 소개했는데 서울에서 내려와 지금은 이곳 보목리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서 이미 이름있는 화가라고 했다.

 

당시 이왈종 화백은 제주가 좋아서 그림을 그리려고 남원 바닷가 빌라에서 2년 정도 작업을 하다가 서귀포 시내로 오려고 급히 집을 구해 보목리에 왔지만, 일반 주택이어서 작업실이 작아 큰 작업을 못 한다고 했고, 얼마 없으면 서귀포 시내에 건물을 구해 이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이 화백은 마흔다섯에 돌연 누구나 부러워하던 교수직을 그만두고 산남의 타향으로 와 사서 고생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이왈종 화백은 35년 전 제주에 뿌리를 내린 화가다. 1945년 경기도 화성 출신으로, 중앙대학교 회화과를 졸업,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74년 국전에 문화공보부 장관상, 1983년 제2회 미술작가상, 1991년 한국미술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추계예술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당시 추계예술대 교수였던 그는 안식년을 신청하여 제주 산남(山南:한라산 남쪽 서귀포를 말함)과 인연을 맺었다. 잠깐 남원읍에 화실을 두고 서울과 제주를 오갔다. 이 화백은 1991년 제주에 살 것을 결정하고 제주시에 내리니 어둠이 내렸고, 막 버스가 남조로 중간지점을 달릴 때쯤 “동편 차창으로 달빛이 훤히 비치자 문득 가족들이 떠 올라 ”내가 이러는 것이 과연 옭은 결정이었을까? 라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당시 이 화백은 ‘나는 무엇이고, 예술은 나에게 무엇인가’라고 화가로서의 인생을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한순간이 지나가면 그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을 놓치면 이후의 자신의 예술적 시간을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왈종은 의욕적으로 작업하는 화가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화가로서,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장르 경계가 없는 작가이다. 그는 다작으로 소문날 정도로 동양화 수묵으로 시작하여 장르를 확장하면서 한지 부조, 목조, 투각, 판각, 도자와 채색화를 개척했다. 한 마디로 전통적인 장르 개념을 파기하여 모든 조형적 실험을 통해, 미술이 할 수 있는 형태와 색채를 우선시했다. 전통 상여에서는 형태의 아름다움과 색채의 현란함을 가져왔고, 투박한 현무암과 화산섬 흙을 통해서 땅의 촉감을 느끼고 소리를 들었다.

 

보목리 이왈종이 살던 집 주변에 철공소가 들어서자 화실을 다시 서귀포시내 복판 삼일빌딩으로 옮겼다. 165㎡~198㎡ 정도가 되는 새로운 화실은 300호 5점을 동시에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곳이었다. 이 무렵이 왈종은 심란한 마음 정리를 위해 붓과 종이를 없애버렸다. 2~3년 동안 릴리프 작업에 몰두하였다. 붙이고 또 붙이는 작업은 몸을 지치게 했지만 살아있다는 정신적인 기쁨을 주었다. 그는 그곳에서 후회 없이 많은 작품을 했다고 한다. 마침내 제주에서 시도했던 릴리프 작업으로 개인전을 열었고, 좋은 반향을 일으켰지만, 화단의 시선은 싸늘했다. '이게 무슨 한국화냐? 조각이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화백은 개의치 않았고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1997년쯤, 풍광 좋은 정방폭포 근처로 화실을 옮겨 작업에 몰두하였다. 인생이 그런 것처럼 어느새 이왈종은 작업에 비례하여 대중적인 화가가 돼 있었다. 농부처럼 뿌린 만큼 거두었다. 2013년 스스로 왈종미술관을 설립하면서 제주도 서귀포의 뚝심 있는 자존적 상징이 되었다. 만년 한 동안 이왈종 화백은 천년 고찰을 다니면서 그림을 멈추지 않았고, 지금은 요가를 수행하며 건강한 삶을 누리는 삶을 그린다. 모든 것은 끝나기 전에 끝난 것이 아니다. 인생도 그런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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