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伐草) 시즌이 되면 제주 시내가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제주시 어승생 공설 공원묘지에는 벌초객들로 초만원을 이룬다. 묘소 구역마다 많으면 100명 적어도 20~30명이 우렁찬 예초기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모둠 벌초에 열 올린다.
제주에서는 보통 풀이 더 자라지 않는다는, 처서 이후 백로 전인 음력 8월 초하루 벌초를 한다. 벌초는 조상님 무덤 잡초를 베어 깨끗이 하는 거고, 소분(掃墳)은 경사로운 일이 있을 때 조상님 무덤에 가서 축문을 고유(告諭)하고 제사 지내는 의식을 말하며, 성묘(省墓)는 조상 산소를 찾아 살펴 돌보는 일이다.
옛날 제주 속담에 “식게 안 한 건 몰라도, 소분 안 한 건 놈이 안다(제사 안 지낸 건 남이 몰라도 벌초 안 한 건 남들도 안다)”, “소분 안 허민 자왈 썽 멩질 먹으레 온다(벌초 안 하면 조상이 추석 명절 때 덤불을 머리에 쓰고 온다)”라고 할 정도로 전통사회 제주에서는 벌초가 그만큼 중요하다.
벌초 방학과 감귤 방학
2000년대 이전 제주에는 벌초 방학이 있었다. 벌초를 위해 제정한 임시 휴교일이다. 농번기 방학인 감귤 방학과 함께 제주에만 있었다. 요즘 들어 직장인들 편의에 맞춰 벌초를 음력 8월 1일에 하지 않고 그날이 포함된 주말에 하는 경우가 많아서 벌초 방학은 사라졌다.
벌초는 보통 가지 벌초(개인 벌초)와 모둠 벌초(문중 벌초)로 나눠진다. 기제사를 지내지 않는 윗대 조상 묘소 벌초다. 추석 당일 성묘 지내는 풍습이 없는 제주도에서 모둠 벌초는 오랜만에 만난 친척과 정을 나누고 공동체 결속을 다지는 자리다.
모둠 벌초는 각자 집안별로 벌초하다가 음력 8월 1일이 되면 부계(父系) 8촌 이내 친척들이 모여서 가장 윗대 조상 묘부터 벌초하는 걸 말하며 가지 벌초와 다른 문중 벌초다. 같은 조상 자손들이 매년 한 번씩 모여 벌초한다는 점에서 공동체 의식을 더욱 깊게 다지는 혈연 중심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벌초는 대개 무덤이 한곳에 모여 있으면 하루에 끝나지만, 여러 곳에 흩어져 있으면 2, 3일씩 걸렸다. 지금도 기억난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 아버지와 함께 도시락 싸 들고 새벽에 걸어서 출발하여 어두워질 때까지 한라산 중턱을 헤매며 조상님들 벌초를 다녔다. 지금처럼 도로가 잘 나지도 않았고 자동차도 귀했던 시절이라 삼 일 내내 벌초하러 다녔다.
벌초는 문중(門中)이 단합하고 조상에 대한 효를 실천하는 중요한 자리인 만큼 모든 후손이 참여해야 했다. 지금도 제주 사람들은 외지에 나가 있다가도 모둠 벌초 기간에는 반드시 제주도로 돌아온다.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면, 집안에 따라 소정의 벌금을 내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에 자발적으로 그날 벌초하느라 수고한 친척들 회식비를 보내오기도 한다.
제주 사람들은 어쩌다 생활에 바빠 추석에 고향을 찾지 못하더라도 벌초에는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어릴 적부터 강하게 인식해 왔다. 비행기표를 구하기 힘든 추석 시즌보다는 오히려 그보다 보름 먼저, 벌초 때 다녀가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최근 벌초 문화가 상당 부분 희석되긴 했지만, 여전히 중요한 전통으로 이어진다.
모둠 벌초는 문중 중심이기는 해도, 정작 전통 제주 사회 골자는 궨당(친척)이다. 모둠 벌초를 뺀 모든 집안 경조사나 지역사회 활동, 심지어 선거 같은 정치적 활동에도 궨당이 핵심 역할을 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